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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을 위해 파괴해야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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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5. 7. 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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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을 위해 파괴해야 하는 것들

글. 김도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얼마 전 기업의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말을 생산적 혁신이나 창조적 혁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기존 기업에게야 이것이 파괴적일지 몰라도,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저렴하거나 편리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저도 영어의‘disruptive’를 파괴적이라고 번역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불만입니다. 그래서 저는 와해성 혁신이라는 표현을 좀 더 선호합니다만, 파괴적 혁신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널리 쓰여서 이를 수용하지 않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어떤 말로 번역할지 깊이 고민해보기도 전에 파괴적 혁신의 개념은 경영학계와 경영자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개념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일들을 설명할 틀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처음에는 일본의, 그리고 나중에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업체들에게 나가떨어져버렸고, 철강산업에서는 미니밀이 대형 제철소를 밀어냈습니다. PC는 메인프레임 컴퓨터들을 모든 영역에서 밀어내 버리면서 그 가치를 뽐냈지만 이제 작은 웨어러블 기기들에게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산업주도권의 뒤바뀜이 최근 들어서는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방을 구할 돈이 부족했던 세명의 젊은이가 만든 방 공유 사이트 에어비엔비가 호텔업체들을 위협하는가 하면, 인터넷으로 그저그런 영화를 보여주던 넷플릭스는 전세계 미디어업체들과 맞서는 공룡으로 자라버린지 오래입니다. 삼성전자가 샤오미에, 대형 백화점이 신생 소셜커머스 업체들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파괴적 혁신의 징후가 뚜렷해지는 것은 조그마한 스타트업들에게는 물론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실패의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온 힘을 기울여 기존 대기업들이 풀어내지 못한 고객의 문제를 풀어주기 시작하면 기술의 가속적 발전에 힘입어 기존 기업들과 한번 겨뤄볼만 하다는 것이 이 이론과 관련 사례가 주는 시사점이니까요. 반면 기존기업들에게 이 이론은 반갑지 않은 우울한 경고입니다. 기존의 경쟁자들과 미친듯이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미래의 산업판도를 바꾸어버릴 어린 기업들에 대한 경계를 풀면 안된다는 의미이니까요. 게다가 설령 파괴적 혁신자를 일찍 간파해낸다고 해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처럼 무섭게 시장을 잠식하는 저가항공사와 경쟁하겠다고 자회사를 설립했던 유나이티드 항공이나 델타가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던 것이나, 넷플릭스를 따라했던 블록버스터 온라인의 실패가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타이젠폰으로 저가시장을 빼앗아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의 전망이 그리 밝아보이지만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물류시장에서 스타트업의 기세는 두렵기만 합니다. 제가 CLO에 글을 쓰기 시작한 다음 관심이 커져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루가 멀다하고 물류분야 스타트업의 펀딩성공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근 두어주 사이에도 델리버리나 그랩과 같은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유치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직은 배송분야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페치로보틱스의 사례처럼 물류자동화분야의 스타트업들도 속속 자금유치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누가 파괴적 혁신을 이룰 지 흥미진진하기만 합니다. 물류분야 스타트업들 이야기를 하자면 물론 우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버는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렸지, 여전히 다양한 파괴적 혁신의 잠재력을 지니고있습니다. 특히 제 마음을 끄는 것은 우버가 자율주행에 보이는 관심입니다. 지난 2월 카네기멜론 대학의 로보틱스 분야 연구자 50여명을 한꺼번에 채용하더니, 얼마전에는 카네기멜론 대학내에 연구센터를 개소하기도 했습니다. 구글이나 테슬라가 아니라 우버가 자율주행을 연구하는 것이 좀 이상해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논리적으로는 당연한 일에 가깝습니다현재 우버는 소비자로부터 받는 비용의 80%이상을 운전기사에게 지불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율주행자동차가 가능해지다면 이 80%를 자신들이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구글이나 우버와 같은 기업들이, 그 규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파괴적 혁신자로서 활동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 흔히 스타트업들이 파괴적 혁신을 이룰 까요? 그리고 어떤 기업들은 성장해서도 스타트업처럼 파괴적 혁신을 이루어내는데 비해 , 어떤 기업들은 혁신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걸까요? 근래 들어 많은 경영학자들이 이스타트업스러움의 탐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의 결과가 이른바 EO(Entrepreneurial Orientation)이라고 하는 지표입니다. 이 지표는 어떤 기업이 얼마나 창업초기기업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학자들이 확인한 첫번째 특성은 혁신성입니.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프로세스를 개발하겠다는 마음과 태도가 기업내에 얼마나 충만한가 하는 것이지요. 두번째는 진취성입니다. 미래의 수요를 예측하고 먼저 행동하는 특성을 말합니다. 세번째는 위험감수성입니다. 결코 완전히 예측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자원을 투입하려는 성향이지요. 네번째는 경쟁적 공격성입니다. 시장에서 경쟁이 시작되면매우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특성은 자율성입니. 관료주의가 조직을 장악하는 것을 싫어하고 개인이나 팀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와 체제를 일컫는 것이지요.


 삼성전자는 지금 실리콘밸리에 무려 3500억원을 들여 사옥을 짓고 있습니다. 구글과 아마존의 사옥을 설계한 NBBJ라는 건축사무소가 설계하여 실리콘밸리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멋진 건물이 될 거라는 소식입니다. 이 사무실에서 삼성전자가 새로운 혁신을 쏟아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 사옥을 짓고 있다는 뉴스보다, 최근 자포스의 토니 셰이가 회사의 모든 직급을 없애버렸다는 것이 적어도 열배는 더 중요한 뉴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서 자포스는 밸브, 모닝스타등의 회사와 더불어 직급이 전혀 없는 완전 수평조직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은 관료주의의 악령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다 합니다. 대표이사에게 무엇이든 질문을 할 수 있는 회의(TGIF)를 지속하고 있는 구글이나, 새벽 두시에 대표이사에게 질문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테슬라의 사례는 유명하며, 독재적인 스타일로 알려져 있던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도 작년말 직원들에게 솔직한 사과를 한 적 있습니다경영학의 EO 이론과 수많은 실리콘밸리의 파괴적 혁신자들의 사례는 기존기업들에게 한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파괴적 혁신의 시작은 자기 자신의 파괴라는 것이지요. 조직 안에 깃든 관료주의와 타성과 싸우지 않고 산업을 재편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어찌보면 파괴적 혁신이라는 번역은 아주 적절한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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