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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패밀리 비즈니스..피는 물보다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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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2. 11. 1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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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 TIP 최근 중국에서 부의 승계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가족기업의 승계는 또 하나의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의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축적한 부를 본격적으로 승계 할 시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인의 92%를 차지하는 한족들의 경우 정부의 산아제한정첵으로 인해 대부분 독자승계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글. 이슬기 로지스 씨앤씨 대표 컨설턴트


1년여 전 중국내륙운송시장 사업 협의 차 상해에 있는 트럭운송회사를 방문 한 적이 있다.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지라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로 총경리의 이름 석자만 들고 회사를 찾아 가 미팅을 하게 된 것이다. 총경리가 나와 반갑게 맞아주고 동석한 부총경리니 재무담당이니 소개를 이어갔다. 


총경리의 성이 첸(?), 즉 우리말로는 진사장인 셈이다. 그래서 명함을 받아들고 Mr. Chen 이라고 불렀는데 참 곤란한 일이 벌어졌다. 부총경리와 업무담당 경리의 명함을 받았는데 죄다 Mr. Chen이 아닌가? 


필자가 당황스러워 하자 눈치 빠른 첸사장이 한국에 출장가면 전부 Mr. Kim 아니면 Mr. Lee 라서 아주 혼란스러웠다며 자신의 회사는 한국보다 더 심하다고 애써 짓궂은 표정을 하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그중 재무담당 경리는 홍일점 여자였고 성이 달라 여기가 첸씨 왕국은 아니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재무담당 경리는 첸사장의 아내였다.

 

사실 중국에서 이런 일은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더구나 민영기업에서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접하는 일이다. 필자 역시 종종 겪는 일이었지만 첸사장의 회사와 같이 받은 명함 5장중 4장이 Mr. Chen인 경우는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 했던 것이다.  


예의 첸사장의 회사와 같은 경우를 우리는 흔히 가족기업이라고 부른다. 가족기업을 영어로는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라고 하는데 얼핏 갱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마피아를 연상케 한다. 마피아도 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가족기업이라고 항변 하겠지만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고 있으니 그것은 범죄이지 비즈니스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중국에는 이러한 패밀리 비즈니스가 많다. 중국 민영기업의 90% 이상이 가족기업이라고 하니 참 많은 셈이다.


중국의 가족기업은 뿌리가 깊다. 아니 중국문화의 일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공산혁명 이전 수천년을 유교사상이 지배해 왔고 전통적으로 가족은 중국인들의 삶의 핵심요소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血濃於水),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家和萬事成)는 것이 중국인들의 마음속 깊은 생각이고 보면 지금의 가족기업의 번성함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할 것이다. 


비록 현재의 공산주의 체제가 본래의 모습을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중국은 사유재산이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곳이고 현실적인 모순의 결과로 법률적인 뒷받침이 충분히 이루어 지지 못하는 상황이고 보면 가족기업에 대한 기대와 안도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가족기업은 기업이 가족과 어느 정도 관계를 가지고 갈 때에 가족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가족기업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도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 졌고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있다. 혹자는 등기임원이 친인척인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고 어떤 학자는 가족구성원이 기업의 지분을 60%이상 소유하고 있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또 어떤 학자는 기업의 소유권과 정책결정이 친·인척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로 주장하고 있다. Daily & Dollinger의 의견과 같이 성이 같은 사람이(두사람 또는 그 이상)기업의 경영자로 등재되어 있는 경우로 규정한다면 한국 사람들이 만든 회사는 아마도 가족기업이 아닌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가족기업은 무엇일까? 중국의 사회과학원 연구원 Pan Bisheng은 “한 가족 혹은 몇 개의 친밀한 관계가 있는 가족이 한 기업의 전부 또는 일부분의 소유권을 가지면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그 기업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으로 가족기업을 규정하고 있다. 이 의견대로 기업의 경영권을 가족이 행사하는 기업이 가족기업이라면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소유권만 가지는 기업은 가족기업이 아닐까? 


