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천동암의 물류에세이] 혁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INNOVATION

by 김편 2017. 7. 11. 18:04

본문

%ea%b8%b4%ea%b1%b0 01

글. 천동암 교수

 

중국편

 

응급환자를 실어 나르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 부장의 눈에 가쁜 숨을 몰아세우며 사무실로 뛰어오는 바바라 짱이 보였다.

 

“오 부장님, 큰일 났어요. 맥스구 부장이 독극물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어요. 지금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고 있습니다. 호흡은 있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래요. 지난번 보고 드린 대로 맥스구 부장은 자신이 2대 주주로 있는 강서유리의 물류자회사인 해강물류를 입찰업체 후보에 포함시키라고 하는 등의 개인비리 혐의로 내부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리적인 압박감이 심했는지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제가 내부 고발을 했는데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울먹였다. 그녀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고여 있었다.

 

“바바라 차장,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직원들과 함께 보내며 직원 개개인의 사정을 알아가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건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때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공과사가 모호해지면, 어떤 계기로 동료 간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게 되는 것이지요. 바바라 차장이 이번에 맥스구 부장을 내부고발한 것은 순수하게 회사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오 부장은 공과 사, 그리고 좋은 관계와 나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바바라 차장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을 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간은 분명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동자는 풀려있었고, 평소의 날카로운 총기도 없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그녀의 눈물 속에 무언가 말 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오 부장은 직감할 수 있었다. 오 부장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죽고 사는 것,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직장에 나와 일하고, 돈을 벌고, 코에 단내가 나도록 열심히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죽음으로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무엇이기에 맥스구 부장이 자살 시도까지 한 것일까?’

 

맥스구 부장은 코마(Coma)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긴 맥스구 부장이 결국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회사 부고란을 통해서 알려졌다. 맥스구 부장의 자살 사건으로 인해 그의 개인비리 혐의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는 중단되었다. 공장 업무 운영을 혁신하는 데에만 집중하라는 사장의 특별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간밤에 사납게 포효하던 태풍이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는 듯 사라지는 것처럼, 난통 공장의 앞마당에도, 맥스구 부장의 책상에도 다시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아침 햇살은 마치 빛 회초리와 같아서 바바라 짱의 등짝과 오 부장의 어깨를 매섭게 후려쳤다. 망연자실한 오 부장은 공장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연신 허공으로 뿜어 뱉었다. 오 부장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짙은 담배연기는 일순간 옅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이 연기처럼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 연기는 시작과 끝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성 전무의 전화였다. “오 부장, 거기 사정 때문에 심란한 것은 아는데, 그래도 일은 해야지! 괜히 죄책감 갖지 말고 일하자, 응? 이번에 2분기 경영회의에서 나온 얘긴데, 한국 창고와 일본 창고의 재고가 너무 많아서 전 분기에 비해 재고비와 창고비가 계속 상승하는 게 문제인가 봐. 중국 공장의 창고 재고와 한국의 영업 창고 재고, 그리고 일본의 영업 창고 재고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봐. 그리고 어차피 재고를 보관할 거라면 중국의 창고료가 비교적 저렴하니, 그곳에 재고를 오래 보관하되 한국과 일본의 창고에도 재고를 적시에 보급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해보라구! 오 부장, 힘내고!”

 

성 전무는 평소와 다르게 나긋나긋한 어조로 오 부장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맥스구 부장의 자살은 회사에 큰 파문을 일으킨 듯했다. 성 전무처럼 냉혈한에게 사람의 온기를 돌게 하고 사나운 발톱을 무디게 만들다니. 아마 맥스구 부장의 자살이 성 전무에게 인생무상과 허무함의 감정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다시 사무실로 내려와 성 전무의 말을 곱씹고 있을 때였다. 나희덕 과장이 찾아와 과거 자신이 ‘S전자 한국 지역’에서 전자제품 판매점에 재고를 후보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중국 공장에서 한국과 일본 공장으로 국제 후보충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오 부장님, 지난번 저희 TF팀과 일본 법인의 노력을 통해 일본의 창고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창고 임대비용은 중국 공장 인근의 창고에 비해 약 8배 정도 비쌉니다. 아마 성 전무는 생각은 다음 세 가지일 것입니다. 첫째, 중국과 한국과 일본 창고의 재고를 합친 총재고를 동일하게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과 일본의 영업 창고에는 최소한의 안전재고만을 유지하고 대신 중국의 공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후보충을 받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실행한다. 둘째, 한국과 일본 법인의 창고에 재고를 적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국 공장의 창고에서 해당 국가까지의 해상 리드타임을 감안해서 정교한 프로세스와 물류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생산 리드타임을 줄여서 일본과 한국으로 향하는 제품을 생산에 반영하여 총재고를 줄이는 방안을 함께 강구한다.”


나희덕 과장은 APICS에서 주관하는 CPIM(생산재고 관리 국제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고, 다년간의 물류 프로젝트 경험도 있어 문제를 정확히 짚어낼 줄 알았다.

 

“나 과정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각 국가 영업 창고의 재고일수를 점검하고, 제품을 푸시(Push)하고 풀(Pull)할 오더를 내리는 데스크 운영 주체를 정해야할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창고 보관료의 세부적인 단가 비교는 됐나요?”

창고 보관료 세부 단가 분석

 

“중국 공장에서 오더 운영의 주체를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공장의 내부 부서 간에 R&R을 잘 정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공장 내부에서는 세 개 부서, 즉 영업, 창고, 국제운송 부서와 협업을 해야 합니다. 국가별 창고보관료 단가 비교는 완료됐습니다. 중국 난통은 11$/㎡, 일본 93$/㎡, 한국 89$/㎡입니다. 참고로 상해 항만 근처의 타이창 창고임대료는 42$/㎡입입니다.”

 

“나 과장이 조사를 아주 잘 했군요. 그런데 상해 타이창의 창고는 왜 굳이 비교했나요?” 오 부장이 안경을 머리 위로 추켜올리며 호기심에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상해 항만 근처의 창고 임대료 수준을 점검한 이유는 난통 공장 외부 창고를 찾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과 일본의 창고에 판매 대비 어느 정도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지도 파악했습니다. 일본 법인에서는 평균적으로 72일 동안 영업재고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재고일수는 65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 법인의 매출은 원화 기준으로 약 1조 원에 이르기 때문에 재고수량도 많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약 1천억 원 정도를 팔고 있어 상대적으로 재고량이 적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수치입니다. 판매 대비 재고에 대한 재고일수가 65일이라는 것은 그것이 결코 적은 재고량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오 부장은 나 과장과 장시간에 걸쳐 토의하고 정리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후보충의 정의와 목적을 살핀 뒤 후보충의 방향성을 정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창고보관료를 비교했으며, 한국과 일본 법인의 재고 현황을 각각 파악했다. 그 비용이 타당하다는 명분도 확보했다. 그렇다면 후보충 시스템에 KPI(성과지표)를 만들어 그것이 잘 운영되는지를 수시로 파악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재고를 줄이려다가 오히려 결품이 생겨 판매의 기회를 상실하는 위험이 발생해선 안 된다. 그것이 더 큰 위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한국 재고일수 현황 비교

%eb%a1%9c%ec%a7%80%ec%8a%a4%ed%83%80%ed%8f%ac%ec%ba%90%ec%8a%a4%ed%8a%b82017


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