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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이 간다] 체험 동대문 사입삼촌의 현장(하)

INSIGHT

by 김편 2016. 12. 2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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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 생태계의 피크타임 '새벽', 사입삼촌을 따라나선 김정현 기자

- 동대문 도매시장의 대금거래, 삼촌은 어떻게 돈을 버나

- 삼촌이 모은 물건이 퀵라이더-화물운송기사에게 전달되기까지

체험 동대문 사입삼촌의 현장(상)<이어서>

 

얼마나 많은 매장과 건물을 돌았을까. 김씨를 쫓아 복잡한 매장 사이사이를 거니는 것 만으로도 벅차 중간부터 세는 것을 잊어버렸다. 새벽 세시 정도 되었을까 시계를 확인했지만 시곗바늘은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벌써 한 시라며 기자에게 걸음을 재촉했다. 

 

하나둘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어느새 번쩍이는 빛과 함께 소나기가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세게 내리는 비 때문에 길바닥에는 웅덩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김씨가 속도를 내어 손수레를 끌기 시작하자 웅덩이에 고인 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김씨는 우산을 펼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바삐 인파 속으로 합류했다.

 

다음은 가방 도매상이 몰려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친한듯 보이는 매장 언니는 "동규. 머리가 왜 그래 또 비와?"라고 말하며 김씨의 헝클어진 머리를 바라보며 웃는다. 비가 오면 으레 일상인 듯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그 날은 가방 물량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가방 주문은 신학기인 2월부터 3월 사이에 가장 많이 들어온다. 반면 요즘 같은 시기에는 주문이 건건이 들어오는 정도다. 몇 건 안 되는 주문이지만 의류보다 큰 부피 때문에 대봉(커다란 봉지)은 금방 찼다. 무게 또한 상당했다. 가방의 경우 의류보다 몇 배는 더 무겁기 때문이다. 한 층을 다 돌자 어느덧 대봉의 무게는 일반 옷을 넣은 봉지의 두 배 이상 무거워졌다. 봉지를 둘러업고 계단을 오르는 김씨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사진=짐을 싣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김씨)

 

한 매장에 멈춰서 김씨는 ‘D쇼핑몰 물량 준비 됐나요?“라고 묻자 ”오늘 D물건 없는데 무슨 말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삼촌은 분명 쇼핑몰을 통해서 주문장을 받았는데 쇼핑몰 측에서 도매 매장으로 상품 전달을 안한 경우이다. 김씨는 분명 쇼핑몰 사장이 직원한테 전달하는 것을 까먹은 경우일 것이라 설명했다. 할 수 없이 이 물건은 따로 쇼핑몰에게 출고처리를 못한다고 전달해야 한다.

 

다음 매장에서 또 일이 터졌다. 쇼핑몰에서 실주문이 들어왔는데 도매 매장에는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내일이나 다음주 중에라도 물건이 공장에서 들어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도매 매장에서는 이 또한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도매상 언니는 시즌이 끝난 물건이라 아마 공장에서 더 안찍어낼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도매 매장 언니는 해당 주문건에 대해 전액 환불해준다는 말을 쇼핑몰에 전해달라고 전했다. 

(사진=도매상에서 주문을 확인중인 김씨)

 

위층으로 이동했다. 쾅쾅쾅.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한층 전체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인부들과 함께 큰 짐을 이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입삼촌들로 통로는 혼잡했다. 문뜩 의문이 들었다. 공사로 영업을 하지 못하는 도매상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음 층을 돌고 김씨는 신평화 건물을 나와 차들이 즐비해 있는 곳으로 무거워진 손수레를 옮겼다. "짐 두러 가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웃으면서 "아뇨, 물건 찾으러 가요"라고 답한다. 김씨가 손수레를 끌고 도착한 곳은 주차장 한 편에 위치한 다마스 차량이었다. 차량 앞에서 김씨는 'J쇼핑몰 물건이요'라고 외친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차 안에서 커다란 봉투를 끌고 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현재 리모델링 중인 건물 한 층에서 도매상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현재 매장 전체가 공사중이어서 차량에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 이틀 쉬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매장 리모델링 공사로 차에서 주문을 전달해주는 도매상)

 

어느덧 손수레에는 대봉들이 높게 쌓여 정면에서 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더는 물건을 올려놓을 공간도 없어 보였다. 그 물량중 30% 이상은 김씨가 맡는 ‘M’ 쇼핑몰의 것이었다. 매번 물량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화물기사에게 미리 물건을 전달한다. 김씨는 걷은 물건중 M쇼핑몰 물량만 골라 평소에 들고 다니는 대봉보다 더 큰 봉투에 모았다. 

