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의 떠오르는 별, 베트남의 '도이 머이' 정책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전자상거래 활성화, '물류'는?
물류 혁신을 주도하다, IT 접목한 '라스트마일 배송'의 등장
글. 신승윤 기자
Idea Brief
‘도이 머이(Đổi mới)’가 뜬다. 북한의 비핵화 및 개방 기류에 따라 베트남의 도이 머이 정책이 주목받는다.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중국과 다른, 자신만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베트남은 매년 6~7%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이어오고 있다. 과연 도이 머이 정책의 어떤 차별점이 베트남을 고성장 국가로 만든 것일까. 또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베트남 물류는 어떠한 시장 환경과 성장과정을 거쳤을까. 최근 국제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연이어 베트남에 투자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개혁개방의 역사와 함께 베트남 물류의 가능성을 확인해 본다.
떠오르는 별, 베트남
중국 최대 IT·전자상거래 기업이라 불리는 알리바바(Alibaba), 징동((JD.com)에 이어 아마존(Amazon)까지 적극 투자에 나선 시장이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2017년 베트남 전자상거래업체 티키(Tiki.vn)가 징동으로부터 4,4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전자상거래업체 라자다(Lazada)는 알리바바로부터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아마존 또한 베트남 전자상거래협회와 협업해 베트남 현지 업체들에게 수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 닦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베트남 전자상거래시장은 40억 달러로 규모로, 2022년에는 10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성장률 22%의 고공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기나긴 전쟁과 더불어 소련식 사회주의 경제체제 아래 경제난에 시달렸던 베트남. 1986년 ‘도이 머이(Đổi mới)’ 정책을 실시한지 30년 만에 GDP 세계 47위, 2017년 경제성장률 6.91%의 고성장 국가가 돼 이제는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 시장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베트남식 개방 모델 ‘도이 머이’
지난달 8일,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베트남 같은 기적의 경제 번영을 이뤄라”라고 말했다. 미국과 1995년 수교한 베트남은 20년 동안 대미 교역량 8000% 성장과 더불어, 미국 기업들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도이 머이’ 정책이다. 적국이었던 미국과 적극적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나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이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한 김 국무위원장 또한 지난 남북정상회담 가운데 베트남식 개혁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베트남어로 ‘쇄신’을 뜻하는 도이 머이는 베트남어로 ‘변경하다’를 뜻하는 도이(dổi)와 ‘새롭게’를 뜻하는 머이(mới)가 합쳐진 용어다. 시장메커니즘의 도입 등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방향으로 추진된 도이 머이는 말 그대로 새로운 변화다. 베트남 역시 도이 머이 이전의 변화와 개혁 시도에 있어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자력갱생 노선을 추구한 베트남은 물자부족과 경제난으로 인해 개혁 정책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1979년 시작된 베트남의 경제개혁은 실패했다. 서방으로부터 고립된 채 시도한 폐쇄적 개혁정책이었으며, 식량 및 소비재 등 국내 민생 관련 생산증대를 위한 정책이 주를 이뤘다. 이는 생산자에 대한 인센티브 및 보조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등 악순환을 유발했다.
‘도이 머이’가 특별한 이유
1986년 시행된 도이 머이 정책은 기존 개혁 정책과 달리 시장경제 도입과 동시에 적극적인 국제관계 개선을 시도한다. 현물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계획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요소를 도입한 거시경제관리 노선으로 변화했으며, 중공업 우선정책을 버리고 농업 발전과 소비재 생산 확대, 수출품 개발 및 품질향상을 위해 산업구조를 재조정했다.
▲ 도이 머이 정책에 따른 경제제도 변화
나아가 멀티섹터 경제체제(Multi-Sector Economy)를 구축해 국영, 집체경영, 공사합영, 개인경영 등 기업부문의 경제형태를 다각화 하면서 대외개방 진전의 성과를 얻었다. 베트남은 구소련의 원조 중단,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역 축소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허나 도이 머이 이후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프랑스, 호주, 영국 등 유럽 선진국과의 교역 및 투자유치에 성공해 고성장의 길로 들어선다.
이처럼 도이 머이 정책은 경제특구 중심의 계획적·점진적 개혁을 추구한 중국식 시장경제 도입 방식과 달리,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산업기반을 조성해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출주도의 성장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베트남은 안정적·지속적 성장을 위해 꾸준한 제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류의 ‘개혁개방’은 현재진행형
베트남 개방 정책에 따른 결과로 현지 물류 인프라도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물류 인프라 구축 상황은 갈 길이 멀다는 게 현지 물류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베트남 개방 정책에 따른 공사합영으로서, 1996년 CJ대한통운의 베트남 합작투자법인 KorEx SAIGON 설립을 함께한 H&P로지스의 허욱 대표(전 CJ대한통운 글로벌본부장)는 “당시 베트남 현지 도로, 철도, 항만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며 “베트남 남북을 잇는 1번 도로는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 수준이었고, 철도는 단선으로 매우 속도가 느리고 시설이 낙후됐었다. 항만 또한 원양을 운항하는 대형선박이 접안할 수 없는 인프라였다”고 회상했다.
