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승윤 기자
▲ 로지스타 포캐스트 2019 발간행사 '살롱드물류'에서 강연 중인 김희양 CCP 대표
로지스타 포캐스트 2019의 저자이자 헬스케어 콜드체인 전문 플랫폼 ‘CCP(Cold Chain Platform)’의 대표 김희양을 만났다. 의약품, 검체* 등을 포함하는 헬스케어 콜드체인 배송에 있어 국내 인프라가 전무하던 시절, TNT와 월드쿠리어(World Courier), 마켄(Marken) 등 세계적 물류기업을 거치며 헬스케어 콜드체인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 그녀. 마켄의 한국 지사장을 마지막으로 현재는 콜드체인 정보공유 및 관련 컨설팅에 힘쓰고 있는 그녀의 속사정을 들어본다.
물류와 만나다
김 대표는 중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물류에 대해서 관심도, 관련 지식도 없었다. 김 대표는 “내가 대학생 시절에는 익스프레스(Express) 서비스라고 하면 다들 이삿짐센터만을 떠올렸지, 특송 서비스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며 웃어보였다. 그런 김 대표가 외국계 특송회사 TNT에 입사하게 된 것은 IMF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IMF 때문에 취업이 안 되다 보니 다들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교수가 되고자 학위를 취득할 계획이었는데, 이래서는 쉽지 않겠다 판단했다. 하여 취업을 준비하다보니, 당시 기업들은 채용 공고에 성별에 따른 나이 조건까지 명시했었다. 와중에 27살이던 나를 받아 준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TNT였다”고 회상했다.
TNT는 외국계 회사로 입사에 있어 나이 제한이 없었으며, 김 대표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했기에 그녀를 채용하기에 이른다. 첫 부서는 고객서비스 부서였으나 이후 라이프 사이언스(Life Science) 부서로 이동하게 됐다. 김 대표는 “서비스 부서에 있으면서 고객들의 각종 컴플레인에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하여 중간에 퇴사를 하는 등 갈등 끝에 만난 부서가 라이프 사이언스다. 이곳에서 헬스케어 콜드체인을 처음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헬스케어 콜드체인’
‘피 나르는 부서’. 2005년도 TNT 라이프 사이언스 팀을 설명할 때 쓰던 표현이라 한다. 당시 혈액, 조직, 소변 등의 운반을 담당했던 라이프 사이언스는 모두에게 생소한 부서였다. 그 소속으로 일했던 김 대표는 업무를 거듭할수록 궁금증이 생겼다. “초기 업무는 매우 단순했다. 주문을 받고,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포장한 뒤, 냉동 상태로 배송을 보내면 됐다. 이를 반복하던 중 많은 의문들이 생겼다. 이런 물품들은 누가, 왜 보낼까? 왜 운송비용이 더 비쌀까? 그때부터 조금씩 헬스케어 콜드체인에 파고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이미 페덱스(FedEx), DHL 등 국제 특송업체에서 메디컬 익스프레스, 클리니컬 익스프레스 등과 같은 이름의 헬스케어 콜드체인을 제공하기는 했다. 단, 그 전문성 면에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창기의 형태였으며, 이에 대해 파고들어 연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김 대표는 “당시 특송회사들의 경우 한국 내 헬스케어 콜드체인 관련 인프라가 전무했다. 때문에 월드쿠리어와 같은 글로벌 프리미엄 물류기업들의 서비스를 스터디하고 업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가 헬스케어 콜드체인에 푹 빠져버린 이유는 이 업무의 핵심이 절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소속된 물류회사, 그리고 배송을 원하는 병원과 제약사, 마지막으로 배송을 위해 협업하는 외부 에이전트까지 모두를 설득해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김 대표는 “헬스케어 콜드체인은 사람의 건강 또는 생사와 직결된다.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고부가가치의 서비스다. 허나 이를 정식 서비스로 적립하기까지 무수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정말 뜨겁게 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콜드체인, 누구보다 뜨겁고 따뜻하게
TNT는 서류나 일반 화물을 취급하는 국제 특송이라는 기존의 틀 안에 클리니컬 익스프레스라는 부가가치 프리미엄 서비스를 끼워 맞춰야 했다. 이 서비스를 한국에 론칭하며 국제는 물론 국내 운송 서비스(Domestic Service)로 영역을 확장해 나갈 때 많은 제약이 있었다. 게다가 주로 소통하는 고객은 물류팀이나 구매팀이 아니라, 물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제약회사의 R&D팀, 임상시험팀, 의사나 연구간호사, 또는 의대 교수가 직접 배송에 관여했다. 혈액이나 세포 등의 검체나 시판 전의 임상약 등의 배송품목은 상업적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담당하는 드라이버들은 콜드체인과 위험물 규정, 통관에 필요한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등 유독 신경 쓸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늘 시간에 쫓기며 일할 수밖에 없는 드라이버에게 이것저것 세세히 챙겨야 하는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품은 환영받지 못했다. 이들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일은 필수였다.
