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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암의 물류에세이] 미국으로 떠난 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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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7. 10. 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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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동암 교수

 

“서 전무, 이번 수주 확실한 거야? 이번 수주가 최종 확정되면 창사 이래 단일 수주로는 최고 금액이야!”

 

성 전무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 수화기에 대고 미국 판매법인장인 서영구 전무에게 소리쳤다.

 

“성 전무, 미화로 20억 불짜리 수주가 현재 90% 가능한 상태…”

 

서 전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나도 믿기지 않네. 서 전무, 마지막 10%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환한 얼굴을 한 성 전무의 가슴 속에는 불같은 희열이 타오르고 있었다.

 

“해리스 토마스라는 물류 및 SCM 담당자가 24개 지역의 최종 배송 일정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해왔어. 건설 현장에서 필요한 자재를 도입 일정에 맞추어서 정확하게 공급하는 게 중요한데, 납품 일정을 못 맞추면 패널티(Penalty) 금액이 납품 금액의 30% 이상이라는 거야! 그래서 말인데 전체 생산 공급량 납품 일정을 감안하여 시뮬레이션을 해본 뒤에 요청에 대한 확답을 주어야 할 것 같아.”

 

“본사 물류 그룹은 내 관할인데, 거기에 오 달수 부장이 그룹장을 맡고 있어, 알지?”

 

“아! 그 오 부장.”

 

성 전무는 미국 법인장인 서 전무와 전화상으로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 부장을 바로 미국으로 출장 보내야겠군.’

 

한편 중국 장기 출장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오 부장은 목포 근처 압해도 해변의 송공산 분재 수목원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오 부장의 아내도 오랜만에 시간을 내 한적한 곳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운 듯, 연신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오 부장은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지난 중국 장기 출장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분재 수목원은 송공산 자락과 압해도 해변을 보듬어 품고 있었다. 이 분재 수목원은 서해 바다 일몰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소멸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젊은 시절 오 부장은 동해의 일출은 호연지기의 기상으로 희망찬 미래와 같은 반면 일몰은 허전하고 초라하다며 애써 외면했었다. 그러나 오 부장도 나이가 들었다.

 

문득 일전에 송광사 큰스님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이른 새벽에 하늘을 바라보는데 구름 사이에 회색빛 구름이 묻어 있더군. 어느새 검은 구름이 여기저기에 뚝뚝 떨어지고…아침 햇살이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있더군. 세상의 이치는 회색빛, 즉, 어려움과 근심의 농도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지게 되는 것이라네.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햇살이 고단한 영혼을 따뜻하게 대해주지. 또한 인간의 삶도 태생과 소멸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지. 한창 잘 나가는 사람이나 최선의 노력을 해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칭찬을 받는 기업도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어렵다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언젠가는 성장세가 꺾인다는 얘기인거야. 눈부신 성과는 어느 순간 어제 내린 눈처럼 흩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서해의 일몰처럼 스러져가는 것이야. 그렇다면 강렬한 아침 햇살보다 더 수줍고 얌전히 스러져가는 일몰이 더욱 아름다운 게 아닐까?’

 

오 부장은 오랜만에 아내의 생기발랄한 얼굴을 유정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도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일출과 같은 여인이 좋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어갔다. 늙어가는 아내의 가식 없는 민얼굴, 자기 밑바닥을 서로 비추며 처연하게 꺼져가는 불꽃이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오 부장 핸드폰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지지직거렸다. 전화 스크린에 ‘내 밥그릇’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보였다. 성 전무였다. 순간적으로 오 부장의 가슴이 꿍꽝거렸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성 전무가 왜 전화를….’

 

오 부장은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오 부장, 휴가 중에 미안한데, 내일 당장 미국으로 팀을 이끌고 출장 가야겠다. 오늘 미국 법인장인 서 전무가 약 20억 불짜리 대형 오더를 수주했어. 사장님도 서 전무와 최종적으로 확인 통화를 했네. 미국에 가서 중국 혹은 말레이시아 공장 출하부터 완제품 출하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분석해 줘야겠네. 미국 내수 물류가 엄청나게 커지기 있기 때문에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구성해야 하네. 요즘처럼 물류가 조명받은 적이 많이 없지 않나.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일이 많아지고 있으니 이해해주게.”

