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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내·차·중> '초한 전쟁" 항우와 유방도 사용한 '인간GPS'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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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2. 4. 2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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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면 지도 바뀐다"…매주 2개 이상 신규 도로 건설
네비게이션 정교성 떨어져, '인도' 팻말 든 인간GPS 성업
중국 GPS산업 연간 9조원…2020년까지 위성 35기 목표
글. 이슬기 로지스 씨앤씨 대표 컨설턴트 

 

[CLO] 얼마 전 필자는 “노숙자를 이용한 인간 와이파이 서비스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용인즉 영국의 한 광고대행사가 노숙자들에게 계정이 적혀진 티셔츠와 휴대용 공유기를 제공 한 후, 이 주소에 접속한 사용자들이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 이용자들에겐 무선 인터넷 환경을, 노숙자들에겐 돈벌이를 제공하는 서비스인 셈이다. 그러나 일부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현재로서는 제대로 이 서비스가 시행될 수 있는 지는 미지수다.

 

중국에서는 '인간 와이파이' 이전에 이미 '인간 GPS(위성항법장치, global positioning system)'가 오랫동안 나름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별다른 비난 여론이 생기질 않았다. 2017년 유인우주선을 달에 보낸다는 ‘우주활동백서’까지 발간한 중국에서 인간 GPS라니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인간 GPS들이 중국의 크고 작은 도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중국의 도시로 진입하는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 뭔가 작은 간판 같기도 하고 골판지를 잘라 만든 것도 같은 팻말에다 글자를 적어서 진입하는 차량들에게 흔들어 보이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혼자 서 있는 사람도 있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이들도 있고, 담배를 피우거나 수다를 떨고 있는 등…. 제각각 모습은 달라도 하나같이 손에 작은 팻말을 들고 계속 흔들어 보이며 운전자들에게 열심히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그 표지에는 하나같이 '인도(引道)'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쓰여 있다. 그렇다 이들이 바로 중국의 인간 GPS 들이다.

 

근본 땅덩이가 넓은데다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일주일이면 새로운 도로가 2개씩 생긴다는 중국에서 처음 가는 길을 찾아 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네비게이션이 있지만 워낙 길이 많고 새롭게 건설되는 도로가 많다 보니 네비게이션이 그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네비게이션은 아직은 정교함에서 많은 개선이 필요한 수준인지라 때로는 네비게이션이 없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이들 인간 GPS들은 아직도 매우 요긴한 길 안내자로서, 이들의 정교한 서비스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 한다.

 

 

일단 운전자가 팻말을 보고 차를 세우면 흥정에 들어간다.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위치에 따라 적게는 수십원 부터 많게는 기백원도 호가 하는데 사정이 급한 운전자라면 괜히 어설픈 네비게이션 믿고 시간낭비, 체력낭비 하느니 적당히 흥정해 이들 인간 GPS들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

 

흥정이 끝나면 인간 GPS는 조수석에 앉아 길안내 서비스를 시작한다. 곧 이어 휴대폰 충전기를 정중히 손님의 시거잭에 꽂고 핸드폰을 한손에 든다. 최근 진화한 인간 GPS의 위력은 길안내 뿐 아니라 실시간 교통정보 공유를 통한 빠른 길 찾기로 고객의 소중한 시간과 기름값을 절약 해 주기도 한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이들도 있지만 팀을 만들어 움직이는 이들이 많고, 휴대폰으로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동료들과 교신하면서 실시간 교통정보를 공유한다. 거기에다 그들만의 지름길 노하우가 합쳐지면 최신식 TPEG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인간 와이파이가 노숙자 구제용 이라면 중국의 인간 GPS는 인간의 지식과 IT가 절묘하게 융합된 전문 서비스라고나 할까?

 

그건데 왜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런 직업이 중국에서는 흔히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인간 GPS는 유난히 길 가르쳐 주기에 인색한 중국인들의 자연스러운 관습에서 나온 직업이 아닐까 싶다. 필자 역시 북경에서 전혀 반대편 길을 알려 준 사람 덕분에 몇 시간 엉뚱한 길에서 고생한 경험이 있고 보면 중국에서 인간 GPS가 유난히 특별한 직업은 아닐 것이다.

 

항우가 유방의 부하 한신의 용병술에 쫓겨 길 가던 백성에게 나루터 가는 길을 묻자 백성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가리켜 준다. 물론 항우가 싫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길 가리켜 주기에 인색한 관습의 탓도 있으리라. 땅이 넓고 사람이 많다 보니 모르는 사람은 일단 경계하는 것이 자신과 마을을 지키는 경험적 방어기재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미국인들의 미소와 인사습관이 개척시절 악당과 친구가 구분이 되지 않아 의식적으로 인사를 건네 확인하는 습관이 오늘날의 인사문화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보면 중국인들의 길 가리켜 주기 관습도 유별난 것은 아닐 것이다.

