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디오스 CJ GLS

INSIGHT

by 김편 2013. 3. 31. 21:49

본문

4월1일 CJ대한통운 바통터치…15년 만에 역사 속으로

1998년 출범 이후, 업계 최다 M&A로 물류 1위 견인

글로벌 SCM기업 새 도전…2020년 세계 '톱5' 간다  


[CLO 김철민 기자] CJ그룹 물류자회사인 CJ GLS가 4월 1일 CJ대한통운과 합병으로 15년 만에 한국 물류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진다. 비록 사명은 소멸되지만 CJ GLS가 쌓은 3자물류(3PL) 확산과 글로벌화 추진 등의 활약상은 국내 물류시장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전망이다. 


제일제당(현 CJ) 물류부서에서 독립해 1998년 3PL업체로 출범한 CJ GLS는 사업 첫해 매출이 637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CJ GLS는 12년 만인 2010년 연매출 1조 클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대한통운, 한진 등 전통적인 강호 물류기업들이 창업 반세기만에 매출 1조원을 달성했던 것과 비교하면 CJ GLS의 성장세는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물론 CJ GLS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룹 식품계열사들의 물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CJ GLS의 성장사를 평가하기에 앞서 이 회사가 10여 년간 써내려간 기업인수·합병(M&A)과 해외 진출, 신사업 개척 등의 도전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2013년 자산규모 5조 5000억원(CJ대한통운 합산), 연매출 4조 3000억원, 직원수 8000명. 숫자로만 표현할 수 없는 CJ GLS의 지난 15년간 기록을 정리해 봤다.


제일제당 물류개선실 분사해 출범

1998년 3월 2일, 이른 봄날. 막바지 꽃샘추위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서울 용산 제일제당 물류창고(문배동)에서는 한 신생 물류기업의 창립행사가 열렸다. 전국 20개 물류센터와 40여개 창고를 활용해 고객사들의 공산품, 잡화 등을 전국의 소매점에 공급하는 일을 수행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였다. 자본금 12억원, 임직원 수 206명, 제일제당 물류개선실이 분사해 만들어진 CJ GLS였다. 


사업초기 13곳에 불과하던 고객사는 2년 뒤 100개를 돌파했다. 2012년까지 고객사는 800여 곳으로 늘었다. 매출도 껑충 뛰었다. 사업 첫해 매출액 637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2012년 기준으로 CJ GLS는 자본금 287억원, 직원수 약 3200명, 매출액 1조 4000억원의 회사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창업 10여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20배 이상 초고속 성장을 이룬 셈이다.


3PL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CJ GLS는 3PL기업을 모토로 출발했다. 그때 당시 교통개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화물자동차의 공차통행률(공차운행수를 총통행수로 나눈 비율)이 무려 40%를 웃돌았다. 10번 중 4번은 빈 차로 운행한다는 말이다. 대단위 물류센터가 활성화되지 못한데다 체계적인 물류시스템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효율성이 극히 떨어졌던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 역시 미국(7.5%), 일본(8%)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20%에 달하는 실정이었다.


컨설팅 & 아웃소싱…시장공략 차별화 

CJ GLS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물류 아웃소싱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부분을 공략해야 했다. 업계 후발주자였던 CJ GLS는 그룹사 물류를 수행하며 터득한 체계적인 물류시스템이 무기였다. 


CJ GLS 창립 당시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던 제품은 총 3만여종. 이 상품들을 도·소매점, 대리점, 창고 등 1만 4000여 거래선으로 매일 운반해야 했으며, 특히 신선도가 중요한 식품 종류가 많다는 특성상 배송 시간을 정확히 준수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전국적인 네트워크와 체계적인 배송시스템은 필수였다. 그렇게 쌓인 노하우가 지금의 CJ GLS만의 물류 노하우로 발전한 것이다.


당시 CJ GLS는 컨설팅을 통한 물류비 절감, 서비스 향상이라는 차별화 전략을 채택했다. 또 1999년 포워딩 기반의 국제물류사업과 택배사업에 진출해 종합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사업초기 식품 잡화 위주의 생활소비재에 집중되었던 물류대행 영역도 전자, 화학, 자동차 부품 등으로 확대했다. 


