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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만큼 보이는 동대문 생태계, 연결의 중심에는 누가 있을까?

INNOVATION

by 김편 2016. 10. 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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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날, 동대문의 매개자들을 알았더라면
픽업삼촌부터 MD삼촌까지, 소매상의 불편함을 대행하는 이들
택배업체부터 퀵사까지, 연결의 구심점 ´물류업체´


글. 김정현 기자


Idea in Brief

저녁 11시부터 새벽까지 계속되는 동대문 도매시장의 밤. 이곳에는 매일 수천 명의 인파가 모이며, 하루에도 수백만 건의 물량이 움직이고 전국으로 퍼진다. 동대문의 밤을 거니는 자들. 언뜻 보면 물건을 파는 사람과 구매하는 사람, 즉 도매상과 소매상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동대문의 공급사슬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도매와 소매상을 잇는 ‘매개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각각 다른 형태로 동대문의 공급망을 연결하는 ‘사입삼촌’, ‘물류업체’의 역할을 통해 동대문 공급망의 연결고리를 살펴본다. 


7년 전 기자는 지인 언니가 운영하는 쇼핑몰을 도왔다. 고객은 적었지만, 내가 직접 고른 옷을 고객들이 구매할 때마다 적지 않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동대문 도매시장에는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매주 들어온다. 때문에 기자는 당시 운영하던 쇼핑몰 컨셉에 맞는 단 하나의 옷을 고르기 위해서 만보 이상의 발품을 팔아야 했다.

잠시 그 시절을 추억해본다. 해가 지고 상점에 불이 하나둘씩 켜질 무렵, 기자는 커다란 가방을 들쳐 매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우리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도매상으로부터 샘플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도매상과 쌓은 신뢰가 없기 때문에 선뜻 샘플을 빌려주는 곳이 많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기자는 순전히 ‘감’에 의존해 잘 팔릴 상품을 예측하여 상품을 구매해야 했다. 어느덧 새벽 3시가 훌쩍 넘어간 시간. 기자는 무거운 가방을 끌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쇼핑몰 사입자’로 활동한 기자에게 보였던 것은 ‘상품’이었다. 좋은 상품을 찾기 위해 헤맸고, 때문에 동대문 시장이 어떤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동대문 도매시장에는 물건을 파는 ‘도매상’과 기자와 같이 물건을 사는 ‘소매상’만 존재한다고 알고 있었다.

7년 뒤 기자는 다시 동대문을 찾았다. 동대문의 매개자를 찾기 위한 목적이었다. 도매상과 소매상, 그리고 소매상과 고객 사이에는 다양한 업자들이 연결되어 있다. 하루에도 수백만 건의 물량이 움직이고 전국으로 퍼지는 동대문의 공급사슬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공급망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매개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동대문의 매개자, ‘사입삼촌’과 ‘물류업체’다.

‘픽업삼촌’, ‘샘플삼촌’, 뭐 이리 삼촌이 많은지...

“삼촌써. 안힘들어?” 

거래하던 도매상점 언니가 쇼핑몰 운영 당시 매번 사입한 물건을 가방에 넣어 들고 가는 기자를 보고 한 말이다. 당시 기자는 ‘사입삼촌’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혹여 알았더라도 쇼핑몰 운영을 그저 아르바이트 용돈벌이 정도로 생각했던 우리에게 사입삼촌을 사용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사진= 대봉을 끌고 동대문 도매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수거하는 사입삼촌)

사입삼촌은 ‘의류구매 대행업자’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대부분의 쇼핑몰들은 재고를 구비하지 않고 상품을 판매한다.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결제된 실주문건에 한해서 배송 준비를 하는 방식이다. 재고가 없기 때문에 고객에게 ‘직배송’은 불가능하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사입한 상품을 쇼핑몰로 가지고 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도매시장을 방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 ‘사입삼촌’이다. 특히 이 업무만 담당하는 사입삼촌을 업계에서는 ‘픽업삼촌’이라 부른다.

사입삼촌의 구매대행 프로세스

온라인 쇼핑몰은 당일 운영을 마감하면서 그날 들어온 고객 주문을 정리한다. 정리된 주문 정보는 쇼핑몰이 거래하는 사입삼촌에게 전송된다. 사입삼촌은 쇼핑몰이 전송한 주문장을 토대로 해당 상품을 보유한 동대문 도매상에 미리 상품 준비를 요청한다. 이제 사입삼촌은 저녁 11시 경부터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미리 요청한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온다. 받은 물건은 당일 동대문에서 바로 쇼핑몰로 배송되며, 보통 쇼핑몰 직원들이 근무를 시작하기 전인 아침 7~8시 사이에 물건이 도착한다. 


