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조성균 전략물자관리원 원장
원전 등 플랜트 수출과 전략물자관리의 중요성
테니스라켓 소재로 미사일을 만들 수도 있다
전략물자 관리 안 되면 이런 일 비일비재
1986년 일본 도시바기계가 구소련에 공작기계를 수출했다. 당시 냉전시기라 이 상황을 주시하던 미국은 이 공작기계가 저소음 잠수함용 대형스크류 개발에 이용된 사실을 확인하고 일본 정부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위반 사실이 없다고 했고, 미국에선 일본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며 하원을 중심으로 무역보복까지 거론됐다.
사태가 커지자 일본 정부는 뒤늦게 진상조사를 벌였고, 미 정부의 통보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굴욕을 무릅쓰고 나카소네 당시 총리가 미국에 공식 사과하고 도시바기계 회장이 사임하며 사태가 일단락됐다.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략물자 관리를 정부차원에서 대폭 강화했고, 이후 전략물자 수출 통제를 가장 철저하게 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 2000년 미국소재 조지아 대학 국제무역안보센터(CITS)가 매긴 전략물자 통제 평점에서도 일본(98)은 미국(97)을 앞섰다.
이 사건은 전략물자 관리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테니스라켓 제조에 쓰이는 탄소섬유가 미사일의 동체를 만드는 데 사용될 수도 있고, 백열전구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한 텅스텐 합금이 대전차용 포탄 탄심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지난해 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원자력이 국가 신성장동력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한국에서도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전략물자에 대한 관련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전략물자관리원 조성균 원장을 만나 원전 수출에 따른 전략물자관리의 중요성과 한국 정부의 전략물자관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전략물자관리 개념이 생소하다
- 대량파괴무기(WMD) 또는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 및 이들의 제조ㆍ개발ㆍ사용 또는 보관 등의 용도로 전용 가능한 군용 및 산업용 물품과 기술을 의미한다. 최근 국가적 관심을 받고 있는 원전과 관련된 전략물자로는 발전소 건설 시 필요한 원자로, 핵연료와 관련 기술 등이 해당한다. 9.11 테러 이후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가 국제안보의 핵심 이슈로 등장하면서, 2004년 UN안보리결의 1540호는 모든 UN회원국이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국가 차원에서 법제화하고 관리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무역규범으로 정착되었으며 한국도 전략물자 수출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원자력 관련 전략물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공급그룹(NSG)의 지침에 따라 핵확산에 기여하지 않거나, 핵 테러활동에 전용되지 않을 것이 확실한 경우에만 수출을 허용하고 있다.
◆그럼 예를 들어 원자로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 중 전략물자 관리대상은 어느 정도인가
- 원자로 1기 만드는 데 보통 200만개의 부품이 소요된다. 이중 전략물자로 관리가 필요한 품목으로는 원자로, 핵연료 및 핵연료교환기, 냉각재 펌프 등 주요설비와 밸브, 진공펌프 등 보조기기 및 관련부품이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전략물자 관리대상 품목은 총 5만7500여종이다.
◆원전 또는 플랜트 수출기업들이 전략물자 관리를 위해 갖춰야 할 인허가 절차가 있다면
- 원자력 관련 전략물자는 관계 행정기관으로부터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출하려는 품목이 전략물자인지는 수출기업이 스스로 자가판정을 하거나 전략물자관리원 등 판정기관에 사전판정을 의뢰하면 된다. 모든 전략물자 관리가 중요하지만 특히 핵무기 제조·개발에 쓰일 수 있는 원자력 관련 물자는 국제사회에서도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는 품목이다.
◆UAE는 중동지역이다. 주변 상황이 원전 관련 제품 수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지
- UAE는 국제수출통제체제 미가입국으로 수출통제에 대한 인식과 이행기반이 취약한 나라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략물자의 UAE 현지 사후관리를 통해 전략물자가 이란 등 주변국으로 흘러들어가 핵개발 등에 사용되지 않도록 추가조치를 마련할 예정이다. UAE로 이전될 물품이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 또 적절한 보안조치 아래 보관되는지 등의 여부를 수시로 점검하고, 한국 인력에 대한 수출통제 교육 등을 통해 민감한 물자나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UAE 인력을 대상으로 원자력 관련 교육도 제공할 예정이다.
◆전략물자관리원은 원전 수출과 관련해 어떤 일을 맡고 있나
- 전략물자관리원은 한국 정부와 기업의 전략물자 수출통제규범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7년 설립된 특별법인이다. 올 2월부터 정부와 지원기관,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원전관련 설비, 부품, 기술자료 등 전략물자 해당가능성이 있는 원전수출품목을 DB화하고 있다. 전략물자관리원은 올 7월부터 이 DB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DB정보시스템이 완성되면 원전관련 전략물자의 판정 및 수출허가 신청·처리가 일괄 가능해짐은 물론 사후관리도 쉬워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전력이 전략물자 자율준수체제(CP) 심사를 받았다는데
- 맞다. 한전은 UAE 원전 주계약자로 전략물자관리원의 지원을 통해 얼마 전 CP를 구축해 자율준수무역거래자 지정을 위한 심사를 받았다. CP는 기업이 내부 체계를 구축해 전략물자 관리의 모든 절차를 자율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식경제부의 심사를 거쳐 자율준수무역거래자로 지정을 받으면 한 번만 수출 허가를 받아 일정 기간(1-3년) 동안 전략물자를 자율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올해까지 한전 외에 6개 협력업체에도 CP를 보급한 뒤 협력사 등 관련업계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전략물자가 물류기업에도 영향을 주는가
- 수출기업이 물류기업에 AEO 등 보안 인증을 요구하거나, 북한, 이란 등 위험지역으로 운송하는 상황을 맞는다면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일 때 이야기로 전략물자 수출이 물류기업에 큰 영향은 주지 않으리라고 본다. 전략물자관리는 수출자와 최종사용자의 관계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해운, 항공 등 물류업체가 전략물자 운송을 위해 새로 갖춰야 할 조건은 특별히 없다. 단, NSG 지침에 따르면 원전관련 민감 전략물자의 경우 수출․수입간 운송에 대한 책임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특별약정을 체결토록 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하여 해당 물류업체의 주의가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who? 조성균 원장
1953년생
육군사관학교 32기
산업자원부 법무담당관, 전략물자관리과장
지식경제부 불공정무역조사팀장, 부이사관
한국전기안전공사 기획관리이사, 부사장
현 전략물자관리원 원장
대담 취재팀장 김철민 olleh@segye.com
정리 김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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