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버
CLO's TIP 한국GM의 중형 세단인 말리부의 최초 출시 당시 부진과, 말리부 디젤의 성공은 모두 빅데이터와 연관되어 있다. 빅데이터를 무시함으로써 판매량이 저조했고, 반대로 빅데이터를 너무 충실히 따른 나머지 수요예측을 훨씬 초과했다. 공급망관리에서 빅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독일 자동차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수입차 판매 부동의 1위가 ‘BMW’다. 자동차 회사 이름부터 ‘국민차’인 폭스바겐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인 반면, 프랑스의 ‘푸조’나 이태리의 ‘란치아(피아트)’라고 하면 이름도 못 들어본 후진국 자동차로 취급한다. 자동차 성능의 실험 무대라는 각종 랠리 우승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푸조와 란치아를 후진국 자동차 취급하는 우리의 기개는 참으로 대단하다.
2011년 10월 4일, 한국GM은 세계 최초로 중형승용차 말리부 신차 발표회를 한국에서 열었다. 당시 한국 GM은 올란도, 크루즈, 스파크 등 소형, 준중형 라인업을 어느 정도 정비한 상태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시장 규모가 큰 중형승용차 시장에 처음 신차를 출시했다. 당시 말리부에 대한 한국 GM의 기대감은 그만큼 높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말리부의 판매량은 예상을 보기 좋게 빗겨갔다. 매월 1000대 전후의 판매량으로, 경쟁차량과는 경쟁이라는 말을 하기가 애매한 수준의 판매량을 보였다.
그러던 중 전국이 세월호 침몰 사고의 트라우마로 몸살을 앓고 있던 지난 5월 초, 물류인이라면 한번쯤 눈여겨 볼만한 사건이 각 신문 경제면을 장식했다. 한국 GM에서 2014년 3월 6일 출시한 말리부 디젤이 올해 상반기 판매목표를 초과달성하는 바람에 4월 23일 출시 2개월도 안 되어 판매를 중단했다는 기사였다.
공급망 관리의 관점에서는 판매목표 미달도 문제지만, 초과달성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라고 교과서에서는 가르친다. 그런 측면에서 말리부 디젤 판매중단은 한국 GM에게는 중형차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열어 준 희망적인 사건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뼈아픈 수요예측 실패로 풀이할 수 있다. 과거의 판매량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말리부의 탄생, 그리고 뒤이은 말리부 디젤의 탄생부터 판매중단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한국 GM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빅데이터(Big Data)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일단 말리부가 시장에 출시되기 전, 인터넷 자동차 동호회와 중고차 포털, 블로그, 카페, SNS는 매그너스와 토스카의 계보를 이을 한국 GM의 새로운 중형승용차가 무엇이 될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인은 독일차를 사랑한다고 했던가. 당시 인터넷에서는 오펠의 인시그니아가 선정되기를 무척 바라고 있었다. 인시그니아는 일찌감치 GM 계열사가 된 독일 브랜드 오펠의 모델로, 유럽에서는 동급 최고 인기모델인 폭스바겐 파사트와도 성능 면에서 뒤지지 않는 평을 받고 있던 터였다. 아마도 당시 차기 중형승용차 관련 글들을 검색하여 모아서 공통점을 도출해 보았다면 누구나 단번에 소비자는 인시그니아를 원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말리부 직전 모델인 매그너스와 토스카의 경우 각각 독일 ZF사, 일본 아이신에서 제작한 자동기어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두 차 모두 차량과 자동기어 사이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자동차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칭송이 자자했다. 다시 말해 (구)대우자동차를 아끼던 소비자들에게는 독일 ZF사 또는 일본 아이신의 자동기어에 대한 향수가 매우 강했으며, 한국 GM의 차기 중형승용차 역시 그에 상응하는 기어 성능이 나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 발표된 것은 쉐보레의 말리부였다. 그리고 자동기어는 그 당시 차량과의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다른 기어가 장착돼 있었다. 인터넷에서의 기대감은 급격히 식었다. ‘인식이 드립치지 말라’는 말은 인시그니아는 일장춘몽에 불과했음을 자조하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수많은 글들의 공통점만 잘 뽑아냈다면, 공급망관리의 핵심 원천인 고객의 수요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최초 출시 당시 기대 대비 부진한 판매량과의 차이는 약간이라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3년 뒤 말리부 디젤의 출시에 따른 시장의 반응이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말리부 디젤은 오펠사의 디젤 엔진과 일본산 아이신 자동기어를 장착했다. 말리부 출시 전 수많은 누리꾼들이 바랬던 두 가지를 한꺼번에 충족시켜 버렸다. 그러고도 가격은 기존모델 대비 변경이 적었다. 분명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엔진과 자동기어가 장착되므로 원가가 더 들 것임에도 가격 변경이 적었다.
