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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중국 물류 비즈니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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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3. 3. 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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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슬기 로지스씨앤씨 대표


[CLO] 대학시절 한때,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를 달달 외워 술자리마다 시조처럼 읊조리고 다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좀 유치하기도 하고, 한편의 어설픈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중국이 ‘중국’이 아니라 ‘중공’으로 불리던 당시에 금단의 대륙에 대한 경계심과 더불어 묘한 호기심에 백과사전을 뒤져가며 중국에 대한 상상을 키워가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 시절 그렇게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중국이지만 우리네 생활 속에 중국은 늘 가까이 있었다. 가끔 집안 어른들이나 친구분들이 오시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술을 내놓으시고, 동네 청요리집에서 철가방 가득히 탕수육이다, 팔보채다, 난자완스다 별별 중국요리를 잔뜩 시켜 밤새 동네를 시끄럽게 하던 일이 생각난다.


덕분에 짜장면으로 파티를 한 우리는 어른들이 아낌없이 쥐어주는 용돈에 잔칫날이 따로 없었다. 물론 손님들이 자리를 뜨기가 무섭게 어머니에게 다 상납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코끝을 자극하던 그 정체불명의 고약한 술 냄새가 이제는 그윽하고 달콤한 냄새로 나의 후각과 전두엽을 자극하고, 중국 출장이라도 다녀올라치면 빠이주 한두병은 잊지 않고 사 오는걸 보면 부전자전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닐 듯 싶다.          


필자가 1994년 처음으로 중국땅을 밟은 이후 십수 년간 중국을 오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자리가 만들어 졌지만 중국에서 술이 없었던 자리는 기억에 없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었나 보다.  無酒不成席, 無酒不成禮 “술이 없으면 자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술이 없으면 예가 아니다”그만큼 중국인들의 생활에서 술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정작  사업보다 주량이 더 빨리 늘어나고 자신이 사장인지 술상무인지 헷갈린다는 우스개 소리도 종종 들린다. 필자 역시 술자리로 말미암아 힘든 일이 술술 풀린 기억이 있는가 하면 술자리 때문이 도리어 일이 꼬여 낭패를 당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술을 전혀 못하지는 않아 한편 체력으로 한편 눈치로 버티면서 술이 없으면 예의가 아니라는 중국에서 그나마 비즈니스를 무사히 이어온것 같다. 


몇 년 전 만난 중국 청도의 모 일급대리의 동사장(董事?)이 생각난다. 신년 가격협상을 위해 청도를 방문한 때였다. 양사 간 수년간 거래를 해 온 터라 당시 방문은 가격협상이라기 보다는 신년인사 정도로 부담 없이 만나는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예상대로 신년에 적용 할 통관료나 취급수수료 등이 원만히 협의가 끝나고 일급대리회사의 총경리가 저녁 만찬에 우리 일행을 초대하였고 우리는 기꺼이 그 자리에 참석 하였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동사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중국에서 동사장은 우리로 치면 대표이사로 볼 수 있는데 오너사장이라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동사(董事)는 이사회(理事會)의 이사(理事)이고 동사장은 동사(董事)의 장이니 우리로 치면 대표이사인 셈이다. 때로는 총경리가 대표이사 역할을 하고 동사장이 따로 있을 경우 회장의 개념으로도 쓰이는데, 동사장이 총경리를 겸임하는 경우도 많아 딱히 동사장을 회장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 


통상적으로 동사장은 오너 사장 또는 회장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고 실질적인 지분이나 지배관계는 기업마다 다르므로 필요시 따로 파악 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수년간 거래하면서도 총경리만 만났지 동사장을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인지라 다소 어색하기도 하였고, 동사장이 당 고위간부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어 살짝 긴장도 되었다. 


총경리가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이라 해마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오던 터인데, 베일에 가린 동사장은 또 어떻게 우리에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줄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우리 일행은 저녁 테이블에 둘러앉게 되었다. 통상적인 순서대로라면 총경리가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환영사를 하며 첫잔을 권할 것이고 환영 3배 후에는 우리가 나서 화답의 잔으로 응수하는 순으로 자리가 이어질 것이기에 머리수에서 절대 불리한 우리는 늘 중국에서 고생하고 한국에서 폭탄주로 복수를 하는 역사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동사장이 참석 했으니 신년 첫 음주대전이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 사뭇 기대가 되었고 기선을 제압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첫 순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당 종업원이 들고 들어오는 청도맥주 여러병 중에 1.5리터짜리 콜라페트병이 보이는게 아닌가? 


