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말레이·미국·멕시코로 떠난 4인의 물류청년들이 본 것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문장은 한 대기업 회장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데, 출판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그만큼 넓은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여기, 당차게 외국행을 선택한 4명의 젊은 물류인이 있다. 사실 여행이 아니고서야 모든 것이 낯선 외국에서 일을 하며 살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만 않다. 그런데 특별한 경험이 하고 싶어서였든, 한국보다 나은 삶을 원했든 간에 이들은 모두 주저 없이 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모두 현지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이 아니라서 조금은 특별한, 물류 청년들의 다채로운 도전기를 들어본다.
태국 안의 일본을 느껴본다면외국에서 취업을 꿈꾸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뭘까. 아무래도 한국에선 하기 힘든 독특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김병석 대리 역시 그런 이유로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현재 일본계 물류기업 유센로지스틱스(Yusen Logistics)의 태국지사에서 근무하는 김 대리는 방콕에서 생활 중이다. 김 대리는 “처음엔 무작정 한국과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독특한 외국 생활 자체에 매료되어 6년 째 방콕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2012년 태국으로 건너간 김 대리는 현지 어학원에서 태국어 연수를 마치고 태국 소재의 물류회사에 입사한 뒤, 그해 태국 소재의 일본계 물류업체에 취직했다. 이번이 두 번째 직장이다. 현재 김 대리는 영업담당으로 신규고객 발굴 및 기존 고객사 관리가 주 업무다. 회사에서는 영업 시 고객사 국적에 대한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진 않지만, 자신의 모국어 능력을 살려 한국업체 40여 개를 신규 유치했다는 것이 김 대리의 설명이다.
김 대리에게 직장은 ‘외국에서의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따라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고, 바로 유센로지스틱스의 입사를 결정한 이유다. 유센로지스틱스는 태국 현지에서도 업계 3위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유센로지스틱스 태국지사는 실제로 800대의 자가트럭, 태국 전역 12개의 자가창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3,5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김 대리는 “겪어보니 외국 물류회사가 한국보다 대우가 나았다”며 “처음 유센에 입사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오래된 업력과 규모로 물류 베테랑을 양성하는 학교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김 대리는 유센로지스틱스 태국지사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3,500여 명의 전체 직원 중 30여 명은 일본인이고, 2명의 서양인, 김 대리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은 모두 태국인이다. ‘한국 직장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대리는 ‘공과 사가 구분된다’는 점을 꼽았다.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만 처리하면, 바로 퇴근이 가능하며 불필요한 야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과후 회식이 잡혀도 개인이 선택해 참여한다. 물론 일본회사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상하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일반적이고, 그것은 유센로지스틱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상사가 절대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없고, 업무 협의에 있어서는 수평적인 구조라는 게 김 대리의 설명이다.
▲ 태국에서 6년째 생활 중인 김병석 대리. 세계적인 관광도시 방콕에 거주하는 그는 현지에서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물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해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점은, 김 대리가 외국 업체에서 일하고 나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것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김 대리는 “일본기업의 경우, 신규 비즈니스 검토 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시작 후의 프로세스는 칼 같이 빠르게 진행된다”며 “그런데 한국 비즈니스는 모든 과정에서 빠른 처리를 요한다”고 전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김 대리는 현지 물류업계에서 더 많은 고객과 만나 더 많은 실무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태국 내에는 400여 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고, 그중 약 90%가 한국계 물류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담당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그동안 유센 로지스틱스 태국지사가 유치하지 못했던 한국계 고객을 발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이러한 영업, 고객 관리 경험이 향후 자신에게 큰 자산이 될 것”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에서 본 물류의 기회
글로벌 무역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해 현재 말레이시아에 거주 중인 임성균 씨의 경우, 본격적인 취업준비 이전에 취업과 구체적인 진로 계획에 힌트를 얻고자 외국행을 결심했다. 임 씨는 글로벌 무역인턴쉽 프로그램에 지원할 때부터 말레이시아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세계 경제의 축이 동남아시아로 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 실제로 그 성장을 눈으로 보고 싶었고, 어떤 기회가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현재 임 씨는 현대종합상사 말레이시아지사에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인턴이긴 하지만, 임 씨의 업무는 실무와 많이 맞닿아 있는 편이다. 회사와 관련 있는 소식이나 현지 바이어에 대한 정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부터 실제로 바이어를 발굴해 미팅을 주선하고 계약 체결을 유도하는 업무까지 투입된다.
임 씨는 직장에서 한국과 가장 다른 점으로 ‘비즈니스를 할 때는 영어로 대화’한다는 점을 꼽았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인들끼리 영어로 업무에 관한 사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서 영어가 비즈니스 언어다. 말레이시아가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 중 60%는 말레이시아어(바하사)를 사용하는 말레이인이고, 30%는 말레이-차이니즈라고 불리는 화교, 나머지는 인도계열이나 외국인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선 소통이 가능한 말로 하지만,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공적인 업무와 관련된 일이면 영어가 자주 사용된다. 임 씨는 “말레이시아에는 2~3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나 역시도 자연스레 언어 능력이 발전되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 말레이시아에서 생활 중인 임성균 씨.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곳에 있어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를 공부할 수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에서 한류가 인기인 것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임 씨는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기업 전시회에 참가했을 때 현지인들이 한국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뢰한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해 이들에게 한국의 이미지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임 씨는 실제로 현지인과 업무를 진행하며 ‘말레이시아에서는 비즈니스 태도를 중요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령 한국에선 다른 회사와 업무를 진행할 때, 처음 보는 상대편 담당자와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한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다르다. 보통 메일을 통해 양식과 격식을 갖춘 채로 먼저 교류가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몇 번의 메일이 오고간 뒤에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실제 미팅이 성사된다.
