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남동현 트레드링스 이사
세계적 의류회사, 물류로 성공하다
미국의 경제매체 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부호들의 자산 순위를 공개한다. 이 순위에는 성공적인 물류시스템을 통해 거부가 된 인물도 포함돼 있다. 바로 아만시오 오르테가(Amacio Ortega) 인디텍스(Inditex) 회장이다. 인디텍스는 세계적인 SPA 의류 브랜드 자라(Zara)가 속한 스페인 최대 의류회사다. 의류회사 회장이 어떻게 물류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그 전에 우선 인디텍스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아만시오 회장은 1972년 스페인 라코루냐(A Coruna)에서 여성 나이트가운 등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1975년 처음 자라 매장을 열었다. 자라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인기 있고 비싼’ 브랜드의 디자인을 본떠 의류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것이었다. 시장의 반응은 좋았다. 아만시오 회장은 이후 갈라시아(Galicia) 지방 전역에 자라 매장을 열었고, 이후 스페인 전역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1988년 포르투갈, 1989년 미국, 1990년 프랑스 등, 해외시장 진출도 순조로웠다.
2016년 말 기준, 인디텍스사는 93개의 국가에 7,300개 이상의 매장과 16만 2,000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233억 유로에 이르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의류 유통 브랜드에 걸맞은 수치다. 이 어마어마한 수치에 담겨진 회사의 철학은 바로 ‘Instant Fashion’이다. 이는 아만시오 회장이 자라의 첫 매장을 열었을 때부터 간직해온 것으로서, 민감한 의류 시장 트렌드를 파악해 디자인, 제조, 유통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하고, 여기에 최고의 물류시스템을 더해 제품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스페인에 모였다 다시 흩어지는 옷들
인디텍스의 주요 물류 창고는 모두 스페인에 위치해 있다. 라코루냐,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사라고사 등에 인디텍스 계열 브랜드의 최첨단 물류 유통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 진출한 인디텍스의 물류센터가 모두 스페인에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디텍스의 제조 및 유통구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인디텍스는 유럽과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유럽에 685개, 아시아에 836개의 공급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대부분은 가봉(假縫) 공정 정도를 담당하는 제조업체들이다. 인디텍스의 공장은 각 공정 단계별로 세분화돼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공정의 마지막 단계인 염색, 프린팅, 마감 등 부가가치가 높은 공정이 대부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모로코 등 스페인 인접 국가에서 처리된다는 것이다. 즉, 중국, 방글라데시 등에서 만들어진 옷이 스페인으로 모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스페인에 위치한 각 브랜드 물류 유통 창고에 모인 의류가 또 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 자라의 공급자와 공장(출처: Inditex 2015 Annual Report)
그런데 이처럼 국가마다 제조 공정에 따른 공장을 나누는 것이 비용 절감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 것일까? 인디텍스는 실적으로 그 효율성을 증명하고 있다. 인디텍스의 2016년 매출은 2015년 대비 12% 상승하여 233억 유로를 기록했다. 순이익 또한 전년 대비 10% 상승했다.
모범적인 JIT시스템
또한 인디텍스는 JIT(Just-in-Time)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인디텍스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재고관리 부분에 절대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다. 강남대로만 지나가더라도 재고떨이 세일을 하는 의류 매장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자라의 의류가 행사 매장에서 보이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인디텍스의 통계에 따르면, 인디텍스 산하 브랜드 제품은 항상 정가의 80% 이상에 판매된다. 재고를 업자에게 킬로그램(Kg) 단위로 떨이 판매하는 일이 적다는 뜻이다. 재고 관리가 뛰어나기 때문에 재무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이다. 필자는 대학 시절 토요타 케이스를 통해 JIT 시스템을 배웠는데, 인디텍스 역시 모범적인 사례로 거론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JIT를 잘 활용한 결과는, 인디텍스가 세계 최단의 ‘디자인부터 매장에 전시되까지의 주기(Design to Retail Cycle)’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여타 의류 브랜드의 해당 주기가 최대 6개월인 것에 비해 인디텍스는 최대 5주, 빠르면 20일 안에 디자인부터 전시까지가 이뤄진다.
