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이동부터 사회적 이동을 포함하는 모빌리티
이동의 누적이 만든 네트워크, 핵심은 ‘공간의 인간화’
Idea in Brief
‘모빌리티’라고 하면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지나다니고, 드론이 물건을 배송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모빌리티는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의 발전을 너머 ‘이동’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가치까지 포함한다. 실제로 기업들이 갖고 있던 기존 가치 역시 이종산업을 넘나들며 이동하는 모습이다. 물건이 흐르고, 돈이 흐르고, 정보가 흐르고, 사람이 흐르는 ‘생태계’ 속에서 모빌리티가 재정립하는 산업의 변곡점을 들여다본다.
모빌리티, 그 이상의 가치
퍼스널 모빌리티부터 스마트 모빌리티까지. 최근 교통·물류업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모빌리티(Mobility)’다. 앞서 모빌리티가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모두 어렴풋이 ‘이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조금은 새삼스럽다. 교통·물류는 이미 이동이라는 행위를 내포하는데, ‘이동’이라는 개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왜일까.
모빌리티(Mobility)는 사전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사회적) 유동성, 둘째는 이동성, 기동성이다. 즉, 모빌리티는 물리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사회 계층 간의 수직적인 이동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살펴보자. 80~9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999>를 기억하는가. 서기 2221년, 교통의 발달로 지구에서 우주로 가는 ‘은하철도’가 운행되는 시대를 맞이한다. 주인공 ‘철이’는 미래도시 메갈로폴리스에 사는 소년이다. 메갈로폴리스의 시민이 되기 위해선 신체를 기계로 개조한 ‘기계인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철이는 가난한 ‘보통 인간’으로 메갈로폴리스의 빈민촌에서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철이의 어머니가 기계백작 무리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철이는 어머니를 죽인 기계인간을 찾아 죽이고,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금발의 미녀 메텔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그녀에게 은하철도의 승차권을 얻어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시작한다.
▲ 은하철도999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한국에서는 1981년, 1996년 MBC에서 방영됐다.
앞서 살펴봤던 모빌리티의 사전적 정의를 <은하철도999>에 대입해보면, 만화영화 내에서 모빌리티는 은하철도 ‘999호’가 된다. 철이는 기계몸을 갖기 위해 열차에 몸을 실었다. 999호는 철이에게 단순히 ‘안드로메다’로 간다는 물리적인 이동 경험을 넘어 사회적 신분 상승이라는 기회를 제공한다.
철이 외에 열차에 탑승한 모든 이들에게도 999호는 서로 다른 모빌리티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메텔은 기계행성까지 철이를 데리고 가 철이의 영혼을 제국의 부품으로 만들기 위해 열차에 올랐다. 그녀의 임무는 철이를 기계행성까지 데려가는 것이다. 안전한 배송(?)을 위해 메텔은 때로는 어머니(보호자), 때로는 연인(동반자)과 같은 모습으로 철이와 함께 여행한다.
한편, 차장은 돈을 벌어 첫사랑과 결혼하기 위해서 열차에서 일을 하는 남자다.(비록 투명인간이지만 남자라는 설정이다.) 따라서 그의 목표는 999호가 안전하게 운행을 마치도록 관리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철도 관련 업무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999호에 탄 인물들은 각자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같은 상황을 맞닥뜨렸음에 불구하고 다른 행동을 한다.
민정웅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거리와 공간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 ‘이동’이라면, 모빌리티는 이동이 만드는 공간 자체가 인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민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도구로써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된 공간은 인간화된 특징을 갖는다. 즉, 모빌리티의 핵심은 ‘공간의 인간화(化)’에 있다. 인간의 활동이 만든 우연의 누적, 그 누적이 만든 새로운 네트워크,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까지 모두 모빌리티에 속한다.
모두에게 다른 ‘모빌리티’
민 교수는 모빌리티가 강조하는 메시지 중 하나로 ‘목적지에 부여된 의미가 달라지면, 그 공간 속에서 해야 하는 일들 역시 달라진다’는 것을 꼽았다.
가령 야구장과 미식축구장을 떠올려 보자. 야구장과 미식축구장은 모두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화된 공간이다. 두 공간에서 사람이 해야할 일은 이기는 것이고, 이기기 위해선 ‘점수를 내는’ 행위가 일어나야 한다. 야구장에서 점수를 내기 위해서 타자는 나의 집인 홈(Home)을 나선 뒤 다시 홈으로 돌아와야 한다. 반면 미식축구장에선 나의 집에서 나와 상대방의 집인 엔드존(End Zone)에 들어가야 점수를 낼 수 있다.
따라서 두 공간에서 나타나는 이동(모빌리티)의 양상 역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야구에서 선수의 움직임은 ‘선’으로 나타난다. 한 번 출루하면 뒤로 돌아올 수 없다. 1루, 2루, 3루를 잇는 선을 따라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이와 달리 미식축구 선수의 움직임은 ‘면’의 형태와 같다. 좌우로 움직이고, 심지어 경기가 시작하면 잠시 후진한 뒤 다시 앞으로 가기도 한다.
이는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동’을 다루는 기업들에게 모빌리티는 서로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기업들이 해석하는 ‘이동’, 그리고 그 안에서 창출되는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4월 18일, ‘We go, Mobility(소유에서 공유로)’를 주제로 진행된 국내 최대 공급망물류 컨퍼런스 ‘로지스타서밋2018’에 참가한 물류·유통·IT 전문가들의 강연을 중심으로 이동의 맥락을 해석해본다.
1. 철이와 메텔의 동상이몽? 모빌리티가 뭐길래
2. 3色 모빌리티, 같지만 다른 이동의 가치
3. 커밍 순!
4. 커밍 순! 커밍 순!
5. 커밍 순! 커밍 순! 커밍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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