필자는 말리부 디젤 출시 관련 신문기사만을 읽고 더 이상 자동차 동호회 등 인터넷 검색은 하지 않았으나, 말리부 디젤의 성공을 일찌감치 확신했다. 필자의 판단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동차와 관련된 글 어느 무엇을 읽어도 그들이 공통적으로 원했던 것들을 모두 충족시킨 차였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월 500대 생산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두 달도 안 되어 3000여대가 예약되었다. LF쏘나타가 한달에 1만대가 팔리는데 ‘그게 뭐가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말리부의 4월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63.4% 증가했다. GM의 수요관리 담당자는 말리부 디젤에 대한 물동 배분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시장에서 점점 커져가는 디젤승용차 수요와, 이미 BMW 520D(2000cc 디젤)가 몇 달을 기다려서 받는 인기 차종이 되었다는 사실, 말리부 디젤이 누리꾼들에게는 이미 엄청난 기대감을 안겨 놓은 상태라는 것을 몰랐는지, 알면서도 공급 제약을 의식했는지 물동 배분을 월 500대 수준만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시범적으로 시장에 투입해 본 것일지도 모른다. 디젤 모델은 공해저감장치 등의 영향으로 가솔린 모델보다 비싼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100%수입 엔진과 수입 자동기어를 사용하면서 가격을 이전 모델 수준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시장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많은 판매기회를 잃은 것 같아서 아쉽다.
요컨대, 말리부의 최초 출시 당시 부진과, 말리부 디젤의 성공은 모두 빅데이터와 연관되어 있다. 빅데이터를 무시함으로써 판매량이 저조했고, 반대로 빅데이터를 너무 충실히 따른 나머지 수요예측을 훨씬 초과했다. 공급망관리에서 빅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빅데이터는 2000년대 초반 하버드비지니스리뷰를 장식하던 입소문 마케팅, 또는 Buzz(연관검색) 마케팅을 지원하는 강력한 도구인지도 모른다. 입소문을 어떻게 관리할까 고민하던 이들에게 빅데이터는 그나마 한줄기 빛인 셈이다.
말리부 디젤, 없어서 못 판다
독일산 엔진, 일본 변속기 공급물량 한계
한국GM의 중형 승용차인 2014년형 말리부 세단의 디젤 신형 모델의 물량이 동이 나서 지난 5월부터 계약을 중단한 상태다.
한국GM 관계자는 “2014년형 말리부 디젤은 공급 물량이 한정돼 있는 반면 주문량이 크게 몰려 고객들의 출고 대기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졌다”며 “올해 하반기에 ‘2015년형 말리부 디젤’이 출시되는 만큼 2014년형 모델의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중순에 출시된 2014년형 말리부 디젤은 독일 오펠이 생산한 2.0 디젤 엔진과 일본 아이신(AISIN)의 2세대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하고 있다.
특히 말리부 디젤의 복합연비는 13.3km/ℓ로 가솔린 모델인 LF 쏘나타의 연비 12.6km/ℓ보다 높은 점도 인기 요인으로 알려졌다. 부품 조달량이 한정돼 있어 월 500대 정도가 생산 한계량이다.
지난 3월에 216대, 4월에 522대가 출고·판매된 말리부 디젤은 아직 약 3000대나 계약을 맺은 채 출고를 기다리는 상태다.
이 같은 사태의 발생 원인은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핵심 부품인 독일 엔진과 일본 변속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계획했던 초도 물량 외에 추가 확보가 어렵게 되면서 상반기에는 더 이상 공급이 힘들게 됐다는 게 한국GM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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