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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현장이 장규직 과장의 복귀를 기다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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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 2013. 8. 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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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최고 히트작이었던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주인공 장규직(오지호 분)의 마지막이 물류센터에서 끝난다는 것은 이래저래 의미가 깊다. 물류센터는 일반적으로 기업체 내에서는 생산 현장과 더불어 가장 비정규직 근무자가 흔한 곳이다. 정규직의 정점에 올라 있던 장규직이 그러한 현장으로 갔다는 것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비정규직에게 야박한 사회 풍토를 더욱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장규직은 배송스케줄 기준으로 화물배송기사에게 순회를 강조하는 장면이 있다. 담당기사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 회사에서 그만큼 기름값을 주지 않아서 그렇게 못하겠다’, ‘난 당신처럼 정규직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거칠게 트럭을 출발시킨다. 기름값을 당연히 회사 경비로 지출하는 줄 알았던 장규직의 얼굴에 일순 충격을 받은 모습이 비친다. 정규직의 대변자에게 드디어 비정규직의 힘겨운 삶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의미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글. 후버 인터넷 물류논객


얼마 전 종영된 KBS 월화 드라마 '직장의 신'을 기억하는가. 


주인공인 김혜수, 오지호, 이희준, 정유미의 나무랄 데 없는 연기, 김혜수의 다양한 연기변신, 독특한 구성, 특히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호소감 짙은 메시지까지, 방송 초기 잠시있었던 일본 원작과의 비교는 온데간데없는 ‘웰 메이드’ 드라마였다.


한국 굴지의 식품기업 와이장. 그 속에서도 탁월한 영업력과 기획력으로 초고속 승진과 각종 수상을 거듭하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까지 회사 지원으로 다녀온 마케팅영업부 팀장 장규직(오지호 분). 이름에서 보듯이 그는 이 드라마에서 정규직 근로자를 대변한다. 비록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회사에 몸담은 사람은 누구든 그 회사에 충성을 바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떨어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당연하며, 그러기 위해 야근, 접대, 윗사람 기분 맞춰주기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정규직 팀장하고 맞붙어봤자 회사 안에서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은 3개월 계약직 여직원 미스김(김혜수 분). 원래 대형은행 정규직 직원 김점순이었으나 존경하고 따르던 계약직 여직원 진미자 계장(이덕희 분, 극중에서 장규직 팀장의 친모)과 비정규직 철폐 시위에 가담했다가 진미자 계장이 시위 현장의 원인모를 화재로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다. 급기야 정리해고당한 김점순은 마음 독하게 먹고 여러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여 어느 회사에서건 최고의 능력을 발휘. 모든 회사가 꼭 모시고 싶은 계약직 직원이 된다.


드라마는 시간이 갈수록 노예근성을 더해가는 정규직의 모습을 장규직을 통해 보여주고, 비록 신분은 불안정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멋지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도 있는 비정규직의 모습을 미스김을 통해 보여주려 애쓴다.


그러던 중 장규직은 입사동기 팀장의 한 계약직 팀원의 아이디어를 사장님 앞에서 대신 발표할 기회를 잡았다가 이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리고, 회사 경영진의 미움을 산 장규직은 강원도 원주의 물류센터로 발령을 받는다.


물류센터 발령소식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걱정에 걱정을 거듭한다. 걱정의 수준이 흡사 자식을 군대 보내는 어머니 수준으로 묘사됐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물류센터로 출근한 장규직. 그를 기다리는 것은 거칠기 짝이 없고, 속칭 '먹물'들 말은 잘 안 듣는 배송차량 기사들과 물류센터 현장 근무자들이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니 물류센터 근무라고 하니까 주변에서 자식 군대 보내는 심정으로 걱정해 주는 드라마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2011년 MBC TV에서 방영된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 남편을 여읜 과부 오영심(신애라 분)이 홈쇼핑 회사에서 일하다가 문세진 회장(김용건 분)의 아들 문신우(박영재 분)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에 격분한 문회장은 오영심을 홈쇼핑 택배 물량을 처리하는 부산의 물류센터로 발령 낸다.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했던 문신우는 오영심을 따라 자진해서 부산 물류센터로 내려간다. 한마디로 ‘이건 뭐, 회사의 골치덩어리들이니까’ 물류부서로 발령 낸다는 설정이다. 아무렴 드라마 작가들이 완전 허구로 그렇게 쓰겠어? 당연히 이런저런 자문을 받고 가장 개연성 있게 주인공을 오지로 발령을 내려고 생각하다 보니 물류센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리라.


이야기를 다시 '직장의 신'으로 돌려 보자. '직장의 신'에서 장규직의 마지막이 물류센터에서 끝난다는 것은 이래저래 의미가 깊다. 물류센터는 일반적으로 기업체 내에서는 생산 현장과 더불어 가장 비정규직 근무자가 흔한 곳이다. 정규직의 정점에 올라 있던 장규직이 그러한 현장으로 갔다는 것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비정규직에게 야박한 사회 풍토를 더욱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드라마 말미에서 실제 장규직은 배송 스케줄 기준으로 배송기사에게 순회를 강조하지만, 배송기사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 회사에서 그만큼 기름값을 주지 않아서 그렇게 못하겠다. 난 당신처럼 정규직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거칠게 트럭을 출발시킨다. 

기름값을 당연히 회사 경비로 지출하는 줄 알았던 장규직의 얼굴에 일순 충격을 받은 모습이 비친다. 물류센터 업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지만,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이른바 '지입'형태로 들어오는 배송기사들이 속칭 '월대' 기준으로 기름값을 포함한 운송비를 지급받고 있어서 회사에서 장거리 배송을 원해도 기사들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는 몰랐으리라. 정규직의 대변자에게 드디어 비정규직의 힘겨운 삶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의미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정규직의 대변자 장규직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갈등이 비정규직으로 가득한 현장 물류센터에서 해소되는 장면은 눈여겨봐야 한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한 미스김은 물류센터 안에 갇힌 채 유독가스로 힘들어하는 장규직이 보낸 메시지 '네가 죽인 것이 아니야'를 읽고 곧바로 물류센터 현장으로 달려가 장규직을 구출해낸다. 그 어머니는 구하지 못했지만, 그 아들을 구해냄으로써 미스김은 진미자 계장에게 진 빚을 말끔히 갚는다. 


그리고 장규직은 미스김이 쌀쌀맞긴 하지만,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확인하고 즐거워한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비정규직 근무자, 그것도 계약이 끝나서 이제는 사실상 남남인 그런 비정규직 근무자에 의해 목숨을 구한 장규직은, 아마 앞으로는 더 이상 비정규직 근무자를 우습게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뿌듯해진다.

 

그리고 물류센터에서 비정규직 근무자들의 힘겨운 삶을 경험한 장규직이 만약 다시 본사로 돌아가게 된다면, 장규직은 아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이제는 비정규직들을 많이 배려할 것이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할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시위에 가담하느라 집안을 거의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 진미자 계장에 대한 원망을 정규직에 대한 갈망과 비정규직에 대한 압박으로 승화시켜온 그의 삶에 반대로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는 비록 끝났지만, 이 사회의 수많은 장규직들이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본사에 있어 주기를 바래야할 지도 모른다.


아참, 드라마의 마지막 배경이 됐던 물류센터 촬영장소는 삼양식품 원주공장이다. 이거 찾는라고 정말 열심히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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