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슬기의 내·차·중> 만리장성에 '통(通)'하려면 '수책(手冊)'을 펴세요④

ARTICLES

by 김편 2012. 5. 28. 22:41

본문

글. 이슬기 로지스 씨앤씨(Logis Consulting&Company) 대표 컨설턴트

 

[CLO] '쿵푸허슬'이라는 홍콩 코미디 영화를 재미있게 본적이 있다. 주인공인 주성치(어릴 때)는 조잡한 2각(2원 정도)짜리 쿵푸 입문서를 속아서 '여래신장' 비법서로 알고 저금통을 털어 10각에 산다. 그리고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마침내 여래신장의 무공의 경지에 이르러 악당들을 무찌른다는 이야기다. 코미디영화 치고도 참 황당한 재미를 주는 영화였는데, 예의 가짜 여래신장 책에 부처님 손바닥 그림이 나온다. 얼핏 보면 손금 보는 책이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가 중국서 처음 접한 '수책'이라는 단어와 오버랩 되어 잔잔한 추억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당연할 것이고, 무역업무나 통관업무, 포워딩 등 수출입업무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정체불명의 '수책' 때문에 한번쯤은 마음고생을 해봤을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필자는 처음 '수책'을 접하고 손금 보는 책으로 이해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手冊’이라고 쓰여 있으니,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數冊'으로 알고 수학책 또는 통계학에 사용하던 난수표를 생각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중국이 '차이나'라고 해도 그렇지 통관하는데 수학책이 필요할까? 더군다나 손금 보는 책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쿵푸허슬이란 영화만큼이나 황당한 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수책'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렵게 이해되는 이유는 중국과 한국의 수입통관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가공무역에 있어서 수출용 물품 제조에 소모되는 원·부자재 수입시 중국은 면세제도를 택하고 있고 한국은 환급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차이점이 있다. 즉, 중국은 수출용 원·부자재에 대해 수입시 면세를 해준 후, 사후 수출을 이행하는 조건인 반면 우리나라는 일단 과세를 한 후에 과세한 원·부자재를 사용하여 수출을 하면 수출에 소요된 원·부자재의 양 만큼 수입시 납부한 관세를 되돌려 주는 방식을 뜻한다.

 

따라서 수입시 면세를 해주기 위해서는 수출용 물품 제조에 소요되는 원·부자재 내역과 수량 등이 파악되어야 하고 그 내역을 세관에 신고(등기)하여야 한다. 이러한 수출용 물품 제조에 소요되는 원·부자재 목록 및 관리대장이 바로 '수책'인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대부분이 가공무역을 하기 때문에 수책을 사용한 무역을 통해 해외 원·부자재를 조달하고 있고 수책은 그야말로 임가공을 하는 기업으로서는 돈이요, 생명줄인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핵소단(核銷單)'이라는 핵폭탄이 등장한다. 분단국가의 현실상 어릴 때부터 국방교육을 충실히 받아 온 터라 '핵'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우선 핵폭탄을 떠 올리는 것이 필자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핵소단' 마저 통관에 관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과연 중국은 참으로 대국(大國)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통관이랑 핵폭탄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본론으로 돌아와 앞서 설명한 수책이 면세를 위한 원·부자재 리스트라면, 핵소단은 면세 혜택을 받아 수입한 원·부자재가 수출용 물품 제조에 소모되어 수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일종의 수출검사서(증명)를 뜻한다. 다시 말해 수책의 사후 관리책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핵소단을 통하여 면세혜택의 법적, 제도적 책임을 완료하는 셈이다. 핵소(核銷)란 '자세히 살펴 삭제한다'는 뜻으로 수책상의 전체 원·부자재 중 수출에 사용한 원·부자재량 만큼 차감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핵소를 설명하고 있는 핵소단은 근거가 되는 '수출증명서'인 셈이다.

 

여기서 핵소단이 핵폭탄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만약 관리를 잘 못해 수책에서 핵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실 핵폭탄 만큼이나 막대한 피해가 오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핵소단과 핵폭탄이 전혀 무관하지 만은 않다는 논리로 필자의 무지했던 시절을 회고해 본다.

