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키바'의 등장? 국산 AGV '타곤(TAGON)'을 만나다
타곤의 아버지 '유도(YUDO)', 그들이 물류 자동화에 도전한 사연
AGV를 활용한 자동화 물류센터, 과연 한국에 필요할까?
글. 신승윤 기자
Idea in Brief
한국형 발사체, 한국형 AI, 한국형 블록버스터... 넘쳐나는 ‘한국형’ 시리즈에 이번엔 물류도 합류했다. ‘한국형 키바’라 불리는 유도의 풀필먼트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타곤(TAGON)’ AGV를 중심으로 완성한 유도의 자동화 풀필먼트 시스템. 그러나 과연 국내에서 아마존의 키바 풀필먼트 시스템은 없어서 못 쓴 것일까. 필요가 없어 안 쓴 것은 아닐까. 혹은 한국 물류센터가 가진, 우리들만의 사정이 있지는 않을까. 진정한 의미의 ‘한국형’ AGV를 찾아 떠났다.
‘한국형 SF영화 시대 열린다’. 2007년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의 개봉 전후 많은 언론은 큰 기대를 담은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SF영화 중에서도 ‘한국형 SF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했지요. 아무래도 영화 <디 워>의 소재가 한국의 전설 ‘이무기’란 것과, 영화에 사용된 CG 기술이 국산 기술이란 점이 강조됐기 때문에 붙은 용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할리우드 중심의 영화시장에서 벗어나 한국, 곧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허나 <디 워>는 국내 총 관객 수 863만 명이라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해외 흥행 실패와 함께 결과적으로 큰 적자를 기록합니다. IMDB(Internet Movie Database)에 따르면 <디 워>는 총 제작비 1,500억 원에 약 966억 원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및 해외 관객과 평론가들의 혹평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SF영화에 조선시대, 이무기 등 소재가 등장하는 것은 신선했으나 시나리오 전개와 연출이 전체적으로 어설프다는 평입니다.
영화 <디 워>를 논할 때 늘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애국심 마케팅 입니다. ‘한국형’이란 이름에 맹목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영화 자체의 재미와 완성도를 판단하기 어렵게 했다는 것인데요. 당시 진중권 등 평론가들은 이를 국수주의라 표현할 만큼 맹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한국형’ 시리즈는 <디 워>에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형 발사체, 한국형 AI, 한국형 가상화폐, 한국형 블록버스터 등 각종 한국형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번에는 물류도 한국형 시리즈에 입성했습니다. 바로 ‘한국형 AGV(Automated Guided Vehicle)’입니다. 아마존이 물류창고 자동화를 위해 도입한 로봇 ‘키바(KIVA)’의 한국 버전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왜 하필 키바인가
아마존의 ‘키바’ 외에도 중국 징동(京东)의 AGV ‘샤오홍런’(小红人), 영국 오카도(ocado)의 그리드(grid) 시스템 등 전 세계적으로 로봇을 활용한 물류센터 자동화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형 시리즈에 키바가 선택받은 이유는 키바가 물류 자동화 로봇의 선구자이자 대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샤오홍런을 포함한 많은 AGV가 키바를 모티브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 아마존 키바 시스템(출처: 아마존)
그렇다면 세계 물류센터들은 왜 자동화 설비에 열중할까요? 첫 번째 이유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인건비 때문입니다. 중국 국가통계청(2017)에 따르면 저렴한 인건비의 대명사였던 중국만 해도 1990년대 말부터 매년 약 10%에 달하는 임금상승률을 꾸준히 기록해 현재는 10년 전 인건비의 3배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물류시장의 고용 및 효율에 관한 고민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자동화 설비를 통해 물류 전반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품목과 이에 따른 막대한 물량 정보를 키바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합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분석해 물류센터 내부 효율을 높임은 물론 소비현황 파악, 수요 예측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합니다. 이처럼 물류 자동화 시스템은 환경변화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드디어 한국에서도 물류 자동화 로봇과 시스템이 개발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한국형 키바’, 그 주인공은 바로 유도(YUDO) 그룹의 ‘타곤(TAGON)’입니다. 과연 어떤 로봇인지 확인해 보기위해 탐방대를 구성하여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유도 그룹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핫러너 세계1위 유도가 물류에 뛰어든 사연
