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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물류의 귀재 "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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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3. 4. 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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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배우는 물류학개론

이슬기 로지스씨앤씨 대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을 본 적이 있는가?


필자의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영화를 보면서 저 많은 군수물자를 이동 하자면 물류비용이 얼마나 들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 물량을 3자물류(3PL)로 수주한다면 얼마로 견적을 내야할까? 보급기지의 위치와 경로는? 보급품의 적정재고는? EOQ와 MOQ는?"  


어릴 적부터 접해 온 삼국지가 생뚱맞은 직업병으로 인해 이제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여일(배우 강혜정)이나 했을법한 엉뚱한 산수를 하게 하는데 그래도 해 보고 싶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로지스틱스(Logistics)'의 어원을 살펴보면 프랑스의 병참장교를 가리키는 'Logistique'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옛날에 대규모의 물자 이동을 유발할만한 일이 전쟁 말고 또 뭐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보면 물류의 출발점이 전쟁이라는 이야기도 꽤나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전쟁과 물류가 서로 멀지않은 사이고 보면 삼국지의 수많은 전투장면이 물류와 오버랩 되는 일이 필자의 직업병만은 아니리라 위안을 삼아 본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적벽대전이 아닐까 싶다.

적벽대전(赤壁大戰)은 서기 208년 후한(後漢)말기에 양자강 남안(南岸)에 있는 적벽에서 손권과 유비의 소수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격파한 전투로 이 전투를 통하여 손권은 강남(江南) 대부분을, 유비는 파촉(巴蜀) 지역을 장악하여 중국을 삼분(三分)하게 된다. 무패 행진을 이어가던 조조에게는 씻을 수 없는 참담한 KO패를 안겨준 뼈아픈 전투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전투를 통해 더욱 그 가치가 빛을 발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제갈량이다. 하룻밤 사이에 화살 10만개를 조달한 공명은 가히 조달물류의 일인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주유는 필요한 양의 화살을 확보하지 못한 체 최후의 일전을 맞이했으니 적정재고관리에 실패한 관리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방통의 연환계(連環計)를 받아들여 전투함 수천척을 묶어버린 조조는? 아마도 2008년 우리나라에 조조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화물대란의 향방이 달라졌을 것이다.        


적벽대전에 동원된 군수물자를 물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필자는 군사전문가가 아닐 뿐 더러, 필자의 짧은 지식으로는 당시의 군수물자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으니 군수물자의 물류비용과 같은 거창한 계산은 포기하겠다. 대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먹어야 살고 군사가 군량 없이 전투를 치르지는 못했을 것이니 적벽대전에 동원된 군량과 군량의 운송에 소요된 물류비용을 계산 해 보면 재밌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적벽대전을 묘사할 때 흔히 '조조의 백만대군'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실제 100만 대군이 가능했을까? 백만 대군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금방 실감이 나지 않지만 지금의 각 나라 군대의 규모를 비교 해 보면 실로 엄청난 숫자임을 금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조조의 백만대군은 아무래도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인구 13억의 중국이 약 240만 병력이고, 그다음이 인구 3억의 미국이 약 130만, 그리고 인구 대비 매우 비정상적일만큼 많은 북한이 110만 정도이니 당시 중국의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조조의 100만 대군은 무리라고 볼 수 있다.  


적벽대전의 실제 병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삼국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어떤 이들은 10만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50만 정도라고 한다. 아무도 직접 본 사람이 없으니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20만~30만명 정도로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라 필자 역시 다수 의견을 쫓아 조조의 대군을 25만명으로 가정해 본다. 그렇다면 손권과 유비의 군대는 얼마나 될까? 실질적으로 적벽대전은 조조와 유비의 대결구도이고 손권은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유비를 도와주는 정도의 역할은 했을 뿐이다. 따라서 유비의 병력은 조조의 절반인 10만 정도로 보고 손권은 2만 정도로 추정해도 무리가 없을듯 싶다. 이는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각종 연구나 발표자료에도 이와 같이 추정하는 자료가 많이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정리해보면, 적벽대전에 동원된 병사는 조조 군 20만명 + 유비 군 10만명 + 손권 군 2만명으로 볼 수 있겠고 여기에다 양 진영의 보급과 공병대 약 8만명을 더하면 적벽대전에 동원된 양 진영의 군사는 총 40만명으로 추정 해볼 수 있겠다.


군사 40만명이 소모한 군량은 얼마나 될까?

현재 우리나라 국방부 기준 일일 급식 열량은 3300 kcal이고 우리나라 학교급식은 1식 약 820kcal 정도이다. 1800년전 인류의 영양공급이 지금보다 더 좋았을리 만무하고 일반백성이 하루 세끼 먹기는 호사스러운 일이었을 것이기에 전투에 임한 군사들의 배식이라도 아주 열악했을 것으로 생각해서 1일 1000kcal 정도로 추정한다면 너무 배고프지 않았을까? 


1일 1000kcal이면 요즘 식당서 먹는 공기밥으로 약 3공기 정도다. 물론 밥 이외에 다른 육류나 식재료, 기름 등은 전혀 포함하지 않고 오직 쌀밥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밥 한 공기는 약 200그램이고 생쌀로 치면 80그램 정도가 된다. 하루 3공기면 쌀 240그램이니 적벽대전에 참여한 군사 40만명이 하루에 먹는 쌀의 양은 약 96톤이 된다. 적벽대전은 11월에 치루어 졌고(그래서 조조가 겨울에 북서풍이 불리 없다는 결정적인 오판을 하게 된다) 거의 1년을 대치 한 전쟁이니 1년 동안 소요된 군량만도 96톤 x 365일 = 3만5040톤에 이른다. 요즘 흔히 사다 먹는 20kg 포대로 치면 17만5200포대가 되고 운반을 위해 이를 1톤 탑차에 적재한다면 적재중량 기준 약 3만5000대의 화물차가 동원 되어야 할 규모이다. 


물론 당시 모병상황은 직업군인이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전쟁이 나면 동원되는 군사들로 채워져 자기가 먹을 양식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요즘 보급체계와 비교할 상황은 아니지만 어쨌든 적벽이 농사짓는 벌판이 아니고서야 어디선가 연간 3만5천톤의 군량이 운송되는 물류활동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톤 탑차가 1회 운행한 상황으로 가정하고 1회 운송비용을 우리나라 돈 10만원으로 계산하면 적벽대전을 위해 소요된 군량의 운송에 따른 물류비용만 총 35억원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사실 물류비용은 각종 무기와 장비, 보급품 등에 소요된 비용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금액이고 보면,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힘든 싸움 끝에 패전하고 쇠락의 길을 재촉한 이유가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오늘도 각종 보도를 통해 수시로 들려오는 북한 주민들의 참담한 실상을 접하면서 북한정권의 전쟁준비에 소모되는 막대한 비용이 따뜻한 공기밥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대 해 본다. 아울러 가까운 미래에 통일 대한민국의 위상이 물류대국으로 더욱 빛나기를 물류인의 한사람으로서 가슴 벅차게 기원하는 바이다. 


<용어설명>

 적벽 : 지금의 호북성 성도인 무한시 서남쪽 30km지점


적벽대전 군량조달 규모만 1톤 탑차로 3만5000대 소요 추정

적벽대전은 거의 1년을 대치 한 전쟁이니 1년 동안 소요된 군량만도 96톤 x 365일 = 3만5040톤에 이른다. 요즘 흔히 사다 먹는 20kg 포대로 치면 17만5200포대가 되고 운반을 위해 이를 1톤 탑차에 적재한다면 적재중량 기준 약 3만5000대의 화물차가 동원 되어야 할 규모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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