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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되고 싶은 사장님의 절규, 특고직의 늪

INSIGHT

by 김편 2017. 2.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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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여전히 대두되는 노동문제

- 택배·화물·퀵기사,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사투

 

글. 김지훈 기자 

Idea in Brief

지난해 다보스 포럼에서 주창된 '4차 산업혁명'은 2017 다보스 포럼이 막을 내린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회자되는 주제가 됐다. 당장 무인차가 도로를 가르고, 선원 하나 없는 선박이 바다를 가르며, 물류센터에는 사람이 아닌 로봇들로 가득차 있을 것 같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물류현장의 중심에는 아직까지 '사람'이 존재한다. 근로자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회색영역에 있는 화물기사와 퀵라이더, 20명도 안되는 해기사와 외국인 노동자로 운항되고 있는 대형상선, 하청에 하청이 꼬리를 무는 물류센터 현장이 우리 눈앞에 놓여진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우리 눈앞에 놓인 것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류는 생산을 지탱하는 그림자다. 물류는 생산라인 밖에서 공급사슬(Supply Chain) 전반의 과정을 부드럽게 연결한다. 생산 단계가 복잡할수록, 더 많은 거점을 거칠수록, 더 많은 업체들이 협력할수록 물류는 빛을 발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물류는 이종산업, 특히 제조업, 유통업과 함께 발전했다.

 

네 차례의 산업혁명, 물류의 대두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1차 산업혁명을 겪으며, 제조업 분야를 중심으로 생산라인에서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우리는 이 시기를 수요가 공급을 압도한 ‘결핍의 시대’라 부른다. 생산은 곧 판매로 연결된다는 공식이 성립하던 때였다.

 

이윽고 찾아온 2차 산업혁명.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과 함께 대량 생산라인 구축이 본격화됐다. 대형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은 해당 지역의 구매력만으로 온전히 소비되지 못했다.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기 시작한 이 시기에 이르러 물류는 숨통을 트기 시작했다. ‘생산-물류-판매’의 공급사슬이 완성된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이 찾아왔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시스템이 자동화되기 시작했다. ‘풍요의 시대’가 다가올수록 소비자들의 요구(Needs)는 다양해졌다. 그리고 생산자들은 앞 다퉈 그 요구에 맞춘 상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자연히 온라인 유통업의 비상을 촉진했다. 이제 ‘생산(-물류)-유통-물류-판매’의 사슬이 완성됐다. 이른바 온디맨드(On-demand)의 시대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왔다고 한다.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탄생하고 있다. 물론 아직 그 물결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긴 힘들다. 그러나 지난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국내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기대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드론 등 새로운 물결의 중심에는 ‘기술’이 존재한다.

 

기술의 발전과 물류의 파괴

 

기술의 발전은 노동자의 근로형태 변화를 수반했다. 이와 함께 자연히 나타난 몇 가지 부작용들이 있었다. 2차 산업혁명 이후 대규모공장이 들어서면서 분업을 토대로 한 단순노동이 주가 됐고, 이와 함께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3차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생산라인이 자동화되면서 단순노동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고 서비스 부문의 직종이 증가했다. 여타 일자리들은 비정규직, 파견직, 아웃소싱 등 새로운 고용형태로 채워졌다. 지금까지 기술은 산업을 완성하고, 동시에 파괴했다. 우리는 산업이 완성되어가는 과정과 파괴되는 과정을 모두 보아왔다. 항상 성장의 이면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여기서 물류는 산업을 지탱하는 그림자로서, 묵묵히 존재했던 ‘성장의 이면’이다. 그러나 물류는 다른 산업부문에 비해서 현재까지도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택배터미널에서 자동화 설비(자동분류기 등)는 2000년대 초반에서야 도입, 그것도 메가허브에만 도입된 상태며, 서브터미널은 아직도 수동설비가 주를 이룬다. 무인차와 무인선박 기술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현재 바라보고 있는 트럭은 사람이 운전하고, 선박을 운항하는 데에도 선원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시대의 물류산업 종사자들의 근로형태와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2차 산업혁명 시대의 그 문제들이 나타난다. 물류산업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정규직, 파견직 등 고용형태에 따른 문제들은 어떤 장비나 기술 도입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 이미 2, 3차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에 계속 존재해온 문제들이다. 결국 물류현장의 문제는 새로운 기술 혁명으로 인한 공백이 아니다. 애초에 오래전부터 물류산업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 돼 현대에 이르렀다.

