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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1일 SCM의 비밀, 결국 ‘기본기’

INSIGHT

by 김편 2018. 6. 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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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공급망, 전장(戰場)의 SCM②

외계인을 고문해야 나오는 성과(?) 삼성전자의 1일 SCM

비밀은 '유연성' 공급업체 생산계획 연동, 부품 공용화까지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관리의 공통목표 '유연한 기업'

▲ 삼성전자 미국 뉴베리 카운티 생활가전 공장부지(사진: 삼성전자)

 

글. 박승범 SCM칼럼리스트

 

Idea in Brief

다품종 소량생산. 메이드인코리아의 종말을 막기 위한 열쇠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결국 핵심은 ‘정보공유’와 ‘컴퓨터’, 그리고 ‘로봇 기술’에 있다. SCM에서 오랫동안 강조해온 ‘정보공유’와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이 만났다. 삼성전자의 1일 SCM 달성 사례를 통해 다품종 소량생산을 만드는 기본 조건에 대해 살펴봤다. 쉬운 것은 없다지만, 가장 쉽지 않은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관리는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난 연재(제조업의 종말? '메이드인코리아'는 계속될 수 있을까)에서 메이드인코리아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다품종 소량생산. 공급망관리 담당자라면 이미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은 말일 것이다.

 

그런데 다품종 소량생산이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한 생산라인 세팅 변경이 필요하다. 자재를 납품하는 공급업체 또한 ‘계속’, ‘조금씩’, ‘자주’ 납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체는 공급업체의 생산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당연히 공급업체도 제조업체의 생산현황을 알아야 한다. 컴퓨터와 로봇기술을 활용하지 않으면 생산라인이 못 따라간다. IT기술을 적용하여 자사의 생산계획을 공급업체에 빠르고, 정확하게 공유하지 않으면 제때 자재를 납품할 수도 없다.

 

요컨대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최종소비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 받아야 한다. 생산라인은 컴퓨터와 로봇기술을 활용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제품을 바꿔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급업체와 제조업체는 생산계획 등 여러 정보를 공유하여 서로의 계획을 믿고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몇 가지 키워드가 나왔다. ‘정보 공유’와 ‘컴퓨터’, 그리고 ‘로봇 기술’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정보 공유는 공급망 관리에서 오래전부터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컴퓨터와 로봇 기술은 이른바 ICT 기술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의 촉매로 언급된 것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관리는 ‘유연한 기업’이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관리는 사실상 하나다. 4차 산업혁명은 공급망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고, 공급망 관리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한다.

 

삼성전자의 1일 SCM을 바라보며

 

지난 1월 28일 한국경제를 통해 <삼성전자 ’1일 SCM 혁명‘... 제조업체 중 세계 유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삼성전자가 무선사업부 공장의 현장 수요 대응 기간을 종전 3일에서 1일로 줄였다고 하는 이 사례는 ICT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관리가 어떻게 공존하며 유연성을 달성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물론 삼성전자의 1일 SCM은 순수하게 언론 보도만을 놓고 해석해 보면, 거의 외계인을 고문해야 얻어낼 수 있는 성과다. 가령 판매예측을 하고 그 예측을 토대로 공급계획을 수립하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시장 수요가 빠르게 변하는 업종이라면 판매예측과 공급계획을 최소한 ‘주단위’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것을 바꿔 해석하면 판매예측을 공급계획으로 만들고, 거래처에서 긴급주문을 요구했을 때 최소 1주일은 넘어가야 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1주일도 아니고, ‘최소 1주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외에 공장이 있고, 여러 협력업체에서 부품을 공급하는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이 기업은 일단 특정 1주일 동안 판매예측에 필요한 정보 수집을 한다. 당연히 그 정보는 1주일 전의 데이터를 기반한다. 그 정보를 가지고 판매예측을 마감하면 다음 단계의 공급계획 수립에 들어간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는가. 거래처가 얼마나 팔았고, 얼마나 더 팔 예정인지 정보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판매예측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공급계획을 만드는 데는 사실상 ‘2주일’이 걸린다는 뜻이다. 당연히 거래처 입장에서는 그 2주일 동안 시장 변동을 몸으로 겪고, 그에 따른 공급업체의 조달량 조정이 가능한지 요구하게 된다.