물류시스템에 대한 투자도 지속됐다. 2005년 물류전략연구소를 설립해 R&D에 힘을 쏟았으며, RFID/SUN 연구팀을 갖추고 RFID 시스템을 국내 물류기업 중 유일하게 현장에 적용시켰다. 


아울러 전세계 화물의 이동 흐름과 도착 예정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GCC(Global Control Center), 국내 물류 프로세스 흐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으로 다양한 서비스 지표를 한 눈에 파악해 대처할 수 있는 VMS(Visual Management System) 등 첨단 IT 시스템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물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갔다. 


2000년 시작한 택배사업에서도 3년만인 2002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후발주자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업 진출 초기에 기존 택배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개인고객 시장보다는 새로운 기업고객 시장 개척에 주력했으며, 당시 IT 붐을 타고 급격하게 성장한 인터넷쇼핑몰과 무점포 유통업체 유치에 성공하며 성장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CJ GLS는 1999년 중소택배회사인 택배나라 인수를 통해 국내 택배시장에 진출했다.  CJ GLS를 앞세운 CJ그룹은 2006년 삼성물산의 택배회사인 HTH와 싱가포르 포워딩업체인 어코드를 연달아 인수했다. 여기서 CJ GLS의 M&A 역사를 되짚어보자. 


어코드 인수로 글로벌 발판

CJ GLS가 해외시장으로 본격적인 진출할 것을 대내외로 선포한 사건이 바로 2006년 싱가포르 물류회사인 어코드 인수다.


어코드는 1984년에 설립돼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포워딩업체였다. 삼성전자 아시아, 필립스, 도시바, 레고 등 다국적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었다. CJ GLS는 당시 어코드를 인수함으로써 해외 사업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 이를 활용해 본격적으로 글로벌물류사업에 진출하고, 해외 법인의 서비스를 통합한 새로운 개념의 원스탑 글로벌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인수기간만 약 2년이 소요됐으며, 당시 인수가격이 350억원에 불과하던 어코드사는 CJ GLS와 합병 4년 만인 2009년 3500억원의 해외사업 매출을 올리면서 10배 이상의 인수효과를 CJ에게 선물로 안겨줬다.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국내 물류환경 속에서 CJ GLS는 어코드 인수를 통해 아시아 물류네트워크를 확보함으로써 미주와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삼성물산 HTH택배 인수 ‘지각변동’ 

해외에서 어코드를 인수한 그해 2006년, CJ GLS는 국내에서 또 한건의 사고를 친다. 삼성물산 소유의 HTH택배 지분 78.3%를 인수한 것. 1995년 CJ가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공식적으로 거의 관계가 끊어졌던 삼성그룹과 최초의 인수합병 거래를 성사시킨 점도 세간에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CJ GLS는 국내 택배 물량의 60%가량을 차지하는 4개 택배 업체인 대한통운과 CJ GLS, 현대택배(현 현대로지스틱스), (주)한진의 4강 구도로 들어서게 됐다. HTH와 합병은 양사의 영업과 현장 운영 통합 등을 거쳐 2년 만인 2008년 5월에 최종 마무리했다.


합병 후 CJ GLS은 60여개의 택배 터미널과 4000여대 배송차량, 700여개에 이르는 택배 대리점을 보유하게 됐으며, 2006년 CJ GLS의 택배부문 매출은 1480억원에서 2년뒤 2008년 1842억원으로 증가했다.  


삼성전자 해외 3PL 확대

어코드 인수로 삼성전자 해외 현지 3PL사업을 맡게 된 CJ GLS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중국 등 본격적인 삼성전자 해외물류사업 강화에 나선다. 


2008년 8월, CJ GLS는 말레이시아 현지 물류업체를 인수해 CJ GLS 말레이시아(Malaysia) 법인을 설립해 ‘EC DISTRIBUTION SND BHD’ 등 6개 현지 물류업체 운영에 나서게 된다.


