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만을 모아 만든 SCM 혁신조직, 그럼에도 실패하는 이유?
SCM 혁신을 위한 필수조건, 동일 목표 · 동일 가치
글. 박승범 SCM 칼럼리스트
Idea in Brief
기업의 SCM 혁신 과정에 있어 첫 걸음은 ‘하나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의 목표는하나인데, 팀별, 부서가 생각하는 목표의 가치가 제각각 다를 때가 있다. 혁신조직은 목표를 하나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에 맞춰 각 부서가 생각하는 서로 다른 가치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나의 목표이더라도 가치를 바꾸지 못하면 혁신조직은 늘 ‘자중지란’에 시달린다. 이번호에서는 조직내 SCM 혁신을 방해하는 것들을 살펴본다.
지난호에서는 ‘SCM 혁신조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세가지 관점에서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첫째 핵심인재로 구성해야 하고, 둘째 관련된 분야의 인재를 모두 포괄해야 하며, 셋째 회사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리더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대로 ‘자원이 한정된 기업에서 전담인력을 구성할 수 있겠냐’고 의문을 갖는 독자분이 있을 수 있다. 사실 그렇게 못할 가능성이 높다다. 하지만 혁신을 하고 싶다면 ’꼭 해보자’는 뜻이다. 실천하지 않는 혁신은 의미가 없지 않는가.
대기업은 팀별, 부서 간 분업화가 많이 되어 있어서 취약한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면 굳이 부서내 인재를 다 불러모을 필요는 없겠다. 예를 들어 S&OP (Sales & Operation Planning, 생산과 판매간 수익성 제고 관점에서 수급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뜻함)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생산라인 부서는 참여할 필요가 없다. 보통 영업부서와 생산계획 수립부서, 수급관리 부서가 주로 참여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상황 나름이다. 만약 시간이 부족해서 S&OP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를 모아 가시성을 확보하는게 힘들다면, 이때 IT부서의 참여가 필요하다. 모든 자료를 한 화면에 모아서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 S&OP를 진행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짧은 시간 안에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자료를 취합하고, 이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다.
신제품 투입일정이 정확하게 관리되지 않아서 S&OP 해봤자 쓸모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때는 연구개발 부서의 참여가 필요하다. 연구개발 부서가 개발일정 준수를 원가절감 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생기는 문제가 발생된다. 모든 혁신은 결국 근본적 문제점을 제거하지 못하면 하나마나한 것이다.
문제의 근본을 찾아서
자, 이제 인재를 다 모았다. 팀의 리더도 소신 있는 인물로 뽑았다. 현 시점에서는 경영진의 관심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곳에서 인재를 모아 놓으면 처음에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시작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우리 부서는 잘 하고 있는데 다른 부서가 일을 못해서 혁신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부서는 혁신활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말을 잘 해석하자면 “연관된 부서가 참여했고 나는 문제 없으니 혁신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아무리 SCM 혁신을 위해 모였다고는 하지만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수많은 컨설팅 지침서들을 읽어 보면 SCM 혁신을 위해서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수치로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수치로 구체적으로 제시하더라도 혁신조직의 구성원들 스스로가 네가 더 잘못했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혁신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게 된다.
1994년부터 일본 만화잡지 주간 선데이에 연재되기 시작한 아오야마 고쇼의 연재만화 '명탐정 코난'. 일년에 두번씩 극장판이 나오는데 극장판 오프닝에서 에도가와 코난이 늘 외치는 한마디가 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真実はいつもひとつ!)"
진실만이 아니라 SCM 혁신의 목표도 하나여야 한다. 아니,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생산계획을 혁신해 보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고 하자. 구체적인 혁신 목표로 특정구간 생산계획의 정확도를 높이기로 목표를 세웠다. 즉 생산계획에서 약속한 날짜와 분량대로 생산하고 종료하였는지 보고 그것을 높이기로 했다고 하자. 보통 CPIM 교재에서 설명하는 생산계획 프로세스는 아래 <표1>과 같다.
