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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의 스타트업명강]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 제 무덤 파나

김편 2017. 7.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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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의 투자동향을 살피다보면, 최근 벤처캐피달이 얼마나 열심히 ‘인공지능’ 분야에 투자하는지 느끼게 됩니다. 자금이 그야말로 퍼부어지고 있습니다. 인수합병도 매우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뛰어난 인재가 인공지능 분야로 모이면서, 기술적 진보가 임계점을 넘어 그야말로 폭발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논문이 하루에도 서너 편 이상 발표되고 있습니다.(이는 물론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인공지능 분야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벤처캐피탈이 혹시 스스로의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발전한 인공지능이 벤처캐피탈리스트를 대체해버리지는 않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엉뚱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론을 하는 사람입니다. 투자자들은 이미 다양한 계산 및 분석도구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채권이나 옵션 투자자는 그 유명한 블랙숄즈 방정식 같은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적정 가격선을 계산하고, 거기에 인간의 판단을 더하는 방식으로 투자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블랙숄즈 방정식: 블랙과 숄즈가 개발하여 1973년 시카고 대학 연구논문집에서 발표한 모형으로 변동성, 옵션의 권리행사 가격, 만기까지의 기간, 무위험자산의 금리 등, 입수하기 쉬운 다섯 가지 종류의 데이터로부터 옵션이론을 도출했다. 옵션의 대표적인 평가방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매일경제, 매경닷컴)

 

주식시장에서도 기술적 분석도구는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동안 사용되던 분석도구에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그러니까 페이스북과 네이버 카페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각종 언론보도, 그리고 해외의 기술적 동향과 같은 것이 모두 더해지면 어떤 성과가 나오게 될까요? 여기에 위성사진을 활용하여 매장에 주차된 차량의 수를 파악하고, 링크드인(Linkedin: 구인·구직하는 직장인들이 정보 교환의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을 이용해 직원들의 이직 통계까지 반영할 수 있다면요? 물론 인간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면 금세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계학습(러닝머신)을 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좋은 투자의사결정을 도출해낸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연구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투자에 사용한 결과가 말입니다.

 

이런 변화 때문일까요? 투자전문가들이 줄고 있습니다. 이미 줄어드는 것으로 잘 알려진 ‘트레이더(Trader)’뿐 아니라 고급 투자전문직도 해고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블랙락(BlackRock)’은 어떤 주식을 살지 고르는 역할을 하는 고급 직종인 ‘스톡피커(Stock Picker)’를 감축했습니다. 그러한 일을 인공지능에게 맡긴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인공지능이 투자자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라고 안전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어떤 기준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지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연구는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비교적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본시장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도대체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결정을 하는지가 학자들도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대체로 네 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봅니다. 창업팀, 제품(서비스), 시장, 그리고 회수시점의 투자수익률이 바로 그것입니다. 산업이나 국가 등에 따라 이들 가운데 어떤 쪽에 더 비중을 두는지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개의 연구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고 전제해 봅시다. 인공지능은 이들 네 가지 영역에서 인간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다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창업팀에 대한 평가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이 당분간 그리 높지 않다고 봅니다.

 

이러한 판단은 이른바 ‘워렌 버핏 패더독스’와 관련돼 있습니다. 워렌 버핏의 투자전략은 매우 단순하고, 비밀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좋은 경영진’과 ‘좋은 브랜드’를 가진 기업에 투자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도 이렇게 투자합니다. 그런데 이 ‘쉬워 보이는 일’을 다른 이들은 해내지 못 합니다. 많은 펀드가 워렌 버핏의 이 단순한 전략을 모방했으나 기대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어떤 경영진이 좋은 경영진인지, 어떤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워렌 버핏과 같은 수준으로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경영진’이나 ‘좋은 창업팀’을 고르는 일치된 기준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데이터를 분석해야 좋은 경영진이나 창업팀을 찾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인간’을 통찰할 수 있는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가치는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대체하기도 어렵겠지요. 따라서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적어도 당분간은 자신이 투자한 그 인공지능에게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을 듯합니다.

 

끝으로 이왕 벤처캐피탈리스트의 투자의사결정과 관련된 연구를 소개한 김에, 사족 하나를 덧붙이려고 합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경험이 적은 벤처캐피탈리스트만큼이나 경험이 지나치게 많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내리는 의사결정의 질이 낮다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경험이 적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뭔가 잘 몰라서 중요한 것을 빠뜨린다면, 반대로 경험이 많은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자신이 다 안다고 건방지게 생각해서 뭔가 중요한 것을 살펴보지 않는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름 경험 있는 전문가인 척 하는 저와 같은 이들을 뜨끔하게 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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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창업과 전략을 공부한 인연으로 스타트업이 바꾸어가는 세상을 관찰합니다. <국민대 창업지원단장, 한국벤처창업학회 명예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