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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재가동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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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8. 9. 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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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부터 소송까지, 끝나지 않은 개성공단의 숙제

노동력과 남북경협 경험 등 개성공단 재가동이 가진 가치는?

[문화역서울 284 기획전시 <개성공단> / 참여작가_이부록 / 작품명_<로보다방-로동보조물자다방>, 2018, 서울역 컨셉 스토어, 가변설치]

 

글. 송영조 기자

 

Idea in Brief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어느덧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종종 들려오지만, 기존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은 공단 운영이 재개되기 전에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느끼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현재 개성공단이 안고 있는 숙제를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남북 경제협력지구가 생겨도 개성공단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개성공단 폐쇄, 그 이후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소식이 전해졌다. 2013년에도 6개월 간  공단 운영이 중단됐던 적이 있지만, 우리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공단이 폐쇄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입주기업과의 사전 합의나 통지도 없이 대통령의 구두 발표만으로 개성공단은 문을 닫았다. 30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목은 굳게 닫혀 있다.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피난길에 오르듯 부랴부랴 짐을 싸서 남측으로 철수했다. 기계 설비와 같은 고정자산은 물론이고 유동자산의 상당수까지 북측에 두고 개성공단을 떠났다는 게 복수 관계자의 설명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대부분 임가공업체였다. 공장이 돌아가야 수익을 낼 수 있다. 개성공단에만 제조라인이 있는 회사 중에는 폐업한 곳도 있다는 후문이다. 남한에서도 공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개성공단 재가동만 기다리며 가까스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입주기업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 남북은 철도·도로·산림 분야에서 경제협력 회담을 열었다. 문화 및 체육 교류도 있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 사이에도 개성공단 운영 재개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운영 재개 이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는 목소리가 입주기업 관계자들로부터 들려온다.

 

풀리지 않은 ‘고정자산’ 피해 산정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공단 폐쇄 이후 북측에 두고 온 고정자산에 대해 ‘경협보험금’으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공단 재가동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상황에서 입주기업들은 수령한 보험금으로 회사의 고정비를 충당해야만 했다. 2년 6개월 동안 매출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비용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주기업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개성공단 운영이 재개되면 수령했던 경협보험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조민 P&P의 조광순 대표는 “개성공단 폐쇄 당시 작은 회사는 20억, 큰 회사는 100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수령했다”며 “보험 약정상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전액을 수출입은행에 반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지난 2013년 6개월 동안 개성공단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반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는 게 입주기업 관계자의 설명이다. 폐쇄 기간이 길어지면서 북측에 남아 있는 고정자산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지금, 공단 재개가 되더라도 고정자산의 상당 부분이 파손, 망실되었을지 모르는데 경협보험금 반환은 입주기업에게 심각한 경제적 부담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약정상으로는 보험금을 반납하는 게 맞다. 하지만 2013년과 2016년의 가동 중단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경협보험금 전액 반납과 같은 구체적인 지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향후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윤곽이 나왔을 때 검토해 정할 것”이라 밝혔다.

 

애매모호한 유동자산 피해까지

 

유동자산에 대한 피해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유동자산은 공장 안에 묶여 있는 원부자재와 제품을 일컫는데, 입주기업은 정부로부터 ‘확인된 금액’에 한해 피해액의 90%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미확인된 금액’에 대한 법적 공방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라는 게 입주기업 관계자의 전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유동자산의 경우 애초에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았으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단 운영을 중단했으니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지원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1차 실태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금액의 70%, 최대 22억 원 한도 안에서 지원이 이루어졌다”며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지난해 11월 추가로 확인된 금액의 20%를 지급했고, 최대 한도는 70억 원으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입주업체에 줄 수 있는 최대의 혜택을 주었다는 것이다.

 

같은 관계자는 “삼일회계법인에 용역을 의뢰해서 실태조사를 거쳐 피해액을 산정했고, 당시 산정 기준은 장부가액”이라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제출한 재무제표, 수출입신고필증 및 관련 서류를 삼일회계법인이 검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주기업들 사이에서는 피해 산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원청기업이 회사에 소송을 걸어 법적 다툼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 소송에서 지면 입주기업은 원청기업에 유동자산의 피해액을 보상해야 한다. 원청기업이 문제 삼는 부분은 미확인된 유동자산이나, 실태조사가 실상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해 갈등이 발생했다는 반응이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발생한 영업 손실에 대한 피해 보상은 거론되지도 않았다는 게 입주기업의 또 다른 불만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의류업체 나인의 이희건 대표는 “정부가 개성공단 운영을 중단할 때 영업손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며 “입주기업이 입은 가장 큰 피해는 영업손실”이라 주장했다. 단순 영업손실뿐만 아니라 원청기업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판로가 위축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는 손실분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만난 이희건 나인 대표(경기개성공단 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이 대표는 남북 경협 논의가 오가는 와중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논의도 시급히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개성공단 재가동의 가치