중국의 민영기업에서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하는 경우가 흔치 않고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중국에서 전문경영인의 입지는 다분히 제한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경영인이 오너와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 더러 전문경영인과 가족은 엄연히 등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의 가족기업 내에서 구성원들은 크게 가족과 친한 사람 그리고 외부인으로 나뉜다. 우선 가족이 기업의 최상위층을 점유한다. 물론 가족이라고 다 같은 가족이 아니다. 가족은 다시 부모, 형제자매와 같은 최고의 핵심가족그룹과 종친이나 처가와 같은 차상위 가족그룹으로 나뉜다. 기업 정책결정이나 기획, 재무, 인사 등 핵심 업무는 통상 핵심가족그룹이 담당하고 구매나 일반관리 업무는 차상위 가족그룹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이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과 부분적으로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친위그룹(여기에 동향 친구나 학교동창 등이 해당된다)이다. 이들은 주로 영업관리나 마케팅 등 대외관리업무를 주로 수행한다. 그리고 맨 아래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단순고용관계의 외부인으로 분류한다. 회사와 무관한 외부인은 아니지만 사내의 외부인으로 분류되고 대부분 실무에 종사하는 인력들이 이들이다.


아마도 중국에서 가족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유가 이러한 보이지 않는 등급의 존재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족기업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한 추진력으로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 하는 등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의 세습이나 부적절한 지배구조,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인 의사결정구조 등의 단점요인으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중국에서 부의 승계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가족기업의 승계는 또 하나의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 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의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축적한 부를 본격적으로 승계 할 시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인의 92%를 차지하는 한족들의 경우 정부의 산아제한정책으로 인해 대부분 독자승계를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고 보면 기업의 안위와 자식승계의 객관성 사이에서 작지 않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류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부분의 민영물류기업의 경우 9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대외 무역의 폭발적인 증가에 힘입어 오늘날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이러한 민영물류기업의 오너들은 현재 대부분 60대 전후반에 걸쳐 있어 어떤 형태로든 혈육으로의 승계가 필요한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은 중국인들에게 가족기업 승계에 더 큰 고민이 있다면 외동딸을 가진 오너들의 걱정이 아닐까 싶다. 한족들의 하나밖에 없는 친자가 아들이 아닌 외동딸일 경우 이들의 고민은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중국이 남녀평등이 진일보한 사회라고 할지라도 여성 오너의 사업 활동범위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얼마 전 방문한 회사의 경우 총경리보다 발언권이 강한 부총경리와 더불어 두어 시간 미팅을 하다 보니 누가 총경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심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전날 총경리와 호텔에서 만나 밤늦게까지 열변을 토하며 협의했던 사업계획은 일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변했고 총경리는 오지도 않은 듯한 핸드폰 통화를 한답시고 연신 회의실을 들락날락 거린다. 


부총경리의 의견이 일면 타당성이 없지는 않으나 멀쩡한 총경리가 철저히 무시당하는 분위기에 필자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럽고 불편한 기분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총경리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취기에 측은한 마음마저 들어, 오늘 회의시간에 사사건건이 말이 많던 그 나이 들어 보이는 뚱뚱한 여자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총경리 왈, '아이런(愛人)'이란다. 

아뿔사, 여러분 아시나요? 중국어로 '愛人'은 애인이 아니 랍니다. 총경리의 아내를 나이든 뚱녀로 표현 했으니... 필자는 순간 앞이 캄캄해지면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회의시간에 운동화에 청바지 입고 들어온 젊은 직원이 총경리라며 악수를 청할 때 느꼈던 당황스러움도, 세관장 초청 만찬에 낮에 본 세관 여직원이 정복을 입고 화려한 가무로 흥을  돋우는 황당함도 겪었지만 그날의 '아이런' 사건은 두고두고 필자의 경솔함과 무지함을 반성하는 계기로 남아 지금도 짠한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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