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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학에 없는 물류

INSIGHT

by 김편 2015. 12. 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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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과 파리의 지능에 관한 재밌는 실험이 있습니다. 유리병 속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게임인데,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압도적으로 지능이 좋은 벌이 파리를 이깁니다. 그런데 같은 유리병 바닥에 빛을 비추면 벌과 파리가 뒤섞이다 파리가 완승합니다. 왜일까요? 파리는 이곳저곳 날아다니다 몇 분 만에 유리병을 빠져나왔지만 벌은 빛이 나오는 곳이 출구라는 경험이 쌓은 지식에 가로 막혀 빛을 향해서만 돌진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가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기술이 산업을 파괴하고, 재조합하는 융복합의 시대에는 벌처럼 기존 지식에만 의존한 채 과거 관행을 믿고 살다가는 망하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전략을 계획이 아닌 배우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린스타트업(lean startup)처럼 ‘만들기-측정-학습’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꾸준히 혁신해 나가는 자세가 강조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이 그룹 임원진에게 ‘쿠팡처럼’을 외치고,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오카도(Ocado, 英 식료품업체)같이’를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기존 비즈니스 관행이 해체되고 새로운 가치사슬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생태계가 만든 초연결의 시대가 수많은 산업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으며 IoT나 O2O, 빅데이터, 로봇 등 새로운 사업 모델들이 거의 모든 기업에 파괴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향후 10년 안에 이런 흐름을 대비하지 않는 기업은 몰락할 것입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면 기존 강자, 그리고 덩치 큰 거대기업들은 더 불리합니다.


아마존이 로봇과 물류 자동화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구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업종에 국한된 사고는 매우 위험합니다. 현재 한국의 물류업체들이 직면한 환경은 조직 융해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물류업은 본질적으로 장치임대업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요지에 운송 및 보관 인프라를 확보하고, 화물차나 화물기, 배를 빌려주면 장사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바일 기술의 확산으로 이런 모델에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공유경제란 거대한 트렌드 속에 화물차 운송중개, 창고보관, 3PL, 포워딩, 화물운임비교 등 기존 물류산업을 해체하는 스타트업들의 파괴적 모델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 물류업체들도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화물운송정보망을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스타트업과의 협업 모델 개발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이는 조직 융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에는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더 큰 애벌레가 되기 위한 노력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애벌레가 몸집이 커지면 포식자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스스로의 핵심역량을 해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CLO는 디지털이 해체하는 물류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Logistics Trend Forecast 2016>라는 주제로 바람이 부는 방향을 살펴봤습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산업인 만큼 이 분야에서의 고민과 대응은 다른 분야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큰 교훈을 줄 것입니다. 이번호를 통해 파괴적 변화를 주도할 아이디어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글. 김철민 CLO 기자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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