이를 통해 포워딩은 물론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창고보관, 내륙운송, 유통가공까지 종합물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이후에도 CJ GLS는 2007년 미국법인, 2008년 멕시코 법인을 설립하며 아시아는 물론 미주, 유럽까지 해외 물류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가는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자회사 SC로지스 정리…아픔도 

CJ GLS가 성공가도만 달렸던 것은 아니다. 실적 악화로 인한 소형화물택배회사인 SC로지스를 정리하는 아픔도 겪었다. 서적, 의류 등 소형화물을 주로 취급해 온 SC로지스는 2009년 말 기준으로 부채 81억 3100만원으로 자본 잠식상태에 빠진 것. 


위기에 몰린 CJ GLS는 신속하게 SC로지스를 합병해 해산하고, CJ GLS가 존속법인으로 계속 남아 SC로지스의 모든 지위를 승계했다. 


이 밖에도 CJ GLS는 2005년 거래처인 CJ홈쇼핑의 회원 정보를 유출시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CJ GLS 영업소장에 의해 정보가 빼돌려졌던 이 사건은 택배는 물론 홈쇼핑 등 전자상거래업체들에게도 고객 정보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CJ대한통운 출범, 亞 물류공룡 탄생 예고

2013년 4월 1일, CJ GLS는 CJ대한통운과 합병으로 자산 규모 5조5000억원인 국내 1위 대형 물류기업을 탄생시킨 것은 물론 아시아 물류공룡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등 아시아 대표물류기업으로서의 진영을 갖추게 됐다.


통합 CJ대한통운 체제에서 강한 시너지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역시 택배다. 1위 대한통운(20.6%)과 2위 CJ GLS(17.5%)가 만나 택배 시장점유율이 38.1%로 껑충 뛰어올랐다. 명실상부 1위 사업자다. 


인프라 통합효과도 기대된다. CJ대한통운은 메인 허브터미널 기능을 대전 문평동 허브터미널로 통합하고, 양사의 지역 거점을 모두 활용해 배달 생산성을 30% 이상 높일 계획이다. 이로써 통합CJ대한통의 지역 거점은 총 174개. 대한통운 시절 지역 거점 79개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 전국을 촘촘히 아우르는 배송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서비스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외사업과 항만하역 부문의 실적 악화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사업은 CJ대한통운보다 CJ GLS가 강점을 보인 부문. 지난해 CJ GLS는 해외에서만 60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삼성그룹과의 불화 속에 삼성의 동남아 물류사업을 잃게 되면서 올해부터는 대폭 매출이 줄어들 전망이다. 삼성전자 동남아 물류로 CJ는 연간 36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려왔다. 


오는 2020년 매출 20조원 달성을 통해 ‘글로벌 톱5’ 물류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내세운 통합 CJ대한통운. 이채욱 전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을 맞이한 CJ대한통운호(號)의 첫 출항에 힘찬 뱃고동이 울렸다. 


<CJ GLS ‘그땐 그랬지’> 

제일제당(현 CJ)은 1988년 제조업계 최초로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물류사업본부를 신설해, 1991년 공동수송이라는 신개념의 운송방안을 도입, 신규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1992년에는 고객센터 및 재고관리 기능을 담당하는 지역별 주문센터를 구축해 서비스를 향상시켰고, 영업과 물류 기능을 분리한 상물 분리를 실행하면서 1993년 CJ GLS의 전신인 물류개선실이 탄생했다. 


이때부터 물류시장의 풍부한 성장성에 대해 주목한 CJ그룹은 본격적인 시장 공략 채비에 나선다. 제일제당의 물류사업부보다는 개별 법인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미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며 농협중앙회, 의약품도매협회 등의 물류컨설팅과 일부 고객사의 물류대행을 맡을 정도로 노하우가 쌓인 상태였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서 1997년 CJ GLS 설립 TF가 구성되었으며, 경북 경산에 위치한 ㈜호림이라는 기업을 인수해 사명을 변경하며 CJ GLS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2년 대한통운을 거머쥐는데 성공한 CJ GLS는 물류사업에 진출해 총 5회에 걸친 M&A를 통해 2013년 매출 4조5000억원(CJ대한통운+CJ GLS), 직원수 8000명(2011년 기준)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물류기업 CJ대한통운을 탄생시켰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