▲ <표1> 생산계획 프로세스
총괄생산계획은 중장기적 생산자원 소요계획과 시장 수요 및 확정 주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실제 표준 ERP 패키지를 잘 분석해 보면, 월단위 생산수량을 입력하는 기능이 달려 있고, 이 기능을 통해 시장수요를 감안해서 생산할 수량을 입력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거기에 생산능력 제약, 협럭업체의 조달 능력, 연구개발 부서의 개발일정, 생산 Lot Size(한꺼번에 생산할 생산수량 단위) 등을 감안해서 주 단위, 그리고 일 단위 생산일정을 만든다. 그러니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부서는 시장수요가 정확히 입력되면 생산계획 정확도는 따라서 높아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빠져나가기 아주 좋다. 실제로 어떤 기업의 수요예측 정확도가 눈뜨고 못봐줄 정도로 낮은 경우, 이 말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수요예측에 빠져있는 것들
하지만,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수요예측이라는 것은 빨라봤자 지난 주, 심한 경우 지난 달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사이에 시장의 변동은 절대 반영되지 못한다. 특히 수요예측은 영업사원들의 무리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며, 외근이 많은 영업사원들의 특성상 영업부서조차도 영업사원의 수요예측을 제대로 정리해서 최종 수요예측을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생산계획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요예측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부서에서 신모델 개발을 일정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예상되는 품질 문제는 없는지 등을 미리 점검해야 한다. 막상 생산계획 수립에 필요한 각종 Input 정보, 예를 들어 생산라인별 생산능력, Standard Time (숙련된 작업자가 표준화된 작업 방법으로 무리 없는 작업 속도와 여유시간을 감안해서 작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시간. 생산에서는 ST라고도 부른다) 등의 정보는 제대로 셋업되어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는 없는지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생산계획 수립부서가 생산계획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명확하다. 오히려 너무 많다.
생산계획 수립 부서는 영업부서를 상대로 정말 이 수요예측이 맞는지 다시 확인할 마지막 보루다. 실제 관리가 잘 되는 생산계획을 잘 살펴보면, 영업부서에서 수립한 판매계획이 정말 맞는지, 팔 수 있는 것인지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 해 놓으면 영업부서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나중에 영업부서에서 놓친 부분을 뒤늦게 바꿔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을 줄이고, 부랴부랴 허둥지둥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관리가 잘 안 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구성원들이 '일을 똑바로 안 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하나로 뭉치지 않는 것' 뿐이다. 이걸 다 하고 있는데도 영업부서가 안 바뀌는 걸 어쩌란 말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된 것 아닐까? 최고경영자가 지원해 주는 혁신조직에 들어왔으니 영업부서와 그 담당 임원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이런 일로 인해 생산계획이 정확해질 수 없고, 생산계획이 부정확하면 안전재고를 더 많이 가져가 회사 손실이 늘어나니 영업부서를 변화시켜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연구개발 부서를 상대로도 프로세스를 확실하게 수립할 수 있는 기회다. 요즘은 동시공학이 발달해서 연구개발 과정중 생산 관련부서들이 모여서 많은 회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연구개발 과정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기업일수록 이러한 회의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회의체가 없으면 연구개발 담당자들만이 알고 있는 숨은 문제점을 들춰낼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그리고 그 문제는 소비자에게 물건이 다 팔린 뒤에나 밝혀져서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끼친다. 혁신부서에 들어온 김에 연구개발 부서의 개발진도를 좀 더 적극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 그리고 생산계획을 일별, 시간별로 전개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재명세서다.
자재명세서가 제때 나오는지도 적극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구성하면 더 좋겠다. 많은 경우 생산계획 수립부서가 아무리 자재명세서를 제 때 등록하도록 독촉을 해도 생산계획 수립부서가 연구개발부서에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특정 기간 이전에 자재명세서가 확정되지 않으면 아예 생산계획에 반영을 안 해 주도록 만들고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을 받아 버리자.
기준정보 관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생산계획 수립부서 외에는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 생산계획 수립과 수정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다 보면 사실 기준정보 점검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생산계획을 수립할 때 수요예측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생산능력이나 ‘라우팅 정보’(공장에서 존재하는 생산공정의 순서를 보통 라우팅이라 부른다)의 정확성이다.
