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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팅 기술과 공급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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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4. 12. 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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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민정웅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과거 제1차 산업혁명은 18세기 증기기관을 이용한 방직산업의 기계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던 많은 공정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근대적인 생산 설비가 도입되었고, 그로 인해 생산성 또한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제2차 산업혁명은 20세기 초 헨리 포드에 의해 고안된 컨베이어벨트가 단순화, 전문화, 그리고 분업화를 무기로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대량생산하면서 촉발되었습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이 두 차례의 산업혁명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해주었던 가운데, 새로운 제3차 산업혁명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로 IT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 뒷받침되면서, 3D 프린팅이라는 혁신적 기술을 통해 제품 생산의 디지털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과거의 생산은 재료를 깎거나 잘라서 부품을 만든 후, 이들을 다시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여 제품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3D 프린팅을 통한 생산에서는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디자인을 완성한 후, 마치 샌드위치처럼 매우 얇은 수많은 층(Layer)을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리듯 인쇄하여 제품을 만듭니다. 그래서 재료를 깎아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는 전통적인 제조방식과 대비하여, 3D 프린팅을 통한 생산을 적층 제조방식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것은 여러분이 매일 사용하는 종이 인쇄방식과 기본 원리 자체는 동일합니다. 일반 프린터에서는 문서를 작성한 후 인쇄 버튼을 누르면 디지털화된 파일의 내용이 프린터로 전송되고, 프린터는 다시 파일에 담겨진 정보와 동일한 모양으로 종이위에 얇은 잉크를 묻혀 2차원의 이미지를 만듭니다. 다만 3D 프린터가 2D 프린터와 다른 점은, 프린터로 보내지는 디지털 정보 파일이 인쇄하려는 물체를 일련의 연속된 단면들로 표현한다는 점과, 잉크 대신에 내구성과 강도가 우수한 입자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3D 프린터는 원래 신속한 프로토타입의 제작이 필요한 곳이나, 우주정거장과 같이 필요한 물건을 단시일 내에 운반해줄 수 없는 곳에서 이를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점차 시제품이나 일회용이 아닌 완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단체가 3D 프린터로 인쇄한 총기의 실탄 발사에 성공하면서, 총기 제작 및 유통에 관한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3D 프린팅 기술은 이렇듯 제3의 산업혁명으로서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러한 예측의 근거는 3D 프린팅 기술이 가지는 다음 5가지의 특징들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제조환경에서 적용되던 규모의 경제에 관한 법칙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쇄 방식이기 때문에 10개를 만들 건, 1000개를 만들 건 단위 제품 당 소요되는 생산 시간과 비용이 거의 동일합니다.

 

 

