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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서 살아남기’, 구호물자는 어떻게 흐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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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7. 10. 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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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거점으로 부상하는 편의점…국내는 BGF리테일이 정부와 업무협약 체결

2016년 1월 폭설로 인한 제주공항 마비 이후, 어떤 대책 생겼나

구호물자물류, 제주도

 

글. 양석훈 기자

 

어느 여름, ‘매미’라는 태풍이 불었던 때로 기억한다. 평소처럼 학교에 가려고 눈을 떴더니 태풍 때문에 휴교한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등교를 안 한다는 생각에 그저 신이 났다. 다음날 아침 태풍이 잠잠해져 등교했더니 학교가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교실에는 구정물에 쓰레기가 떠다녔고, 한 선생님의 차는 떨어진 변압기에 깔려 찌그러져 있었다. 급식소는 텅텅 비어버렸는데, 학교 옆을 흐르는 개천에 물이 불어 의자와 식탁부터 각종 조리 및 세척 시설까지를 몽땅 쓸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학생들은 한동안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했다. 또 작년 겨울에는 32년만의 대폭설로 제주공항이 마비돼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초유의 항공대란을 겪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제주도가 각종 재난과 재해에 친숙한(?) 곳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여름에는 꼭 한두 번씩 태풍이 거쳐 가고, 매미 때처럼 가끔은 초대형 태풍이 불어 도시를 난리법석으로 만들기도 한다.(다행히 아직까지 올해 태풍은 모두 제주를 빗겨가고 있다.) 게다가 산간지역에는 눈도 많이 내려 교통이 자주 끊긴다.

 

재난과 재해는 시간과 장소를 안 가린다. 매미처럼 도민에게 피해를 안길 수도 있고, 작년 폭설처럼 관광객에게 원치 않는 불편을 선사하기도 한다. 게다가 제주도는 육지와 고립된 ‘섬’이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물류의 큰 축을 담당하는 배나 비행기가 뜰 수 없다. 물류의 단절이 지속되면 제주도 내에서 보관하고 있는 물건을 긴급하게 융통해 이재민이나 공항에 갇힌 관광객에게 공급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물건의 이동을 ‘구호물자 물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보다 큰 범주에선 ‘인도주의적 물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재난·재해 현장으로 공급되는 구호물자에는 어떤 물건이 포함돼 있는 걸까. 구호물자는 어떤 체계에 따라, 어떤 경로를 통해 이동하는 걸까. 특히 재난이나 재해는 그 피해 규모를 사전에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데, 구호물자의 재고는 충분하게 확보돼 있는 걸까.

 

만약 이재민이 됐다면

 

두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 우선 첫 번째 시나리오. 제주도에서 이재민이 된 경우다. 가령 태풍으로 집이 무너졌다고 해보자. 집에 고립됐는데 당장을 버틸 생필품이 부족하거나 집이 무너지며 가족 중 한 명이 다쳐 의약품이 필요하다고 치자.

 

그 생필품과 의약품은 어디서 올까. 이재민이 피해 상황을 지자체에 신고하면, 지장자치단체는 해당 내용을 중앙 정부(행정안전부)에 보고한다. 현재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행안부(과거 국민안전처가 하던 일이, 국민안전처가 없어짐에 따라 행안부 내 재난안전관리본부로 이관됐다.)가 맡는다. 그 지휘체계 아래 각 지자체가 포함돼 있다.

 

구호물자는 재난·재해 발생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공급되는 게 원칙이다.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속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재난·재해 발생지역에 1차적으로 구호물자를 공급하는 역할은 각 지자체가 맡는다. 이를 위해 행안부는 각 지자체별로 구호사업법이 지정한 응급구호세트와 취사구호세트를 일정 수량 이상 비치해두도록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지자체가 자체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긴급 상황에서 불출해 사용하고, 나머지 일부는 경기도 파주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에 위치한 전국재해구호협회의 물류센터에서 위탁받아 운영한다.