김 대표는 “회사 내 관련 부서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이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하고, 사업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가졌는지 증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또한 각종 제약, 의학 컨퍼런스에 직접 참여해 서비스를 소개하는 영업에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 결과 당시 불법이었던, 고속버스택배 등을 통해 위험하게 배송되던 제대혈*에 관한 정식 운송 계약을 국내 최초로 따내는 등 실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라이버님들과는 내가 가진 자부심을 그들 또한 느낄 수 있도록 꾸준히 교육하고, 소통했다. 건강과 생명을 위한 전문배송은 끊이지 않아야하며,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콜드체인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것은 뜨거운 열정, 그리고 사람 간의 따뜻함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간의 활약으로 TNT의 경쟁사 월드쿠리어에 스카우트 된 김 대표는 그곳에서 헬스케어 콜드체인 관련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s)를 습득하는 한편, CCM(Cold Chain Management) 트레이너로서 시장 곳곳의 플레이어들과 함께했다. 월드쿠리어 이후에는 마켄 한국 지사장을 맡아 한국에 마켄의 영업, CS 및 오퍼레이션을 셋업하고 사업을 확장시켰다. 현재 기업 생활을 모두 마무리 한 그녀는 헬스케어 콜드체인 전문 플랫폼 CCP를 설립, 헬스케어 콜드체인에 관련된 정보제공과 국내 및 해외 기업 네트워킹, 컨설팅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CCP의 본질 또한 ‘커뮤니케이션’
김 대표가 꿈꾸는 CCP의 목표는 프리미엄 기업들만이 가지고 있는 바이오 제약 콜드체인 관련 정보의 창구를 열어,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의 열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그 정보가 너무나 한정적인 국내 헬스케어 콜드체인 시장에서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간단한 자가진단은 물론, 편리하게 각종 상품과 업체의 조건들을 비교할 수 있으며, 향후 교육 프로그램과 컨설팅 서비스까지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헬스케어 콜드체인은 바이오 제약산업의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바이오 의약품의 발전은 콜드체인과 관련된 산업들도 함께 성장하게 한다. 이제는 틈새 영역의 헬스케어 프리미엄 물류기업들 뿐 아니라 국내 택배, 항공 포워딩 및 해운업도 헬스케어 콜드체인 분야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올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심사를 공유하고 고민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못 다한 이야기
김 대표가 말하는 헬스케어 콜드체인의 매력은 냉장, 냉동, 상온 등 고객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며, 적기적소에 배송을 마쳐야한다는 것에 있다. 그 중에서도 2007년 FIFA 주관 U-17 청소년 월드컵대회의 도핑테스트 관련 일화를 소개한 김 대표는 “FIFA 관계자와 경기장 도면을 펼쳐 도핑 샘플 운송에 대한 계획을 짰다. 축구 경기가 열릴 때마다 드라이버는 냉장 포장재를 가지고 서울, 수원, 울산, 고양, 천안, 창원, 제주도에 위치한 월드컵 경기장 내 지정된 장소에서 경기 종료 90분 전에 FIFA 메디컬 담당자(Medical Officer)로부터 선수들의 도핑 샘플을 인계받아 냉장 포장을 마친 후 서울에 위치한 세계도핑방지기구(WADA; World Anti-Doping Agency) 연구소로 곧장 운송했다. 헬스케어 콜드체인이 스포츠 분야에도 접목되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소개했다.
또 하나는 세포치료제와 관련된 국제 특송 사례이다. 김 대표는 "국내의 세포치료제 회사가 해외에 있는 환자의 무릎 연골 조직을 자가세포치료제로 만들어 아시아 및 유럽으로 수출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며 "우선 환자의 연골을 담을 빈 키트를 냉장(+2℃~+8℃)으로 보낸다. 병원에서 이 키트에 환자의 연골 조직을 채취한 뒤, 72시간 내에 냉장 상태로 한국에 있는 세포치료제 회사로 운송한다. 4주간의 배양을 거쳐 세포치료제가 완성이 되면 이를 해외에 있는 환자에게 이식하기 위해 다시 냉장으로 운송하는데, 이는 환자의 수술일시에 맞춰 운송이 되어야 했다. 냉장 온도 유지, 통관 등으로 인한 배송 지연은 수술대기 중인 환자에게 치명적이므로 완벽한 시나리오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사전에 철저히 준비 해야 했다. 압박감도 컸지만 그 만큼 성취감도 컸다. 뿐만 아니라 한 건의 운송이 한 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의 운송으로 이어지며 추가 물량이 확보되는 것도 사업적으로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로지스타 포캐스트’에 참여한 소감
김 대표에게 로지스타 포캐스트 2019는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 물류인들을 두루두루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사실 콜드체인, 그 중에서도 헬스케어 콜드체인은 물류의 작은 영역으로 ‘아싸’와 같은 분야다. 또한 제약이나 의학 관련 컨퍼런스나 행사는 셀 수 없이 다녔을지언정, 정작 물류인들의 행사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뜻 깊고 유익한 시간이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정보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으로는 박정훈 CJ미래경영연구원 수석의 ‘ROgistics(robot + logistics)’: 속도 보다 방향을 살필 때다‘를 꼽았다. 김 대표는 “헬스케어 콜드체인에 있어 온도 이탈 문제는 의외로 휴먼에러(human error)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실수, 예를 들면 냉매제 컨디셔닝 단계에서의 확인 작업 미흡이 온도 이탈이라는 치명적인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단순 확인 작업에서 사람의 부주의로 일어나는 업무를 로봇을 통해 관리한다면, 온도 이탈이라는 문제의 씨앗을 줄이면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사용해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물류문화에 있어 CAPA(Corrective Action Preventive Action)라는 품질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수가 발생했을 때 누구를 탓하거나, 혼날까봐 실수를 숨기거나, ‘죄송하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반성문 식의 사과문으로 고객의 컴플레인이나 업무 실수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결코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실수 재발 방지를 위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으면서, 사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실수하게 만드는 시스템 자체를 끊임없이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직원들이 열린 소통을 할 수 있는 CAPA 시스템이 회사 문화로 정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계적 프리미엄 물류기업은 SOP가 잘 되어 있어서 서비스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의 SOP가 매우 세세하게 잘 되어 있는 이유는 CAPA 시스템을 회사 내에 정착시켰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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