 

모든 노동자가 없어지는 세상, 이미 존재하지 않는 이들

 

4차 산업혁명은 물류산업에 직격탄이 돼 날아오고 있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물류산업계에서 주목받는 신기술들은 물류노동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사실상 무인차, 무인선박, 물류센터 자동화 설비가 완전히 도입되면 물류현장 노동자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협력업체(인력 운용 업체)를 통해 고용된 비정규직 혹은 알바로 회사와의 고용관계가 없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해상운송의 첨병인 선원들 역시 ‘배 위에서의 일들은 특수하다’는 특수성 때문에 노동법이 아닌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 선원법이라는 것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최저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며, 산재보험의 적용도 까다롭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화물운송현장 전반을 감싸고 있는 ‘특수고용직’ 문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물운송, 택배, 퀵서비스 등 배송기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이다.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어떤 노동관계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의 완성에 가려진 그림자의 극점에는 ‘특수고용직’이 존재한다.

 

노동자가 되고 싶은 사장님

 

물류산업, 특히 ‘운송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그림자 중에서도 그림자다. 물류산업계 직종들은 일찍이 3D 직종으로 분류되어 왔을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고 보수가 낮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림자 중의 그림자’인, 노동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도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불행한 사장님, ‘특수고용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2015년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의 추산 자료에 따르면 국내 특수고용직 노동자 수는 한국 전체 노동자의 8.9%에 이르는 230여만 명에 달한다. 특수고용직은 ‘학습지 강사’, ‘골프장 캐디’를 비롯해 ‘보험설계사’, ‘각종 프리랜서’, ‘운송기사(화물트럭, 덤프, 레미콘, 택배)’, ‘각종 배달원(퀵, 우유배달, 신문배달 등)’을 포함한다. 이 중 물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운송, 배달업계 종사자들의 경우 대부분 고용자와 특수고용직 형태의 계약관계를 취한다.

다양한 특수고용직의 형태와 수. 붉은색은 운송관련 종사자다.(자료= 2015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참고, 가공)

 

국내 운송업계에서 활동하는 특수고용직의 중심에는 ‘지입제(위수탁관리제도)’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지입이란 쉽게 말하면 화물운송기사의 차를 회사의 명의로 하고 번호판을 주는 것이다. 즉 차량의 실소유주는 개인차주이지만, 그 명의는 회사의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 과정에서 화물운송기사는 회사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즉, 기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으며 개인사업자로 인식된다.

 

물론 이러한 계약관계는 갑과 을에게 서로 도움이 되는 공생관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을(화물운송기사)은 지입 계약을 맺는 업체뿐 아니라 다른 업체로부터도 물량을 받을 수 있다. 갑(운송 및 주선업체)은 차량을 직접 보유, 관리하지 않아도 영업을 할 수 있다. ‘우아한청년들(배민라이더스)’의 배달 라이더 정규직 고용 시도가 실패한 사례를 보았을 때, 운송업계 종사자들을 고정 월급이 아닌 건당 수수료로 고용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오히려 배송기사들이 월급을 받는 것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특수고용 형태’를 선호한다고 해석하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사진= 배달의민족 앱에서 볼 수 있는 배민라이더스 채용 광고(2월 11일 기준). 초기 배민라이더스는 쿠팡과 같은 '월급제(연봉=3000만원)', '4대 보험 지급'을 강조하며 라이더를 뽑았지만, 현재는 여타 배달대행업체와 마찬가지로 '건당 수수료' 지급 방식으로 라이더를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입계약·특수고용형태는 을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최저임금, 근로시간, 퇴직금·실업급여, 임금채권보장, 산업재해보험 등 대부분의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차량 관리에 드는 비용(기름값, 차량 도색비용 등)도 을이 부담하며 택배기사의 경우 배송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회사가 아니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반면 갑의 입장에서는 근로자들을 특수고용형태로 유지하는 것이 비용이 훨씬 덜 든다. 차량 관리비도 들지 않고, 고정임금도 거의 없으며 산재보험료도 내지 않는다. 때문에 갑은 종종 근로자들을 아웃소싱하여 ‘위장 자영자’로 만들기도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특수고용직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보고서(2006)」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30%가 현재 사업체의 근로자 신분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사업체가 지입제를 악용하면서 차주의 차량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차주의 동의 없이 업체를 양도하는 과정에서 차주의 번호판을 수거하거나, 높은 지입료를 받는 등의 사례들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윤애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화물연대 노조원 분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것 중 하나가 월 500만 원씩 할부금 내면서 차를 샀는데, 회사가 차주 몰래 번호판을 파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차량은 회사의 명의로 등록돼있기 때문에 기사는 자비를 부담하여 구매한 트럭을 고스란히 빼앗기는 셈”이라 말했다.