 

포장을 마치고 김씨는 그가 거래하는 화물운송업체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 물건을 두고갈 장소를 전달했다. 이미 그곳에는 다른 사입삼촌들이 모아온 물건들도 쌓여있었다. 이렇게 두고 가면 나중에 화물 기사들이 물건을 픽업해간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동대문 도매시장, 대금거래는?

 

기자는 정신없이 김씨의 뒤를 쫓기 바빴다. 그러다 김씨가 도매상에게 현금을 지불하는 것을 두 번만 목격한 것을 깨달았다. 함께 도매시장을 돌아다닌 4시간 가량 김씨를 제외하고 많은 삼촌이 도매상에게 현금을 주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봤다. 동대문 도매시장의 거래는 대부분 현금으로 이뤄진다고 알고 있었기에 이상하게 느껴졌다. 

 

김씨가 현금 지불을 하는 경우 대부분은 오프라인 매장 주문건이라고 한다.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따로 입금 담당자가 없어 대부분 사입삼촌이 대납을 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 주문건 수거임에 불구하고 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매장 사장이 현장조사를 돌면서 미리 주문에 대한 현금을 지불하고 간 경우라는 설명이다. 덧붙여 김씨는 “최근에는 쇼핑몰에서 직접 도매상으로 금액을 일괄적으로 송금하는 쇼핑몰들이 많아졌다”며 “작은 쇼핑몰의 경우 전도금 형식으로 지불을 하지만 최근에는 운이 좋게 큰 쇼핑몰 물량을 맡고 있어 현금으로 현장에서 지불할 일이 줄어 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씨에 따르면 대형 쇼핑몰의 경우 결제 프로세스가 비교적 체계적인 편이다. 쇼핑몰에 세액 담당자(경영지원), 물류, MD(Merchandiser) 등 각 분야의 담당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온라인몰이 많아지는 추세라 대부분의 도매상들이 전자계산서 발행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그들은?

 

다리는 후들거리고 땀은 비오듯 쏟아졌다. “조금만 힘내요, 반은 끝났어요”라고 위로하는 김씨의 말에 기자는 깊은 한숨부터 나왔다. 김씨는 젖은 머리를 털어내면서 “이제 아까 수거못한 매장들만 다시 돌고 몇 개만 더 수거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현재 시간은 세 시. 김씨의 걸음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발바닥 통증이 허리까지 전해졌다.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온종일 건물들을 오르내리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건 단 두 번뿐. 굳이 엘리베이터를 안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에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더 작업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김씨의 설명이다. 한정된 시간에 그날 들어온 물량을 다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입삼촌들에게 시간은 금이다.

(사진=다른 사입삼촌들과 함께 쓰는 천막. 김씨가 화물차에 상차할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매장 몇 개를 더 돌고 우리는 성동공업고등학교 앞에 위치한 천막으로 돌아갔다. 그곳은 김씨가 함께 일하는 사입삼촌들과 함께 쓰는 공간으로, 택배로 치면 택배 터미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각 매장에서 픽업된 상품들을 모아 쇼핑몰별로 묶어 다시 목적지에 따라 상품을 분류한다. 분류된 물건들은 화물차나 오토바이퀵이 정해진 시간에 상차해간다. 

 

새벽 네 시, 김씨는 시계를 보면서 물건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5분 간격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김씨에게선 다급함이 느껴졌다. 20분 전에 왔어야 할 오토바이 퀵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4시에 방문하기로 한 매장에 전화를 걸어 3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4시 20분 즈음, 오토바이가 김씨가 물건을 쌓아둔 작업장 앞으로 도착했다. 신당동에 위치한 M쇼핑몰 사무실로 물건을 전달하는 건이다. 도착한 퀵라이더는 자신은 동대문에서 나오는 퀵 물량만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하루 평균 몇 건을 처리하는가 묻자 퀵라이더는 "세면 셀 수 있겠지만 너무 많아 일일이 한 건씩 세보지 않는다"고 간단히 응답한 채 바삐 물건을 쌓아 올리고 시동을 걸었다. 

동대문도매시장,사입삼촌, 오토바이퀵(사진=커다란 대봉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퀵라이더는 능숙하게 짐을 발로 차올려 어께에 들쳐매고 오토바이 뒤편에 지게처럼 되어있는 곳에 대봉들을 쌓아올렸다.)

 

오토바이를 떠나보내고 김씨는 바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중간에 발생한 급주문 건도 그렇고 예상치 못한 오토바이 연착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이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김씨는 뒤를 돌아보며 기자에게 “속도 좀 낼게요. 기자님. 길 잃어버리지 말고 잘 따라오세요”라며 당부했다. 김씨는 경보를 했지만 기자는 종종걸음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빨리 보내야 하는 물량의 경우 6시 정도에 화물차가 오는데 지금 시각은 벌써 4시가 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씨는 급한 물건을 먼저 빨리 수거하기로 하고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물건은 나중에 다시 도는 방식으로 동선을 짰다.

