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디스카운트'에 '품질'을 더해 탄생한 '알디화(Aldisierung)'
거품 없는 가격의 비결? 알리가 만든 '물류 가성비'
물류 비용을 아껴 사람에게 투자, '상생'으로 이룬 알디의 세계화
글. 한덕희 독일 레인지로지스틱스 대표
4년 전 처음 독일에 들어온 필자는 알디(ALDI)라는 오프라인 마트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초콜릿, 과일, 야채, 소시지, 우유, 소고기, 화장품, 과자까지... 쇼핑카트에 잔뜩 상품을 담았는데, 계산을 하려고 보니 그 가격은 15유로(약 1만 9,000원)도 안됐다. 한국에선 소고기만 사도 3만 원이 넘는데 어떻게 이 가격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그 때는 독일이 물가가 엄청나게 싼 나라인줄 알았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필자는 이제 독일 마트 물가가 한국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안다.(생필품 물가는 독일이 조금 더 싸긴 하다.) 그저 알디라는 마트가 엄청나게 싼, 속칭 ‘하드디스카운트’ 형태로 상품을 공급하는 업체였던 것이었다. 이 말을 바꿔 살펴본다면, 우리나라도 유통과정의 거품을 걷는다면 알디와 같은 형태의 비즈니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을까.
가격과 ‘품질’을 잡다
초창기 알디는 ‘가난한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물건 사려고 굳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까지 가서 힘들게 쇼핑하는 곳’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알디가 단순히 ‘싼 가격’뿐만 아니라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제공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면서 알디의 이미지는 ‘포르쉐를 타고 온 고객이 합리적인 가격에 알뜰한 쇼핑을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품질’이 핵심이다.
심지어 독일엔 ‘알디화(Aldisierung)’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한국의 ‘가성비’와 비슷한 용어다. 오랜 경기 불황으로 독일 소비자들은 싸면서도 괜찮은 품질을 가진 제품 소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 사이에선 ‘알디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풍문이 번지고 있다.
알디의 성공에는 ‘거품 없는 가격’이 있다. 알디가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이유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제품군만 선택, 판매했기 때문이다. 소품종에 집중하니 재고 관리를 위한 비용이 줄어들었다.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의 숫자 역시 자연스럽게 줄었다.
이게 끝은 아니다. 알디는 꼭 필요한 소수 품목을 잘 배치하고자 연구했다. 작은 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알디식 쇼핑동선’을 정립했다. 실제 알디 매장에 들어가면 고객 쇼핑 욕구를 끌어올리는 품목들이 앞에 보인다. 먼저 단맛을 자극하는 사탕, 초콜릿, 잼들이 보인다. 그 다음에는 독일인의 식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인 ‘빵’이 비치돼 있다. 그 다음에는 식욕을 자극하는 과일, 채소와 같은 신선식품들이 진열돼있다. 자연스럽게 냉장코너로 넘어가 육류와 유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 알디 매장 입구 초입에 진열돼 있는 초콜릿과 잼
동선 중간 중간에는 매주 다르게 진행하는 특가 제품을 진열해둔다. 중간 매대는 고객들이 일부러 찾아가야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 세일 품목을 비치하여 고객을 유인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생필품들은 계산대 근처에도 배치돼 있다. 계산대까지 온 고객이 쇼핑리스트에서 빠뜨렸던, 혹은 갑작스럽게 생각난 상품을 충동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물류가 가성비를 만든다
알디가 성공한 또 다른 이유, 어찌 보면 가장 큰 이유는 ‘물류’에서 찾을 수 있다. 알디의 물류거점은 매장까지의 거리가 4.5시간이 걸리지 않는 곳에 입지해있다. 그 이유는 독일법 때문이다. 독일법에 따르면 화물차 운전기사는 4.5시간 이상 운전하면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 ‘휴식’이라는 게 기업 입장에선 당연히 비용이 된다. 즉, 알디 입장에서 최대 4.5시간 배송이 가능한 곳에 물류거점을 두는 것은 배송속도와 물류비 절감을 동시에 만드는 방법이 된다.
알디는 ‘물류 표준화’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알디가 공급자에게 받는 제품들은 모두 알디가 규정한 팔레트의 높이와 부피에 맞게 납품된다. 규격화된 팔레트 위에 쌓여있는 제품들은 매장에 바로 전시될 수 있도록 박스를 겹겹이 쌓았다. 공급업체부터 라스트마일(알디 매장)까지 물류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을 최대한 제거한 것이다. 이는 매장에서 소요되는 물류 측면의 시간과 비용을 매장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요인이 됐다. 결국 소비자는 물류 덕분에 값싼 가격이라는 특권을 갖게 된 것이다.
▲ 알디가 규격화한 팔레트. 공급자부터 라스트마일까지 물류 공수를 최소화했다.
또 하나의 포인트. 알디 매장에는 ‘재고’가 거의 없다. 재고는 곧 비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매장에 진열된 제품이 판매가 안 된다면, 그러니까 악성 재고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알디는 곧바로 할인을 통해 해당 제품을 소진한다. 식품 같은 경우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30% 할인에 들어가며, 유통기한이 임박할 경우 70%까지 할인하여 재고를 최소화한다.
그럼에도 사람, 상생
알디는 물류관리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아끼고 또 아낀다. 하지만 알디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은 동종업종과 비교해서 꽤 높은 편이다. 이는 알디의 철학 때문이다. 시스템은 최대한 효율화해서 비용을 아낀다. 동시에 사람은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시스템 효율화의 목적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만드는데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알디 매장에는 평균적으로 8개 정도의 계산대가 있다. 이 계산대는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숫자에 맞춰 유연하게 운영된다. 가령 1번 계산대에 많은 사람이 줄을 섰다고 하자. 그러면 2번 계산대와 3번 계산대에 불이 들어오고 어디선가 직원(Cashier)이 나타나 계산업무를 지원한다. 그러다가 1, 2, 3번 계산대 모두 줄이 길어진다면? 또 다른 계산대에 불이 켜지고, 고객들은 자연스레 비어있는 계산대로 몰리게 된다. 고객의 병목(Bottle Neck)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직원 또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알디의 직원들은 매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업무에 숙련이 돼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 다양한 업무를 지원할 수 있다.
현재 알디는 전 세계 18개국에 진출해있으며 1만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알디의 가격파괴 모델은 미국까지 넘어가 승승장구 하고 있다고 한다. 알디는 미국시장에서는 독일 브랜드로 성공할 수 없다고 보고 철저하게 미국화 하여 접근했다고 한다.
이 때 알디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미국 현지 제조사와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현지에서 PB상품을 만들면서 제조사를 철저하게 검증했고, 장기계약을 통해 제조와 유통사가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장기계약을 통한 납품가 인하는 제조사의 운영 효율을 극대화 시켰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살 수 있게 됐다. 물건이 잘 팔리기에 매출은 늘어난다. 판매량이 증가하여 이익을 낸 제조사는 더 좋은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 선순환이 독일식 하드디스카운트 생태계의 기본 원리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알디와 같은 하드디스카운트 형태의 유통구조가 발달할 것이라 본다. 이마트가 선보인 노브랜드 컨셉이 하드디스카운트의 한 장르로 보인다. 하지만 유통사만 이득을 보는, 공급자와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형태라면 그런 모델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식 가격 후려치기가 만들어낸 파국을 봐왔다. 유통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공급자, 유통사, 소비자 모두가 상생하는 데 나온다. 하드디스카운트 모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알디의 철학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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