 

이 때 공급업체는 바로 조달이 가능할까. 공급계획을 만들면 그 공급계획은 어디까지나 1주일 단위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이 계획만 가지고는 생산할 수 없다. 생산은 1주일이 아닌 ‘매일’, ‘매시간’, ‘매분’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장은 일 단위, 더 나아가 시간 단위 생산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시간 단위로 수립한 생산계획은 공급업체로 전달되며, 공급업체는 가용한 자재, 앞으로 생산하거나 구매할 자재를 바탕으로 생산계획을 수립한다.

 

공급업체가 자재를 알아보고 생산을 준비하는 기간까지 감안하면 공장의 일단위, 그리고 시간단위 생산계획에는 절대 추가적인 생산 요구를 받아줄 수 없는 기간이 생긴다. 이것을 이 바닥 용어로 ‘프로즌 피리어드(Frozen Period)’, ‘X일 확정’이라 부른다. 삼성전자가 3일이었던 종전 기간을 하루로 줄인 것은 이 기간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거래처에서 오늘 긴급 주문을 냈을 때 이를 빠르면 다음날에라도 반영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 긴급주문 냈다고 무조건 다음날 생산해서 주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생산 가능한 물건이면 당장 그 다음날이라도 생산계획에 반영해서 생산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빠르면 다음날이라도 생산해 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재 확인이 힘들거나 생산능력 확인이 힘들다면, 바로 다음날 생산계획에 반영해 줄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1일 확정의 전제조건

 

언뜻 보면 1일 SCM이 뭐 그리 어렵나 싶겠다. 하지만 1일 SCM이 되려면 수많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완제품을 조립하는 삼성전자 공장의 생산계획 유연성이다.

 

일 단위, 또는 시간 단위 생산계획에서 한 번에 생산하는 수량을 생산관리 교과서에서는 로트 사이즈(Lot Size)라고 부른다. 이 로트 사이즈가 크면 공장의 가동률 면에서는 좋을지 모르나 생산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린다. 때문에 하루만 생산계획을 고정하고 그 다음날 생산계획을 바꿔야 하는 체제에서는 운영이 어렵다.

 

따라서 로트 사이즈가 작아야 생산 순서나 일정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 그만큼 쉬워진다. 작은 로트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을 단시간 안에 가능하게 할 정도의 고도의 생산계획 수립 시스템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급업체들의 생산계획 수립 및 자재 수급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완제품 생산공장은 공급업체의 자재 수급 및 생산계획 수립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죽으나 사나 생산계획을 며칠 동안 고정한다. 수많은 기업들이 거래처가 긴급 주문을 했을 때 곧바로 납기를 약속해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재수급’ 때문이다. 자재수급이 언제 될 지 한눈에 보지를 못하니 당연히 부랴부랴 확인하는 데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자연히 하루만에 자재수급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확인이 안 된다.

 

즉, 생산계획을 고정하고 다음날부터 바꿀 수 있다는 말은 공급업체가 삼성전자의 생산계획을 적시에 공유 받아서 자사 생산계획에 반영할 수 있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생산계획을 놓고 이리저리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자재 수급 상황을 파악해 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학술논문이 하나 있다. 2012년 4월 한국국제회계학회에서 발표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통한 SCM 혁신사례 연구'를 시간 나면 읽어 보시기 바란다. 삼성전자가 공급업체에 정보기술 투자를 해서 공급업체를 자사의 생산라인처럼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사례가 있었다. 

 

논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아예 공급업체의 ERP를 구축해 줬고, 자사가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순간 공급업체의 생산계획을 그에 맞춰 자동으로 수립해 주도록 만들어 줬다고 한다. 이게 6년 전 논문에 실린 얘기니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래된 얘기일 것이다. 그 긴 세월을 공급업체들을 길들인 끝에 오늘날의 1일 확정이 가능해진 것이리라.

 

또 한 가지. 1일 확정이 가능해지려면 제품설계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긴급주문을 다음날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부품 공용화가 잘 돼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보통 공용화된 부품의 경우는 재고가 많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용화된 부품은 언젠가 다른 제품의 생산에도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과 SCM의 ‘맥’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관리를 너무 심각하게, 또는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수요자 중심의 시장에서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인 ‘유연성’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4차 산업혁명은 곧 공급망 관리를 지향하는 것이고, 공급망 관리는 4차 산업혁명을 떠받치는 ICT 기술을 활용하여 더욱 고도화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관리, 두 개의 흐름을 한때의 유행이라 보고 따라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흐름은 수요자 중심 시장에서 사업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기본기다. 그리고 그것이 ‘메이드 인 코리아’를 계속 유지해 줄 것이다. 이것을 유행이라고 바라보는 순간, 몇 년 뒤에는 하나도 쓰지 않을 헛돈질이 돼 버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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