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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의 몰락 “우리는 왜 히틀러 시대에 머물러 있는가”

INNOVATION

by 김편 2018. 7. 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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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공급망, 전장(戰場)의 SCM③

미판매 재고 가치 40억 달러 이상, H&M 부진의 이유는 SCM?

H&M의 저단가 기반 재고장사 힘 잃어... 민첩한 공급망 주목

말로만 파트너십의 시대, 민첩하기 위해선 프로세스 혁신부터


글. 박승범 SCM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H&M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십여년 동안 글로벌 우수 SCM 사례로 꼽혀왔던 이 기업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파트너십의 시대라고 한다. 과거 사람을 갈아 넣으면 성과가 나타나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더 높은 수준의 기술, 더 유려한 협력이 요구된다. 우리가 SCM 모범사례로 배웠던 토요타의 JIT(Just In Time)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기억해보자. 그런데 말이다. 정말 우리는 ‘파트너십’을 추구하고 있을까. 아직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1920년대 광기의 시대에 머물러있지는 않을까. H&M의 몰락이 남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않는다.

 

2018년 3월 27일. H&M의 모기업 헤네스앤모리츠(Hennes&Mauritz)는 과거 16년간 최악의 영업이익률, 재고 증가, 매출 부진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2005년 이후 최악의 주가 하락(6.8%)을 기록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H&M이 판매하지 못한 재고의 가치는 4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H&M이 지난 십여년 동안 전 세계 물류와 SCM 공부에서 절대 빠질 수 없었던 우수 기업 사례로 꼽혀왔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충격적인 사건이다.

 

H&M은 자라(ZARA, 운영사: 인디텍스), 유니클로(UNIQLO)와 같은 패스트패션 기업들과 함께 서로 다른 SCM 전략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자라는 디자인부터 매장 전시까지 프로세스 속도를 극대화했다. 즉 유행을 예측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행이 감지되는 대로 바로 만들어 파는 것이 자라의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라는 공급업체를 가까운 거리에 두었고, 타 업체에 비해 비교적 품질 우선으로 납품단가를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H&M과 유니클로는 비교적 유사한 형태의 공급망을 운영했다. 말은 패스트 패션이지만 실상은 재고 장사였다. 공급업체에 대해서 살인적인 단가관리를 했고, 이렇게 해서 싸게 확보한 재고를 시즌 동안 집중적으로 팔아치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H&M의 경우 매장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를 통한 소비자의 구매욕구 증대가 중요한 역량이었다. 유니클로는 유행을 타지 않는 생필품 수준의 제품 구색과 언제 매장에 가도 파격적 가격할인 아이템이 매력이었다는 게 두 업체의 차이라 볼 수 있겠다.

 

H&M의 몰락의 이면

 

그런데 유니클로가 아닌, H&M의 실적만 유독 하락했다. 재고 장사를 잘 하려면 소비자가 많이 사줘야 하는데, 아무리 가격을 할인해도 소비자가 안 사주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H&M의 재고가 40억 달러 규모에 달하게 되면서 70% 가까운 세일을 이어가고 있으나, 2018년 봄 할로윈데이 의상을 사줄 사람이 누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었다. 이 상황에서 경영진은 더욱 더 공격적인 할인 판매를 하겠다던가.

 

물론 유니클로도 요즘 그렇게 실적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시작부터 패션보다는 생필품으로 접근했다. 유행을 타지 않는 기능성 의류와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공식적이고도 파격적인 할인 판매는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유니클로는 최근 자라식 ‘프로세스 속도 극대화’ 전략으로 선회한다고 발표했다.

 

자라, 유니클로, H&M의 SCM 전략을 보고 있으면 공급업체의 희생을 통한 낮은 단가 기반의 재고장사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반대로 공급업체와의 공고한 파트너십을 통한 민첩한 공급망이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H&M의 공급망 리드타임은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의 거의 두 배였다.

 

미쳐있던 우리의 과거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의 서양사 지식을 높여주는 데 기여한 이원복 전 덕성여대 총장의 <먼나라 이웃나라> 초판본 도이칠란트 2권을 읽어 보면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33년부터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는 1945년까지는 전 세계가 사실상 미쳐 있었다고 말이다. 법보다 총칼이 앞서고, 내가 잘 살기 위해 남을 탄압하고 죽이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고 말이다. MBC의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시기를 다룬 내용을 보면 은근히 선진국도 지금의 우리만큼이나 정신이 덜 깨어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우리의 흑역사인 일제 강점기를 보통 역사교육에서는 세 단계로 나눈다. 1910년대를 무단 통치기, 3.1 운동 후 세계경제 공황기까지를 문화 통치기라 부르며, 그 이후 해방까지를 민족 말살기라고 부른다. 세계가 미쳐 있던 그 시기. 우리도 극악의 민족 말살기를 보냈다.