▲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혼잡하기 그지없는 하노이 도로
허 대표에 따르면 이후 2008년에 이르러 호치민 인근 카이맵 항만에 덴마크 대형선사인 머스크(Maersk SeaLand) 선박이 취항하는 등 인프라를 확보하고, 호치민과 하노이 등 대도시 인근 도로를 정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충분한 물류 인프라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허 대표는 “2016년 H&P로지스의 하노이 법인 설립 당시 하노이와 호치민 두 거점의 중심으로 도로 확장과 정비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며 “그러나 남북 간 간선도로의 열악한 사정은 그대로였으며, 대도시와 지방과의 연계도로 또한 이용에 불편사항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물류업체 관계자 또한 베트남 물류 발전의 속도가 경제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했다. 1995년 무역업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뒤, 2004년 물류회사 PTV를 설립해 운영 중인 최분도 대표는 “현재 베트남은 산업화 수준이 물류 인프라 확충보다 훨씬 빠르다. 물류성과지수(LPI)는 매년 2~3% 성장에 머문다”며 “도로 등 물류 인프라가 아직까지 한국의 70년대 정도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항만은 많이 발전했으나 아직까지 개선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항만의 경우 호치민 인근 터미널과 하이퐁 인근 터미널을 확장하는 등 시설정비에 힘쓰고 있으나, 여전히 대형선박이 입출항하기에는 부족해 싱가포르나 홍콩 등에서 환적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도로, 철도, 항만 인프라 정비가 시급하나 정부 재정 부족으로 언제 실행될지는 미지수이며, 때문에 물류·유통 비용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평이다.
현지 베트남의 물류기업은 2PL(2nd Party Logistics, 화주업체 물량 기반 자회사 물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제조기반의 베트남 시장경제에 있어 투자자인 외국기업의 물류를 글로벌 물류기업들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용 경쟁력 또한 문제다. 베트남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현지 물류업체를 통해 컨테이너를 운반할 경우, 하노이에서 하이퐁까지 약 120km 거리를 운송하는 비용보다 글로벌 물류업체를 통해 한국-베트남 거리를 운송하는 비용이 1/3 수준으로 저렴하다.
이 같은 서비스 비용 증가는 단순 운송 분야로 제한된 활동영역과 더불어, 베트남 물류의 한정적 규모와 자본으로 인해 발생한다. 아직까지 물류관련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가운데 3PL(3rd Party Logistics)을 개척할 인재와 네트워크 또한 부족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아직까지 베트남은 물류, SCM 등에 관한 개념 정착이 완전하지 않다”며 “최근 2~3년 사이 물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변화하는 중”이라 말했다.
베트남 최대 투자국은 ‘한국’
베트남 물류협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베트남에는 약 1,300~1,500개의 물류회사가 있다. 베트남 물류시장은 연간 15~16%의 성장세를 보이며, 그 규모는 4,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같은 성장과 가운데 베트남 시장에 대한 최대 투자국은 한국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1988년 이후 30년간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액은 575억 달러로, 한국 대기업들이 호치민과 하노이를 제조거점으로 삼아 진행한 거액 투자의 결과다.
남부에 위치한 호치민은 의류, 가전, 식료품 등의 제조거점으로 삼았다. 북부에 위치한 하노이는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IT 및 기계 산업 제조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한국 및 글로벌 물류업체들이 활발히 진출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가운데 국영기업 외 베트남 현지 물류기업들은 대부분 영세한 편으로 운송, 하역, 창고 등 부분단위 사업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IT 수혈한 베트남 물류의 변화
한편, 음식배달 등 라스트마일 배송(Last Mile Delivery)에 있어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공익사업 중심의 국영회사 베트남우정국 외에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한 민간 기업이 없는 가운데, IT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자국 업체들이 등장한 것이다. 웹·모바일 기반 음식배달 서비스 베트나미(Vietnammm), 푸디(Foody) 등이 그들이다.
베트남 배달대행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주문‧위치정보를 결합한 뒤, 복잡한 베트남 골목골목을 누빌 수 있는 오토바이 배달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배달시장 활성화에 앞장섰다. 베트남을 상징하는 오토바이는 지천에 널린 이동수단이기도 하다. 마케팅 업체 하바스(Havas Riverorchid)의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 대도시 인구의 80%가 이 음식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 같은 성장은 베트남 전자상거래 시장에 대한 대대적 투자로 이어졌다.
차량공유서비스업체들의 진출 또한 활발하다. 싱가폴의 차량공유업체 그랩(Grab)은 우버(Uber)의 동남아 사업을 인수한 뒤, 현재 베트남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 IT 기반 공유경제 프로세스를 활용해 차량공유, 배달에 이어 화물운송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표 차량공유서비스 고-젝(Go-Jeck) 또한 고-비엣(Go-Viet)이란 이름으로 지난 7월부터 배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 차량공유에서 배달과 화물운송까지 영역을 넓힌 ‘그랩푸드’(왼쪽)와 ‘고-비엣’(오른쪽)
허욱 H&P로지스 대표는 “베트남 경제를 주도할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며 “생활편의를 추구하는 대도시의 젊은 세대는 높은 소득수준과 함께 IT 친화적이다. 때문에 전자상거래 및 SNS를 활용한 마케팅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도로, 철도에 이어 항공 등 인프라 정비가 함께 진행된다면 베트남 전역에 서비스 가능한 사업 영역이 될 것”이라 말했다.
최분도 PTV 대표는 “베트남 전자상거래의 90%는 호치민과 하노이에서 발생한다. 그 외에는 아직까지 생활 여력도 관련 정보나 기술도 부족하다”며 “EMS 외 택배 산업 또한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매년 적자를 보는 것”이라 밝혔다. 그는 덧붙여 “다만 꾸준한 투자를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며 “물류 인프라 확보와 함께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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