 

제주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의 구호물자 중 일부는 제주도청이 운영하는 자체 창고에 보관돼 있고, 다른 일부는 경남 함양에 있는 전국재해구호협회의 물류센터에 보관돼 있다. 누군가 폭우로 무너져 내린 집에 고립됐을 때, 그곳으로 가장 먼저 도착하는 구호물자는 제주도에서 자체보관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제주도청에 문의한 결과, 도내에 재난이나 재해가 발생할 때 이재민을 구호시설로 대피시키고 응급구호세트를 지원하는 업무는 제주 도청 내 복지청소년과가 맡고 있었다. 제주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 구호물자창고에 자체 보관하고 있는 구호물자는 응급구호세트 1,565세트, 취사구호세트 855세트, 모포 2,120개 등이다.(8월 18일 기준) 한편 재난·재해 현장에서 필요한 식료품은 우선 민간에서 공급받아 이재민에게 일단 보급한 뒤 사후 정산한다.

 

구호거점으로 부상하는 편의점

 

그러나 제주도에서 보관하고 있는 구호물자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재난이나 재해는 언제 발생할지 모를뿐더러 사전에 피해 규모를 예측할 수도 없다. 구호물자의 적정 재고량이 얼마인지 알기 쉽지 않다는 거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제주도는 육지와 동떨어진 섬인데다가, 제주의 긴급 상황에 쓰이는 구호물자의 일부는 경남 함양의 전국재해구호협회 창고에 보관돼 있다. 재난·재해 피해가 커졌을 때 구호물자가 신속하게 제주로 이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지난 2015년 1월 정부(국민안전처)와 전국재난구호협회, BGF리테일은 ‘재난 예방 및 구호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BGF리테일 관계자 따르면, 해당 업무협약의 주요 내용은 일상생활에서 재난 예방과 재난 발생 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호활동을 펼치는 것이며, (3개 기관이) 각자의 전문성에 기반하여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실증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해당 업무 협약의 요는 재난이나 재해와 같은 긴급 상황 발생하면 공적 물자건 민간 물자건 일단 갖다 쓰자는 것이다. 특히 최근 편의점은 전국에 촘촘하게 짜인 유통망을 바탕으로 구호 현장에 필요한 물자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구호거점으로서 부상하고 있다. 구호거점으로서 편의점의 가능성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당시 편의점은 재해 발생 직후 가장 앞서 문을 열어 식료품 등의 구호물자를 피해 지역으로 공급했을 뿐 아니라 피해 지역 주민들의 정보센터 역할과 모금창구의 역할까지 수행했다.

 

국내에서도 2015년 업무협약 체결 뒤, BGF리테일은 전국 21개 물류거점과 8,400여 CU 매장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재민에게 지원되는 재해구호물자를 상시 보관하고 재난 발생 시 이를 수송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해당 업무협약을 통해 전국에 2곳(경기 파주와 경남 함양)뿐인 전국재해구호협회 물류센터에 CU의 물류센터를 더해 구호물자를 분산보관하고 물품의 이동거리를 단축할 수 있게 됐다”며 “이러한 네트워크 덕분에 순창군, 격리마을 지원, 태풍 차바 피해지역 지원, 강릉 산불피해지역 지원, 청주 침수피해지역 지원 등 모든 현장에 CU가 가장 발 빠르게 지원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2016년 1월, 폭설로 제주공항이 마비됐을 때도 CU 물류센터에 보관돼 있던 응급구호세트 400개가 공항에 공급된 바 있다.

 

CU 물류센터에서 피해 지역까지 구호물자가 이동하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재난이 발생하면 행안부에 지원 요청이 들어온다. 이후 행안부의 재난구호과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BGF리테일 측에 구호물자 지원 요청을 하면, 피해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CU 물류센터에서 구호물자가 불출돼 해당 지역까지 이동한다.

 

한편 현재 제주도에에서 CU편의점의 물류는 제양항공해운이라는 물류사가 대행하고 있다. 제양항공해운 관계자는 “CU 물류센터에 재해 구호품을 항시 비치하고 있다가 요청이 들어오면 (기존 편의점 물류에 사용하고 있는) 차량과 인원을 활용해 구호물자를 피해 지역까지 배송한다”고 전했다. 제양항공해운 관계자에 따르면, 담요와 의약품, 생필품 등을 포함하는 구호물자는 세트 단위로 포장돼 구비돼 있으며, 현재 창고에 500개 이상의 구호물자 세트가 보관돼 있다. 한편 식료품은 유통기한 등의 문제 때문에 창고에 별도로 보관돼 있지 않고, 평시에 점포에 배송하는 물건 중 피해 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것이 추려져 긴급 지원된다.