우선 본사 디자이너들이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디자인을 빠르게 뽑아내면, 해당 디자인의 의류가 매주 2번 매장에 도착한다. 필자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 맨하탄 5번가의 자라 매장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한 적 있다. 실제로 매주 두 번 매장 MD와 코디네이터가 상의하여 팜파일럿에 올라온 신규 제품을 여성, 남성, 아이 섹션별로 주문하였고, 주문된 제품들이 다시 매주 두 번 매장에 도착했다. 흥미로운 것은 몇 주 전 런웨이에서 선보여진 옷의 디자인이 반영된 의류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매장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인디텍스 본사 경영진 중 한 명인 파블로 마토 페레즈(Pablo Mato Perez)는 “인디텍스의 브랜드별 유통센터와 대규모 물류센터, 그리고 자체 개발한 물류 시스템 덕분에 전 세계 매장으로 최대 48시간 내에 의류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벤더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가시성’의 확보가 회사 시스템과 시너지를 일으켜 비용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었으며, 이는 회사의 수익성 향상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특히 그룹 전체 매출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자라의 경우 별도의 대형 물류센터 2개를 마드리드와 사라고사에 구축하여 언제나 매장에 여유 재고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자라의 상품 제조·유통 과정(자료: Inditex Strategy Report, Bridge Consulting)
‘Fast Fashion’을 실천하기 위해
그렇다면 인디텍스가 남들보다 빠르게 제품을 만들고, 전 세계 각 매장에 유통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인디텍스가 기울여온 노력을 살펴보자.
첫째, 인디텍스와 벤더 사이에 체결하는 계약이다. 인디텍스는 모든 벤더와 배타적(Exclusive) 계약을 맺는다. 즉, 벤더는 오직 인디텍스의 물량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벤더가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인디텍스는 벤더에게 충분한 물량을 제공할 뿐 아니라, 벤더가 시스템 및 제품 품질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벤더의 경쟁력은 오히려 높아진다.
또한 인디텍스는 벤더가 자사의 시스템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교육의 효과는 무엇일까? 인디텍스는 벤더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제조 공정이 멈추거나 지연되는 일이 적어진다. 나아가 사고로 인한 지연 리스크(Risk) 비용도 감소하게 된다. 이는 초기 교육에 드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편 교육을 받은 벤더들은 차후 인디텍스의 물량을 처리하지 않더라도 경쟁사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둘째, ‘가시성’의 확보다. 인디텍스의 벤더는 모두 인디텍스의 유통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재고부터 제조, 출하, 물류까지를 모두 관리한다. 이를 통해 인디텍스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공급망 추적(Traceability of Supply Chain)이 이뤄진다. 인디텍스는 IT 기술을 활용해 한 가지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단과 자재들이 어디서 어떻게 가공되고 있는지, 또 언제 어디에 있는지, 가봉이 완료된 제품이 스페인 소재의 브랜드별 물류센터에 잘 입고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인디텍스가 모든 공장과 물류 과정을 상세히 파악하고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물류센터의 자동화이다. 인디텍스의 물류센터는 IoT, 머신러닝, 자동화 등의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인디텍스는 의류의 특성에 맞게 물류센터 전 시스템을 자동화했다. 전 세계 매장에서 MD와 코디네이터가 주문한 신규 제품은 인디텍스 산하 브랜드별로 구축된 물류센터에 자동으로 배정되며, 물류센터는 매주 두 번씩 물건을 만들어 내보낸다. 그 결과, 유럽 등 물류센터 근처에 있는 매장에는 24시간, 기타 지역에는 48시간 내에 신상품이 도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디텍스는 매장 경험(Experience)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명품 브랜드는 매 시즌 천문학적인 금액을 오프라인 및 온라인 마케팅에 쏟아 붓는다. 동시에 매장 입장 가능 고객의 수를 최소화함으로써 구매력을 가진 소수 고객에 집중한다. 반면 인디텍스는 마케팅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프로모션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유동 인구가 많으며, 누구든지 와서 볼 수 있는 지역에 대형 매장을 오픈하여 고객을 끌어 모은다.
인디텍스는 마케팅에서 아낀 비용을 제조·물류·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투자한다. 전 세계를 연결하여 트렌디한 의류를 빠르게 제공하기 위함이다. 결국 ‘P(Price) × Q(Quantity) = R(Revenue)’이다. 즉 비싼 가격에 많은 제품을 팔아야 수익이 발생하는데, 같은 돈을 쓸 때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인디텍스는 이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 아만시오 회장에 이어 인디텍스 회장이 된 파블로 이슬라(Pablo Isla) CEO는 운영비용 통제를 통해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인디텍스는 지난 수십 년간 ‘Fast Fashion’, ‘Instant Fashion’이라는 회사의 철학을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었다. 물론 인디텍스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루 수만 명이 방문하는 자라 매장에서 직접 일해 본 필자의 이력과, 자라의 온라인 쇼핑몰이 열린 이후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한 경험 등에 미뤄볼 때 인디텍스에도 아직 개선해야 할 점들이 남아있다. 가령 사이즈 미스나 변심으로 온라인에서 구매한 제품을 교환하는 과정은 불편했고, 오프라인 매장에 재고가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아마 물류센터가 위치해 있는 스페인과 매장 사이의 물리적 거리 때문일 것이다.
현재 패션업계에는 자라뿐 아니라 H&M이나 유니클로처럼 각자의 전략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업체가 많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왔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며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 인디텍스가 1988년부터 해외에 진출하며 최적화해 놓은 유통 및 물류시스템, 그리고 그들의 경영철학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매장에서 자라의 ‘Fast Fasion’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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