 

파트너십 시대의 도래, 정말?

 

이렇게 미쳐 있던 선진국들이 지금은 나도 남도 이득을 얻는 윈윈(Win-Win) 전략, 파트너십, 전략적 제휴 등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다는 인식을 전도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전쟁 후의 참상과 수많은 식민지의 독립을 지켜보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나보다.

 

윈윈 전략과 파트너십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서로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놀라운 것은 수탈, 잔인한 고문, 구타, 가혹행위, 맹목적 충성, 짐승만도 못한 잔혹성으로 대표되었던 일본도 선진국이랍시고 경제 부흥과 더불어 여기에 동참한 것이다. 토요타 생산시스템(TPS)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JIT(Just in Time)는 협력업체와 장기 계약을 통한 품질 개선과 적시 납품, 재고 축소를 확보하는 개념으로 출발했다. 이른바 일본식 파트너십 경영의 출발이었다. 구시대적인 전제국가가 패전을 겪고 나서 선진국이 된 셈이다.

 

일본이 선진화된 국제사회의 일원과 불투명하고 구시대적인 전제국가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2017년 6월 28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에서는 관동 대지진 후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비열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써 국제사회의 시선을 고려해서 함부로 실행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영화 끝에 일본은 불투명함과 비열함을 택했다. 감옥에서 결혼한 박열의 아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죽는다. 다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갈등은 정말 볼만하다. 선진화가 무엇인지, 국제화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 비열함과 투명함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성장한 민족 자본이 ‘그나마 선진적인’ 일본을 통해 보고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은 본 대로 배우게 되어 있다. 약자(조선인 노동자 또는 조선인 소작농)에게 덜 보상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 일을 제대로 못 하면 당연히 구타와 가혹행위를 하는 것? 밤새 일하는 부지런함의 미덕? 주인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것? 안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열심히 하는 것? 겉보기에는 온화한 척 하면서 뒤로는 잔인하고 비열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 이상 무엇을 더 보고 배웠을까?

 

사람은 매일매일 쉴 새 없이 반복된 업무를 하게 되면 그 일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계속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후대에게 대물림된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과 수출 드라이브 속에서 일제 강점기 때부터 내려온 비합리에 대한 의문은 금기시되었다. 그것을 참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과 성공한 인생의 상징으로 포장되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일간신문에는 OO 기업의 OOO 대표가 잘못한 직원의 무릎을 여지없이 구둣발로 찼다는 식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신문기사는 최대한 보기 좋고 듣기 좋게 포장을 하기 마련인데 구타가 신문기사로 실릴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여전히 미쳐있는 이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아직도 약자인 협력사에게 덜 보상하고 부를 축적하는 모습을 본다. 일 제대로 못하면 인격을 모독하는 말로 자극을 주는 것이 관리자의 덕목인 줄 안다. 토요일 오후에 회의를 하고 일요일에 출근하는 것이 부지런함의 상징인 줄 안다. 의사결정자는 오직 주인만이 할 수 있다. 체계도 적절한 지원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 일을 열심히 잘 하는 것인 줄 안다.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개인이 아닌 조직이 성과를 내는 시대다. 따라서 조직간 어떻게 업무 협조를 하며, 어느 조직이 어디까지 담당할 것인지 정하는 것도 일이다. 그렇건만 유치한 사유에 의한 조직간 반목과 이기주의는 전체 최적화를 가로막는다. 요컨대 21세기를 18년째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생각은 영화 <박열>의 주인공 박열이 재판을 받던 1923년 일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광복 70년이 넘어봤자 정신세계는 국제화와 비열함의 경계를 넘나들던 1920년대 일본에 머물러 있다.

 

필자가 역사 칼럼니스트가 아닌데도, 이렇듯 길게 역사 이야기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뿌리 깊은 역사가 있기에 우리나라에는 어떤 프로세스 혁신도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히 그 사이 시장도 바뀌어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수요자 중심의 시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1920년대 일본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시장에 대한 시각도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 묻히고 말았다.

