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순대는 다시 죽는다

INSIGHT

by 김편 2013. 11. 23. 16:55

본문

순대는 다시 죽는다

作. 천동암 (시인 겸 삼성전자 물류혁신팀 부장)


사람들이 북적인다이른 아침 순대 국밥집에

죽은 순대가 살아있는 순대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위대한 순간이다

 

짙은 화장에 젖가슴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소주에 해장술을 곁들이며 꺼억 하는 트림소리에

간밤에 시달린 시름도 뚝배기 수증기 속으로 사라져 간다

남루한 작업복에 하루 힘든 일을 시작하며

이 순간 막걸리로 생의 환희를 느끼는 사람들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살며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이른 아침 '-위하여'를 외치는 노인들

 

한명의 중년 남자

순댓국을 사이에 놓고 마주앉은 여자

말이 없다

남자는 막걸리로 반주를 곁들이면서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여자는 핏기 없는 얼굴로

벽에 흐르는 TV 연못을 응시하며

가끔 피식 혼자 웃는다.

둘 사이에 침묵의 간격이 길어지고

죽은 순대는 다시 죽는다.

  

<시(詩) 창작 메모>

이른 아침 산행을 위해 산 근처 순댓국집을 찾았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순댓국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두 명의 여인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인은 얼굴 윤곽을 잘 드러나는 짙은 화장이 그대로 있고 뻐드렁니처럼 드러난 젖가슴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들은 소주에 해장술을 곁들이면서 수다를 떨면서 밤새 진상을 떠는 손님들 욕도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남루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근처 건설현장에 일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하늘 좀 봐, 먹구름이 잔득 끼여 있어 갑자기 비가 올 것 같아. 오늘 일당은 다 못 받는 것 아니야!” 얘기를 하면서 그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역력히 보였다. 그들은 순댓국을 후룩후룩 게걸스럽게 먹은 소리가 하루시작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로 들렸다. 식당 중앙에 넓게 자리를 점령하고 “―위하여” 연신 외치는 열댓 명의 노인들이 있었다. 산행하기 전(前)에 해장술을 곁들이고 산을 오르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산행을 핑계로 집을 일찍 나와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한 중년 부부가 순댓국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다. 남자는 막걸리를 먹으면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관심을 끌려고 연신 말을 걸어보지만 남자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대화가 안 되자 여자도 벽면에 있는 TV만 응시하면서 순댓국을 먹는다.


이 시(詩)는 필자가 순댓국 식당에서 관찰한 이른 아침 풍경화이다. 순대는 돼지의 창자를 잘 손질한 후 그 안에 사람의 몸에 좋은 재료를 넣어서 먹는 서민 음식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몸 안에 있는 살아 있는 순대(창자)안에 죽은 순대를 넣어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순댓국을 먹는 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다 생기를 불어 넣은 것과 같은 위대한 순간이 아닐까? 식당 안에서 순댓국을 먹은 4개 그룹이 있다. 3개 그룹(밤일 하는 여자들, 건설 현장 작업자, 노인들)은 상호간에 원활한 의사전달을 한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부류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순댓국이 서로간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개 그룹인 한 중년 부부는 순댓국이 부부간의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한다. 순댓국의 문제가 아니라 국을 먹은 입과 가슴이 감정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서로의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 입에 들어간 순대는 생기를 불어 넣지 못하고 다시 죽음을 당하는 부관참시(剖棺斬屍) 운명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통해 필자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상의 다양한 소통의 방법과 중요성을 순댓국을 통해 살짝 엿본 본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