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물류부장 오달수 일본에 가다 (2)

ARTICLES

by 김편 2015. 5. 11. 15:18

본문

 

. 천동암 한화큐셀 글로벌 물류담당

 

오 부장은 이 세윤 주임을 불렀다.

“이 주임, 동경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회사 창고가 어디 인가요? 지금 창고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만......”

“지금 가신다구요?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고 가는것은 큰 실례가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오 부장은 기가 막혔다. ‘우리 회사 제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화주가 가서 확인하겠다는데 무슨 예약을 해야 하나! 출발하기 전에 전화로 요청하면 되지.’ 오 부장은 여직원과 말씨름하는 것이 싫어서 요시다 과장 다시 불렀다.

 

우여곡절 끝에 동경 근처에 있는 가와사키 물류센터를 방문했다. 2천 평 되는 창고에 중장비 부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왼쪽 랙에서는 소물제품이 중 2층 랙으로 팩킹과 재포장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적재되어 있었다. 오른쪽에는 대물 부품이 중량 랙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왼쪽과 오른쪽 제품의 입출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평치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오 부장은 우선 현재 재고 리스트를 WMS(창고관리 시스템)에서 프린트해서 로케이션 별로 Cycle Counting(전 제품 중 약 10% 재고조사)을 시작했다. 우선 로케이션 번호에 있는 제품명과 수량을 파악했는데 부족했다. 다른 곳을 다시 조사 했다. 재고가 또 부족했다. 또 다른 곳을 조사했다. 그런데 리스트에 있는 제품이 없었다. 10곳을 조사를 했는데 9곳이 제품이 없거나 부족했다. 순간 오 부장은 머리가 쭈뼛거리고 손에서 땀이 났다.

 

오 부장은 재고 조사를 하다가 중단하고 바로 이 법인 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 법인장님, 지금 가와사키 창고에서 일부 제품재고 조사를 하는데 시스템 재고와 실물재고가 맞지 않습니다. 근데, 언제 전수 실물재고 조사를 했나요?”

 

이 법인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송구스럽지만 영업에 치중하다보니 지금까지 한번도 전수 재고 조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오 부장은 너무나 놀라서 말문이 막혔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전체 창고를 대상으로 일본 지역 실물 재고 조사 일정을 정하여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창고에서 본 내용을 그대로 가감 없이 본사의 성 전무에게 보고해야겠습니다.”

 

이 법인장과 통화를 끝내고 창고 한 구석에서 물류업체 직원과 얘기하고 있는 요시다 과장을 보았다. 오 부장 머리가 번개에 맞은 것처럼 불꽃이 튀고 노기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저런 시뻘 놈이 있나! 재고가 안 맞은 것은 돈 숫자가 틀리다는 얘기인데 도대체 저 인간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한거지?’

“이 세윤 주임, 요시다에게 내가 지금 하는 말을 그대로 통역하세요. 우선 실물재고와 장부재고가 틀린 것은 가지고 있는 현금이 장부상 현금과 다르다는 것이다. 당신이 관리하는 돈 액수가 틀리다고 하면 사장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오 부장은 성난 얼굴로 요시다 과장을 심하게 질책했다. 요시다 과장은 일본의 명문대학인 게이오대를 졸업한 사람인데 한국에서 온 물류부장이 목청을 높이고 책망을 당하자 금세 얼굴이 시뻘게지고 코를 벌름거리며 오 부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오 부장은 요시다 과장에게 자기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한국말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xx새끼, 능력 없는 놈이 물류과장이라고! 내가 반드시 너 짤라 버릴 거야!” 오 부장이 큰 소리로 욕하는 소리에 놀란 이 세윤 주임은 놀라서 자리를 피하고 물류센터 직원들도 황급히 떠났다.

 

요시다 과장도 근처에 쌓여있는 아무 관계도 없는 팔레트를 발로 걷어차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물류센터에 덩그러니 남은 오 부장은 이국땅에 길을 잃어버린 나그네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오 부장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았다. 조금 전에 요시다 과장에게 쌍욕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일본 땅에서 물류진단을 1주일 안에 끝내야 하는데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괜한 정의감에 벌집을 쑤셔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어서......’

 

일본어도 못하고 이 나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 부장. 경거망동한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다. 오 부장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다 좀 전에 요시다 과장에게 쌍욕을 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자신의 화난 모습을 상기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그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와사키 창고에서 일본법인 사무실에 도착한 오 부장은 바로 이 법인장 집무실을 찾았다. 집무실을 문을 닫고 예의를 차릴 여유도 없이 오 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 법인장에게 따지듯이 얘기를 했다.

“이 법인장님, 가와사키 창고에서 사이클 카운팅(Cycle counting)을 했는데 재고가 90%이상 틀려요. 재고가 일치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큰 사건입니다. 일본 전체 전수 재고 조사 후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확인하고 본사 재무팀에게 보고하고 의사결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일본 법인이 아주 난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 이 법인장은 침묵 끝에 무겁게 입을 뗐다.