 

용비어천가는 말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면서? 공급자 시장에서나 존경받을 만한 패러다임들이 있다. 이를테면 보상을 바라지 않는 맹목적 근면함, 맨땅에 헤딩, 인력의 저질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 한 사람의 의사결정에 의한 모든 것의 번복이 반복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과 업무 속도 향상, 파트너십을 통한 안정적 품질과 적시 납품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될 리가 없다. 사람을 희생시켜서 쉽고 싸고 눈에 보이는 개선과 절감을 할 수 있다면, 그저 부지런히 일하는 것만이 답이다. 어린애 하나를 산채로 쇳물에 녹여 만든 동종이 국보(29호)인 나라임을 잊지 말자.

 

그러니 혁신을 원하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살아도 상관없다. 솔직히 우리가 1920년대 사고방식으로 살면서 뭔가를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데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저지른 두 가지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 하나는 1920년대 사고방식은 1920년대 수준의 노동 집약적인 산업,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 걸맞은 물가와 급여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형 눈 붙이기’가 주력 산업이면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답이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장에서는 남보다 일찍 일어나 늦게 퇴근하면서 열심히 만드는 것이 곧 돈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 인력거꾼 김첨지는 하루 벌어서 술 한 잔하고 설렁탕 한 그릇을 샀을 뿐인데 ‘괴상하게도 오늘 운수가 좋았다’고 말한다. 그 정도 구매력이 운수 좋은 날일 정도의 급여 수준이면 지금처럼 살아도 문제없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기업의 초기 투자비용을 늘렸으며, 급여생활자의 구매력을 떨어트림으로써 물가 상승과 급여 상승을 불렀고, 기술 집약, 자본 집약적인 산업만이 성장하게끔 만들었다. 한 사람의 맨땅에 헤딩, 한 사람의 빗나간 의사결정이 가져오는 비용 손실이 예전보다 커졌다. 게다가 이제는 수요자 중심의 시장이다.

 

다른 하나는 자식 세대에게 1920년대식 불합리가 통하지 않는 합리성, 이성적 판단, 선진적인 도덕과 시민 의식을 가르쳤다는 점이다. 계속 1920년대 일본식 미덕을 이어나가려면 자식 세대에게도 그것을 미덕으로 가르쳤어야 하는데 자식 세대에게는 그런 것을 비겁하고 교묘하게 피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것이 절대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1920년대 일본식 사고방식이 ‘미친 짓’이었음을 강조한 <먼나라 이웃나라>는 지난 수십년간 청소년 권장도서였다.

 

그나마 지금의 기성세대는 그것이 틀린 것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 감내하고 견디며 일했다손 치자.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렇게 배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만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떠받들어져 자랐다. 그럼에도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수준의 일자리에 만족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 속상해 죽겠는데, 1920년대 일본식 미덕을 강요한다면? 과연 그들이 들을까.

 

변화를 거부하는 분들의 시선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재앙의 씨앗에 불과하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의 조직간 역할과 업무 방식이 잘못되어 있고, 자신들의 일을 더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물론 변화를 거부하는 분들에게 그들은 그냥 ‘게으른 것들’, ‘불만만 많은 것들’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미치지 않아야 미친다

 

실수를 인정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1920년대 일본식 사고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산업을 영위하고 있다면 그것에 걸맞은 사고를 해야 한다. 젊은 세대를 ‘너무 잘’ 가르친 나머지 말을 안 듣는다면 그 책임을 기성세대인 어른이 지는 것이 당연하다. 책임을 지라는 것은, 기술 집약, 자본 집약적인 산업, 수요자 중심의 시장에 맞는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갖추고, 지금까지의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을 하라는 뜻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거의 엑스맨과도 같은 이 젊은 세대가 바라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일견 돈만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합리적인 프로세스, 의사 결정, 본질을 추구하는 정신이 지배하는 회사라면 비록 규모가 작더라도, 보상이 적더라도, 늦게까지 근무를 하더라도 이직을 망설인다. 합리적인 프로세스가 웬만큼 많은 보상에 해당하는 가치를 갖는다는 뜻이다.

 

수요자 시장에 걸맞은 프로세스 혁신. 바로 이전 기고에서 밝힌 공급망 관리와 4차 산업 혁명이 합쳐진 모습이다. 이 정도 되면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수요자 시장에 걸맞은 공급망 관리로의 이행은 그 어떤 직원 복지보다 더 큰 직원 만족을 가져다 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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