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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섭의 데이터바로보기]데이터로 ‘피’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면

INNOVATION

by 김편 2017. 10. 1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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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혈부터 수혈까지, 피는 어떻게 흐르나

혈액 적정재고 유지에 빅데이터 활용 방안은


글. 신광섭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몇 해 전, 학교 물류연계 전공학생들과 함께 공모전에 참가한 적 있습니다. 주제는 특수혈액의 안전재고 모형 개발, 수요예측 및 재분배 계획 수립이었습니다. 당시 저희가 주목한 가장 큰 문제는 특수 혈액에 대한 재고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즈음에 Rh-혈액형 환자에 대한 수혈이 시급했는데, 적십자가 보유한 혈액이 모자라 큰 위기를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당시 사건은 Rh- 봉사단의 도움으로 다행히 잘 해결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처럼 어떤 곳에서, 어떤 혈액은 부족한데, 다른 곳에서는 혈액이 남아 폐기된다는 것입니다. 국정감사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지적사항 가운데 하나는 혈액원에서 폐기되는 혈액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최근 혈액관리본부는 약 3% 수준의 혈액이 B/C 형 간염검사 양성 등의 선별검사 결과 이상으로 폐기된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혈액원 내에서 혈액이 폐기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의료 기관에서 폐기되는 혈액의 양이 상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가 특정 병원에 국한된 문제인지 일반적인 문제인지 파악할 방법조차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헌혈이라는 희생을 통해 확보한 혈액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폐기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일반적으로 Blood Supply Chain이라 불리는(WHO에서는 Blood Cold Chain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혈액의 공급 체계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 데이터 분석 기법이 혈액 공급 체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혈액 공급사슬의 구성

 

우선 혈액은 일반적으로 수혈용 혈액과 의약품 생산용 혈액으로 구분됩니다. 의료 기관으로 공급된 혈액은 주로 수혈을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수혈용 혈액은 아래 그림과 같이 10대 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혈액을 공급받은 의료 기관은 수혈자의 혈액과 교차 시험을 진행한 뒤에 수혈을 하게 되지요. 한편 의약품 생산을 위한 혈액은 혈장분획센터에서 혈장분획제제로 생산된 후 제약회사로 공급됩니다.

혈액 필요 상위 10대 질환

 

혈액 공급사슬는 아래 그림과 같은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먼저 혈액을 통해 채혈된 혈액이 혈액원으로 모입니다. 이후 혈액검사원으로 이동된 혈액은 정상 여부가 판별된 뒤에 혈액분획센터에서 혈액제제별로 분리됩니다. 이때 혈액이 수혈용 혈액과 의약품 생산을 위한 혈액으로 구분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상 혈액으로 판단되는 혈액은 폐기처분됩니다. 수혈용 혈액은 다시 혈액원으로 모였다가 각 의료 기관의 요청에 따라 출고됩니다. 한편 혈장은 영하 18도 정도의 냉동 상태에서 최장 1년까지 저장할 수 있고, 농축혈소판은 실온보관 시 5일, 농축적혈구는 냉장보관 시 35일까지 저장 가능합니다.

채혈부터 수혈까지

 

각 의료기관은 혈액정보관리시스템(BIMS: Blood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을 통해 혈액 불출을 요청하고, 혈액원은 이 정보에 따라 혈액을 공급합니다. BIMS는 헌혈이 이뤄지는 채혈 순간부터 혈액이 의료 기관으로 공급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 외의 기관은 혈액정보공유시스템(BISS: Blood Information Sharing System)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BISS는 모든 의료 기관이 헌혈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혈액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하나로 통합·관리하기 위해 구축된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채혈 및 검사결과 역시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혈액공급사슬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첫째, 혈액공급사슬이 긴급구호물자와 같은 인도주의적 물류(Humanitarian Logistics)와 냉동·냉장물류(Cold Chain)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과 둘째, 생산량이 헌혈 실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내부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의 혈액을 보유하고 있나

 

우리는 현재 얼마만큼의 혈액을 보유하고 있는 걸까요? 인공혈액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적십자 혈액관리본부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모든 혈액은 헌혈을 통해 확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헌혈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혈액의 재고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실제로 2016년 2월에는 혈액보유량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헌혈관리본부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혈액 보유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혈액 보유량

 

전체적으로 보면 혈액 보유량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적혈구제제의 적정 보관 기간은 5일이며, 그 이하로 떨어질 경우 관심(5일 미만), 주의(3일 미만), 경계(2일 미만), 심각(1일 미만)의 순으로 위기관리체계가 갖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달간의 기록을 보면 평균 7일분 이상의 혈액이 확보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보유 현황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Rh+혈액의 보유량만을 보여줍니다. 물론 Rh-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이 않기 때문에 Rh-혈액이 Rh+혈액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찌 됐든 그러한 혈액에 대한 통계 정보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현재로서 혈액을 확보하는 방법이 헌혈밖에 없고, 성인이 1회 헌혈한 이후 약 2개월간 헌혈을 하지 못한다는 제약을 고려한다면 RH-혈액을 포함한 특수 혈액에 대한 정보관리는 조금 더 철저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너무 많아도, 너무 부족해도 문제

 