 

성 전무는 술을 한 잔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중에 기분이 좋아 오 부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러나 통화하는 동안 오 부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오 부장은 참으로 오랜만에 성 전무의 따뜻한 음성을 들었다. 명령이 아닌 청유형에 가까운 성 전무의 음성을 들으면서, 오 부장은 믿을 수 없게도 ‘충성’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일 아침에 출근하는 대로 팀을 정비하여 출장 준비 하겠습니다. 그런데 내일 바로 출장은 무리입니다. 출근하여 상황 판단을 하겠습니다.”

 

오 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수화기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이야기했다.

 

“알았어. 내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상황 보고 준비해. 내일 당장 미국으로 출장 가는 것이 어려운 거 알아! 하지만 상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애기야! 중국 물류 애쓴 것도 잘 알아. 미국 물류도 잘 해결해 봐.”

 

성 전무는 화를 전혀 내지 않고 차분하고 온기가 서린 말투로 얘기를 이어갔다.

 

통화를 끝낸 오 부장은 게스트하우스 베란다에 잠시 앉아 깊은 상념에 빠졌다. 서해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파도가 서로 부딪치며 소박한 포말을 연신 만들어 내고 있었다. 포말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달려왔다가 다시 앞으로 42.195km을 달려야 하는 마라톤 선수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고된 여정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이런! 중국 공장 물류를 겨우 끝내고 한 숨 돌리는가 싶더니 바로 미국 출장이라니….’

 

아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베란다로 나왔다.

 

“무슨 전화야? 이렇게 늦은 시각에!”

 

“성 전무 전화야.”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그 사람, 성 전무! 항상 당신에게 욕하는…그런데 안 좋은 전화야?”

 

“아니야 미국 판매법인에서 대형 수주를 했어. 20억 불, 한화로 2조 4천억 원을 수주한 거야. 규모가 현재 물량 대비 10배에 이르고, 배송 커버리지(Coverage)가 미국 전역으로 넓어지는 만큼 물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문제가 상당할 것 같아. 미안하지만 당신과 아이들은 내일 모레까지 여기서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어. 나는 내일 회사로 출근해서 미국 출장 준비를 해야겠네.”

 

오랜만에 가족들과의 휴가를 보내고 있던 오 부장은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5개월 중국 출장에서 돌아 온 지가 3일밖에 안 지났는데 또 미국 출장이라고? 당신 동기들은 벌써 해외 법인장으로 나가고 있는데, 당신은 7년째 부장이야! 해외 출장도 많고, 가족들과 시간도 못 보내고. 오달수씨! 당신이 손을 뻗으면 항상 나와 애들이 잡혀야 하는 거 아니야?”

 

하루 종일 생기발랄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녹슨 칼로 깨진 유리조각을 비벼댈 때 나오는 소리처럼 앙칼지게 변하고 있었다.

 

오 부장은 미국 판매법인 물류 개선도 해야 하지만 아내와 가족 문제 해결도 해야 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 부장은 성질 급한 아내의 잔소리에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 하고 베란다에서 연신 담배만 피어댔다. 압해도 바닷가 파도의 포말이 오 부장의 내면에서 울리는 포효와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 부장은 미국 지도를 꺼내 주요 도시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과거 다른 국가에 프로젝트 했던 내용을 근거로 사전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미국 판매법인도 재고 실사를 하면 실물재고와 장부재고가 차이가 날 거야. 미국 판매 물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물류에 단기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접급해 전략을 짤 필요가 있을 거고. 무엇보다 물류업체 선정을 위한 다양한 툴 키트(Tool Kit)를 개발해야겠군.’

 

일본 판매법인과 중국공장에서 발생했던 문제가 미국 판매법인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오 부장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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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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