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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암의 물류에세이]'내부자들'의 영역으로

INNOVATION

by 김편 2017. 5. 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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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동암 교수


물류부장 오달수 중국에 가다⑮


‘똑똑’ 누군가 오달수 부장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중국 공장 운송물류부서 차장인 바바라 짱이었다. 그녀의 오뚝한 콧날은 무엇인가에 억눌려 윤기를 잃었고, 큰 눈망울에는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평상시 생글거리던 그녀가 아니었다. 회색빛 근심이 그녀의 생기발랄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스캔하듯 바라보던 오 부장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러운데…이번 조달물류업체 입찰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난통 공장에 유리를 납품하는 업체 중에 ‘강서유리’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강서유리는 저의 공장의 전체 유리자재 중 35%가량을 도맡아 납품하고 있습니다. 이 강서유리의 물류를 대행하는 업체가 ‘해강물류’입니다. 그런데 조달물류비를 산정하기 위해 실사를 하다가 해강물류의 운송비가 통상적인 가격보다 20% 정도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내막을 살펴보니 해강물류의 2대 주주가 난통공장에서 근무하는 ‘맥스 구’ 부장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맥스 구 부장은 현재 난통공장의 구매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물론 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맥스 구 부장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통합 조달물류 입찰업체에 해강물류를 후보에 포함시키라고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어 아주 난감한 상황입니다.”

 

바바라 차장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오 부장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랐고 커피잔을 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바바라 짱 차장은 중국 공장에서 국제운송과 중국 내수운송을 담당하는 부서장인데, 그녀의 직속상관이 바로 ‘맥스 구’ 부장이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 부장에게 비밀스러운 사실을 털어 놓은 것이었다.

 

바바라 차장은 난통공장 상하이 사무실에 구매 인력으로 채용됐다가, 상하이 사무실이 폐쇄되면서 난통공장으로 오게 되었다. 상하이 사무실에서 구매팀을 맡으며 바바라 짱의 채용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바로 맥스 구 부장이었다. 바바라 차장과 맥스 구 부장의 인연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그녀가 같은 부서에서 한솥밥을 먹던 직원을 내부 고발한 것이다. 오 부장은 바바라 짱이 한편으로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용기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부 고발’이라는 사건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 오 부장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바바라 차장이 내부 고발을 하긴 했지만, 이만조 공장장에게 이 이야기를 시급하게 털어 놓아서 문제를 확대할 수는 없었다. 부적절한 내용이 사실인지, 그리고 난통공장의 다른 직원들이 연루되진 않았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선 오 부장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성 전무에게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내부 보고했다. 성 전무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오 부장, 고생하고 있네. 우선 사실 확인(Facts Finding)을 정확히 하는 것이 필요해. 지금 오 부장이 파악 할 수 있는 부분을 조용히 파악해서 보고해. 내가 사장님에게 본 건을 얘기하고 의논을 할 게. 오 부장이 준 내용을 바탕으로 난통공장에 별도의 감사팀을 보낼 생각이야.’

 

시나브로 어둠이 물러나고, 새벽에 내려앉은 물안개가 바다 수면 위로 바다비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 위에 앉아 굵은 낚시 야광찌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오 부장은 갑자기 몰려온 피곤에 머리가 아팠다. 그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조그만 섬들이 산봉우리처럼 굴곡을 드러내고 있었다. 섬 산봉우리는 어린 시절 엄마의 젖무덤처럼 오달수의 가슴에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한눈을 파는 사이 낚싯대가 순식간에 ‘쉭~익’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앗! 대물이다.’ 오 부장은 민첩하게 낚싯대와 팽팽하게 연결된 낚싯줄을 잡아 당겼다. 낚싯대는 활처럼 휘어졌다 그는 한참 동안 낚싯대를 들고 대물과 힘겨루기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놈의 힘이 빠졌는지 낚싯대가 점차 풀어졌다.

