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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 이단비 사내모델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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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0. 1. 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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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한 물류기업의 꽃이 되다
대한통운 경영관리본부 이단비 사원 

김누리 기자 , 2010-01-05 오전 11:28:52  
 

 
남자들의 소굴 물류기업에 단비가 내렸다. 지난해 2월 대한통운 공채 36기로 입사한 이단비(25) 사원. 경영관리본부로 발령받은 그는 결산, 복리후생 등 경영지원업무를 맡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대한통운의 얼굴을 담당하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 딱딱한 물류기업의 모습을 부드럽게 바꿔보자 사내모델을 물색하던 중 단비 씨가 눈에 들었다. 사진을 찍을 줄 아는 사람들은 그냥 봤을 때 예쁜 얼굴과 사진으로 찍었을 때 예쁜 얼굴을 귀신같이 가려낸다. 입사 3개월 무렵 헌혈 사진을 찍고 나서 단비 씨는 사진 잘 받는 얼굴로 이미 점 찍혀 있었다.

인터뷰 당일 실제로 본 단비 씨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빛이 없어도 잘 나올 만큼 입체적인 얼굴을 가졌다.

단비 씨는 처음 사내모델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흥미로운 경험이라 생각했던 것. 짧게나마 머릿속은 ‘얼굴 빵빵하게 나오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 찍히면 어떡하지...’ 라는 여자라면 지극히 정상이라 여기는 걱정으로 가득 찼지만 말이다.

한창 일을 하고 있던 9월 어느 금요일 단비 씨 자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달에 촬영하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요?”
“네”
“그럼 월요일에 찍습니다!”
“네?”

수락은 했지만 언제 찍을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그리고 빨리 촬영 날짜가 잡힐 줄도 몰랐다. 얼굴 부하게 나오면 안 된다는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일주일 전에라도 알려줬으면 다이어트라도 했을 텐데 ...”

아무리 뜯어봐도 날씬하기만 한 단비 씨지만, 첫 촬영인데 다이어트를 못하고 찍었다는 게 못내 한이 된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두 달간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이내 성공했다. 그런데 촬영한다는 말이 없어 잠시 방심했다가 원상복귀 했다. 이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또, 일방적으로 촬영 날짜를 통보 받았다.

“이래서 매번 얼굴 부하게 나올까 봐 걱정하게 돼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화장에 신경을 썼어요.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화장의 기술을 모두 동원했는데, 현장에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와 있었어요”

순간 화장을 다 지우고서라도 전문가의 손길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고. 하지만, 부족한 부분만 살짝 보정 받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대한통운은 사내모델을 지원받아 뽑지는 않는다.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제안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기회 있으면 나 좀 찍어달라며 담당자에게 자신을 알리는 남자직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땐 “물론 자네도 충분한 자질이 보이네만...” 하는 여운을 남기며 도망가는 게 상책.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님이 틀림없다.

▣ 엄마는 좋아해, 친구는 못 믿어, 동기는 놀려 
 
 
 
대한통운이 부드러운 물류기업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고자 시도한 콘셉트는 한적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고객과 친절한 배송사원의 모습이었다.

단비 씨는 집에서 택배를 받는 가정주부의 역할, 택배기획팀 임성수 씨가 택배 기사의 역을 맡았다. 전문 사진작가, 홍보팀 이수연 대리와 함께 지난해 9월 일산의 어느 가정집으로 향했다. 인근의 택배기사가 배송 나간 틈을 타 어렵게 차량도 섭외했다. 촬영은 5시간 동안 진행됐다. 택배가 도착한 걸 집에서 확인하는 모습, 물건을 건네 받는 모습, 환하게 웃는 모습 순으로 이어졌다.

“빈 상자 받고 활짝 웃으려니 힘들었어요“

정말 계속 웃어야 하는 통에 입이 떨리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뒷모습만으로 남우주연상을 노리는 남자 모델이 부러울 정도. 촬영 때 입은 옷은 나름 주부 콘셉트에 맞춰 직접 준비한 의상이었다.

“마음에 쏙 들었던 원피슨데 그 위에다 카디건을 입는 게, 아니 입었어도 단추를 채우는 게 아니었어요. 동기들이 월남치마 입고 찍은 거 아니냐고 어찌나 놀리던지. 정말 치마가 부하게 나오지 않았어요?”

놀린다고는 하지만 동기들의 ‘단비 사랑’이 대단한 듯하다. 그만큼 관심 있게 본다는 말 아닌가. 말 안 해줬으면 끝까지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이제 기자의 눈에도 단비 씨 치마만 보이고 있다.
단비 씨는 금호 그룹 계열사가 모여 시내 전광판 광고로 나갔을 때도, 대한통운을 대표해 촬영했다. 이 전광판을 본 친구들의 반응은.

“너 맞아?”

역시 가장 좋아하는 건 부모님이다. 딸이 나온 사진을 크게 뽑아서 거실에 걸어뒀다고.

▣ 이담비가 아닙니다 
 
 
 
"독감 예방 접종하실 직원께선 5층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알릴 것만 알리는 사내 방송. 늘 이런 식. 내용은 참 재미없지만 낭랑한 목소리라면 들을 기분 난다. 대한통운 사내 방송은 단비 씨가 맡고 있다.

사내 방송은 입사와 동시에 시작했다. 알릴 사항이 있거나, 다른 부서에서 알려달라고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방송 한다. 많을 땐 하루에 다섯 번 정도 하고, 아예 없는 날도 종종 있다.

지금은 괜찮지만, 처음엔 발음이 어려워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한 단어만 더듬거릴 때도 숱했다. 그럴 때마다 80명의 동기에게서 선의의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

도대체 회사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궁금증이 여기저기서 일었다.이단비란 이름은 한 층 한 층을 거쳐 올라갈 때마다 자연스레 이담비가 됐다.

가수 손담비가 나오기 전까진 그런 일이 없었다. 단비 씨가 대한통운에 입사한 그 해에 『미쳤어』, 이듬해에 『토요일 밤에』를 히트시키며 손담비는 자신의 이름을 2년 만에 제대로 각인시키지 않았는가. 본사 여기저기에서 단비 씨에게 전해오는 서류에는 꼭 담비라고 적혀 있다. 이메일도 담비 씨라고 온다.

“정말 열에 아홉은 제가 이담비인 줄 알아요”

이 정도 되면 본인은 골치 아프겠지만, 이해는 된다. 이름을 전해 들었을 때 기자 역시 담비라고 생각했기 때문. 글을 쓰는 지금도 다 쓰면 이단비를 이담비로 쓰진 않았는지, 또 손담비를 손단비로 쓰진 않았는지, 뭐가 진짜고 뭐가 오타인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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