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T 세상의 놈놈놈① 솔루션 업체편
세계 유일의 한국 이커머스 산업구조
아웃소싱 잔치가 벌어지는 세상, 쇼핑몰 솔루션의 역할은?
글. 김문성 위사 차장
Idea in Brief
최근 몇 년간 CBT(cross-border trade) 시장에 대한 관심과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런 중에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CBT 시장 진출에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고 호소한다. 대체 이커머스 시장에는 어떤 ‘나쁜 놈’들이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을 난관에 빠뜨렸을까. 기업들이 CBT 시장에 직접적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뒷이야기를 해본다. 첫 번째 주인공은 '쇼핑몰 솔루션 업체'다. |
세상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 있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의 세계에는 어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 있을까. 먼저 ‘좋은 놈’은 개인의 성공을 조직, 사회까지 연결시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이들이다. 반면 ‘나쁜 놈’은 불건전한 시장 독점구조를 만들어 소수의 경영자만 배불리는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놈’은 항상 굶주려 있어 계속해서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속한 이커머스 시장, 그 중에서도 요새 핫한 트렌드로 떠오르는 CBT(Cross Border Trade)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누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일까.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커머스 산업에는 ‘나쁜 놈’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특히 애석하게도 CBT 시장에서는 원래 ‘좋은 놈’의 역할을 했던 이들이 ‘나쁜 놈’으로 변해버린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는 국내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 명의 나쁜 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왜 많은 기업들은 CBT 시장에 직접적으로 진출하지 못할까. 그리고 이런 이들의 진출을 막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첫 번째 나쁜놈은 쇼핑몰 구축, 호스팅, PG결제, 부가서비스, 마케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쇼핑몰 솔루션업체'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이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먼저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기본 구조부터 알아보자. 우리나라는 패션의류부터 신선식품까지 대부분의 상품을 주문하면 당일, 혹은 익일 수령 가능한 ‘온라인 쇼핑몰 공화국’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전국 택배 서비스가 가능했고 이 때부터 온라인 서비스가 시작됐다. 홈쇼핑은 1995년 8월 (주)삼구(현 CJ오쇼핑)가, 온라인 쇼핑몰은 이듬해인 1996년 롯데닷컴과 인터파크가 한국 온라인 커머스 시대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0년대.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시장보다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들이 생겨났고 그것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쇼핑 플랫폼(오픈마켓, 종합몰, 홈쇼핑, 기업 복지몰, 소호몰 등) 대부분이 이 시기에 생겨났음은 물론이다. 2010년 이후에는 모바일커머스, 소셜커머스, O2O,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이 쇼핑 플랫폼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유통구조
그런데 이커머스 시장에서 한국만이 갖는 이상한 구조가 있다. 그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개인 소호몰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이커머스 패션업계를 이끌고 있는 립ㅇ,스타일ㅇㅇ, 난닝ㅇ, 큐니ㅇ 등과 같은 소호몰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들은 과거에는 소호몰로 시작했지만 이제 ‘소호몰’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패션 업계에서 높은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이게 왜 이상하냐고? 여타 해외 국가의 경우 상품 공급업자가 직접 상점을 운영하면서 유통을 내재화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은 복잡한 유통방식과 문화를 갖고 있다.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도매와 소매개념의 명확한 유통구조가 있었다. 생산업체가 도매시장에 물건을 1차적으로 넘기면, 도매상가는 소매점에 물건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최종적으로 소비자는 소매상가에서 물건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 중간에는 상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중간 유통상이 대거 존재한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도매시장 유통방식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한 구조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한국의 분업화된 유통구조 덕분에 소규모 셀러들의 다품종 소량 상품공급이 가능해진 것은 사실이다. 쇼핑몰들이 전국 익일 수령 가능한 획기적인 택배서비스로 기본적인 배송시스템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됐음은 물론이다.
소호몰을 위한 어벤저스의 등장
여기에 어벤져스급 지원군이 등장한다. 바로 카페ㅇㅇ, 메이ㅇ 등의 임대형 쇼핑몰 솔루션이다. 처음 시장에 진입한 소호몰들은 임대형 쇼핑몰 솔루션 업체를 통해 누구나 쉽게 쇼핑몰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개인 소호몰’은 한국형 이커머스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임대형 쇼핑몰 솔루션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키운 일등 공신이다. 쇼핑몰 솔루션은 누구나 이커머스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도/소매 오프라인 유통구조는 빙하기의 공룡 같은 안타까운 신세가 됐다. 소호몰의 춘추전국시대라 부를 수 있는 2000년~2015년 사이를 필자는 이커머스의 1라운드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쇼핑몰 솔루션 업체는 산업의 발전을 이끈 '착한놈'이다.
같은 시간 해외에서는 '아마존', '알리바바 그룹', '이베이'와 같은 글로벌 쇼핑 플랫폼들이 등장한다. 이커머스 사업의 핵심은 고객과 상품을 잘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이커머스 사업은 'IT기술', '상품', '배송' 3가지가 결합된 스마트폰 등장 이전 가장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 국가별 상위 쇼핑 플랫폼들은 내수 시장을 넘어서 CBT 비즈니스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국경을 넘은 전자상거래 '크로스보더 이커머스'는 최근 2~3년간 세계적인 유통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CBT시장의 장벽이 된 '솔루션 업체'
모바일 커머스를 포함한 CBT의 활성화는 이커머스의 2라운드를 촉발했다. 이제 해외의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것은 물론, 자국 상품을 해외로 판매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가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쇼핑몰들은 해외진출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왜일까. 게다가 여전히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단순히 유통사업자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또한 왜일까.
