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글. 이슬기 로지스씨앤씨 대표] 중국 관련 일을 하는 외국인들이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게 중국식 식사문화다. 중국은 풍성한 음식문화를 자랑하는 만큼 요리 주문부터 권주(勸酒)까지 나름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의 비즈니스는 골프장이 아니라 대부분 식사 자리에서 이뤄진다.
업무상 중국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저녁식사 자리에 종종 초대를 받게 된다. 때로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특색 있는 식당으로 초대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방이 수백개나 되는 어머어마한 규모의 식당에 초대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종류의 식당이든 초대하는 사람으로서는 나름 신경을 많이 쓸수밖에 없는데 그 마음을 몰라준다면 기분이 어떨까?
얼마 전 중국 출장 때의 일이다. 상해에서 꽤 이름 있는 일급대리의 총경리가 필자를 저녁식사에 초대 하였다. 회사차량을 호텔로 보내 주겠다는 호의를 사양하고 쪽지에 적어 준 식당을 찾아 택시를 탔는데, 상해 토박이(本地人)이라는 택시기사가 한참이나 헤맨 끝에 겨우 식당을 찾았다.
대로변도 아니고 이면도로 좁은 길에 인적마저 많지 않은 식당 앞에 내리니 나지막한 지붕에 허름한 외양이 적잖이 실망감을 주는 터라 필자를 따라 나선 일행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방으로 들어서니 먼저 도착 해 기다리고 있던 총경리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고 곧 식사가 시작 되었다. 허름한 식당의 겉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고급스런 요리가 차례로 등장하였고 잠시나마 총경리에게 가졌던 나의 옹졸한 마음이 미안함으로 변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 총경리가 허구 많은 식당 중에 왜 이 식당에 우리를 초대 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계속 남아 있었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총경리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총경리가 갑자기 젓가락을 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필자는 쓸데없는 질문을 해 좋은 자리를 다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 졌다. 같이 온 일행들이 무슨 일이냐며 웅성거리고 필자로서는 당황스러움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이, 다시 방문이 열리고 총경리가 왠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분을 모시고 들어 와 오늘 요리를 준비 한 분이라고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그분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고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연인 즉, 그 식당은 총경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그 날이 그 식당의 마지막 영업일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연로하시고 기력이 쇠하여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어 식당을 정리하고 가족과 친지, 지인들을 위해 지난 한달여간 요리로서 고마움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그 연로한 요리사의 마지막 손님이었던 것이다.
성공한 자식의 손님들을 위해 기꺼이 마지막 남은 열정을 쏟아 주신 노요리사의 정성에 감격한 참으로 아름다운 만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총경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던 그 순간의 그 아찔함이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그때 필자가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총경리로서는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필자로서는 본의 아니게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연출한 셈이니 나름 대견한 일을 한 것이 아닐까?
네발 달린 건 책상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인들의 음식 사랑은 이미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음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이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 하듯이 중국인들의 경우 음식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위상을 가늠하게 하는 간접적인 요소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식당을 선택하는 일 또한 중국인들에게는 음식에 대한 지식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초대를 하는 사람은 손님의 지위나 인원, 사안의 중요성 등에 따라 어느 식당을 선택할지 고심하게 되는데 자신의 단골집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겠고 특정 요리가 유명한 유서 깊은 맛집 이거나 또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특별한 일화의 배경이 되는 곳, 그도 아니면 그 지역에서 제일 큰 식당 또는 제일 비싼 식당 등 반드시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경우가 많다.
눈치 빠른 한국인 이라면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대자가 왜 그 식당으로 나를 초대 했는지 재빨리 파악하여 특별한 식당에 초대 해 준 점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한마디 던져보라. 아마도 초대자는 당신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하며 만한전석을 차려서라도 당신을 더욱 기쁘게 해 주고 싶을 것이다.
한술 더 떠 그날 식탁에 오른 요리에 대해 어떤 재료인지 어떻게 조리를 하는지 등의 질문을 이어 간다면 초대를 한 중국인은 아마도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을 해 줄 것이고 손님은 물론, 동석한 중국인들도 그의 해박한 요리지식에 감탄 할 것이다. 대접을 받는 입장에서 이 보다 더 큰 보답이 어디 있겠는가? 적어도 중국에서는 말이다.
식당 이야기가 나왔으니 중국의 식탁예절에 대해서 몇 가지 알아보자.
중국의 식탁에서 자리의 위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즈니스 식사초청이나 공식적인 만찬에서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내가 앉을 자리를 잘 알아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중국에서 식사 초대를 받아 식당에 가면 식탁 옆에 응접 소파가 있어 식사 전에 차나 간단한 음료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게 된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이때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그러다가 손님이 다 오면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데 이때 주인장(초대한 측의 제일 높은 사람)은 보통 주빈(초대받은 측의 제일 높은 사람)에게 제일 상석으로 자리를 권한다. 식탁의 제일 상석은 보통 특별한 표시를 하여 눈에 띄게 하는데 냅킨을 특색 있게 말아서 식탁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고급 식당에서는 특별한 꽃 장식을 올려 놓기도 한다.
중국에서 제일상석은 방의 출입구 대각선 맞은편으로 주인장이 앉는 자리이고 동시에 그날 식사비를 지불할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아마도 여러분이 우연히 출입구 대각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면 식사가 끝나기 전에 주머니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장이 자리를 권한다고 해서 덥석 그 자리를 앉는 것은 당연히 예의가 아니며 원래 앉아야 할 자리도 아니다. 당연히 극구 사양을 하면 주인장은 주빈에게 자신의 오른쪽이나 왼쪽 바로 옆 자리를 권하는데 그곳이 바로 주빈의 자리이다.
주빈이 자리를 잡고 나면 초대받은 측의 인원은 서열순으로 주빈의 옆자리로 앉으면 된다. 그래서 중국 식탁의 제일 말석은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가 되는 것이다. 초대받은 사람들의 자리가 정해지면 초대한 측의 자리가 정해지는데 역시 주인장의 좌측이나 우측의 바로 옆 자리에 주인장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앉게 되고 출입구방향으로 갈수록 말석이 된다.
그런데 가끔 정체불명의 인사가 주인장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있다. 미팅시간에 보이지도 않던 사람이 앉아 있는 경우도 있고 미팅시간에 있었지만 별 역할이 없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주인장 바로 옆자리에 떡하니 자리를 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람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명함도 아예 없거나 명함이 있어도 직책이 모호한 경우가 많고 아예 이름석자만 달랑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국영기업체에 이런 경우가 많은데 주로 회사의 자문역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로서 전직 공산당 고위 간부 출신들이 많다.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 입장에서 이런 사람들 앞에서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나 민감한 이슈를 이야기 한다면 초청만찬의 의의가 사라질 뿐 더러 자칫 비즈니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원활한 비즈니스를 위해 중국 체제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히 처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1978년 등소평이 중국의 경제발전을 최고의 국정과제로 내걸고 인민들을 등 따뜻하고 배불리 먹게 해주고(溫飽),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小康)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한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비만과 성인병을 걱정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 해 G2의 위상으로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는 유럽식의 테이블 매너 뿐 아니라 중국의 음식문화와 식탁예절도 글로벌 문화의 이해 차원에서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할 시대가 온 것 같다.
용어설명: 만한전석(滿漢全席)
만주족(滿洲族) 요리와 한족(漢族)요리를 총 망라한 대연회식을 일컫는 말로서, 18세기 초 청나라 건륭제의 회갑을 맞아 65세 이상의 노인 2,800명을 초청해 연회를 베푼 것이 시초이다. 지금은 진귀한 고급요리를 망라한 대단한 상차림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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