 

이러한 편의점 구호물자는 그야말로 ‘긴급’한 상황에 활용된다. 급한 불이 꺼지면, 경남 함양의 전국재해구호협회 창고에 보관돼 있는 구호물자와 적십자가 운용하는 구호물자 등이 피해 지역에 공급된다. 여기까지가 재난·재해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공급되는 구호물자가 흐르는 대략적인 모습이다. 요약하자면 재난·재해 대응은 시군구청에서부터 광역시도, 전국 단위로 확대되며, 긴급한 상황에서는 편의점으로 대표되는 민간의 물자가 활용되기도 한다.

 

섬 속의 섬에 갇히다

 

두 번째 시나리오. 휴가차 제주도에 방문했는데 갑작스러운 기상 문제로 공항에 고립됐다고 가정해보자. 실제 이러한 일은 작년 1월에 벌어졌다. 당시 제주도는 행안부(당시 국민안전처)에 긴급하게 지원 요청을 했고, 그에 따라 BGF리테일이 제주 CU 물류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던 구호물자를 공항에 지원했다.

 

당시 사태는 제주도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생각보다 매우 쉽게 연착되고 결항되는 일도 잦다. 당장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기상 문제로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고 해보자. 잘 알다시피 제주공항 근처에는 마땅히 묵을 곳, 먹을 곳도 없다. 이용 가능한 가장 빠른 비행기를 잡아타기 위해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제주공항은 섬 속의 또 다른 섬이 된다.

 

그 작은 섬 속에 고립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자는 누가 어떻게 공급할까. 2016년 1월에는 제주공항 항공편 운항이 50시간가량 중단됨에 따라 관광객과 도민 9만 명의 발이 묶였다. 자그마치 9만 명이다. 그런데 BGF리테일 쪽에서 공급된 구호물자는 400세트에 불과했고, 당시 공항과 제주도의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와 같은 사태를 겪고 난 뒤 제주도는 공항공사, 제주지방항공청과 함께 ‘항공기 결항 시 체객 불편해소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공항에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체류객이 겪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했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각 기관은 모포, 매트 등 지원물자를 사전에 확보·비축함은 물론 교통·의료·자원봉사를 위해 민간업자·단체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 유사시 신속히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상 문제 등으로 항공기가 비정상운항하여 심야 체류객이 발생할 경우, 공항에서 보유하고 있는 구호물자가 체류객에게 공급된다.


공항공사에 따르면, 현재 제주공항은 모포와 메트리스를 각각 1,500개씩, 칫솔치약 세트 1,000개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제주도 역시 자체적으로 담요와 매트리스, 베개 등이 포함된 구호물자 패키지를 구비해두고 있다. 제주도청 관광정책과에 문의한 결과, 제주도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구호물자 패키지는 2,000개가량이다.

 

정말 충분한가

 

2014년 세월호 참사부터 올해 AI 파동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발생하는 큼직한 자연재해, 사회재난 등으로 구호물자의 물류를 포함한 인도주의적 물류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재해·재난에 대응할 만한 충분한 체계와 물자를 갖추고 있을까. 조금은 의문스럽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민안전처 시절 재난·재해의 대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제주와 같은 특수한 곳에는 보다 특별한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을 준비하느냐고 묻자,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지자체에서는 어떨까. 제주도청 관계자에게 아주 심각한 상황을 상정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현재까지 그런 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본 기자가 물정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확보한 자원이 충분할 수도 있다. 2016년 1월 제주공항의 폭설 사태가 매우 특수한 케이스였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재난과 재해는 특수하다. 재고가 부족하면 곧바로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구호물자의 물류에서는 재고 고갈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즉,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충분히 안전한 수준의 구호물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게 설사 다른 비용을 높이더라도 말이다.

 

안전재고 확보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책 개발과 민관협력 체계 구축이 잘 이뤄지기를 바란다. 끝으로, 꾸준히 언급했지만, 무엇보다 외로운 섬 제주도에 관심을 가져주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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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훈 기자

따봉충이 되고자 합니다. 단 하나의 따봉(좋아요)이라도 더 받기 위해 공부합니다.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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