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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의 역사] 한국식 퀵 생태계 만든 공유망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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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9. 1. 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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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의 역사] 한국식 우버? 10년 전부터 있었다고! ④

퀵서비스 프로그램의 경쟁과 발전, 한국식 퀵 생태계 만들다

 


 

글. 김동현 체인로지스 대표

 

배달강국 대한민국. 이런 이미지를 심어 준 것은 절대적으로 ‘음식’ 배달이다. 과거 중식집, 치킨집을 필두로 요즘은 돈까스, 햄버거, 피자, 아이스크림, 심지어 회까지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음식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배달이 가능하다. 한강공원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여행상품이 될 정도니 말이다.

 

이처럼 배달서비스가 기존 짜장면, 치킨을 넘어 다양한 음식으로 확장된 배경에는 배달대행 서비스 도입이 존재한다. 사실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부릉(VROONG), 바로고(barogo), 배민라이더스 등의 플랫폼 서비스 이전부터 지역별로 배달대행업체들이 존재했는데, 위에 언급한 플랫폼 업체들이 시장에 적합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것이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과 접목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퀵서비스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이미 10여 년 전에 겪었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퀵서비스업의 절대 강자 '인성데이타'도 이때 등장해 자리 잡은 업체다. 2005~2006년경 퀵서비스 모임에 씨를 뿌린 인성데이타는 수년 만에 시장의 70~80%를 장악해, 현재 누구도 쉽게 진입할 수 없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인성은 대리운전, 배달대행, 화물차 시장까지 적극 진출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된 건지 필자가 아는 바 안에서 되짚어 본다.

 

퀵서비스 소프트웨어의 등장

2005년경 퀵서비스가 지역기반의 서비스에서 광역서비스로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딛던 때, 즉 퀵서비스 사무실에 전산시스템이 도입이 되던 시기의 서울에는 몇몇 군데 퀵서비스 사무실 운영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친목이 주요 목적이기는 했지만, 서로 간의 어려운 오더를 처리해주는 간단한 기능도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 모임에 영업을 시작한 프로그램 업체들이 있었으니 우람소프트, 인성데이타, 블루버그 같은 이름의 회사들이였다. 이후 점점 더 많은 프로그램 업체들이 등장했고, 단일 퀵서비스 사무실 자체의 영향력과 규모로 내부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하는 회사도 있었다.

▲ 인성데이타를 사용 중인 한 퀵서비스 사무실(출처: 개인 블로그)

 

이때는 각자의 방식대로 프로그램이 제작 되고 있었다. 우람 소프트는 웹기반의 프로그램 방식 이였고, 인성데이타는 설치형 프로그램 방식 이였다. 그러다 보니 각 프로그램들의 초기 모습은 각양각색 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 선택되어 사용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대부분 사용자가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나이였기에 특정 프로그램에 적응을 하면 다른 프로그램으로 전환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 선택은 특정 무리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사용이 이루어 졌고 거의 동시에 영업을 시작했던 우람 소프트와 인성데이타가 초반에 선두 경쟁을 하고 있었다.

 

설치형과 웹형의 대결, 승자는?

당시 영등포와 마포 지역이 주를 이루던 약 30여 개의 퀵서비스 사무실이 인성데이타를 선택해 사용을 했다. 프로그램 에러가 다소 있었으나, 설치형(installation type)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구동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매번 설치, 업데이트를 반복해야하는 번거로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 때문인지 서비스 초기에는 우람소프트가 조금 더 많은 사용자를 보유 하고 있었다. 우람 소프트는 웹형(web type)이였는데, 접근이 용이 하기는 했지만 설치형에 비해 반응 속도가 조금 느렸다. 당시에는 오더가 그렇게 많지 않을 때였으며, 프로그램이 없이도 업무를 보던 시절이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점차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자 퀵서비스 사무실에선 점점 이 속도 부분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혹자는 그 몇 초가 뭐 그리 큰일이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프로그램 사용자뿐만 아니라 주문자 등 업무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 또한 전화 한통에 몇 십초가 더 걸린다며 답답해 하니 퀵서비스 사무실에게는 단연 중요한 이슈였다.

 

몇 년 전 상당량의 투자금을 받아 퀵서비스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한 스타트업도, 전 세계 방식이라며 개발한 한 웹형 프로그램을 사용 및 배포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웹 방식의 프로그램은 퀵서비스 사무실에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퀵서비스 업계의 유능한 경력자를 스타트업 내부에 뒀으나, 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일까. 큰돈 들여 개발한 웹형 프로그램을 결국 내부 업무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격 경쟁의 시작, 핵심은 ‘공유망’

그렇게 막이 오른 퀵서비스 프로그램 업체들의 시장경쟁. 이들은 퀵서비스 사무실을 상대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이때는 퀵서비스 기사들을 사무실에서 등록 및 관리 했으니, 사무실과 계약하면 기사들은 자동적으로 프로그램에 등록이 되었기에 다른 영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퀵서비스 프로그램은 사무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개발되고 수정됐다.

