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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의 스타트업명강] 정말 창업아이템이 중요한 건가요?

INSIGHT

by 김편 2016. 10. 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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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부터 이펙추에이션까지,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결론을 찾는 방법
린스타트업에 있어 중요한 것, 아이템보다 사람



※ 위 이미지는 본 기고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글. 김도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Idea in Brief

스타트업 성공에 있어 ‘창업아이템’, 즉 제품과 서비스가 정말 중요한 요소일까. 질문을 바꿔서 시작시점부터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어떤 창업아이템이 성공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스타트업이 어차피 사업모델을 수없이 바꾸게 될 것이라면, 변하는 것이 당연한 사업모델보다 변하지 않을 사람을 믿는 것이 맞는 일이다. 급조된 공약 대신, 후보자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은 투표방식인 것처럼 말이다. 성공한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사업모델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도 ‘창업아이템’보다 ‘사람’을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작은 일에 집착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름에 대한 집착이 좀 있어서 교과목명이나 프로젝트 이름 같은 것을 정할 때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다고 꼭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스타트업에 관한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면서 제 마음에 늘 거치적거리는 말이 ‘창업아이템’이라는 것입니다. 창업아이템 사업화라든가 창업아이템 경진대회와 같이 아주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이 말에는 창업에 성공하려면 창업시작 시점에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선택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불편합니다.

사업성공에 제품과 서비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품과 서비스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연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성공을 가져다 줄 지 창업 혹은 창업 전 단계에서 미리 척 알아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걸 알아낸다 해도 이 기업이 결국 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말장난 같아 보이실지 모르지만, 스타트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두고 최근 십수년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전통적인 경영학 이론은 기업들에게 조사와 분석을 강조합니다. 다양하고도 철저한 시장조사와 경쟁자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나름의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내부적인 역량을 파악하여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경로를 설계하라는 것이지요. 1980년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의 경영전략이론들은 이런 과정을 엄청나게 깊고 정교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자신들이 들어갈 시장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시작시점에서 자원을 제대로 갖추고 시작하는 경우란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스타트업은 그 자신이 가진 것들을 이리저리 결합하여,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문제풀이 방법을 만들고자 애쓰곤 합니다.

프랑스의 탁월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라는 책에서, 문명세계의 엔지니어링과 구분되는 원주민들의 작업방식을 두고 ‘브리콜라주(Bricolage)’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 자원을 총동원하는 엔지니어링과 달리 원주민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결합하여 활용하는 임기응변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가진 것이 부족하니까요. 그러나 때로는 그 과정에서 꽤 괜찮은 도구를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그 도구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기도 합니다.

최근 학자들은 스타트업의 활동을 설명하면서 바로 이 브리콜라주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 최적의 방안을 찾기에는 자원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스타트업들은 부족한 자원을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하고자 시도한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 생각했던 문제와 다른 문제들을 풀어내기도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입니다.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이펙츄에이션(Effectuation)이라는 개념입니다. 2001년 버지니아 대학의 사라스배시 교수가 처음 도입한 이 이론에 따르면, 창업자들은 창업을 목표로 한 활동과정을 겪고 나서야 진짜 사업영역을 결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전통적인 경영학의 설명에 따르면 유동인구의 분석, 입지분석, 경쟁레스토랑의 동향분석과 같은 환경 분석과 조달가능한 자금의 검토 등을 통해 레스토랑의 종류, 입지, 메뉴 등을 결정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러나 이펙츄에이션을 믿는 학자들은, 창업자들이 실제로는 레스토랑을 경영해본 사람들에게 묻고, 동창 중에 요리사가 있는지 확인해서 만나보고, 맛집 블로그를 운용하는 친구에게 상담해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업의 모양을 만들어나가게 된다고 봅니다. 어쩌면 이 창업자는 레스토랑을 차리는 대신 식자재 도매상이나 배달 전문업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들 이론들은 지금 전 세계의 학자들이 달려들어 그 이론의 가치와 실제 적용가능성을 검증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론적인 검증이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사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성공한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사업모델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타트업이 어차피 사업모델을 수없이 바꾸게 될 것이라면, 변하는 것이 당연한 사업모델보다 변하지 않을 사람을 믿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급조된 공약 대신, 후보자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은 투표방식인 것과도 비슷합니다.(우리사회는 이 부분에서 자주 실수를 반복해왔습니다만)

그래서 저는 쓸데없이 생각해 봅니다. ‘창업아이템 경진대회’보다 ‘창업자 경진대회’가, ‘창업아이템 사업화 지원’보다 ‘창업자 실행지원’이라고 쓰면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어떤 이름이 가장 적절한 것일까? 별것도 아닌 일에 또 집착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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