 

‘이 놈! 얼굴 좀 보자.’ 낚싯대 끝을 배꼽에 갖다 대고 차츰 끌어당기자, 누런 민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기가 1미터에 가까운 대물 민어였다. 놈은 물속에서 몸을 반쯤 내 보이더니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낚싯대로 그 놈을 걷어 올려 땅에 내려놓는 순간 낚싯대가 ‘우지~직’소리를 내며 부러져버렸다. 대물 잉어는 잠시 배 바닥에 떨어져 요동치다가 이내 배 난간에 부딪쳐 팔딱거렸다.

 

오달수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수건으로 큰 민어를 감싸 안았다. 부드러운 촉감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 촉감을 느끼며 오 부장은 몸을 뒤척였다. 꿈이었다. 오 부장은 꿈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한참동안 멍하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민어 잡은 꿈’의 해몽을 찾아보았다. ‘신분(지위, 직장)이 상승, 혹은 경영하는 사업 등이 귀인들이 협력을 얻어 번성, 발전하며 재물과 권리가 늘어나는 길몽.’

 

어제 성 전무에게 중국 내부 고발내용을 보낸 뒤 바로 격려 메일이 왔을 때부터 오 부장은 사실 조금 들떠있었다. 그런데 ‘민어 꿈’까지 꾸고 나니 오 부장의 기분은 더 좋아졌다.

 

중국법인 TF 사무실에 앉아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마침 이만조 중국 공장장이 오 부장을 찾아왔다. 그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얼굴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오 부장님, 정말 서운합니다. 내부 고발 내용이 있으면 성 전무에게 보고하기 전에 먼저 저에게 관련 내용에 대해 상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 공장장님, 관련 내용이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사안이라 성 전무에게 우선 보고를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본 건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한 뒤 판단해야 할 사안 같습니다. 공장장님은 사실을 파악할 때까지 협조 부탁드립니다.”

 

전말은 이러했다. 어제 성 전무는 중국공장 조달물류 내부 고발 내용을 바로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은 이만조 중국 공장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부 고발 건에 대해 별도의 감사팀을 파견해 조사할 것이고, 조달물류 프로젝트는 오 부장이 전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장은 ‘오달수 부장이 중국 공장 조달물류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프로젝트화하여 실행할 수 있도록 공장장은 적극 협조하라’는 특별 지시까지 내렸다. 오 부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민어 잡은 꿈의 효과가 정말 있는 것 같았다.

 

며칠 뒤 오 부장이 임시 사용하고 있는 회의실 겸 사무실에 4명의 본사 직원이 찾아왔다. 본사 구매부서에 일하고 있는 김기혁 과장, 그룹 감사팀의 이기대 부장, 조용구 과장, 그리고 임예리 대리였다. 성 전무가 중국 공장의 조달물류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서둘러 감사팀을 구성해 파견한 것이었다.

 

오 부장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성 전무와 처음 통화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중국 공장 조달물류의 개괄적인 내용만 파악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 입장에서 내부 고발은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오 부장에게 이번 사건은 자신의 성과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오 부장은 물류 TF 사무실에 한국에서 파견된 구매 전문 인력이 합류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성 전무에게 최대한 어필할 수 있다는 생각, 당분간 회사에서 생존하는 일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상념들이 오 부장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 부장은 물류 TF 인력, 감사팀과 함께 장시간 논의한 끝에 해야할 일들을 정리했다.

공장에서 해야 할 일▲ 오 부장이 함께 정리한 물류TF 및 감사팀 체크리스트
 

TF 인력과 감사팀은 6가지 과제를 정리하고 일정과 담당자를 정했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이 붉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난통 하늘의 붉은 석양이 벗갠 하늘 속에 아양스레 고개를 내밀자 오달수 부장은 아내와 새끼들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벌써 난통에 출장 온 지도 8주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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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와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천가박가>, 소설로 <아버지의 유산>,<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현재는 물류와 문학을 접목시키고자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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