물류 관련 전문가와 현업 종사자들로 구성된 탐방대가 도착한 곳은 유도 본사입니다. 38년 역사를 가진 그룹이기에 그 시작부터 성장의 자취를 따라 탐방을 진행했습니다. 유도는 사실 물류와 상관없는, 사출금형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자체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핫러너 분야 매출액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24개소 해외 공장과 80여 개국 140여개 대리점(에이전트)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공장 곳곳을 견학하며 확인한 유도의 역사에 경외심이 드는 한편, 유도는 대체 왜 물류 자동화에 도전하게 됐을까 그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유도가 까다로운 금형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고객중심 서비스에 있었습니다. 금형 설비는 1마이크로미터(0.001mm)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확도를 요구합니다. 그 가운데 유도는 금형공장의 규모, 생산량, 제작 순서 등 고객마다 천차만별인 요구사항을 완벽히 만족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단순한 장비 설치에 그치는 것이 아닌, 공정에 필요한 설비 및 공장 인프라 전체에 대한 최적화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도는 수입에만 의존하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응용에 한계를 느낍니다. 미들웨어 기술을 개발해 적극 활용했으나, 보다 완성도 높은 최적화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유도는 유도썬스, 유도로보틱스 등 그룹사를 출범해 자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극 투자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유도의 공장 자동화 시스템 유도 1.0입니다.
유도 1.0 시스템은 금형 공정에서 필요한 모든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입니다. 제품의 제작, 오류 검사, 피킹과 같은 작업을 로봇팔(robot arm)이 스스로 진행하며, 각 로봇팔 사이의 물품 이동은 타곤 RGV(Rail Guided Vehicle)가 담당합니다. 필요에 따라 로봇팔의 역할이 바뀌거나, 로봇팔 끝에 부착된 렌즈로 작은 오차까지 찾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공장 자동화를 실현한 유도 1.0 시스템
유도 2.0 시스템은 이 공장 자동화 시스템에서 발전한 버전입니다. 진열대(Rack) 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피킹 또는 적재할 수 있는 ‘타곤 셔틀(TAGON Shuttle)’을 개발해 공장 및 창고의 화물운송 과정까지 자동화 했습니다. 허나 유도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존 기술이 가진 가능성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풀필먼트 분야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유도 3.0 시스템은 타곤 AGV를 활용한 자동화 풀필먼트 시스템으로 아마존 키바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실제 유도 3.0 시스템의 운영과정을 견학해보니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봤던 키바 시스템을 직접 만난 것만 같았습니다. 360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단 한 번의 충돌이나 오류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타곤 AGV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 타곤 AGV를 활용한 유도 3.0 자동화 풀필먼트 시스템
키바, 한국에 필요하긴 한 거야?
‘한국형 키바’라 불리는 타곤의 화려한 무브먼트(?)에 감탄한 것도 잠시,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한국 물류센터에 아마존 키바 시스템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키바 시스템 보급에 한창인 아마존 물류센터는 미국이 주 무대이며, 이를 쫓고 있는 알리바바와 징동 물류센터 역시 중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물류센터는 이 같은 해외 센터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 가운데 운영되고 있습니다.
먼저 규모입니다. 아마존 듀폰트시(市) 물류센터는 축구장 약 46개 크기인 37만 2,300㎡에 달합니다. 이 거리를 사람이 일일이 움직이며 물건을 나른다면, 그 노동 강도로 인해 엄청난 양의 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때문에 1천여 대의 키바로 인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물류센터 중에서도 꽤 큰 편인 쿠팡의 덕평 물류센터는 9만 9,000㎡로 아마존 듀폰트 물류센터의 1/4 규모이며, 그 외 물류센터들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작습니다.
물품의 적재방식 또한 판이합니다. 키바 시스템에 사용되는 진열대(Rack)의 최대 높이는 사람의 손이 닿게끔 설정돼 있습니다. 그래야만 키바가 진열대를 지고 나르는 가운데 물품을 피킹 또는 적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전통적인 한국 물류센터들의 진열대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다단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구성은 화물 보관에 특화된 것으로 물품 흐름을 강조한 키바 시스템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 국내 한 물류센터의 다단 적재방식. 이커머스 물량을 처리하는 창고다.
