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산업 유통단계 축소, DTC가 뭐길래
- 품질의 기본 '좋은 원단', 어떻게 소싱할 것인가
-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그라나의 옴니채널
글. 김정현 기자
원단이 옷이 되어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칠까. 보통 우리가 소비하는 옷들의 제조부터 최종 소비자까지 전달되는 공급사슬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먼저 원단 및 원부자재 등을 제조하는 업체가 생산 공장으로 납품한다. 의류업체나 중간상은 그렇게 전달 받은 원·부자재로 기획 및 생산을 한다. 그 후 여러 유통채널을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사용할 수 있는 유통채널 또한 도매점, 소매점, 전문점, 백화점, 대리점, 할인매장 등 다양하다.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스타트업 그라나(Grana)는 여러 단계로 구성된 패션산업의 유통단계를 간소화 시키고자 한다. 그라나는 의류 제조 공정후 물류센터를 거쳐 바로 고객에게 배송하는 DTC(Direct-to-consumer: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 전략을 추구한다. 유통채널이 줄어듦으로써 얻어지는 부가 수익을 통해 의류의 본질인 ‘품질’에 집중한다는 것이 그라나의 설명이다.
그라나를 창업한 루크 그라나(Luke Grana) 대표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옷이 ‘브랜드’로 포장되어 그 가격이 원가 대비 수십 배를 훌쩍 뛰어 넘는 소비자 가격으로 바뀌는 의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자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비싸서 좋은 옷이 아닌 합리적인 가격으로 충분히 명품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 루크 그라나(Luke Grana) 그라나 대표
좋은 품질을 찾아 떠나는 여행
루크 대표는 지난 2012년 페루에서 그라나(Grana)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페루 시장에서 흔히 판매되는 ‘피마 면’을 접했고, 그 소재가 시중에 유통되는 ‘고가의 면’보다 부드러우면서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브랜드 업체들이 왜 낮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옷을 판매하지 못할까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창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사진= 그라나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된 페루 ‘피마 면’ 이야기. 원재료에서 원단으로 제작되기까지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2013년, 그는 패션 산업에서 소비자 구매 습관, 유통 생태계, 물류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패션 공급사슬 속에서 어떤 요소가 가격을 인상시키는지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루크 대표는 가격 인상의 원인을 제조업과 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상’들에서 찾았다. 그리고 2014년 10월, 루크 대표는 도·소매 판매자와 같은 중간상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DTC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그라나(Grana)의 시작이다.
양질의 옷은 좋은 원단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그라나의 철학이다. 때문에 루크 대표는 최상의 원단을 찾기 위해 세계를 전전했다. 현재 그라나는 페루의 ‘피마 면’ 외에도 7개 국가에서 생산된 원단으로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중국의 ‘실크’와 ‘면능직’, 일본의 ‘데님’과 ‘샴브레이’, 프랑스의 ‘포플린’, 아일랜드의 ‘리넨’, 몽골 ‘캐시미어’, 이탈리아의 ‘메리노’와 ‘경편 직물’ 등 총 10가지 원단이 그것이다.
그라나의 공급망, 더 싸게 더 좋게
그라나는 군더더기 없는 공급사슬을 통해 좋은 품질의 의류를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간결한 비즈니스를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의류 업계는 제조 단가에 비해 8~10배 인상된 가격으로 소비자가를 책정한다. 반면 그라나는 2~3배 인상된 70% 이상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그라나는 어떻게 다른 브랜드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상품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루크 대표는 그 이유를 공급망에서 찾았다. 그라나는 품질관리와 브랜드에 부합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원단 작업부터 최종제품을 모두 직접 디자인한다. 먼저 그라나는 직접 관리하는 직물 제조 공장에 상품 생산을 의뢰한다. 그라나는 자체 제조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품질 높은 제품을 생산해온 제조사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라나는 상품 생산의 전 과정에서 자체적인 기준을 두고 있어, 이 기준에 부합하는 제조사만 그라나와 협업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생산된 옷들은 세계 각지 생산 거점에서 그라나의 물류 허브인 홍콩 물류센터에 입고된다. 홍콩 웡축행(Wong Chuk Hang)에 위치한 그라나 중앙 물류센터의 규모는 약 1만 8000 제곱피트(약 500평)다. 물류센터에 입고된 상품들은 그라나 자체 품질검사 기준에 따라 검수과정을 거치고 출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품의 소비자 가격이 책정되는데 공급가 대비 2~3배 인상된 가격으로 판매된다는 것이 그라나의 설명이다.
▲ 홍콩에 위치한 그라나 중앙물류센터 내부(사진제공= 그라나)
그라나는 물류, 특히 항공 운송의 요충지인 홍콩에 물류센터를 확보했다. 신속한 국제 배송을 위해서다. 만약 고객이 아침에 상품을 주문한다면 그 상품은 당일 오후 홍콩을 떠나는 비행기에 실린다. 그러면 고객은 빠르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늦어도 이틀 안에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라나의 설명이다. 현재 그라나는 12개 국가(호주, 벨기에, 프랑스, 독일, 홍콩, 이탈리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싱가포르, 스페인, 미국, 영국)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라나의 모든 물류는 DHL익스프레스가 담당하고 있다.
