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우리에게 극일(克日)은 세대를 뛰어넘은 지상과제다. 축구경기에서는 이유 불문 무조건 이겨야 한다. 해설자들도 역대 한일전 전적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를 말해준다. 이제 은퇴한 박찬호 선수는 메이저리그의 모든 훌륭한 투수들 다 제껴두고 노모 히데오와 싸워 이겨야 했고, 김연아 선수는 선수생활 대부분을 안도 미키나 아사다 마오와 싸워 이겨야 했다.
기업도 예는 아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는 소니나 파나소닉, 도시바 등과 싸워 이겨야했고, 현대자동차는 도요타나 혼다와 싸워 이겨야했다. 어찌 보면 이들 기업의 현재의 모습을 이루어낸 원동력 자체가 극일 정신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물류인들에게 극일 정신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editor>
대한민국 물류에 ‘극일(克日)’ 정신은 있는가
글. 인터넷 물류논객 후버
기술이 없던 시절, 국가 부흥을 위해 굴욕을 무릅쓰고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꾸준히 갈고 닦은 끝에 이제 그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 일본을 넘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기술을 도입할 때 느꼈던 온갖 굴욕을 극일 정신으로 승화시키지 않고서는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와신상담' 고사성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1994년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가 그린 '만화로 보는 삼성의 신경영이야기' 를 읽어보면, 기술을 전수해 주기 위해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인 고문들을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스승처럼 모시고 정성스럽게 대접하라는 대목이 있었다.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결과 연료주입구가 오른쪽에 있는 한국GM의 자동차들과 달리 현대자동차는 고도성장 초창기에 일본 자동차 회사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성장한 결과 지금도 연료주입구가 왼쪽에 있다. 뿌리는 못 속이는 법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일본 기업을 이기고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기업들만의 노력으로 된 것일까?
아마도 기업들의 극일 정신을 뒷받침해 준 정책적 지원과, 일본산보다는 국산을 애용하자는 국민적 정서도 분명히 있었다. 요컨대, 오늘날 일본을 이기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기업들 뒤에는 일본과 경쟁하는 기업에 대한 우리의 총력전에 가까운 열렬한 지지와 사랑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고 보니 이렇게 극일에 성공한 기업들은 다 화주들이다. 그럼 물류는?
지난 5월, 2012년도 일본통운 및 NYK의 실적이 발표됐다. 일본통운은 매출액 1조 6000억 엔, 영업이익 332억 엔으로 전년동기대비 소폭 감소, NYK는 매출액 1조 9000억 엔, 영업이익 174억 엔으로 전년대비 매출 4.9% 성장에 흑자전환. 뭐 실적 측면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인 실적은 아닐 수 있지만, 어차피 물류는 초과이익을 달성하기는 어려운 업종 아니던가?
게다가 장치산업인 해운의 경우는 몇년 동안 선복 과잉으로 실적 회복의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고 있다. 이익보다는 규모를 보라. 매출 20조를 넘나든다. 규모면에서 국내 해운, 종합물류업체를 통털어 그만한 규모의 3자물류 업체는 없다.
부러운가? 아직 멀었다.
정작 매출액 규모보다 더욱 부러운 대목은 그들의 일본 내 위상이다. 1885년에 설립된 NYK의 본사는 일본의 중심 중에서도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도 마루노우치에 있다. 황궁 건너편이다. 섬나라라는 특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운이 없으면 일본 경제는 아예 돌아가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해운업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NYK 회장을 지낸 네모토 지로(根本二?)는 1995년 우리나라 경총에 비교되는 일본경영자단체연맹 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 게이단롄 명예회장으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일본통운도 1872년 메이지 5년에 국책기업으로 설립된 백년기업이다.
트럭운송은 무조건 ‘풀 트럭(Full Truck)’으로 해야 성공한다던 상식을 깨고 택배산업을 성공사업으로 만들 정도의 혁신 마인드를 가진 나라이고, 좁고 비싼 땅에 다층식 물류센터를 세워서 효율적인 물류관리를 하는 나라다.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서해안 고속도로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보이는 롯데 광명물류센터는 우리나라에 지어진 일본식 물류센터의 전형이다. 이 센터는 다층식에, 비가 자주 내리는 자연 환경 속에서도 화물이 비에 안 맞도록 하기 위해 화물 보관 구역이 차량 통행로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막강한 일본 국내화주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해외진출 때 동반으로 해외에 진출하여 글로벌 사업을 강화해 나갔고, 이제는 그 역량을 발판으로 현지 화주와의 비지니스도 강화하고 있다. 물류업체 입장에서는 일종의 선순환이다.
물론 이러한 일본 물류업체의 성장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식민 지배를 하였으며,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일본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식민 지배를 하였으니 당연히 식민지의 부를 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운송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도 병참에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을 그런 나라다.
그런데 이걸 생각해 보자. 현대자동차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도요타자동차도 2차 세계대전 때 군용차를 만들며 성장했다. 요컨대, 화주기업들도 식민지배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일본 기업들과 경쟁해서 이겼다.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필자가 일본에 한 맺힌 것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물불 안 가리고 일본은 이겨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라고 한다면, 물류라고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물류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진짜 극일을 하자는 정신보다도 정책적 지원과 물류에 대하여 긍정적인 국민적 정서를 제공함으로써 물류기업의 경쟁력의 뿌리를 만들려는 의지라고 본다.
물론 물류의 '극일'은 이미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고는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부산항이 고베항을 컨테이너 처리량 측면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고베항을 오래 전에 제쳤고, 중국 상해항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일본 대형 전자업체 모두의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현대자동차는 완성차 생산 기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업체로, 일본 업체 중에는 도요타를 제외하고는 생산량 측면에서 모든 업체를 이미 제친 상태라고 한다. 필자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중앙일간지 보도 내용이다.
모든 면에서 일본을 이기자고 은근히 부추기고, 그에 합당한 정책적 지원과 국민정서로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그것을 달성하면 찬사를 아끼지 않는 나라에서 물류산업에 관한 한 일본을 이기자는 생각을 갖고 합당한 정책적 지원과 국민정서를 조성해 주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른 업종에서 일본을 이기고 있다는 소식. 듣기는 좋다. 하지만 중요한 것. 우리에게는 아직 극일은 끝나지 않았다. 기업의 규모 뿐 아니라, 물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자세, 물류인 스스로의 위상, 모든 측면에서 우리에게는 아직 극일이 필요하다. 극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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