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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되고 싶은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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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7. 2. 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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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이웃이자 학부형인 우리동네 택배기사님에게 바치는 글

 


우리 동네 택배기사님은 제 아들의 절친한 친구의 아버님이자, 이 지역에서 모 택배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저와는 같은 학부형으로 집 근처에 사는 가까운 이웃으로 잘 아는 형님입니다.

 

지난 설 연휴 직전이었습니다. 밤 10시경, 현관문을 울리는 벨소리에 “늦은 시간에 누구지, 여보 치킨 주문했어?”라며 잠옷(사실은 속옷)을 챙겨 입어야 한다는 ‘귀차니즘’에 볼멘소리로 대문을 나섰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거친 호흡과 땀 냄새로 가득한 동네 형님이 있었습니다.

 

“OO아버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뭔 일이긴 이거(택배) 주로 왔지”, “낼 오시지, 머가 그리 급하다고~”, “내일은 또 내일 갖다 줄 박스가 산더미야”, “다른 직원 시키지?”, “우리가 직원, 사장 구분이 어딨어! 요즘 같이 바쁠 땐, 전원 출동이지, 그리고 얼마 전에 한 명 관뒀어. 경쟁사로 갔더라구”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형님을 세워 놓고, 봉지 커피 한잔 얼른 타서, 담배 한대 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 직원분은)근데 왜 관뒀데요?”, “설이나 추석되면 다 그래, 건당 배달수수료 더 주는 곳으로 갈아타는 거지. 새벽에 센터 택배 상하차 업무가 꽤 힘든데, 일이 좀 더 편한 곳을 찾기도 해. 차 한 대로 먹고사는 처지라 돈 더 주면 그냥 옮기는 거야. 누굴 탓할 수도 없어. 사장이라고 좋을 게 없다. 차라리 봉급쟁이가 더 편해. 초과 근무하면 돈이라도 주잖아. 바쁘다. 설 잘 보내. 시간 내서 소주 한잔(미소 씨~익)”

 

황급히 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보자니 왠지 모를 씁쓸함에 목구멍이 답답해졌습니다.

 

사실 국내 택배시장은 업체 난립→과당 경쟁→수수료 하락→회사와 택배기사 수익성 악화의 패턴이 십여 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택배시장을 둘러싼 최저임금 위반이나 1, 2차 하청업체 불법인력 운영, 연장근무 등의 노동법 문제로 인한 갈등 원인도 위와 같은 수익성 악화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택배 물량은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는데, 아직도 기업과 택배 기사님, 그리고 협력업체(인력공급 등 하청업체 등)의 ‘먹고사니즘’ 개선은 갈 길이 멉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10년 12만 개 수준이던 택배 물량은 2016년 20억 4666만 개로 전년보다 12.7% 증가했습니다. 물량이 늘면서 택배업체들의 매출액도 올랐는데, 매출액은 2010년 2조 9900억 원에서 2016년 4조 7444억 원으로 늘었지만, 매출액 대비 물량 증가율은 2010~2016년 기준 58%로 물량 증가율(78%)보다 12% 정도 낮습니다.

 

더 큰 문제는 택배 평균 단가와 물량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택배시장 평균 단가는 2011년 2534원을 정점으로 찍고 계속 하락 중으로 현재는 2318원까지 떨어진 것으로 택배시장은 전했습니다. 단가만 보자면 한마디로 국내 택배시장은 ‘속 빈 강정’입니다.

 

사실 택배시장의 수익성 악화는 업체 간 가격경쟁으로 인한 자업자득의 결과입니다. 업계 내부에서도 줄곧 반성의 소리가 높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과거 C사, L사, H사 등 택배사들은 스스로 단가인하에 나섰던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형 화주 유치와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한 시장 점유율 확대였습니다. 2005년 이후 해마다 나온 이야기가 택배사들의 물량 순위 싸움이었습니다.

 

그 당시 L사(구 현대택배)는 기업공개(상장)를 위해, C사(구 대한통운)는 법정관리 탈피와 매각 우위를 위해, 단가를 깎고 더 깎아 대형 화주로부터 물량을 유치해 외형을 키우던 시절입니다. 물론, 국내 택배사들이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도 대형 물류센터 확충에 나서고, 화물차 증차제한 속에서 차량을 구하고, 현장을 이탈한 인력 유치를 위해, 또 다른 한편으론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물류 프로세스 개선에 게을리 하지 않은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면 택배 저단가의 제1원죄는 인터넷 쇼핑몰 중심의 대형 화주들에게 있습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 실무자들은 해마다 개인의 업무성과를 이유로 박스당 몇십 원씩 택배단가를 떨어트렸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물량을 미끼로 자신들의 물류센터 시설 투자 명목으로 혹은 개인 호주머니에 착복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는 일부 화주와 택배사 간 갑을관계 속에서 잘못 키워진 영업 관행 때문입니다.

 

택배는 온오프라인 유통산업 발전과 서비스 개선의 일등공신으로,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 편의 향상의 엄청난 공로자입니다. 더욱이 택배는 소비자나 서비스 노동자 모두가 서민으로 구성된, 경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택배는 기업이나 노동자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업구조여야 바르게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되고픈 사장님’, 즉 택배기사님들의 노동법 문제는 바로 이 부분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최근 택배업체끼리 단가 인상을 모의했다는 담합루머도 그렇습니다. 먹고 사는 게 힘드니 그런 게 아니겠느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 택배시장의 먹고사니즘을 걱정하게 만든 주범은 개인택배 시장이 아닙니다. 일반 소비자들은 그 죄가 없습니다. 소비자들을 현혹한 건 유통업체들의 검은 유혹과 이를 수용한 택배사의 경영진입니다.

 

서민경제가 이끈 택배산업의 성장, 그래서 과연 서민들은 모두 행복하십니까?

 

물류 4.0,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라스트마일 전략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에 택배의 의미는 바로 서민들의 더불어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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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편집장

Beyond me(dia), Beyond logistics 
김철민의 SCL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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