두 번째는 규모의 경제가 없는 대신, 대량 맞춤 생산이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D 프린터는 디지털화된 제품설계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나 지체시간 없이도 우리 생활 전반의 모든 제품을 맞춤형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디지털이라는 정보 형태의 특성으로 인해 제품 설계 정보에 대한 공유가 쉬워져, 새로운 제품의 디자인과 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오픈된 인터넷 환경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사용되는 재료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내용입니다.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탄소섬유와 같은 신소재는, 실탄을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루미늄이나 강철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또한 소재의 대량생산을 통한 재료비의 인하가 용이하기 때문에, 다양한 금속 수요를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3D 프린팅은 금속 및 광물자원에 대한 자원 보존에도 기여할 뿐 아니라, 생산되는 제품의 중량을 최소화하여 차량, 항공기, 선박 등에 사용되는 화석 연료의 사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네 번째는 적층 방식의 특성상 얇은 층을 겹겹이 쌓아올려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깎거나 잘라내는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원자재의 낭비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생산과정에서의 무인 자동화가 대폭 확대될 수 있어, 제품 생산 원가를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나노기술 등과의 접목을 통해 제품의 정밀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기존 반도체보다도 집적도가 훨씬 큰 칩이 개발될 수 있어, IT제품들의 기능 향상 뿐 아니라 획기적인 경량화와 소형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피부에 컴퓨터를 이식하는 SF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엄청난 장점을 갖는 3D 프린팅 기술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기회냐 위협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결과이건 그 방향성을 객관적으로 예측하여 새로운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아직까지는 이 기술이 보편적인 범용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시점에서 3D 프린팅 기술이 공급사슬을 둘러싼 생산, 물류, 그리고 유통 분야에 미칠 수 있는 영향 은 다음의 4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급사슬의 지정학적인 특성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글로벌 공급사슬은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비용이 저렴한 곳에서 제품을 생산한 후, 이를 다양한 운송 수단을 통하여 소비지로 이동시키는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D 프린터는 이러한 공급사슬 구성 방식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었던 재료비와 인건비를 현저히 낮춤으로써, 전 세계에 산재되어 있던 공급사슬을 소비지 시장 중심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큽니다.이렇게 되면 보관과 운송을 위한 물량 수요 자체가 급감할 것이기 때문에 제품 보관과 운송을 근간으로 하는 기존 물류기업들에게는 상당한 위기가 초래될 수 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형태의 민첩한 공급사슬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급사슬의 운영에 있어 난제중의 하나는, 불확실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공급의 민첩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생산에서는 급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용량 자체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을 필요로 합니다.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급용량을 탄력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면 생산용량의 탄력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설비규모를 변경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D 프린팅은 짧은 준비 시간만으로 하나의 기계에서 다양한 제품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제품별 수요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생산 용량과 관련하여 필요한 경우, 3D 프린터를 단순히 추가하거나 다른 생산시설로 신속히 이동함으로써 민첩한 대응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공급 사슬의 민첩성은 천재지변 등과 같이 예기치 않은 블랙스완으로 인한 공급사슬의 교란(Disruption)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세 번째로 3D 프린팅 기술은 극단적인 지연전략 (Postponement)과 완벽에 가까운 JIT(Just-In-Time)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여, 결국 제품 재고를 현재 수준보다 현저하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예측됩니다.
완제품생산에 필요한 자재의 종류가 매우 단순화되고,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 또한 단축됨에 따라, 제조업체는 정확한 수요정보가 확정될 때까지 생산을 극단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지연전략은 공급사슬 전반에 걸친 완벽한 JIT의 구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완제품에 대한 재고 또한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고객 수요예측의 기본적인 기법과 접근 방법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네 번째는 보다 큰 의미에서 제조산업 자체의 진입장벽이 무의미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전통적인 제조산업의 틀에서 바라봤을 때 신규 진입자나 기존 경쟁자의 도전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많은 방법들이, 앞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대표적인 전략들은 대규모 자본 투자와 생산 설비 확충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던지, 제품 자체에 대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여 단단한 기술 진입 장벽을 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D 프린터는 한 번의 구입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범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생산설비 마련을 위한 투자 리스크를 현저히 낮추어주며 규모의 경제 자체를 무력화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제조산업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나마 제조업체에게 남는 유일한 경쟁력은 아마도 제품 설계나 디자인에 대한 기술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위키피디아나 안드로이드에서 보아온 것처럼, 디지털 정보에 대한 오픈된 환경에서의 집단 지성은 이러한 기술 장벽마저도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 입니다. 3D 프린터로 인한 이러한 글로벌 공급사슬의 퇴조, 공급사슬 민첩성의 향상, 극단적인 지연전략과 JIT의 구현, 그리고 제조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의 유명무실화는, 물류기업에게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보관할 재고가 없어지고, 이동할 제품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디지털로 연결되면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효용성이 물류기업이 아닌 3D 프린팅 기술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여기에는 새로운 가능성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재의 3PL에 제조기능을 더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퀴네나겔이 일본에서 의료 장비 제작을 시도했던 사례처럼, 물류기업이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여 물류와 생산을 함께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제공자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3PL에 IT와 컨설팅을 추가한 형태를 4PL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생산을 더한 이들 서비스를‘5PL’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서비스의 핵심은 물류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기존의 물류네트워크를 완제품의 생산시설로 활용하는 것 입니다. 글로벌 공급사슬이 퇴조함에 따라 생산은 소비지와 가까운 쪽으로 이동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물류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물류센터의 대부분은 이미 소비지와 인접한 지역에 입지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수적인 측면에서도 생산시설보다는 훨씬 많은 수의 물류센터가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이곳에서 단순한 물류기능 뿐 아니라 3D 프린터를 이용한 생산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면,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산업과 서비스를 창출해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아직 구체적인 사례는 없지만, 3D 프린팅 기술은 인류가 수천 년간 유지해온 제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음으로써, 생산과 물류, 그리고 유통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쓸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파급효과가 예측되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3D 프린팅 기술이 가지는 파괴력을 과소평가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이와 유사한 선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과대광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는‘선례가 없다’는 논리는, 사실 적절치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생산의 디지털화가 가져온 엄청난 변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하여왔기 때문입니다. 종이 위에 활자로 인쇄되었던 책은 이제 전자책의 형태로 컴퓨터 스크린 안에서 존재하며, 필름을 현상하여 앨범에 가지런히 보관하던 사진들도 이제는 여러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안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동그란 LP나 CD에 담겨 예쁘게 포장되었던 음반도,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의 형태로 여전히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끝에 음반산업이 겪었던 혼란과 출판산업의 위기,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에 대응하지 못했던 코닥의 몰락을 상기한다면, 3D 프린팅 기술을 단순한 과장광고라 치부하고 안심하기에는 이에 따른 리스크가 너무 높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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