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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通 물류·비즈니스(22편) "복수는 나의 것"

INSIGHT

by 김편 2014. 6. 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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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슬기 (주)에스씨엘플러스 대표


맞고 또 맞다

중국에서 사업하다 보면 별의 별 일 다 겪어 보지만 때로는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심한 일도 겪게 된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 지는 건 쉽게 잊히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중국 항공사 직원과의 업무상 계약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다툼이 있었다. 그리고 몇 주 후 어느 토요일 오후, 아내와 3살 난 아들을 데리고 수영장을 다녀와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직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피하십시오!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피하라니? 누가 온다는 거야? 

하여간 빨리 피하세요!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고 직감적으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어린 아들을 들쳐 안고 슬리퍼만 신은 채로 아내와 함께 황급히 아파트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이미 아파트 입구에는 필자와 다툼을 한 항공사 직원과 낯선 사내 한명이 손에 피를 뚝뚝 흘리며 절뚝거리는 직원을 앞세우고 와 버티고 서 있었고 피할 겨를도 없이 주먹과 발길이 날아왔다.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거라 정신없이 날아오는 주먹질과 발길질에도 본능적으로 어린 아들을 온몸으로 감싸며 맞고 또 맞았다. 때리다 지쳤는지 잠시 발길질이 뜸한 사이에 재빨리 아내에게 아들을 던지듯 넘기고 미친 듯이 맞서 싸웠지만 2명을 동시에 대적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조금 후 사이렌이 울리고 누가 신고 했는지 공안이 몰려와 가해자고 피해자고 없이 엄청 두들겨 패고 파출소로 끌고 갔다. 파출소에 도착 해 시시비비를 가려보니 필자가 한국인이고 피해자라는 사실에 공안들은 난감한 얼굴을 하고 일단 두 사내를 유치장에 감금하였다. 여름이고 슬리퍼만 신고 맞닥뜨렸던 상황이라 그 와중에 발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고 티셔츠는 다 찢어져 몰골이 말이 아닌지라 일단 치료받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와달란다. 


간단히 치료를 받은 후 혹시나 있을 2차 피해가 걱정돼 아내와 아들을 시내중심가에 있는 호텔에 데려다 놓고 파출소에 가보니 경찰서로 이송되었다며 경찰서로 가보란다. 다시 길을 물어 경찰서에 가니 담당 공안원이 너무나도 친절하게 다친 데는 괜찮으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필자를 유치장에 데려가 두 사내를 보여주었다. 두 사내는 유치장 창살 윗부분에 수갑으로 두 손이 묶인 채 축 늘어져 서서 흐리멍덩한 눈으로 필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그날 오후 해질 무렵의 콘크리트 유치장 내부는 퀴퀴한 냄새에 찜통 같은 더위로 단 몇 초 동안이라도 머물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공안에게 이 친구들은 어떻게 처리 되느냐고 물었더니 밤새 이곳에 감금 후 내일 아침 법원으로 이송 해 즉결심판을 받는단다.


중국의 사법절차가 빠를 때는 무지 빨라서 사형도 선고 당일 집행 된다더니 참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손이 묶여 있는 그들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어 수갑을 밤새 채워 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럼 마시지도 앉지도 못하고 소변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히죽 웃는다. 


??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법원

다음날 아침 파출소에 다시 가 보니 법원 호송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필자를 같은 호송차에 태운다. 차가 출발하자 뒤편에 있던 가해자를 필자의 뒷자리에 앉힌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순간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내 가해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용서 해 달라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렇다. 이게 다 작전이다. 어제 유치장에서 그런 불쌍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공안과 힘 좋은 가해자 부모 사이에 급조된 합의석방 시나리오였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차에 태운 것도 모자라 바로 뒷자리로 옮겨 읍소를 하게 하는 것도 시나리오의 일부다. 


그렇게 황당한 상황을 마주하며 법원에 도착하니 이번엔 한 무리의 가해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친구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둥, 젊은 사람 앞길을 생각 해 한번만 용서 해 달라는 둥, 어떤 친구는 자신이 한국에 자주 가는데 한국에도 중국친구들이 많다며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자는 협박까지, 참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법원이다. 


결국 법정에 선 피해자는 분한 마음을 누르고 회사의 앞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한발 물러서야 했고 가해자는 즉시 수갑을 풀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재판정을 걸어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은 마치 우국지사가 석방이라도 된 양 가해자를 얼싸 않고 떠들썩하게 법원을 빠져 나갔고 필자는 따가운 아침 햇살에 현기증이 나 한참을 법원 앞마당 나무그늘아래 앉아 있었다.


그렇게 그 여름날 심양(沈陽)에서의 테러사건은 종결이 되었고 필자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다른 건 잊어도 3살 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는 것은 지금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 


?? 군자복수 십년미만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君子復?(군자복수), 十年未晩(십년미만)’ 남자의 복수는 십년이 늦지 않다. 즉, 남자가 복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기간이 당장이 아니라 십년이 흘러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참 무서운 이야기다. 중국인들에는 보이지 않는 복수문화가 있다. 


중학교 시절 교과서 보다 더 많이 읽은 무협지의 기본스토리를 보더라도 그들의 복수문화를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악당들이 쳐들어와 부모를 다 죽이고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이 깊은 산중으로 도망쳐 무림고수를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무공을 전수받아 하산한다. 부모를 죽인 악당을 찾아 중원을 휘젓고 다니며 무림을 평정하고 마침내 악당의 우두머리를 찾아 내 복수를 한다. 


중국에서는 복수에도 등급이 있다. 제일 낮은 등급의 복수는 상대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이고 제일 높은 등급의 복수는 복수를 당하는 사람이 누구로부터 복수를 당하는지도 모르면서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즐기는 복수라고 한다.


필자에게 주먹을 휘두른 그 항공사 직원은 제일 낮은 등급의 하수들이 하는 복수를 한 셈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제일 높은 등급의 복수를 해 볼까? 복수는 복수를 낳고 칼 든 자 칼로 망한다고 했다. 비록 그날의 불쾌한 기억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필자는 아직 중국에서 할 일이 많고 훌륭하고 좋은 중국인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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