 

이쯤 되면 무역이나 중국 물류에 그다지 관계가 없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볼 법이다. 사실 알고 보면 별다른 제도도 아닌데 모르면 괜스레 뭔가 복잡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대표자나 책임자들은 이런 수책이나 핵소단과 같이 우리나라와 다른 제도들을 필히 이해하고 철저히 관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전자수책이 많이 보급되어 수책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수책은 엉뚱한 마음을 품은 담당직원에게는 만만치 않은 유혹으로 다가온다. 수책의 남은 원·부자재 잔량을 몰래 들여와 내수시장에 팔아 딴 주머니를 차거나, 다른 회사에 수책을 빌려주어 면세자재를 수입하게 하고 면세혜택 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챙겨 줄행랑을 치는 경우도 과거에는 심심치 않게 발생 했다.

 

때로는 세관원과 '통(通)'하여 수책의 잔량보다 많은 원·부자재를 수입하고 '묻지마' 검사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도 종종 만들 수 있고 보면 마음먹기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가능한 것이 수책의 함정이다. 다만, 중국세관이 넋 놓고 이를 방관할 리는 없고 때로는 그야말로 손금 보듯이 지켜보다가 한꺼번에 불량고객들을 소탕하곤 한다. 그래서 수책이 손금 보는 책일 것도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결국 수책은 수입 원·부자재를 이용해 수출을 하는 임가공 업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지만 때로는 엉뚱한 마음을 먹은 직원 덕분에 고생바가지로 전락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행방을 못 찾아 온 사무실을 뒤집어 놓고 수책 찾아 삼만리를 떠나게 하는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면세통관을 위해서는 수책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수책은 사본이 없다. 그렇다보니 어떤 때는 관세사 손에 가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포워더의 손에 가 있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이쪽 세관에 가 있다가 어떤 때는 저쪽 세관이 가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나마도 어디에 가 있는지 몰라 온 사무실을 쥐 잡듯 들쑤셔 찾고 멀리 떨어진 곳에 가 있어 밤새 비행기 타고, 차 갈아타고 007 작전을 방불케 하면서 찾아오기도 한다.

 

수책의 뜻만큼이나 손을 많이 타는 관계로 수책의 팔자가 평온하지는 않지만 광활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서라도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귀한 몸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무역이나 중국 물류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상이한 용어 문제로 당혹스러운 상황에 많이 봉착하게 된다. 어디 수책만 뿐이겠는가? 수출을 하는데 정치세를 내라는 경우도 있다. 수출기업이 무슨 정치에 관여 할 일이 있다고 정치세를 내라는 건지,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정치세는 증치세(增値稅)를 뜻한다. 말 그대로 'Value Added Tax' 즉,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와 같은 것이다.

 

퇴세(退稅)도 혼란스럽기는 매 일반이다. 퇴(退)가 물러난다는 의미이니 세금이 물린다는 것인지 아니면 세금을 안물린다는 의미인지, 참으로 어렵다. 모르면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는 것이 중국의 세제 환경이다.

 

퇴세는 우리말의 '환급'의 의미이다. 따지고 보면 '환급'도 한자말인데 표현이 다르고 보니 모르면 답답할 뿐이다. 퇴세와 상대를 이루는 말로 보세(補稅)라는 표현도 있다. 우리말로 '추징'이다. 보세(補稅)란 말이 발음만으로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뜻을 살펴보면 결과는 전혀 극과 극이다. 

 

손금 보는 책이든 핵폭탄이든 정치세가 부가세가 되고, 보세가 추징금이 되던 낯설고 말선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 기업들이 이런저런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때로는 뼈저린 아픔으로 오늘을 헤쳐 나가고 있을지 우리는 항상 마음의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중국의 3조6천억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하고 해마다 막대한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에는 황사의 땅에서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들의 땀과 노력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수책(手冊)
면세를 위한 원·부자재 리스트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수입시 면세를 받기 위해서는 수출용 물품 제조에 소요되는 원·부자재 내역과 수량 등이 파악되어야 하고 그 내역을 세관에 신고(등기)하여야 한다. 이러한 수출용 물품 제조에 소요되는 원·부자재 목록 및 관리대장이 바로 '수책'이라 한다.

 

핵소단(核銷單)
핵소(核銷)란 '자세히 살펴 삭제한다'는 뜻이다. 수책(手冊)상의 전체 원·부자재 중 수출에 사용한 원·부자재량 만큼 차감한다는 뜻이다. 바로 핵소단은 이런 근거가 되는 '수출증명서'를 말한다.

 

정치세=증치세(增値稅)
말 그대로 'Value Added Tax' 즉,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와 같은 뜻이다.

 

퇴세(退稅) = 환급세
보세(補稅) = 추징세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