사입삼촌은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수거해 쇼핑몰까지 배송해주는 업무 외에도 쇼핑몰 사입자를 대신한 샘플 상품의 물류 프로세스를 담당하기도 한다. 쇼핑몰이 주기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고객에게 노출시키기 위해서는 신상품 샘플 확보가 필수적이다. 직접 상품을 구매하기 않고, 고객의 반응을 사전 모니터링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쇼핑몰은 새로운 상품이 시장에 나오면 도매상에 샘플을 요청한다. 쇼핑몰은 해당 샘플을 받아 촬영하고 다시 도매상에 전달한다. 이와 같은 샘플이 오가는 물류 또한 ‘사입삼촌’이 대신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구매대행 업무 외에 샘플배송까지 담당하는 삼촌을 ‘샘플삼촌’이라고도 부른다. 

쇼핑몰 사업자는 샘플삼촌을 이용함으로 물류뿐만 아니라 사입삼촌의 신뢰로 다져진 네트워크 또한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처음 쇼핑몰을 시작할 때나 사업 초창기에는 쇼핑몰과 동대문 도매시장간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가령 “내가 지금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데 샘플 좀 달라”고 도매상에 부탁해도 도매상은 샘플을 주지 않는다. 기자가 7년 전 경험했던 것처럼 도매상은 신생 쇼핑몰 운영자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입삼촌의 경우 수년간 수십 개의 거래처를 매일 돌면서 도매상과 신뢰를 쌓아왔다. 때문에 쇼핑몰 사입자는 사입삼촌을 통해서 도매상과 샘플 거래를 할 수 있다. 결국 쇼핑몰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사입삼촌의 네트워크와 시장 ‘신뢰’를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샘플사입은 쇼핑몰마다 다르지만 초창기 쇼핑몰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대봉(큰 봉지)씩 한 달에 총 4번 거래한다. 그러다가 쇼핑몰 측에서 샘플양이 부족하다 싶으면 샘플을 두 대봉 이상으로 늘리기도 한다. 또한 쇼핑몰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바뀔 경우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샘플로 받길 원하는지 요청할 수 있다. 

(사진= 사입삼촌은 수십개 매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받고 그것을 수기를 통해 수령 확인한다.)  

나아가 쇼핑몰의 MD 역할을 하는 삼촌도 존재한다. 가령 신생 쇼핑몰 사업자가 유명 OO쇼핑몰과 비슷한 패션 스타일로 상품을 확보하고 싶다고 사입삼촌에게 의뢰하면 사입삼촌은 유명 쇼핑몰과 비슷한 느낌의 옷을 판매하는 도매상을 찾아 의뢰 쇼핑몰에 샘플로 보내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상품 사진 촬영까지 대행해주는 사입삼촌들도 존재한다. 매주 나오는 다양한 신상품들의 사진을 찍어 상품의 도매가와 함께 거래 쇼핑몰에게 보내는 방식이다. 그 중 쇼핑몰에서 사입을 원하는 상품의 경우 쇼핑몰 사이트에 사입삼촌이 촬영한 사진을 바로 업로드할 수 있다. 

5년간 동대문 사입삼촌으로 일한 김모씨는 “샘플사입에는 정확히 정해진 금액은 없지만 대략 월 30~100만원선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며 이렇게 가격이 다른 이유에 대해 “퀄리티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가가 싼 업체들은 그 만큼 낮은 퀄리티의 샘플을 제공한며, 쇼핑몰이 원하는 스타일 샘플을 받기 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택배와 퀵사, 소매상까지의 연결고리 

“이건 대구, 이건 부산, 이건 서울이네” 

밤 12시 무렵부터 동대문 도매시장 각 건물 앞에 커다란 사입 가방, 대봉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한다. 사입삼촌들이 각 매장을 오르내리며 수거한 주문 물량들이다. 거대한 산을 이룬 가방과 봉지들은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물량들은 각각 배송 지역에 따라 철저하게 분류된 상태다.

그렇다면 이 많은 화물들은 누가 나르는 것일까. 일부 화물은 사입삼촌이 직접 자차로 소매상까지 배송하기도 한다. 때문에 배송까지 직접하는 사입삼촌에게 다른 사입삼촌들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함께 짐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배송만 담당하는 새로운 주체들이 존재한다. 바로 택배와 화물운송업체다. 