 

불과 2년여 전의 일이다. 국내 모 전자기업의 상해 공장에 한국산 반제품 운송을 담당한 국내 중견물류기업 ‘B'사는 중국 내 육상운송의 리드타임(Leadtime) 단축과 가시성(Visibility)개선을 위해 계약 운송사 전 차량에 GPS설치를 계약 갱신조건으로 제시했다. 중국에는 2010년 기준 약 800만대의 화물트럭이 있고 이중 약 80%는 자체차량 5대 이하의 영세기업 소유차량이다. 규모가 좀 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수십대 규모에 그것도 대부분 지입차 형태이기 때문에 적잖은 돈을 들여 전 차량에 일시에 GPS를 부착 한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려운 조건이다.

 

막상 계약조건을 제시한 한국물류기업으로서도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작정 강요 할 수도 없고 강행을 하자니 운임인상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묘안을 궁리 하던 차에 한 중국 운송회사가 '인간 GPS'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내용 인즉, 항구에서 상해까지 700여 Km의 거리에 150km 단위로 GPS중계점을 두어 운전기사가 중계점에 내려 신분확인을 하면 중계점의 인간 GPS는 이를 실시간으로 B사 상황실로 전화하여 차량번호와 기사, 그리고 발착 시간은 물론 차량상태까지 확인하여 보고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최근 소비자 물가도 많이 오르고 중국 근로자의 인건비 또한 크게 올랐지만 아직도 시골에 가보면 하루 10위안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현실이고 보면 각 중계소 마다 부업이나 소일거리로 저렴한 인건비에 '인간GPS'를 고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지라 B사와 운송사는 인간 GPS를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예상보다 좋은 성과를 보였다. 어떻게 보면 첨단 GPS장치 보다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GPS정보의 신뢰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두 번 같은 기사와 만나다 보니 서로 안면을 트게 된 중국인 특유의 꽌시(?系)가 작동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꽌시는 별의별 웃지 못할 해프닝들을 발생시켰다. 예를 들어 차량의 갑작스런 고장은 단골메뉴가 돼 버렸고, 짙은 안개로 도로가 통제됐다느니, 운전기사는 물론 보조기사까지 배탈이 나서 병원 신세를 졌다는 핑계가 늘어났다. 심지어는 도로에 두꺼비떼가 출현해 운행이 불가하다는 등의 기상천외한 사건도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물류기업 입장에서는 리드타임이고 가시성이고 뭐고 이전보다 도착시간도 지연될 뿐 더러 항구에서 차량이 출발하면 도착 때 까지 차량의 행방조차 묘연해 지는 난감한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 결국 B사는 '인간 GPS' 프로젝트를 접고 시범적으로 차량 몇 대에만 GPS를 장착하는 것으로 야심찬 개혁(?)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B사는 지금은 상당수 차량에 GPS를 장착하여 운행 중이다. 하지만 모든 차량에 GPS를 장착하기엔 시간이 좀 더 걸릴 전망이다.

 

중국은 이미 1984년에 GPS 프로젝트 콤파스(Compass, 중국 이름 ‘베이더우·北斗)를 시작했다. 첨단무기의 정확도와 직결되는 GPS를 미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내린 결정이다. 만일의 상황에서 미국이 GPS를 차단하면 중국의 군사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2011년 12월 전 세계 유수의 통신은 중국이 자체 GPS시대를 열었다고 일제히 보도한 바 있다.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중국까지 자체 GPS를 갖게 되면서 군사적 의미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네비게이션 등의 IT산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재 중국의 GPS는 10기의 위성으로 구성돼 중국 전역과 인접국가에서 위치측정이 가능하며, 오차범위는 25미터 수준으로 미국의 10미터 수준에는 못 미치는 기술력을 확보 중이다. 그러나 2020년까지 35기까지 위성을 늘려 서비스 범위를 중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대 할 방침이다.

 

중국정부는 이미 GPS 정보를 민간에 개방했고 이정보를 바탕으로 네비게이션은 물론 스마트폰이나 항공기, 선박관리에도 이용할 뿐 아니라 군수장비에도 핵심적으로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GPS산업은 2010년 현재 500억 위안(약 9조원)을 넘겼고 이를 이용하는 기관이나 기업만도 3만 여개에 달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각국의 GPS경쟁도 치열하다. 러시아는 2011년 10월 24기의 위성으로 자체 GPS '글로나스'를 시작했다. 유럽도 GPS 프로젝트 '갈릴레오'를 2014년까지 위성을 30기로 늘릴 계획이며 일본은 2010년 '미치비키'라는 위성을 처음으로 발사했다.

 

아직도 중국에는 인간 GPS들이 도시 곳곳을 누비며 길안내를 하고, 작지 않은 비용부담으로 인해 GPS 장착을 꺼리는 화물차들이 많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중장기 계획에 따라 자체 GPS를 실현하고 전 세계를 향해 이글아이(Eagle Eye)를 내려 보는 중국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인접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물류업계는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현실이다. 

 

[용어]
 TPEG(Transport Protocol Experts Group; 실시간 교통정보)
 이글아이(Eagle Eye):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 세상을 조종하는 또 하나의 눈 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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