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다시금 속도가 중요해진 시대
보여주기식 속도가 아닌 속도에 대한 방향성을 공유해야
사진=KT의 LTE 광고컷 중
글. 박승범 SCM칼럼리스트 / 편집. 엄지용 기자
한때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은 정보화 사회를 앞당긴 원동력으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빨리빨리’ 정신으로 인해 탄생한 비효율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런데 공급망 관리, 특히나 ‘스마트 공장’에 있어서 ‘빨리빨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속도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속도가 아니다. ‘빨리빨리’를 위한 과정에 공급망 참여자 모두가 합의하고 실행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니 고작 5년 전의 일이다. 2011년, 당시 경쟁사들에 비해 4G LTE 서비스 시장 진출이 늦었던 모 통신사는 자신들이 뒤늦게나마 LTE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을 몇 편의 티저 광고로 표현했다. 당시 그 티저 광고의 카피는 단 8글자였다. “성질급한 한국사람”
지금이야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다고 까맣게 잊은 듯하지만, 한때 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은 정보화 사회를 앞당긴 원동력으로 칭송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최근 들어서는 그 빨리빨리 정신을 실행하면 할수록 더 많은 비효율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국가적 중대사가 된 삼성 갤럭시노트7 발화문제도 빨리빨리 정신의 결과물이다. 아이폰보다 시장을 먼저 장악하기 위해 출시를 앞당기는 바람에 테스트가 부족했던 것이 그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굵직한 기업 경영의 위기 대부분은 결국 그 ‘빨리빨리’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해서 생겼다. 폭스바겐이 355달러짜리 질소산화물 저감장치를 달지 않아서 배출가스 조작을 하게 된 것은 비단 돈뿐만이 아니라 그걸 언제 소싱해서 달고 있겠느냐는 조급증 때문이리라.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빨리빨리’가 더 강조되는 시점은 그 정신이 칭송받던 그 시절이 아닌 바로 지금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점 대세가 되어가는 ‘제 4차 산업혁명’은 ICT (Information, Communication & Technology) 기술과 사물인터넷, 정보의 원활한 연결을 위한 범용성 높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과거보다 더 빠른 실행 속도와 더 빠른 의사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을 완성시킨 하나의 결정체가 바로 ‘스마트 공장’이다. 만약 그러한 솔루션들을 애써 도입해 놓고도 사용하는 것이 힘들고, 귀찮고, 어렵고, 두렵고, 안정화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공급업체의 재고와 공급계획 정보를 엑셀로 받아보고 있다면 어떨까. 자재명세서를 바꿔야 자동화 공정을 가동할 수 있는데 자재명세서를 제 때 바꾸지 못하므로 해당 자재가 투입되는 공정에서는 공급업체에 구두로 납품하라고 통보한다면 어떨까.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제조실행시스템)나 POP(Point of Production, 생산시점관리)와 연결된 생산계획을 바꾸지 않고 구두로 생산계획을 바꿔서 작업하라고 지시하면 어떨까. 유통업체에서는 행사 상품 아이템 선정을 바꿨는데 납품업체 영업부서 담당자들은 곧바로 발주를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상기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반복되면 결국 그 솔루션 전체, 아니 그 공급망 전체는 도저히 쓸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 ‘빨리빨리’가 강조되는 지금일수록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빨리빨리’보다는 그 ‘빨리빨리’를 위한 과정에 공급망 참여자 모두가 합의하고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걸 하면 내 일만 늘어나고 좋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공급망 참여자 전체의 합의는 공급망 전체가 건전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만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사람의 행동은 어지간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때로는 상위 경영진의 강제력을 동원해야 하고, 실제 많은 조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보여주기식 ‘빨리빨리’를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많은 IT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의 경우 처음에는 정말 원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프로젝트를 승인한 주체, 합의한 주체, 사용해야 할 사용자, 개발자, 프로젝트 리더 모두 조급하게 결과물을 기다리고 그 결과물에 상응하는 예산은 주지 않는 현상이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정해진 프로젝트 기간 안에 마치 그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구축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쓸 뿐, 정말 그것이 영속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일하는 과정 혁신에 기여하는지는 고려할 수 없다.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어 놓으면 시스템은 중간에 흐름이 끊기고 쓸데없는 엑셀 작업과 타부서와의 충돌만 늘어난다.
이 때 누군가가 용기를 낸다. “과거에 구축한 시스템이 문제가 많았으니 완전히 보완하겠다”고 보고하는 것이다. 보고를 받은 사람은 혀를 차면서도 “문제가 많으면 개선해야지, 그래 해봐라”라고 격려해 준다. 정작 개선하고 바뀌어야 할 것은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고, 그것부터 바뀌었으면 원활하게 시스템 구축이 될 것을, 시스템만 계속 돈 써가며 바꾸는 악순환에 빠진다. “뭔가 보여주겠다”던 분은 이미 14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아직도 “뭔가 보여드리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모든 IT 프로젝트가 마찬가지지만, 스마트 공장만큼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스마트 공장은 우리나라 제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평상시 시스템을 사용해서 일을 하지 않고 시스템 사용을 요식행위로 알며, 시스템 구축이나 개선이 회사 대표의 주머니 채워주는 일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정말 그런 IT 프로젝트가 그런 역할만을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시간을 두고 왜 스마트 공장을 해야 하는지, 그것이 궁극적으로 회사에 어떤 이득을 주는지를 구성원 모두가 이해한 상태에서 시작해야 IT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다. 만약 이것조차 여타 IT 프로젝트라 생각하고 IT 담당자에게 맡기기만 하고, “뭔가 보여줄” 일에만 급급해 하면, 그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뭔가 보여주기만 하고” 끝난다. 그래서 SCM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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