아마도 오늘 참석자 중에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찰라, 동사장이 콜라잔을 집어들고 가득 채우더니 자신은 오늘 콜라로서 술을 대신 하겠다고 선포를 한다. 아마도 무슨 약을 먹고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하며 예상보다 싱겁게 오늘 자리가 파하겠거니 하면서 긴장을 푸는 순간 동사장 왈, 우리가 맥주를 마시는 만큼 자신은 콜라를 마실테니 마음 편히 드시기를 바란다나? 


알고 보니 동사장은 체질적으로 술을 한방울도 입에 못대는 사람 이었다. 중국에서 중국인이 술 한방울 안마시고 사람들 만나고 사업 하기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닐텐데….


어쨌든, 콜라와 맥주의 등량 대결이라, 1994년 이후 중국 오가기를 십수년 이었지만 처음으로 접하는 상황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거니와 동사장의 제안은 예의상 날리는 코멘트 정도일거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고 그날 저녁 동사장은 혼자서 1,5리터 짜리 콜라를 세병 가까이 마셨다. 


필자가 태어나 처음으로 콜라 마시고 화장실에서 머리 숙여 기도하는 사람을 본 것도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괜찮다고 아무리 말려도 끝까지 콜라를 마시는 모습은 만취한 사람이 남의 말 안듣는 고집과 다를 바 없었고 화장실 피날레까지 완벽한 음주자의 전형으로 대미를 장식함으로써 우리 일행을 놀라움과 걱정에 휩싸이게 한 밤 이었다. 그 동사장은 그날이후 콜라 접대를 포기하고 이제는 차를 조금씩 마시면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할라치면 그날의 콜라대첩 사건은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로 우리의 대화를 즐겁게 한다.


우리는 흔히 중국인이라고 하면 독한 술을 동이 채 들이키는 수호지의 노지심이나 삼국지의 장비 같은 인물들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인도 사람이고 보면 술에 약한 사람도 많고 아예 술을 못하는 사람도 꽤나 있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술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지라 독하디 독한 중국술 때문에 적잖이 고생한 기억이 적지 않다. 


1990년대 중반 중국사업 초기에 중국 각지를 다니면서 수많은 술자리를 접하였고 어떻게 하면 술을 적게 마시면서 버틸까 궁리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혼자서 12명을 상대로 접대를 하다가 병원에 실려갈 뻔한 일이며 달리는 차창 밖으로 토를 하다가 안경을 떨어뜨려 몇일을 눈뜬 장님같이 지냈던가 하면, 멀쩡한 5성급 호텔을 두고 싸구려 호텔에서서 5명이서 올챙이 잠을 잔 일이며, 젊은 세관원들과 밤새 술 마시다 아침에 같이 공항세관으로 출근 한 일 등등 잔잔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요즘은 중국술이 보편화돼 마트에서도 쉽게 살수 있다 보니 중국술만 찾는 매니아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필자 주위에도 무시로 빠이주 모임을 갖는 친구들이 있는데 중국 출장이라도 다녀올라치면 어디서 사왔는지 특이한 술들을 많이 사온다. 예전에는 중국술 포장이 시원찮아 여행용 캐리어에 넣어오다 보면 마개가 새 온 비행기안이 빠이주 냄새로 도배를 하는 해프닝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요즘은 중국술도 세련되고 포장도 좋아져 한두병 사오기를 별 부담이 가지 않는다. 


다만, 중국에서 사 오는 술의 종류는 다소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마오타이주(茅台酒) 아니면 우량애(五粮液)가 대부분 이었지만 요즘은 쉐이징팡(水井坊)이 대세가 아닐까 싶다. 원래 쉐이징팡은 1998년 사천성의 수정가(水井街)에 있는 어느 양조장이 시설 개축을 하다가 우연히 지하에 묻힌 양조장 유적을 발견하였는데 원-명-청나라 3대에 걸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어 양조장 측에서 회사 이름을 사천수정방공사(四川水井坊公司)로 바꾸고 ‘쉐이징팡’ 이라는 브랜드로 출시하여 탄생하게 된 술이다. 고대유적에서 빚었다는 호기심과 신비로움이 깔끔하고 깊은 맛과 상업적으로 절묘하게 블랜딩 되어 대박이 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좀 이름 있다는 서울 도심 중국음식점에서 한병에 50만원 정도는 줘야 맛 볼 수 있으니 출장길에 한두병 사오기를 사치로 치자면 조금은 억울한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 물류업계의 어느 사장님이 술만 드시면 메들리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찰랑찰랑으로 시작해서 “쿵짝쿵짝 네바퀴 속에 ~”를 거쳐 “물류는 아무나 하나 포딩(포워딩)은 아무나 하나~”로 끝나는 기본 20분짜리 자작개사 메들리를 듣다보면 술과 물류사이가 그렇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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