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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물류의 현장! 초보 물류기자의 리얼 현장까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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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6. 10. 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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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 in Brief

힘든 아르바이트 중에서도 특히 ‘지옥알바’, ‘극한알바’라고 것이 있다. 바로 ‘택배 아르바이트’다. ‘물류전문지 기자라면 한번쯤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직접 체험해 본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생각보다 힘들었고, 생각보다 달랐다.


글. 임예리 기자


CLO에 입사한 지 두 달, 선배들이 ‘물류전문지에서 일한다는 기자가 택배 터미널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때마침 9월 초부터 다른 매체에서는 연례행사처럼 택배 터미널을 취재한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끼를 물어버렸다. 나도 가기로 했다, ‘극한알바’ 중에 단연 최상위급으로 여겨지는 택배 터미널에. 가기 전 인터넷에 올라온 택배 아르바이트 후기를 보니 “택배를 하느니 막노동을 하는 게 낫다”,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마라” 등 초보자를 긴장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지난달 13일. 평소보다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물류센터로 갔다. 사무실에 짐을 내려놓고 직원을 따라갔다. 그날 일하는 명단에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고, 면장갑 한 켤레를 받았다.



▲ 기자가 일했었던 서울복합물류단지.


분류부터 상차까지 


맨 처음엔 택배를 분류하는 일을 맡았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오는 택배 중에서 송장 번호가 461, 463, 464인 물건만 골라 카트에 담았다. 작업자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일정 간격을 두고서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택배를 하나씩 옮겨 담았지만, 밀려오는 물건의 양이 많아지니 눈을 굴려 송장 번호를 확인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일단 골라내고 보내자는 생각에 작은 물건은 던지다시피 카트에 놓았고, 빨래 건조대 같은 큰 물건은 바닥에 내려놨다. 


컨테이너를 타고 밀려오는 물건을 체크하며 간간이 바닥에 있는 물건을 집어 정리하고 있는데 쌓아둔 물건이 자꾸만 카트에서 떨어졌다. 옆에서 일하던 직원이 “크고 무거운 것을 바깥에 놓고, 가벼운 것들은 그 안쪽에 놓으면 안 쓰러진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당 터미널은 내가 가기 전날에 이미 추석 물량을 다 처리해 놓은 상태라서 일을 하기 수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처럼 내가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량이 밀려들지는 않았다. 비록 눈과 허리가 조금 아프고, 기계 돌아가는 소음으로 약간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그때까진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다.


 
▲ 분류 작업을 했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사진처럼 가벼운 것부터 과일, 생수, 조립가구처럼 무거운 것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내려온다.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 고개를 들어보니 자루 포장된 택배가 컨테이너에 끼인 것 같았다. 몇 사람이 달라붙어 자루를 빼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회사에는 미안하지만, 내심 자루가 오래도록 안 빠지길 바랬다.


그렇게 쉬고 있는데, 작업반장이 나를 불렀다. 따라가 보니 대형화물차의 문이 열려있고 그 앞에는 옷 무덤이 있었다. 몇 사람이 옷 무덤에 있는 옷을 지역별로 분류했다. 나는 바닥에 있는 옷을 접어 카트에 담았다.


예닐곱 사람이 달라붙어 정리하는데도 마치 화수분처럼 트럭에서는 옷이 계속 나왔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씨, 아직도 남았어?” 실수한 작업자를 혼내는 목소리도 들렸다. “야, 그건 옥천으로 가는 거잖아! 똑바로 담아야지!”