 

물비가 뭐길래

모인 물건들을 들쳐메고 다시 집하 장소로 갔다. 그곳에는 김씨가 수거한 물건 말고도 매장에서 직접 가져다준 물량도 쌓여있었다. 규모가 작은 도매매장의 경우 그들의 매장에 쇼핑몰 MD나 사장들이 볼 수 있게 몇 개 상품만 진열을 해둔다. 그 후 주문건이 들어오면 지하에 위치한 상품 창고나 근처 사무실을 임대해 창고로 쓰는 곳에서 직접 물건을 빼 사입삼촌에게 전달한다. 이 경우 물론 사입삼촌은 물비(화물비)를 받지 못한다.

 

물비란 사입삼촌이 도매상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받아가면 해당 주문 금액의 약 1~2%를 현금으로 받는 금액이다. 30만원짜리 주문을 받아가면 사입삼촌은 3000원을 받게 된다. 반드시 줘야하는 금액은 아니지만, 그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오늘은 한 매장에서 주문한 금액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김씨가 물비를 받은 횟수는 손에 꼽았다.

(사진=매장을 돌면서 물비를 받는 김씨의 모습)

 

그런데 최근 동대문 도매시장에서는 물비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전보다 물량이 많이 줄었고, 중국인 바이어도 많이 줄어서 어려움을 겪는 도매상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물비를 깎기 위해 도매상이 직접 사입삼촌이 물건을 집하해두는 장소로 갖다주고 물비를 깎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물비에 대한 짧은 설명을 마치고 김씨는 다시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분류작업을 하면서도 물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사입삼촌이 물건을 뺐는데(물건을 빼다=물건을 쇼핑몰에 전달하다) 쇼핑몰 측에서 안 받았다고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쇼핑몰 내부에서 물량이 뒤섞여 해당 물건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분류 작업을 하다 한 봉지만 지역이 적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봉지에는 잠실/스**리라고 적혀있다. 다른 대봉들은 쇼핑몰 이름만 적혀있지만, 이 쇼핑몰은 흔한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앞에 지역명인 ‘잠실’을 붙여 도매상과 삼촌이 구별할 수 있도록 표시한 것이다.

(사진= 화물차에 물건을 상차하는 모습)

 

시간은 어느덧 여섯 시. 가장 먼저 강원도로 떠나는 화물 삼촌이 도착했다. 김씨는 준비한 대봉 몇 개를 넘겼다. 지금 출발하면 언제쯤 도착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화물 삼촌은 보통 6시 전에 출발한 차량은 9시 이전에 강원도에 도착한다고 답했다. 강원도 가는 화물 삼촌에 이어 남양주, 강남, 잠실, 충주 등 지방별 화물 삼촌이 물건을 거둬갔다. 

 

아침 일곱시 반. 김씨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오늘 수거한 주문건들을 정리해서 각 쇼핑몰에 메일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김씨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오히려 기자의 느린 발걸음 때문에 폐만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강원도로 가는 화물차에 물건을 옮기고 있다)

 

언니, 일 마무리하고 퇴근하시나봐요!

 

김씨와 인사를 나눈 후 청평화 앞에 즐비한 택시에 올랐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택시 아주머니께서 “언니, 지금 매장 마무리하고 퇴근하나 봐요~”라고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동대문 앞에서 20대 여자가 아침에 택시를 잡으니 으레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판매하는 ‘언니(동대문은 모든 사람을 '삼촌'과 '언니'로 나눠 부른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답할 기운이 없어 “네”하고 얼버무렸다.  

 

택시 아주머니께선 “고속버스터미널 가시죠?”라고 물었다. 기자는 의아해하며 집 앞으로 목적지를 말했다. “아~ 난 또 지방 사입자인줄 알았어요. 보통 새벽 여섯시 경 여기서 고속버스터미널 가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요”라고 말했다. 보통 지방 사입자들은 트렁크 한가득, 양손에 봉지 가득가득 들고 택시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의 물건들은 매일매일 다양한 경로로 전국 각지로 퍼지고 있었다. 동대문 도매시장은 패션계의 물류허브 그 자체다. 잠깐 눈을 붙이니 집 앞이었다. 택시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렸다. 해가 뜨고 있었다. 


<연재> 김정현이 간다

체험 동대문 사입삼촌의 현장(상)체험 동대문 사입삼촌의 현장(하)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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