 

우여곡절 끝에 개성공단이 재가동된다면 어떤 가치가 있을까. 입주기업에게 전해들은 개성공단 입지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노동력’이다. 비단 저렴한 인건비(개성공단 폐쇄 당시 주 48시간 근무 기준 월 75달러 50센트) 때문만은 아니다.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는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에 의사소통이 편하다. 북한의 통제된 근무환경은 역설적으로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활동에 기여했다고 한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북한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은 해외 자본이 들어와서 현지 인력을 통제하는 것이 어렵다. 보안 문제, 노동자 이탈 문제 등 인력운영과 관련한 돌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라며 “경영자 입장에서 개성공단의 특수한 환경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의 지리적 이점 또한 장점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경기도 고양시의 사무실에서 수속을 밟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한 시간 반이면 개성공단까지 갈 수 있다”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설치했다면, 이동시간만 해도 하루가 더 걸리는데 개성공단까지의 접근성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큰 장점”이라 말했다.

 

개성공단 가동이 만드는 정치적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남북이 긴밀하게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정부, 기업과 시민 사이에도 정서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떠나 남북이 교류한다는 경험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회·정치적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재가동 그 후

 

혹여 개성공단 운영이 재개되더라도 기업 운영 측면에서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3통(통행, 통관 및 통신)’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먼저 통행이다. 입주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개성공단은 하루에 한 번만 출입이 가능하고, 사전에 통일부에 출입 일시를 제출하면 통일부와 북측이 협의를 거쳐 최종 출입 허가를 내린다. 들어가는 시간과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이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공장을 운영하는 입주기업 사이에서는 갑자기 남측에서 가져와야 할 원부자재가 생기는 등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응급환자가 발생한 경우가 아니라면 통행에 예외는 허가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경영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통신에도 제약은 있다. 개성공단 안에서는 휴대폰은 물론 이메일조차 쓰지 못한다는 게 입주기업 관계자의 설명이다. 개성공단에 들어갈 때 남측 CIQ(customs, immigration and quarantine:세관·출입국 관리·검역) 남북출입사무소에 핸드폰을 맡겨야 하고, 공단 안에서는 유선 전화만 사용할 수 있다. 그 외 통신 수단 사용은 허가되지 않는다.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는 “요즘같이 스마트폰으로 모든 자료를 주고받는 시대에 유선 전화만으로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수행하는 데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향후 개성공단이 재가동되어 운영이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통신 문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개성공단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노동자 충원 문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개성공단 가동 중단 당시 공단에 2만여 명의 근로자가 부족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개성시 인근 외곽 지역의 인구는 25만여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5만 4,000여 명이 개성공단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한 가구에 적어도 한 명이 개성공단에서 일한 셈인데, 그런 상황에서 개성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 가능 인력을 충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인력 수급을 위해서는 보다 먼 거리에 거주하는 노동자를 데려와야 한다. 이 경우 노동자에 대한 숙소 제공이 필요한데, 개성공단의 정치적인 제약으로 인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일 개성 인근의 도로를 확충하고 철도를 개보수하면 더 먼 지역의 북한 주민도 개성공단으로 출퇴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같은 관계자는 전망했다.

개성공단 복합물류단지가 들어설 파주 성동IC 인근 부지. 내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단지는 지금 푸른 논으로 뒤덮여 있다.

 

개성공단 안정화의 열쇠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상황, 투자의 주체는 모호하다. 언제 또 개성공단이 폐쇄될지 모르는데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2013년 당시 남북 간 합의문에 따르면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이유를 불문하고 개성공단 운영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정치적인 불안감이 상존하는 상황, 이 때문에 남측에 개성공단을 위한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실제 현재 파주 성동IC 일대에는 개성공단 복합물류단지 조성을 위한 승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개성공단 복합물류단지에서 개성공단까지는 육로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데, 물류창고에서 필요한 만큼의 원부자재만 개성공단으로 보내 완제품은 바로 남측으로 가져오면 향후 개성공단이 폐쇄되더라도 유동자산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남북 간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공단이 다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면서 “개성공단이 갖고 있는 정치적 위험을 공단 인근 남측 지역에 물류단지를 조성해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향후 불가피하게 공단을 폐쇄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정부에서 입주기업의 피해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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