 

물론 지금처럼 개발 인력이 많거나, 수준이 높은 단계는 아니었다. 하여 매우 더디기는 했지만 업체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작금의 배달대행 시작을 보면 이 시기 퀵서비스 시장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느껴진다. 물론 시장규모와 개발 수준은 매우 다르다 할지라도 프로그램사와 각 지점들과의 관계, 경쟁사와의 구도 등이 참 비슷하다. 그러나 결국 규모에 있어 배달대행 시장이 보다 거대하기에, 퀵서비스 시장처럼 한 업체의 장악력이 압도적이기 보다 몇몇 업체가 꾸준히 경쟁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퀵서비스 프로그램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알려져 많은 이들이 몰렸다. 다수의 프로그램이 개발됨은 물론, 개발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인성데이타와 우람소프트가 쌍두마차일 때도 네다섯 개의 군소 프로그램이 존재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등장과 퇴장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시장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거나, 긴 시간 영업을 이어온 업체들을 몇 군데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S 업체는 퀵서비스 시장에 콜센터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시켰다. 쉽게 말하면 엑셀에 시트를 여러 개 두는 방식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름 충성 고객이 있었다. 콜센터 방식을 시도하는 사무실에게는 거의 필수적인 프로그램이었고, 다른 사무실을 권리금 주고 사들이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업체들이 주로 이용했다. 추후 인성데이타 측에서도 해당 서비스를 적용했지만, 한 프로그램 안에서 각 시트별 요금이 부과되는 방식이었기에 아무래도 전환율은 떨어졌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역시 유지보수 문제, 기사 공유 부족 등이 이 프로그램의 최대 약점이었다.

 

L 사는 중반 이후 인성데이타와 가장 치열히 경쟁한 업체다. 소송을 일으키기도 했고, 사무실을 아예 사들여 직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규모있는 회사였으며, 개발에 대한 노하우 또한 이미 확보했기에 모든 부분에서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공유망이 약했다. 퀵서비스 사무실 상황에 따라 들어온 주문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공유 인프라가 약하다보니, 이는 영업 미진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이미 시장의 디지털화가 진행 된 상태였기에 공유가 받침이 안 되면 퀵서비스 사무실은 오더 처리에 어려움을 겪음은 물론, 기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기사가 퀵서비스 사무실을 선택함에 있어 사무실이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 하느냐가 중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퀵서비스 프로그램 시장는 인성데이타의 공유망 유지로 정리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몇몇 업체가 자본을 바탕으로 시장진출을 시도했으나, 이 공유 인프라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라 판단된다.

 

기사들에게도 찾아온 변화의 바람

프로그램 업계의 경쟁과 발전 속에서 퀵서비스 기사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외형적으로는 오토바이에 기계가 부착되기 시작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사무실에서 조차 메모지로 업무를 했으니 당연히 메모지를 이용했고, 그 메모지가 날아가지 않게 자석이나 클립으로 붙여 놓고 다니는 형태였다. 중반기에는 실시간 통신용으로 TRS무전기를 달고 다녔으며, 이후 큰 변화가 온 것은 PDA를 부착하면서부터다. 오로지 퀵서비스 사무실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인데, 이유는 배정한 오더의 내용을 기사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매 건마다 오더 정보를 적어주거나, 문자를 보내는 방식이 상당히 번거로웠기 때문에 고안해낸 방식이었다.

▲ 퀵서비스 오토바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비 거치대

 

그 당시 국내에는 산업용 PDA가 이미 보급돼 있었는데, 주로 블루버드의 산업용 PDA 모바일과 삼성 미오(MIO)를 사용하였다. 내구성 및 가격 면에서 우수해 블루버드 사용자가 훨씬 많았으며, 특정 기종은 아예 퀵서비스 전용 모델이 될 정도였다. 당시 블루버드 서비스센터 앞에 항상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몇 대씩 서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사용기종도 자연스럽게 변경됐다. 이때부터는 심지어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의 스마트폰을 거치하고 다니게 되었다. 스마트폰 도입시기부터는 퀵서비스 기사의 니즈가 반영됐기에 일어난 변화라 할 수 있다. 더 작고 빠른 기계를 통하여 오더를 보다 쉽게, 그리고 많이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스마트폰이 여러 대일수록 더 많은 오더를 높은 확률로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른 배송이 이루어지는 것도 신기한데, 이를 더 정확하고 고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일어난 변화는 가히 대단하다. 이미 15년 전부터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체가 있었고, 접수한 오더를 더 잘 처리하고자 프로그램을 이용해 공유망을 형성한 퀵서비스 사무실이 있었으며, 프로그램에 접수되는 오더를 수행하기 위해 그에 맞는 기기를 찾아 몇 개씩 달고 다니며, 심지어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활용하는 퀵서비스 기사들이 있다.

 

IT에 적응해가며 현재 활동 중인 퀵서비스 기사들은 주로 50대 이상의 연세이며, 양질의 교육 혜택을 받은 것 또한 아니다. 어쩌면 이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 세계의 배송 트렌드와는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년 만에 우리 현실을 반영한 고유의 배송 서비스를 형성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모습이라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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