규모와 적재, 이 두 가지 차이는 한국 물류센터들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부동산 이슈와 관련 깊습니다. 공간을 확보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 미국, 중국과는 다른 환경을 가진 것입니다.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물류센터를 임대해 사용하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을 위한 공사 자체가 부담”이라며 “취급 품목 또한 아마존, 알리바바와 달리 한정돼 있기에 과연 키바와 같은 시스템이 필요할지 의문”이라 밝혔습니다.
난 키바가 아니야. 타곤이야!
그렇다면 유도의 자동화 시스템도 흥행에 실패한 한국형 시리즈 중 하나일까요? 해외 선진 기술 키바를 한국에 옮겨다 놓고서 ‘한국형 키바’라며 애국심 마케팅을 시도한 것뿐일까요? 탐방대가 직접 확인한 결과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도의 자동화 시스템은 해외 기술을 무작정 카피한 것이 아닌, 자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합니다. 물론 한국의 물류환경에 맞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말이죠.
유도 2.0 시스템의 ‘타곤 셔틀’은 진열대 운영에 특화된 자동화 로봇입니다. 진열대 사이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피킹 또는 적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셔틀 엘리베이터를 통해 모든 층의 진열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물품 엘리베이터를 통해 물품만 원하는 층으로 내려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단 진열대를 쌓아 물건을 적재하는 물류센터에도 도입 가능한 로봇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다단의 높은 진열대도 문제없는 ‘타곤 셔틀’
또한 유도 3.0 시스템의 타곤 AGV는 키바와 같이 진열선반에만 부착해 사용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유도는 금형공정 자동화 기술 개발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로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한 로봇팔 제작이 가능하며, 이를 타곤에 부착해 피킹 로봇으로 응용하는 기술을 보유 중입니다. 즉 타곤 RGV, AGV를 진열선반뿐만 아니라 롤러, 컨베이어 등 다양한 형태로 응용함으로써 각각의 물류센터 환경에 맞는 최적의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유도 물류 자동화 시스템의 강점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있습니다. 유도의 SWS(Smart Warehouse Solution)에는 각종 로봇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와 함께 통합 물류 관리 시스템 ILC(Integrated Logistics Controlling), 창고 관리 시스템 WMS(Warehouse Managemaent System)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포함됩니다. 시스템은 로봇 및 자동화 설비를 운영하는데 있어 필요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제공하며, 이를 통해 얻은 통계를 분석해 제시합니다. 또한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기 때문에 어떠한 설비와 로봇 응용에 대해서도 호환 가능합니다.
3PL업체 튜브의 주영재 대표는 “높은 임대료 등 한국과 비슷한 부동산 환경을 가진 일본 물류센터의 경우, 지진 위험으로 진열대를 높이 쌓는 것조차 불가능해 DPS(Digital Picking System), DAS(Digital Assorting System) 등 기존 기술을 적극 응용하고 있다”며 “국내 물류센터 역시 무조건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맞는 자동화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 그 중 유도의 타곤 셔틀, 피킹 로봇은 충분히 도입해볼만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식품 물류센터를 운영 중인 윙잇(WINGEAT)의 임승진 대표는 “식품 물류는 계절과 시기에 따른 물량 변화가 심해 늘 인력문제가 고민거리”라며 “현재 운영 중인 물류센터의 진열대 높이가 8m에 달하기 때문에 AGV 시스템보다 타곤 셔틀에 주목했다. 식품·냉동 물품 피킹까지 가능하다면 꼭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보고 싶다”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물론, 탐방대가 만난 유도 그룹의 타곤은 단순히 ‘한국형 키바’라고 불리기에는 아쉬웠습니다. 오히려 아직까지 정착하지 못한 국내 물류센터 자동화 설비에 대해 새로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지위가 필요해 보입니다. ‘아마존의 키바’처럼 ‘유도의 타곤’이 적절할 것입니다.
정성민 유도 상무이사는 “정형적인 물류업계의 기술 적용 방식을 깨보고 싶다”며 “탑다운(Top-down)이 아닌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물류 자동화 분야를 새롭게 확장하기 위해 계속 도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자신감이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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