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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화의 물류돋보기] 풀필먼트센터 탄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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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7. 7.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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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운송/운수’에서 ‘OO창고’를 거쳐 ‘풀필먼트센터’에 이르기까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가 창고의 변화 이끌다


 

글. 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풀필먼트(Fulfillment). 한글로 옮기려니 마땅한 단어가 없습니다만, ‘Order Fulfillment’는 주문 이행, 혹은 주문 충족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문 충족이라는 개념은 고객의 주문을 만족시키는 전체 프로세스를 의미합니다. 즉 온라인 유통 산업에서 풀필먼트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피킹, 포장하고 배송까지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류기업도 온라인 유통에 대응하기 위해 풀필먼트 서비스를 적극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 젠코(GENCO)를 인수한 페덱스(FedEx)는 2년 넘게 젠코의 물류프로세스를 페덱스에 연결하는 과정을 거쳐, 2017년 2월 ‘페덱스 풀필먼트(FedEx Fulfillment)’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페덱스와 같은 물류 대기업은 아마존이 유통산업에 처음 발을 디딘 1990년대 중반부터 이미 온라인 유통을 위한 배송 서비스를 적극 제공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업이 2017년이 돼서야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했다니, 어떤 면에서는 조금 의아하기도 합니다.

 

사실 풀필먼트라는 단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물류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OO운수’, ‘OO운송’과 같이 수송/배송에 관련된 용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OO창고’와 같은 단어도 익숙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물류라는 단어로 변했고, 수송/배송과 보관/창고가 물류와 연결됐습니다. 이후 창고라는 단어는 서서히 사라지고, 대부분의 창고는 ‘물류센터’ 혹은 ‘물류창고’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제 그 창고를 ‘풀필먼트센터’라고 부릅니다. 인력에 의존하던 수작업 중심의 창고가 컨베이어벨트, 자동화 설비가 구축된 물류센터가 되더니, 이제는 로봇과 IT기술이 총출동한 풀필먼트센터로 그 모습을 바꾼 것입니다.

 

산업 변화가 촉발한 물류의 변화

 

이러한 변화는 산업의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1990년대 이전의 산업은 품질과 기술력이 지배했습니다. 소니(SONY)와 같은 브랜드가 산업을 지배하던 시대. 그때는 제조업이 전성기였습니다. 물론 애플과 같은 유별난 기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 맥락에서 1990년대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고, 따라서 누구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제조업이 모든 프로세스를 처리하고, 유통과 물류는 그런 제조업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기술은 평준화됐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유통기업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상의 중심은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넘어갔습니다. 물론 제품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제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 평준화’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을 갖춘 많은 기업에게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저렴하면서도 높은 품질의 제품을 빠르게 만들 수 시대를 열었습니다. 즉 유통과 ‘스피드’가 만나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반응하고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2000년대에 세상은 다시 한 번 변합니다. 유통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 확장됐습니다. 그리고 ‘온디맨드’의 시대가 개막했습니다. 이 시대에 소비자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곳에서,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업이 아닌 개인도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내고, 3D프린터 등으로 통해 이를 스스로 제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용이 저렴한 생산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한 뒤 물류를 통해 국경을 넘어 이를 공급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제조에서 유통으로 넘어온 산업의 중심이,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온디맨드’로 넘어온 것입니다.

 

산업의 패러다임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기준과 이를 소비하는 채널이 바뀌면서 물류 역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제조업의 시대로 돌아가 봅시다. 그 시대, 물류의 핵심에는 대규모 재고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생산된 제품을 대규모로 움직이는 게 중요했습니다. 원가 경쟁력이 중요했고, 규모의 경제가 중요했습니다. 물류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들은 기능별로 ‘대형화’됐습니다. 무엇보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 중요했기에, 물류 기능은 파편화돼도 크게 문제돼지 않았습니다. 원가 절감이 중요하다 보니, 물류가 전체 프로세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았습니다.

 

하지만 유통으로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변화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재고를 줄이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상품을 공급하는 게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올랐습니다. 즉,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더 이상 ‘원가’가 아니라 ‘스피드’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물류’라는 개념이 꽃피기 시작합니다. 물류의 핵심은 원자재 조달부터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이르는 전체 프로세스를 하나의 관점에서 효율화하는 것입니다. 이 무렵, 창고 역시 물류센터(Distribution Center)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사실 ‘Distribution Center’를 번역하면 물류센터보다는 유통센터에 더 가깝긴 합니다.) ‘Distribution’이란 상품을 유통채널에 공급한다는 개념으로서, 이때 물류센터에는 컨베이어벨트가 들어서고, 스피드를 높이기 위한 각종 자동화설비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온디맨드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는 더욱 게을러졌습니다.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력도 평준화됐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제품을 소규모로 ‘즉시’ 공급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온디맨드 시대에는 고객이 언제, 어디서, 어떤 제품을 주문할지 알 수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서비스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지리적으로 분산된 곳에서 소규모 주문이 발생하거나, 한 번의 주문에 여러 상품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와 더불어 불확실한 주문시기와 더욱 빨라진 납기 등은 전통적인 물류를 혼란에 빠뜨리고 맙니다. 요컨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스피드가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의 서비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풀필먼트’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온디맨드의 시대, 고객의 복잡한 요구를 효율적으로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창고에 새로운 역할과 이름을 덧씌운 게 바로 풀필먼트센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고객의 수요를 파악해 그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물류산업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풀필먼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아직은 모든 게 조금씩 어지러운, 변화의 시기입니다. 물류 산업에서 어떤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이 풀필먼트 서비스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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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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