“오 부장님, 본사 재무팀에 보고하기 전에 제가 내부 회의를 좀 한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법인장 집무실을 나온 오 부장은 머리가 복잡했다. 이 사실을 그대로 성 전무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회사 동기인 이 법인장 입장을 봐서 보고를 늦추어서 해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다음 날 오 부장은 요시다 과장을 찾았다. 그는 집안 일 때문에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도, 어제 재고 차이분 때문에 심한 질책을 받아서 출근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그 정도 깨져서 출근을 안 한다면 영원히 상사에게 찍히는 것인데......, 일본 직장 생활은 참 편하고 스트레스 덜 받으면 사는 것 같다.’오 부장은 한편으로는 싫으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월급쟁이 입장에서 보면 일본 직장인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요시다 물류과장이 없어서 오 부장은 다른 일본법인의 물류 팀원들을 소집해서 회의를 했다. “지금 몇 개의 물류업체와 거래하고 있나요? 그리고 계약서 사본과 물류계약 요율을 누가 가지고 있나요”

오 부장은 물류팀에서 가장 오랜 근무한 후지 대리에게 관련 내용에 대해서n 요청을 했다. 후지 대리는 약간 통통한 몸집에 조그만 키, 곱슬머리에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뿔테 안경너머에 쌍꺼풀 수술을 했는지 유난히 눈꺼풀이 크게 보였다. 통통한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하얀 손목은 햇솜처럼 희고 탐스러운 함박눈처럼 복스러웠다.

 

후지 대리는 통통한 외모와는 달리 어린애처럼 수줍은 미소를 띠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오 부장님, 현재 10개 물류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데, 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2곳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물류 요율과 업체 거래는 요시다 과장이 직접하고 처리하고 있어 이 부문에 대해서는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오 부장은 깜짝 놀랐다. 순간적으로 요시다 과장과 물류업체와의 사이에 무엇인가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슨 말 인가요? 10개 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데 계약서는 2개 업체만 있고 물류 요율도 요시다 과장 혼자서 다 처리한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업체 선정과 물류비 관련하여 전혀 팀원들과 상의하지 않습니까?”

“업체 선정과 물류 요율 부문에 대해서는 1년 전에는 제가 1차적으로 검증 후 품의를 올리면 요시다 과장님이 최종 결정을 하고 업체선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물량이 갑자기 급증 한 이후부터 요시다 과장이 직접 업체와 미팅을 하고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원들에게는 통보만 하고 있습니다.”후지 대리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항변을 하고 있었다. 호텔 방으로 돌아 온 오 부장은 성 전무에게 서둘러 진행 경과를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현재 물류운영 상황을 보면서 이대로 시간을 두고 해결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바로 메일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성 전무님,

일본법인 출장 중에 중간보고를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물류수준이 최악입니다. 신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많은 문제 발생이 예상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1) 물류 계약관련

현재 일본 법인은 10개 물류 업체와 거래 하고 있으나 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2개 업체이고 그 중 한 업체는 계약기간이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8개 업체 계약 체결로 보관중인 제품 및 운송 중에 사고 발생시 Risk가 매우 큰 상태입니다. 더구나 계약된 업체도 계약서에 명기한 별첨의 계약 요율 내용이 없어 물류비가 적정하게 지급되고 있는지 사후 검증이 전혀 없습니다. 물류 창고 계약관련 하여 물류과장이 단독으로 업체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물류지불에 대한 사전/사후 검증프로세스가 없습니다. 심지어 물류 계약서 없이 업체가 청구한 금액으로 바로 지불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또한, 계약된 업체에도 물류성과지표를 평가하는 정량적인 KPI가 없어 업체를 객관화하여 관리 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전무(全無)한 실정입니다

 

2)물류비용 현황

창고운영과 (해상)운송비용은 통합관리 되고 있지 않으며 물류프로세스 상에 발생하는 COPQ(Cost of Poor Quality)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4년 누적 물류비용은 232015년 물량증가할 경우 40억으로 급증 할 것으로 예상하여 물류 Budget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3)가와사키 창고 Sampling 재고 실사

10개의 ItemSampling 실사 재고 파악한 결과 물류업체가 사용하는 창고관리시스템과 실사 재고 확인 결과 재고 절댓값 차이로 90%차이가 있습니다.

 

성 전무님, 제가 본 내용을 가감 없이 기술했습니다.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 현재로서는 매우 시급합니다. 현재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니 손이 떨립니다.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문제를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발 벗고 나서서 같이 해결하도록 인력 지원을 긴급으로 부탁합니다.

 

동경 출장 중에

오달수 드림

 

10분이 지나고 바로 성 전무에게 메일 회신이 왔다.

 

오 부장,

수고했습니다. 문제점을 찾았으니 개선대책을 세우고 실행합시다. 일본 법인이 최근 1,2년 동안 급성장해서 미처 준비를 못한 것도 있고 전문가가 없어서 못한 것도 있으니 오 부장이 혁신을 주도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까지 책임지도록 하세요. 그러려면 함께 일할 사람들이 필요할 텐데 우선 비전문 인력이라도 서울, 일본에서 급한 대로 지원받는 것으로 합시다. 필요인력, 소요기간을 정리해서 보고해주세요.

 

오 부장은 성 전무 메일을 받고 눈앞이 아뜩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성 전무 칭찬메일 이었다. 오 부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긴 호흡을 했다. 어둠이 내리는 동경 빌딩 숲에서 생존 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헤엄치는 한 마리 잉어를 발견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