앞서 소호몰 탄생에 혁신적인 공헌을 한 '어벤저스'들이 국내 쇼핑몰의 해외진출을 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은 운영 구조상 비즈니스의 핵심 기술과 노하우를 조직 내부에 품지 못하고 아웃소싱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택배업체를 쓰면 전국 익일배송이 가능했다. 시스템 비용과 서버 호스팅 비용을 무료로 제공하는 '임대형 솔루션'은 마치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 같았다. 아웃소싱이 당연한 세상이였기에, 사업을 호가장하면서 필요한 내부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 성장시킬 이유 또한 없었다. 실제로 현재 한국 온라인 쇼핑몰 회사 중 90% 이상이 쇼핑몰 솔루션(임대형, 독립형)을 쓰고 있다. 사업의 핵심 시스템을 모두 아웃소싱으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판에서 쇼핑몰 솔루션 회사들의 아웃소싱 잔치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쇼핑몰 솔루션 회사들의 주요 수익은 쇼핑몰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부가서비스 사용료에서 나온다. 그 부가서비스 대부분은 역시 외부 서비스를 연결하고 수익을 나눠 먹는 구조다. 호스팅, PG, e-mail, SMS, 광고대행과 같은 솔루션 회사나 쇼핑몰 경영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아웃소싱 잔치'를 벌이다 보니, 나눠 먹을 콩은 점점 작아졌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CBT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쇼핑몰 솔루션 회사들은 시장 변화에 맞춰 해외용 솔루션을 새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쇼핑몰 솔루션에 다국어 언어 팩을 제공하는 수준으로 해외 솔루션 흉내를 내는 데 급급하다. 현재 쇼핑몰 운영자에게 제공하는 솔루션을 유지하면서 신규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워낙 까다롭다 보니 고육지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비판은 필자가 속해있는 조직도 피하기 어렵다. 쇼핑몰 솔루션 회사들이 '좋은 놈' 으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나쁜 놈' 소리를 더 듣는 게 이런 이유다.
물론 ‘아웃소싱 잔치’는 쇼핑몰 솔루션 회사뿐만 아니라 국내 IT 회사들의 고질적인 습성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IT 보도방' 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솔루션 자체를 너무 쉽게 쓰고 너무 쉽게 버린다는 뜻이다. 이렇게 얽힌 이해관계자들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함께 문제를 키워 왔다. 너무나 커진 문제는 이제는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그 원인조차 파악하기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한국의 쇼핑몰 솔루션을 포함한 IT 벤처 회사들이 전문 인력을 키워서 솔루션에 투자하고 자생, 발전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무책임한 말 같지만, 그나마 해결책을 제시하자면 우선 정부와 자본의 힘이 필요하다.
정부는 SI(System Integration) '아웃소싱 문화'가 대폭 수정되거나 사라질 수 있도록, 더 구체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기업부설연구소의 지원 정책의 질과 양을 확대하고, 하향평준화된 창업 지원 정책이 아닌 기업의 가치평가를 통한 소수 기업의 대폭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착각하면 곤란하다. 대기업에 투자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성공의 유무를 떠나서 기술 중심의 IT 벤처 회사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어차피 정부 정책은 대부분 실패가 아니었던가. 그러려면, 지원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외주로 정책을 만들지 말고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기업에서 청년들에게 투자해서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나마 최근 IT시장에 자본 유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세계적인 '스타트업' 붐으로 인해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 투자회사나 자본가들은 온라인 시장이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보면서도 정작 오프라인 시설 투자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 와서야 이커머스, 솔루션, IT벤처에 적극적인 투자를 시작한다고 보는데, 구조를 잘 보면 전 세계적으로 자본이 이동할 수 있는 곳이 부족하니 떠밀려 왔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자본의 이동과 투자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커머스 시장을 포함한 IT벤처 기업들이 창업 초기 죽음의 늪을 빠져 나오는 기간은 매우 길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개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단순히 상품을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개발, 유지보수하고 새로 만드는 일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솔루션과 서비스는 내수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고려해야 한다. 이름만 엔젤투자가 아닌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사실 가장 변화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다. 한국인 대부분의 시선은 '내가 어떻게 사업을 만들어왔냐'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를 통해서만 성공이다 실패를 따지는 사회 풍토가 가장 큰 문제다. 모든 성공의 기준을 이야기하는 잣대는 언제나 돈이다. 실패한 사람은 영원한 '나쁜 놈'이자 '루저'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실패가 찬밥 신세 취급을 받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좋은 놈’이 나타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도전 자체를 인정해주고 실패를 아쉬워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더욱 필요하다. 라이트 형제도 수많은 실패를 거쳐 비행기를 날렸고, 혁신 대마왕 스티브 잡스의 인생 대부분도 실패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도전이 있었기에 실패도 가능했고 성공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성공의 기준은 소비자가 판단하는 것이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도전을 응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 와중 필자가 할 일은 소비자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상품을 소비자에게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결국 소비는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다음 이야기할 나쁜놈은 '소호몰'이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에 덧대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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