옷 분류를 다 하고 나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10시 30분이 되자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처음 분류작업을 할 때 내게 조언을 해준 사람과 함께 밥을 먹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퍼온 밥의 양이 가장 적었다. 나보다 훨씬 마른 사람이 나보다 밥을 훨씬 많이 먹는 것을 보고 사실 놀랐다.(이후 새벽 3시가 지났을 즈음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밥을 먹고 12시 30분에 집합을 하라는 말에 옆 사람에게 원래 두 시간씩 쉬는 것인지 물어보니 고개를 저으며 “어제까지만 해도 14시간, 16시간 일했다”라고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어제 왔으면 큰일 날 뻔했지”, “추석 물량을 처리하는 기간에는 자고 일하고, 자고 일하고만 반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밥을 먹고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서 마신 뒤 터미널 주변을 산책했다. 환한 조명 아래 기계 소음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안에서는 밤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밖을 나오니 한밤중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고, 터미널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12시 30분, 40여 명의 사람이 다시 모였고, 작업반장이 할 일을 정해주었다. 이번에는 상차구역으로 보내졌다. 상차구역에서는 보통 2인 1조로 일했다. 내가 맡은 일은 상차되는 택배가 컨테이너를 타고 내려오면 휴대용 스캐너를 이용해 택배 포장지에 있는 바코드를 찍는 일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오는 것 말고 다른 사람이 카트에 쌓인 택배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러면 카트에서 택배를 꺼내 바코드를 찍는다. 이렇게 바코드를 찍고 택배를 화물차 안쪽으로 택배를 밀어주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차곡차곡 짐을 쌓는다.


내려오는 물건의 종류는 다양했다. 새삼 이 세상의 물건은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피가 커서 무거울 줄 알았는데 가볍거나, 크기는 작지만 무거운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소금, 작은 자루에 비해 대단히 무거워서 놀랐다.


▲ 상차를 기다리는 택배들.


▲ 화물차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 모습. 레일을 따라 택배가 내려온다.


일을 시작하기 전 찾아봤던 후기 대부분에는 직원들의 폭언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히 그 부분에 대해 긴장을 한 채로 일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조에 속한 사람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게 “천천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하더라.


휴대용 스캐너 조작이 미숙한 탓에 두 번 정도 스캐너를 꺼트렸는데, 나를 도와줬던 옆 라인 사람도, 작업반장도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내 옆을 지나가던 한 사람은 스캐너를 조정해주며 “바코드 찍을 때 나는 ‘삑’ 소리가 평소랑 다르면 말해요. 봐줄 테니까”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냥 내가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평소보다 물량이 없어 덜 바쁘고, 덜 예민하기 때문이었을까.


하루를 일하고, 이틀을 쉬는 아르바이트


택배가 미친 듯이 밀려온 것도 아니지만, 설렁설렁 일할 만큼 그 양이 적지도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계속해서 물건이 꾸준히 내려왔고, 나는 바코드를 찍고, 택배를 옮겼다. 화물차에 차곡차곡 쌓이는 상자처럼 몸의 피곤함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새벽 3시쯤엔 배가 고팠고, 4시가 지나고부터는 참을 수 없이 다리와 발이 아프고 허리도 뻐근했다. 땀이 나고 마르고를 반복하는 바람에 샤워 생각이 간절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오는 택배도, 택배가 어지럽게 쌓인 카트도 너무 싫었다.


택배는 계속 나오는데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두 마디씩 오가던 농담도 멈춘 지 오래였다. 서 있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조금이라도 쉴 수 있을 때마다 기댈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았다. 머리 위 택배를 실은 레일만이 쉼 없이 돌아갔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오전 6시, 화물차에 문을 잠그고, 마무리 작업이 30분 정도 더 이어졌다. 오전 6시 30분, 내내 끼고 있던 목장갑을 벗었다. 온몸에서 땀 냄새가 났다. 작업자 리스트에 마지막으로 확인 사인을 하고, 노란 봉투를 받았다.



▲약 12시간을 일하고 받은 일당 8만2000원.


물류단지를 나서니 이미 날은 밝아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도 봤던 해인데, 일을 마치고 나서 보니 새삼 반가웠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그 과정이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심지어 자리도 없었다! 오전 7시 열차였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살짝 떨어져서 서 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오전 7시 40분,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평소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느릿느릿 걸은 탓에 집에 도착하니 정확히 8시였다. 겨우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내리 하루를 자고, 그 다음날까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피로가 덜 풀린 탓에 꼼짝없이 집에서 쉬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택배 기사였다. 택배를 받아들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을 했다. “추석인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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