예를 들어 페루에서 생산된 ‘피마 면’ 티셔츠는 장당 7.5달러에 공급되고 15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복잡한 중간 유통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에 유통 마진이 제외된 공급가의 2배 가격에 판매될 수 있는 것이다. 그라나에 따르면 공정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린(Lean)하게 움직이기 위해 공장에서 물류센터에 적시 입고되는 타이밍이 생명이다.
최근 그라나는 제조 공장에서 생긴 문제로 인해 물류센터로 입고되는 상품 물류가 지연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여름 막바지에 들어와야 될 주문 건들의 입고가 늦어진 것이다. 다행히 상품이 입고되자마자 빠르게 판매되어 원래 목표했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자칫하면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루크 대표는 “돌발 상황으로 인한 배송 지연은 실제 예측했던 매출과 마케팅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며 “철저한 공급망 관리가 중요한 이유”라고 언급했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세계 의류시장에는 그라나처럼 기본(Basic) 티셔츠, 청바지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만 수천 개가 넘는다. 그라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양질의 상품을 판매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유니클로와 많이 비교된다. 하지만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유니클로와 차별화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라나는 온라인 채널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많은 고객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이 데이터들을 활용하여 고객이 웹사이트에 접속해 어떤 경로로 상품을 찾고 실 구매까지 이어지는지를 파악하는 등의 인사이트를 얻는다는 설명이다.
그라나는 지난해부터 온라인에서 사업 영역을 넓혀 오프라인으로 진출했다. 동시에 핵심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O2O(online-to-offline: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현상) 서비스 제공을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라나는 현재 여러 국가에 오프라인 거점인 ‘더피팅룸(The fitting Room: TFR)’과 ‘팝업(Pop-up) 스토어’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그라나 전체 매출 중 20%는 이 오프라인 거점에서 나오고 있다.
그라나는 오프라인 소비자들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쇼룸(Show Room) 방식으로 오프라인 거점을 늘리고 있다. 소비자는 매장을 방문해 원단을 직접 만져보고,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 및 스타일을 찾는 등 그라나의 상품 및 서비스를 체험해본 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
▲ 그라나 오프라인 매장
오프라인을 방문한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모바일 혹은 매장 안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 그라나 계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로써 그라나는 해당 고객의 첫 거래 데이터를 거점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오프라인 고객을 온라인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라나의 O2O전략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높은 기여를 했으며 많은 고객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왔다는 설명이다.
그라나는 궁극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즈니스를 목표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유통채널 모두에서 영향력을 지님으로써 오프라인 고객을 온라인으로, 혹은 그 반대의 경우로 전환되는 채널간 전환율을 높이고자 한다.
알리바바의 투자, 그리고 미래
현재까지 그라나가 유치한 누적 투자 규모는 1천 6백만 달러이다. 그라나는 올해 10월에 시드펀딩으로 6백만 달러를 유치했으며 최근에 1천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를 달성했다. 이번 투자는 알리바바 홍콩창업자펀드(Entrepreneurs Fund)를 중심으로 골든게이트벤처스(Golden Gate Ventures)와 마인드웍스벤처스(MindWorks Ventures)가 참여했다.
그라나는 투자금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그라나는 현재 투자를 지원한 알리바바 홍콩창업자펀드와 함께 그라나의 해외진출 전략(Go-to market plan)을 수립하고 있다. 그라나는 1차적으로 상품 카테고리를 넓힐 예정이며 카테고리 내에서 지속적으로 생산할 고정라인 콜렉션을 만들 계획이다.
또한 그라나가 현재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12개 지역 중 핵심 국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오프라인 거점을 늘려갈 예정이다. 미국 지역에는 사업 확장 계획을 수립하는 전담 팀을 구성했다. 이렇게 사업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내년까지 홍콩 직원을 100명(현재 50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창업 이래로 그라나는 매월 평균 성장률 15%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객 재구매율 또한 50%로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4년 1개의 원단 생산지, 3명의 맴버, 500제곱피트(14평)의 물류센터에서 시작한 소호몰 그라나는 현재 50명의 열정적인 팀원, 10개의 원단처, 1만 8000제곱피트 물류센터를 보유한 회사로 성장했다.
루크 대표는 “그라나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그라나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그라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급사슬관리로 거품 없는 양질의 패션을 전 세계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 강조했다.
[차이나 리포트] 중국 요식업계, B2C 아닌 B2B 성장동력으로 (0) | 2016.12.24 |
---|---|
두 차례의 엑싯, 그라나 루크 대표가 전하는 창업성공의 길 (0) | 2016.12.22 |
[대한민국 물류스타트업백서] 100만콜 돌파한 배달대행, B2B로 드라이브 (0) | 2016.12.20 |
병원물류의 대안 GPO, 대세가 될 수 있을까 (1) | 2016.12.14 |
[천동암의 물류에세이] 물류업체 입찰, 절대적 수요예측은 없다 (0) | 2016.12.1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