결론적으로, 영업부서에서 수요예측을 정확하게 하고, 확정주문을 더 많이 수주하면 생산계획 정확도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분명히 생산계획 수립부서에서도 뭔가를 찾아서 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마인드를 가진 구성원들이 일하고 있는데,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고 해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강한 인재는 혁신조직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내 전문분야에서 뭔가 개선할 부분이 없을까'를 생각하고 해 보려는 의지를 가진 인재가 혁신조직에는 더 필요하다.
목표는 같은데, 가치가 다른 이유
여기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럼 왜 지금까지 이렇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지 못했을까. 더 나아가서 왜 혁신조직에 인재를 모아 놓았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모두 다른 부서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올까. 그것은 바로 구성원들이 일을 똑바로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쉽게 말해서 '다른 부서가 말을 안 듣는다' 이 말이다. 다른 부서가 지속 가능하게 말을 듣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잠시 경영진의 압박으로 말을 들을 뿐 조금만 통제가 느슨해지면 과거로 돌아간다.
앞의 예로 돌아가 보자. 생산계획 수립부서가 생산계획 정확도를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산계획의 정확도가 높아지려면 수요예측, 확정주문, 각종 자원계획, 그리고 생산능력, ST, 라우팅, 자재명세서 등의 기준정보가 정확해야 한다. 그 중 생산계획 수립부서가 어떻게 못 하는 정보는? 수요예측과 확정주문은 영업부서가 관리한다. 자재명세서는 연구개발 부서가 만든다. 그럼 영업부서나 연구개발 부서는 생산계획 정확도를 생각하고 일하고 있을까? 절대 아니다. 영업부서에게 주어진 가장 큰 목표는 일반적으로 매출 증대, 영업이익 증대다. 수요예측이 있다 해도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가 발견된 순간 어떻게든 생산계획 수립부서에 전달해서 관철시키고 싶어한다. 생산계획 수립부서에서는 그걸 받아줄 경우 생산계획 정확도가 낮아질 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회사에서 가장 외향적이고 파이팅 넘치는 구성원들로 가득한 영업부서의 공세를 물리치기는 정말 힘들다. 눈앞의 매출이 크다 보면 SCM 혁신을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한 경영진조차도 영업부서 말을 들어 주라고 거들기 마련이다.
연구개발 부서는 어떠한가? 연구개발부서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목표는 보통 개발건수, 그리고 원가절감이다. 그러다 보면 자재명세서와 시방서의 정확도와 적시성에 신경을 못 쓴다. 영업부서에서 빠른 출시를 압박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회사에서 가장 엘리트로 구성된 연구개발 조직에게 쓴소리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생산계획 수립부서에서는 개발건수 따위 관심 없다. 자재명세서와 시방서의 정확도가 중요하다. 자재발주가 제대로 나가야 생산 차질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계획 수립부서가 아무리 자재명세서를 정확하게 만들어 달라고 항의해 봤자 연구개발 부서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목표를 하나로 한다고 해도 참여 조직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그 목표와 맞지 않으면 하나의 목표로 향할 수 없다. 많은 컨설팅 지침서들은 이 부분을 간과한다. 설명이 너무 단순하다. 하긴 기업마다 사정들이 다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을 노릇이다.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혁신조직은 목표를 하나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에 맞춰 각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각 조직의 가치를 바꾸지 못하면 혁신조직은 늘 자중지란에 시달린다.
혁신조직의 리더는 각 조직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바꿔서라도 혁신을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SCM 혁신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최고경영자는 눈앞의 매출, 눈앞의 영업이익이 있더라도 각 조직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야 한다. 만약 전통적인 가치, 매출, 영업이익, 개발건수 등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때는 최소한 한 가지는 챙겨 줘야 한다. 그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SCM의 큰 목표를 저해하는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다. 예를 들어 매출 증대의 기회가 있음에도 수요예측을 보수적으로 하고 생산계획 수립부서에 아무런 대비할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무리하게 신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영업부서에서 자재명세서의 완성도가 낮은 상태로 생산을 요구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관련 부서들은 SCM 혁신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버린다.
이번호에서 기억할 단 한가지는 혁신조직의 정신 재무장 차원에서 구체적인 하나의 목표를 정하는 것, 그리고 그 목표와 각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를 서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를 하나로 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정하고 지시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그 목표를 하나로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하나로 하더라도 제대로 안 돌아가는 이유는 각 부서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효과적으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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