택배업체는 동대문 상품을 수거 후 업체 물류터미널에서 취합한 뒤 전국 트럭기사들을 통해 최종 배송지로 보내는 허브앤스포크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동대문 도매시장에는 CJ대한통운, 우체국, 로젠택배가 택배 물류 서비스를 제공한다. 동대문 도매시장에는 각 업체들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으며, 전국 당일배송을 목표로 한다.
(사진= 동대문내 CJ대한통운 당일택배 부스)

택배업체 관계자들은 동대문 도매시장 각 건물에 입점했다. 택배업체 담당자들은 밤 12시 전에 매장을 돌면서 그날 물량을 각 택배업체 부스로 집하한다. 동대문 도매시장에 위치한 CJ대한통운 영업소 관계자는 “동대문 도매시장의 물류는 주로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가 피크시간”이라며 “이는 새벽 1시부터 2시 사이 지방권역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택배차량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우 8시에 한 번 더 화물이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동대문 도매시장의 물류 담당자는 소형 화물업체인 ‘퀵사’들이다. 동대문 도매시장 곳곳에서 1톤 탑차, 다마스 등 사륜차부터 이륜차까지 소형 물류차량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사입삼촌’과 계약한다. 

화물차를 이용하는 경우 주로 1톤 탑차로 운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수 쇼핑몰의 물량을 처리하는 사입삼촌의 경우 하루에 나오는 물량은 상당하다. 때문에 택배로 보내는 것보다 아예 화물차를 불러 배송하는 것이 이득인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물량이 적은 사입삼촌이라도 다른 사입삼촌과 협업을 통해 함께 화물을 실어 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삼촌이 대전행 화물차를 불렀을 경우 B삼촌은 A삼촌에게 10~20만원 등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함께 물량을 싣는 방식이다.

(사진= 동대문 소형화물차. 영업용 노란 번호판이 아닌 자가용 번호판 운행이 빈번한 것은 현행 제도로 제한된 화물차 공급이 늘어나는 생활물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동대문에서는 소형화물차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로 대변되는 이륜차 물류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퀵서비스는 일반화물에 비해 단가가 비싸다는 것이 업계의 공론이다. 퀵서비스 단가는 서울내 운송 기준으로 9~10km의 경우 약 9000원~11000원 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입삼촌들은 퀵서비스 업체와 계약을 통해 월정액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그 비용은 물량에 따라 다소 차이가 존재하지만 대략 건당 5000~7000원 선에 형성돼 있다. 시중에 형성된 가격보다는 낮지만 화물차를 활용하는 물류 단가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가격이다. 

(사진= 동대문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배송용 오토바이. 오토바이는 주로 사륜차에 싣지못한 누락된 화물운송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높은 단가에도 불구하고 동대문 물류에서 퀵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사입삼촌은 쇼핑몰로부터 주문을 받아 수십 개의 도매시장을 돌며 물건을 수거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분명 프로세스상 허점이 나타난다. 사입삼촌이 동대문을 돌면서 빠뜨린 매장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매장에서 미처 물건을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공장에서 제때 물건이 입고되지 않는다면 물건 준비는 자연히 지연될 수 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퀵서비스다. 퀵서비스 업체들은 이렇게 누락된 물건들을 매장에서 받아 소매상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오래전 그날이 다시 찾아온다면

동대문의 밤. 밤길을 거니는 쇼핑몰 사입자와 물건을 판매하는 도매상들로 분주하다. 소매상과 도매상은 마치 동대문 생태계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실상 그들만으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매상의 물건을 수거하고, 쇼핑몰까지 재차 배송하는 누군가로 인해 동대문의 공급망은 완성된다.

과거 기자가 지인과 함께 운영했던 쇼핑몰은 오래가지 못해 문을 닫았다. 주문이 조금씩 증가하면서 언니와 기자 둘이서 쇼핑몰을 감당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고객주문 누락이 늘었고, 재고 부족으로 고객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물류직원이 없었기에 번갈아 우체국에 가는 일도 일상다반사였다.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는 쇼핑몰 운영과 학업 병행의 어려움을 깨달았다. 쇼핑몰은 3개월만에 20대의 짧은 경험만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취재를 목적으로 다시 찾은 동대문. 기자는 동대문 도매상, 사입삼촌, 쇼핑몰 운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동대문 도매시장의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기자가 쇼핑몰을 운영했던 7년 전 동대문 공급망을 완성하는 이런 구조들을 이해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동대문 도매시장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자들이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때문에 사실 처음 동대문에서 사입을 통해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기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사업 초창기 쇼핑몰 사업자의 경우 여러 문제점에 직면할 것이다.

과거 온라인 쇼핑몰 운영 경험을 거쳐 현재 동대문 사입삼촌으로 일하는 김씨는 “쇼핑몰 창업을 준비하거나, 창업한지 얼마 안되는 사업자라면 당연히 도매시장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면 처음 거래하는 매장 언니에게, 혹은 지나다니는 사입삼촌(큰 대봉을 들고 근육이 우락부락하면 100% 사입삼촌이다)에게 물어봐라. 기가 쎄보여 질문하는 것이 꺼려질 수 있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물어보는 사람에게 도움주지 않을 사람들은 아니다. 물어보고 도움을 청해라.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동대문 도매시장”이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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