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싱글 물류男女의 벚꽃엔딩을 기원하며

ARTICLES

by 김편 2013. 4. 1. 11:06

본문


이미지 출처. 버스커버스커 앨범

"몰랐던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버스커 버스커 '벚꽃엔딩' 중에서>





글. 인터넷 물류논객 후버


모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어쿠스틱 뮤지션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이 지난 3월 중 국내 주요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신곡이 아니다. 이미 작년 봄에 나온 노래다. 요즘같이 신곡을 내고 몇 달 동안 세몰이를 한 후에 썰물처럼 빠지는 세태 속에서 1년 전 만들어진 노래가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봄의 감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겨울은 무척 추웠다. 추웠기 때문에 더더욱 봄의 감성에 젖어들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1년 전 만들어진 노래가 달래 주고 있었던 셈이다. 


물류 현장근무를 하다 보면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설 연휴를 전후해서 열심히 실어주고, 출하하고, 반품 잡는 일을 반복한 끝에 이제 조금 숨을 돌렸다 싶으면, 겨우내 입고 있던 작업복이 시나브로 더워지기 시작한다. 벗어버리면 추울 것 같고, 그렇다고 입고 있자니 덥고 금방 땀 차는 상황이 며칠간 반복된다. 보안이네 사무실 공기정화네 해서 창문을 꼭꼭 걸어잠근 사무실과 달리 물류센터 또는 배송차량은 늘 바깥과 소통하고 있는 특이한 공간이기 때문에 물류센터 작업자나 화물트럭 기사, 화물터미널 상차 작업자 등 현장 직원들은 바깥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일한다.


그래서 현장 근무자들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완연한 봄이 왔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출퇴근하면서 보는 주변의 꽃들을 보면서 마음은 왠지 들뜬다. 특히 미혼 직원들의 마음은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것쯤 억누르고 열심히 일해 보려 해도 헛수고다. 얄밉게도 화이트 데이가 그들로 하여금 지금은 봄이라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줄 사람이나 받을 사람이나 마음이 들뜨지 않을래야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여기까지만을 그들에게 허용한다. 낮과 밤, 주중과 주말을 뒤집어서 일하는 것도 모자라 거래처의 밀어내기에 따라 초과근무까지 하다 보면 집에 가면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물류센터나 화물터미널 근처는 이성을 만날 곳도 그리 마땅치 않다. 만난다고 하면 그래도 가장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먼지 뒤집어쓰거나 매연을 마셔가며 하루 온종일 일한 모습 보여주기는 민망하다(하긴 그런 모습을 보여줘도 그런 네가 제일 예쁘고 멋지다고 말해주는 이성이 진짜 미래 배필이겠지만 말이다). 연애도 학습이고 경험이다. 많이 해 본 사람이 더 잘 하는 것이다. 물류 현장 업무를 한다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누군가의 연애 대상이 되기 쉽지 않은 조건인데 연애경험을 쌓기에는 더더욱 쉽지 않은 조건이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연애의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특히 사람이 늘 균일한 품질로 움직여야 돌아가는 것이 물류다. 잡념이 개입되면 물류 생산성의 급격한 저하로 이어진다. 오피킹, 오출하, 오검수의 원인을 찾다 보면 그 일부는 잡념의 소산이다. 따라서 물류는 그 특성상 봄이 되면 사람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봄의 감성을 철저히 억눌러 가며 일할 것을 작업자에게 직간접으로 강요한다. 그래서 미혼 직원들에게는 더욱 고통스럽다. 근무하는 중 여자친구를 만들 확률보다 근무하는 중 여자친구와 헤어질 확률이 더 높은 가운데에서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바뀌지 않았다. 얼마 전 모 물류 언론에서 취재한 물류 종사자의 격무 관련된 기사는 그래서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이쯤 되면 봄을 맞은 미혼 직원들의 업무 이탈 방지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근무시간 배려나 단체 만남 주선 등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필자가 너무 현실을 모르는 것일까?


너무나도 추웠던 겨울을 나고 맞은 봄이다. 아마 이 글이 기고될 때쯤이면 벚꽃도 지고 없겠지만, 더욱 더 많은 꽃과 나무가 자기 나름의 색깔로 세상을 물들일 것이다. 이런 계절에 울렁대는 가슴 움켜쥐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미혼인 싱글 직원들 모두에게 벚꽃 엔딩이 있기를 바래 본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