일반적인 공급사슬관리에서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누가 얼마만큼의 재고를 보관할 것인가’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재고를 보관하면서 지불해야 하는 ‘재고보관 비용’과 ‘판매하지 못해 버려지는 비용’, 그리고 ‘재고 고갈로 인한 비용’의 총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이뤄집니다. 이 가운데서 재고보관 비용과 판매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용은 관리자가 직접 지불하기 때문에 재고 고갈로 인한 비용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재고 고갈 비용은 상품을 판매하지 못해 발생하는 기회비용으로 환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지만 최근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인도주의적 물류에서 다루는 구호물품과 마찬가지로 혈액 역시 재고 고갈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쉽게 산정할 수 없습니다. 재고 수준이 사람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고 고갈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안전재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안전재고를 결정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언제 어떤 이유로 혈액이 급하게 필요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선 표에 나와 있는 ‘1일 소요량’ 역시 국가 전체 범위에서 측정한 과거 데이터의 평균값에 불과할 것이며, 미래에도 이와 동일한 양의 혈액이 매일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안전재고를 높게 설정하면 보관 기간의 문제로 폐기되는 혈액의 양이 증가. 결국 그야말로 ‘적정’ 수준의 재고를 설정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혈액의 출고량을 예측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가령 수혈이 많이 이뤄지는 10대 질환의 비중과 인구 통계 데이터를 결합해 언제 어떤 혈액이 많이 필요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혈액의 채혈과 검사, 재고수준 관리는 모두 혈액관리본부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입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대개 혈액관리본부를 통해 유통되는 혈액이 실제 수혈되는 곳은 바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의료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즉 의료 기관은 일반적인 공급사슬에서의 소매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BIMS에는 혈액원에서 각 의료 기관으로 불출한 혈액의 양까지만 기록돼 있고, 각 의료 기관에서 언제 어떤 종류의 혈액을 어떠한 용도로 사용했는지, 보관 기간이 지나 폐기한 혈액은 얼마나 되는지는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2008년 ‘국내의료기관 혈액은행 업무현황 조사보고’가 개별 의료 기관의 혈액 운영 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거의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데이터를 측정한 것이 아니라 회신율이 그리 높지 않은 대형 의료 기관(회신율 68.2%)과 중소형 의료 기관(23%)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전제 의료 기관 중 4.3%밖에 차지하지 않는 대형병원 혹은 거점 의료 기관이 전체 혈액 가운데 84%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대형병원과 중소형 병원에서 폐기되는 혈액제제의 비율과 형태도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수혈이 필요한 질환 목록을 살펴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혈이 필요한 환자가 모두 대형병원이나 거점 의료 기관에서 초기 치료를 받는 것으로 상정해도 괜찮을까요. 오히려 실제 수혈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시점은 환자가 발생한 초기의 ‘골든타임’입니다. 연세대학교의 정병도 교수 연구팀은 ‘골든타임을 고려한 신속한 혈액 공급사슬 설계’라는 논문에서 수혈이 필요한 응급환자에게 1시간 이내에 혈액을 공급할 수 있는 혈액 공급 네트워크를 최적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단지 대형병원이나 거점 의료 기관에서 많은 양의 혈액을 쓴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대형병원과 중소형 의료 기관에서 폐기되는 혈액제제의 유형과 비율이 크게 차이를 보이는 만큼 혈액원에서 각 의료 기관으로 혈액을 공급한 이후에도 수혈과 폐기량에 관한 정보를 정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빅데이터 시대, 혈액관리도 자라(ZARA)처럼

 

패스트패션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자라(ZARA)는 제품의 생산주기를 단축하고 각 오프라인 매장에서 잘 팔리는 스타일을 분석한 뒤 2주 간격으로 신제품을 출시합니다. 매장 내 재고관리를 매니저가 아닌 본사 디자이너와 관리자가 담당한다는 사실도 유명합니다. 자라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매니저가 잘 팔리는 상품을 과도 주문해서 재고를 쌓아두는 일을 방지합니다.

 

자라의 이러한 방식을 혈액 관리에 적용하면 어떨까요.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관리본부와 지방혈액원의 역할을 가만히 보면 자라의 오프라인 매장에 공급되는 재고를 본사가 통제하는 형태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의료 기관에서 필요한 혈액의 양을 요청하면 이 수요에 기반에 혈액이 공급되는 방식 역시 전통적인 의류 공급 체계와 닮아 있습니다.

 

잘 팔리는 옷을 더 많이 들이려는 오프라인 매장 관리자처럼 의료 기관은 언제 얼마만큼의 피가 필요한지 알 수 없으니 가능한 더 많은 혈액을 확보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는 혈액이 모자라거나 남는 상황을 초래합니다.

 

자라에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데이터에 기반한 정확한 수요 예측입니다. 이미 국내의 보건의료 관련 정보는 통합되어 유관 기관 및 보험사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각 의료 기관의 수혈 관련 기록을 결합하면 혈액 수요 예측에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구통계 정보에 건강검진 결과를 결합하고 과거 각 의료 기관별 수혈 정보를 종합하면 언제 어떤 혈액제제가 필요한지 예측하는 모델을 설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필요한 혈액제제를 병원에서 예측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수혈의 양을 바탕으로 혈액관리본부나 혈액원에서 판단한 뒤 공급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다만 필자는 데이터의 힘을 믿습니다. 데이터가 가진 가치는 서로 공유하고 통합될 때 더 커집니다. 사람과 생명과 직결된 혈액의 경우 정보 공유의 중요성이 더욱 클 것입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결합된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한국형 혈액 공급 체계가 어서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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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섭

현 동북아물류대학원 부원장으로 재임 중으로 물류 및 SCM 분야에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활용 방안을 연구 중이다. ksshin@i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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