 

‘근로자성’ 인정받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특고직의 핵심 문제는 ‘근로자성’이다. 산업 사회의 발전과 함께 발생하는 새로운 근로형태라는 점에서 비정규직과 특고직 문제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특고직은 비정규직과 달리 기본적으로 ‘근로자성’이 부정된다. 근로자성이 부정된다는 것, 즉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들을 보호할 법적 근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특고직과 관련한 소송·쟁의는 ‘그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특고직의 근로자성이 인정된 판례는 거의 없다.

 

윤 교수는 “2006년 판례가 근로자성 인정 기준을 잘 보여주는데, 근로시간과 장소를 사용자가 정하는지, 회사 내부 규정이 존재하고 이를 따르는지, 임금을 받고 일하는지, 원자재 및 비품은 누가 제공하는지, 독자적 사업이 가능한지 등 10여개의 기준이 존재한다”면서 “특고직 노동자들은 그들이 사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점, 사업체의 직·간접적인 지휘를 받았다는 점 등을 들어 그들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려 노력했으나, 법원은 대체로 특고직의 근로자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진아 아산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사례가 기사화되고 이슈가 되어야 상담이 많이 들어올텐데, 상담까지도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며 “실상 특수고용직의 근로자성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 추세”라 설명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실상 산재법의 보호 또한 받지 못한다. 물론 정부는 2010년부터 ‘산재법 125조 특례’로 특고직 또한 임의 가입을 허용하여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산재 보험료는 100% 사업주 부담인 것에 반해 특고직의 경우에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50%씩 나누어 부담하는 형태다.

 


윤 교수는 “산재법 125조 특례에 화물운송기사는 포함이 안되며, 택배기사는 포함되나 4항에서 근로자가 스스로 산재 가입을 거부할 수 있는 조항을 두어 사실상 무의미하다”며, “게다가 특고직 노동자들은 산재적용과 관련하여 사내 압박을 강하게 받고, 실제로 적용제외신청서를 강제하는 사업자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덧붙여 “특고직이 산재법의 적용을 받기위해서는 근로자성을 인정받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산재법 124조’에 따라 자영업자임을 인정하고 100% 부담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수밖에 없다”며 “125조도 50% 부담이니 사실상 특고직을 자영업자로 보려는 것”이라 말했다.

 

다양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근로 형태에 대한 대처는 미진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15년 이상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매번 부결됐으며, 다시 한 번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개정안이 상정되는 상황이다. 그 개정안마저 실은 민주노총에 요구한 것을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십수년간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근로형태 개선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윤 교수는 “한국만큼 화물운송업계의 양극화가 심하고, 노동 환경이 열악한 곳은 없다”며 “단언컨대 정부는 단 한 차례도 바꾼 것이 없다. 이번 20대 국회에도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야말로 특고직의 권리 장전을 위한 개정안이 꼭 통과되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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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기자

CLO 옆동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인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왠지모를 까리한 느낌을 받아 CLO에 불쑥 합류했는데, 합류 첫달 까대기 현장에 보내더군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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