임 씨에 따르면 현지에서는 이런 비즈니스 절차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임 씨가 새롭게 눈여겨보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의 통화를 요청했더니 “먼저 메일을 보내라”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임 씨는 “한국에서는 업무를 진행할 때 조금 공격적이더라도 적극적인 모습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는데, 국가의 문화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임 씨는 또래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이 해외 취업이나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고 전했다. 임 씨는 “실제로 이 나라가 발전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실무에 참여하며 현지 문화까지 느낄 수 있어 장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며 “인턴쉽이 끝나면 한국으로 귀국해 상사나 물류기업, 그중에서도 물류영업 직무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국行 오르기 전 ‘목표’부터
처음부터 외국에서 정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외국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사례도 있다. 현재 미국 포워딩업체 탑앤브라이트에서 5개월 째 인턴으로 근무하는 제승혜 씨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가 미국으로 간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 씨는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그래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과거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고, 실제로 겪어보니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진지하게 미국행을 준비했다고 한다.
제 씨는 “인턴이 끝난 후에도 기회가 된다면 현지 취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해외 인턴을 신청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회사에 입사하는 방식으로는 다시 미국으로 지사 발령이 날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제 씨는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며 자아실현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자주 느낀다고 전했다. 이런 미국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제 씨는 외국인과 업무를 진행할 때의 분위기가 한국인과의 그것보다 확실히 부드러운 편이라고 전했다.
제 씨의 업무는 주로 한국발 화물이 미국에 있는 고객사에게 도착할 때까지 관련 제반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제 씨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인과 일을 할 때면 조금 더 실수에 엄격하고, 심리적으로 쫒기는 편”이라 전했다.
▲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제승혜 씨. 구체적인 미래 진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제 씨는 “현재 일하고 있는 업체에서의 실무 경험을 더 쌓으며 결정할 것”이라며 “당장은 선사나 제조사 등 다양한 물류업체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라 답했다.
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기 쉽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을 하는 만큼 현지언어 구사 능력은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직장생활’을 하려면 높은 언어 능력이 요구된다.
제 씨도 언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 나라에 가려는 목적’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목표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 외국에 도착해서 그것을 찾기 위해 방황하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이다. 제 씨는 “특히 인턴이라면, 돈을 많이 받는 편도 아니라서 언어보다는 목적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일을 배우고 싶다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거나,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무엇이든 좋으니 외국에 나가고자 하는 목표와 계획을 확실하게 설계해야 만족스럽게 현지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전했다.
멕시코에서 만난 ‘워라벨’
호대광 씨도 현지 채용을 선택한 사례다. 그는 미국에서 인턴을 하던 중 2014년 LG전자에 입사하면서 멕시코 멜시칼리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멕시코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 호 씨가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는 ‘퇴근 후 자기 삶’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는 LG전자 멕시코 TV생산기지의 SCM팀에서 일하고 있다. 어떤 모델을 얼마만큼, 어떻게 생산할지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호 씨에 따르면 업무를 진행할 때 한국보다 현지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따르면, 멕시코 사람들은 가족과 퇴근 후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연스레 퇴근 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현지인 직원들은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나는 분위기다. 호 씨는 “물론 사정에 따라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럴 경우 멕시코도 미국처럼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이 철저하게 지켜진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환경적인 원인도 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호 씨가 막 입사했을 당시엔 인터넷이 잘 되지 않는 지역이 많았다. 그래서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해 업무 지시를 내려도 피치 못하게 연락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 자연스레 퇴근 후엔 업무 이야기로 연락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한, 한국인 직원 중에는 미국에 살며 출퇴근을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렇다보니 술자리를 겸한 장시간의 회식도 드물다.
호 씨는 “개인적으로 한국음식이 아닌 음식도 잘 먹고,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편이라 멕시코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개인적 성향도 중요하지만, 외국에서 살기 위해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으로 ‘해당 지역의 조세제도’를 꼽았다. 언어는 생존하기 위한 것이므로 어떻게든 배워지지만, 세금 관련 지식이 없으면 실제 생활에서 번거로운 일들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멕시코의 경우, 소득세의 구간이 높고, 구간별로 세율의 차이가 심하며, 세율도 높은 편이다. 특히 최저일급이 한국돈 8,000원 정도로 아직까지 인건비가 낮은 곳에선, 한국과 같은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소득이 높은 편해 속해 그만큼 적용되는 세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아예 한국에서부터 해외 현지채용공고에 명기된 급여가 세전인지 세후인지 확실히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호 씨는 “어딜 가나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급여고, 급여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세금”이라며 “세금은 해외로 나가는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는 막바지 과정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멕시코 멕시칼리 시에서 3년 째 살고 있는 호대광 씨.
한국인으로 멕시코에서 일하기
한국인 직원과 멕시코인 직원과 일할 때 다른 점이 있냐는 질문에 호대광 씨는 “한국 회사에선 일이 주어지고 문제가 생기면, 그 일을 맡은 사람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멕시코인 직원들은 자기 손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상사에게 보고하고 난 뒤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이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그 다음의 진행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조금 느려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때문에 호 씨는 현지인 담당자가 해당 사항을 끝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가이드를 하고, 명확한 시간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업무 관리를 한다고 한다.
또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더 다양한 부서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호 씨가 근무하는 곳에선 현지 채용된 직원의 경우 관심 있는 부서로의 이동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호 씨는 “현재는 SCM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현지인들과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업무나 기존 업무와 다른 영역에 도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현지에서 채용된 한국인 직원과 본사에서 파견된 주재원 간의 복지와 대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호 씨는 “주재원으로는 주로 차장급 이상의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평사원과는 숫자만 놓고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힘들다”며 “다만 현지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월급 외에 주거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지 중 하나”라고 전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