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기념일: 1971년 11월 26일
“사훈의 제작부터 심볼 마크 도안, 심지어는 승차권의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꽉 짜여진 스케줄에서 숨 돌릴 사이 없이 다가오는 일들. 퇴근 못한 날이 귀가하는 날보다 많아 집에서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심볼마크 제작을 위한 사슴 도안 작업에서 무려 132 마리의 사슴을 그리던 그 집념과 결정된 후의 기쁨은 누구도 맛볼수 없는 것이었다.”
“1·2차 개통이 연기 되면서 첫 버스 1대(경기6바 2300호)를 인수했을 때 회장님을 비롯한 전 임직원이 기쁨의 눈물로 맞이했던 그 정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1972년 7월 5일 동부고속의 영동선 개통을 맞이한 당시 임직원들의 감회다. 1971년 11월 26일 동부고속운수주식회사로 설립한 동부익스프레스는 72년 영동선 개통과 함께 본격적인 고속운수사업에 나섰다. 고속사업 면허 발급이 중단된 당시의 여건하에서 최후의 인가 업체로 등장한 동부고속은 이후 30대의 일본 미쓰비시 후소(FUSO) 909 버스를 도입해 영동선 1차 구간인 용인, 이천, 여주, 원주를 운행하게 됐다. 1975년 영동선 2차 구간이 개통되면서 강릉, 동해, 삼척, 속초 방면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차량 보유 60대를 확보하면서 동부고속은 동업계와의 노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마지막 인가 획득에서 치열한 노선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모든 일들은 실로 개척의 땀방울이 만들어낸 집념의 소산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고속버스 운수사업은 지금의 항공 사업과 견줄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았는데, 고속버스 운전기사의 경우, 사회적 지위와 수입이 매우 높았다. 무엇보다도 고속버스 안내양의 경우 상당히 높은 경력을 요구했는데, 고속버스 안내양이 되기 위해서는 입사시험을 치르고 뽑힌 여성을 채용해 입사 후 소정의 교육수련 후 고속버스에 탑승시키는 요즘말로 하면 거의 항공사 스튜어디스 정도 수준 정도로 대우를 받았다. 당시 많은여성들이 고속버스 안내양이 되기 위해서 입사시험 준비를 했고, 고속버스 안내양 시험을 위한 학원도 있었을 시절이다.
1978년을 경과하면서 고속사업의 한계를 내다 본 경영진은 미래 유망업종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항만 하역사업과 화물 운송사업의 선택이었다. 동부고속이 부산항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78년으로 그해 3월 한미면업(주)를 인수해 해운업의 꿈을 안고 출발했다. 또한 화물운수사업에 참여하면서 8월에는 대영실업(주), 9월에는 부산운수(주)를 인수 합병하여 종합운송을 향한 내실을 다져 나갔다.
이후 장비와 인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결과, 트렉터, 카고 및 트래블 리프트 등 260여대의 화물 차량 및 장구를 갖춘 화물사업이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을 누비며, 동부고속의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1981년도 하역실적은 연간 386만톤으로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운영공사’를 제외하고 하역업체 12개사 중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동부고속은 인력이나 장비 면에서 부산항에서 단연 우세하여, 하역업체 중에서 명실공히 으뜸이 되어 그 명성을 떨쳤다.
당시 동부고속 부산지점의 장비는 어떠한 종류의 화물이라도 쉽게 취급할 수 있었다. 15톤급에서부터 300톤급까지 크레인이 종류별로 6대나 구비되어 있으며, 2만5000LBS급 등을 비롯해 포크 리프트 11대, 또한 예선과 부선도 갖추고 있었다.
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시의 자랑거리는 부산항에서 단 한대 뿐인 300톤급 크레인이다. 1부두에서8부두까지 늘어선 한 가운데에 4부두가 있는데, 여기에 동부고속이 자랑하는 초대형 300톤급 크레인이 우뚝 세워진 그 위용을 드러냈다. 실로 부산항의 명물로 동부고속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동부고속은 보세운송 사업면허 취득과 보세 장치장 설영 특허의 특수영업 구색을 갖춰 해상 주선업으로 이어지는 국제적운송사업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신설 1년도 안 되는 국제영업부가 해외 물량 유치 작업에서 ‘컨테이너 리스 대리점업’까지 확보한 것도 5대양 6대주를 누비겠다는 미래를 겨냥한 집념의 결과이다.
이러한 사세 확장의 이면에는 유능한 인력 확보와 사업에 따른 선 투자의 어려움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립 이후 10년간의 크고 작은 경험들이 어떤 난관도 존재할 수 없다는 진실을 터득케 했으며, 그것은 곧 세계를 향한 의지와 집념으로 변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1년, 동부고속 모두의 노력과 지칠 줄 모르는 의욕이 뒷받침해 주는 한, 무한대로 성장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뿌릴 내릴 수 있다는 신념 아래 굶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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