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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범의 공급망뒤집기] “물류가 봉이냐”, 할 말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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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7. 8.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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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승범 SCM칼럼리스트

 

필자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을 꺼내보려고 한다. 지인이 다니는 회사는 전국에 수십 개의 매장을 보유한 한 대형 거래선 A사와 납품 계약을 맺었다. 매장 직접 납품이 아니라 거래선 물류센터에 납품을 하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A사 영업부는 지인의 회사에 매장 직접 납품을 은근슬쩍 요구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물류였다. 물류센터 납품을 전제로 주문건수와 물량을 계산해 물류비 계약을 맺었는데, 매장 직접 납품을 하려다 보니 물류비가 예상보다 늘어난 것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지인에게 마지막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지인의 회사는 A사에 매장 직접 납품을 중단했다고 한다.

 

대단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A사 영업부가 매출 감소를 이유로 심한 반대를 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당장 매출에 영향을 끼치는 그런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화주는 물류의 사정 따위 못 본 체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적어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 분위기에선 그렇다.) 그러지도 않았다.

 

물류는 봉이 아니다

 

사실 물류의 처지라는 게 참 딱하고 서글프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고객을 위해 간도 쓸개도 내줘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허리를 굽히고 한 수 지고 들어가면, 상대방은 그 호의가 권리인 양 착각한다.

 

일본 위키백과에서 ‘미쓰코시 사건(三越事件)’이라는 유명한 사건을 검색해보자. 1972년 미쓰코시백화점 사장에 취임한 ‘오카다 시게루’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임원들을 차례대로 내보내고 불투명한 회계를 통해 회사를 사유화했다. 이후 그는 협력사에 회사 물건을 강매했고, 회사 실적이 나빠지자 온갖 부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1982년 미쓰코시백화점 니혼바시점에서 열린 고대 페르시아 보물전에는 다수의 위작을 전시했다가 언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당시 사외이사였던 ‘고야마 고로’는 오카다 사장 반대파를 결집하여 1982년 9월 22일 이사회에서 오카다 사장의 해임안을 발의했고, 오카다 사장을 제외한 참석자 16명 만장일치로 해임에 성공했다.

 

만화책의 한 에피소드 같은 사건(가령 <시마사장> 같은)을 꺼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 사건의 한편에 등장하는 일본의 국가대표 물류기업 ‘야마토운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야마토운수의 창업자 ‘오구라 야스나리’는 경영난을 겪던 1923년 미쓰코시와 처음 인연을 맺은 후 거래에 무척 공을 들였다. 미쓰코시 사건 당시에도 야마토운수는 미쓰코시백화점의 단독 배송업자였다.

 

미쓰코시백화점은 경영이 어려워지자 야마토운수에도 부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전용 배송차가 미쓰코시백화점 배송센터에 들어왔을 때 주차비를 받고, 배송센터에 상주하는 야마토운수 직원의 사무실 사용료도 받았다. 이것도 모자라 미쓰코시백화점은 1979년 1월에 개봉한 영화 모에루아키(불타는 가을이라는 뜻으로 동명의 소설을 영화한 것이며, 오카다 사장이 기획한 작품이라고 한다.)의 전매권을 영화와 아무 관계없는 야마코운수에 강매했다. 결국 누적된 적자와 부당행위를 견딜 수 없었던 야마토운수는 1979년 2월, 50년 이상 사업 파트너였던 미쓰코시백화점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사람은 창업주 오구라 야스나리의 아들이자, 후일 택배사업을 집중 육성하여 지금의 야마토운수를 이룩한 오구라 마사오 사장이었다.

 

그런데 2010년 4월 1일, 야마토운수는 미쓰코시와 결별한 지 31년 만에 미쓰코시이세탄(2008년 미쓰코시와 이세탄의 합병으로 탄생한 회사)과 일본 전역 배송 계약을 체결했다. 31년 만에 야마토운수가 미쓰코시와 다시 손을 잡게 된 것은 미쓰코시와 합병한 이세탄과 야마토운수 간의 사이가 무척 좋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야마토운수는 대대적인 경영혁신 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 3월 결산 결과 영업이익이 전년의 절반으로 뚝 떨어진 탓이었다. 경영혁신 계획안에는 천 개 주요 거래선과의 운임 재협상이 들어있었다. 이 운임 재협상에는 평균 15% 이상의 운임 인상 및 서비스 축소가 포함된 모양이다. 운임 재협상을 하는 상대방 가운데는 요즘 핫한 ‘아마존재팬’(아마존코리아와는 달리 일본에는 대규모 물류센터도 보유하고 있다)도 있다. 최근 뉴스를 보니 야마토운수는 당일배송에 대해 할증요금도 청구할 계획이라 한다.

 

이런 협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단순히 인구학적 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필자는 고도성장기에 50년 동안 이어오던 파트너십을 과감하게 청산한 야마토운수의 역사가 상대방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협상력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류도 입이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일본 경영의 신으로 떠받들었던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말을 했다. “고객은 왕이다. 왕은 때로는 가신이나 백성들에게 불합리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 때 왕에게 이것은 불합리하다고 간언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필자는 몇 년 전 우리나라의 ‘극일(克日: 일본을 이김)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왜 물류는 극일을 하지 못하냐며 따졌던 적이 있다. 일본의 야마토운수나 마쓰시타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할 말을 하는 것조차 일본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자. 이 기고가 지금도 물류 현장에서 고객 만족을 위해 간 쓸개 몽땅 내주면서 동분서주하는 모든 물류인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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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범

물류에 뜻을 두고, 물류센터 현장분류부터 '운송회사'까지 전전한 끝에 최근 대형 제조업체 물류IT 업무를 맡고 있는 평범한 물류인입니다. {개인블로그}를 통해 물류 관점에서 본 세상 이야기와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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