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투자유치의 이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계약서 작성, 명확한 관계 설정이 우선돼야
글.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 대표
피투자자와 투자자가 동종 산업에서 시너지를 발휘하기 위해 진행하는 전략적 투자(Strategic Investment). 초기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있어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이 전략적 투자는 때로는 스타트업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고, 양측에 이익이 되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힌트는 제대로 된 계약서에 있다. 네이버에게 투자 받는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더라.
삼성전자나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기업이 스타트업에 대해 ‘전략적 투자’를 진행했다는 언론 보도를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전략적 투자란 쉽게 말해 피투자자(스타트업) 입장에서 영업 또는 기술 가치를 더할 수 있는 대상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다. 피투자자는 전략적 투자유치를 통해 시장지배 사업자인 전략적 투자자(SI, Strategic Investor)와 긴밀한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다. 전략적 투자는 한국 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스타트업이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는 M&A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방법이기도 하다. 매출과 사업역량이 미미한 스타트업에게는 마치 한 줄기 희망의 빛과 같다.
그러나 전략적 투자 유치를 마냥 낙관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어설픈 전략적 투자유치는 사업 영향력이 작은 스타트업의 위험 요소를 증가시키거나, 오히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사업 전개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은 여러 면에서 협상력이 떨어지므로 전략적 투자 유치는 피하는 것을 권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략적 투자’를 받아야 한다면 투자를 받는 기업의 성장주기, 투자규모, 지분과 경영권과 같은 투자 조건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전략적 투자 사례로는 네이버가 지난 10월 29일 350억 원의 전략적 투자를 발표한 푸드테크 기업 ‘우아한형제들’이 있다. 네이버 측은 인공지능 비서, 스피커 등 이용자 경험에서 음식 배달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글로벌 IT 기업들도 적극 투자 중인 분야며 네이버의 미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에 투자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항상 밝은 결과는 아니기에
아마 투자 성사 직전의 투자자와 스타트업 양사는 모두 무지갯빛 미래를 꿈꿀 것이다. 쌍방은 부정적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일반적인 투자계약서를 바탕으로 투자를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기대와 다르게 나타난다. 더욱이 투자자가 큰 조직이라면 각종 사내정치와 사업상 이해관계로 인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 집행은 특정 의사결정권자에 의해 행해진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대기업 의사결정권자의 보직 변동, 자리 이동, 해직, 사직, 퇴직 등은 수시로 일어나는 편이다. 설령 절대 불변의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결정했다고 해도, 전사적 차원에서의 전략 수정 또는 변경으로 인한 투자계획 변동은 배제할 수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전략적 투자기업이 망가지거나, 절대 불변 의사결정권자의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변심이 발생하는 경우다. 모기업의 갑질과 불공정 문화가 투자 담당자의 강직함을 한 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려서 스타트업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투자자가 피투자자의 경영권과 사업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스타트업 괴담인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달라는 것만 많아요”라는 관계의 악몽이 시작되는 것이다.
관계의 악몽, 갑질의 연속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투자 이전에는 VC(Venture Capital)가 갑이지만, 투자 이후에는 스타트업이 갑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내 VC인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를 비롯한 전략적 투자자는 투자 이전에도, 투자 이후에도 갑인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피투자자인 스타트업은 전략적 투자자와 예상대로 전략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을 때 계약서상의 각종 제약으로 인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줄어든다. 더욱이 문제는 전략적 투자유치 이후 성공적인 사업 파트너 관계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문제는 투자회수 단계에서 나타난다. 투자회수의 주요한 방법 중 하나인 기업 매각과 인수합병의 경우 대개 매수자의 전략적인 이유로 진행된다. 이 때 전략적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을 매수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기존 주주로 경영권과 사업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쟁기업’이 있다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스타트업 입장에서 거래처 확장을 위해 여타 기업과 사업을 전개하려 해도 사업기밀의 유출을 우려하는 기존 전략적 투자자와 역으로 정보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는 신규 거래선 양측의 우려를 잠재우기 힘들다.
극단적으로 훗날, 전략적 투자자가 피투자기업의 다양한 사업기밀을 모기업에게 유출시켰다고 의심할만한 정황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고 자신의 피해를 배상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타트업이 한국에 꽤나 있는데, 그들의 바람대로 제대로 보호받게 되기를 냉수 떠 놓고 기도해볼까 생각 중이다.
물론, 스타트업이라 해서 무조건 전략적 투자 유치를 기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리한 거래 조건의 압박이 있건 없건 전형적인 한국형 부품·솔루션 B2B 협력업체로서 유일의 원청에 목을 매야만 하는 사업자라면, 하루라도 빨리 해당 원청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시켜야 함이 맞다. 해당 전략적 투자기업을 빼놓고는 시장을 논하는 것이 불가한 경우에도 전략적 투자유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상황과 시기, 조건을 면밀히 살피기를 권한다.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
결국, 스타트업은 투자 계약서에 명기되어있는 경영권 및 사업권, M&A 및 매각, 투자유치 등에 대한 제약 조건은 추후 스타트업의 행보에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계약서 작성 시기부터 인지해야 한다. 스타트업으로서 대기업 등과의 전략적 사업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전략적 투자유치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피를 섞기 이전에, 쌍방이 원하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는 계약관계를 먼저 성립할 필요가 있다. 투자와 관련해서는 추후에 논의하도록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다.
즉, 쌍방의 최우선 목적을 일단 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대기업의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하는 것이다. 최우선 목적을 달성한 이후, 투자 유치를 진행하되, 경영권과 사업권 등의 권리에 대한 간섭은 배제하거나 최소화하는 투자계약을 진행하기를 권한다.
이런 관계 설정을 통해 시작되는 전략적 관계는 쌍방 모두에게 Win-Win의 결과를 안겨 줄 것이라 생각한다. 전략적 투자를 집행하는 대기업에게도 사업 협력을 통한 명확한 성과와 결과를 얻게 돼서 이익이 된다. 설령 원하는 사업협력의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추후 피투자기업의 사업이 성공했을 때 재무적 투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어설프게 경영권과 사업권의 권리를 주장하는 투자계약을 했다가 대기업 본인도 못 먹고 남도 못 먹게 해서 쓸모없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고 싶은 대기업이라면? 해답은 간단하다. 해당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된다. 시장지배력을 통해 스타트업을 마구잡이로 불공정하게 요리하다가 받는 처벌의 금액이 인수합병을 위해 투입되는 비용보다 적은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작금의 상황을 봤을 때,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기업이야말로 정말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선진 기업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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